정확한 뜻

십자가 복음과 개혁주의 신학과의 차이점(이근호)061103

아빠와 함께 2013. 3. 2. 10:47

십자가 복음과 개혁주의 신학과의 차이점 
이근호   2006-11-03 11:48:25, 조회 : 129, 추천 : 3

죽자"와 '바르게 살자"는 극과 극입니다.

한쪽은 매일 '죽자'이고 한쪽은 매일 '살자'입니다.

'죽자'고 하는 것이

흔히들 말하는 개혁주의신학이 아닙니다

개혁주의신학은, 일단 내가 살면서 잘해보자는 겁니다.

왜냐하면 일단 내가 살아야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비로소 성립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즉 일단  내가 살아야 그 '산 자아'가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든지,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롭게 지음받은 자로 행세하든지, 거룩하게 살아야 된다는 명령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겁니다.

거기에 비해서 십자가 복음은,

주님이 살아있는 한 구태어 내가 곧 살고자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단지 사는 것은 내가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 살아있기에 살아있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러한 관계가 주님 보시기에

'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는 모습이요, 새롭게 지음받은 자의 모습이요, 거룩한 관계를 보여주는 모습이요, 온유와 화평 및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모습니다.

이런 것이 외부로 드러내는 방도는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주님 안에서 죽고 또 죽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즉 십자가 복음에서는 '성도의 성화론은 없고 '주님의 성화론'입니다.

주님께서 거룩케 하시는 거룩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 안에 있는 자도 '자아'가 있는데 그 '자아'는 늘 주님에 의해서 죽어지는 '자아'로 움직이고, 살고 있는 겁니다.

자아의 죽음을 자아의 사라짐이나 해체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그런 것은 '의식 철학'에서 주장하는 겁니다. 성경적으로 봐서 그 어떤 인간도 마지막 때에 무덤에서 몸을 입은채 호출 당하기 마련입니다. 한번 피조물은 영원한 피조물입니다.

즉 불교의 '무아론'처럼 자아의 사라짐은 없습니다.

성도의 자아는 예수님의 새언약 피를 증거하기 위한 자아입니다.

따라서 성령님께서는 성도안에서 '죽음의 힘'을 늘 가동시켜  늘 성도로 하여금 죽이고, 그로 인해 그 성도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생명이 밖으로 증거되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

개혁주의 신학은, 자아실현, 곧 인간을 신으로 승격하는데 초점이 있기에  죽는 것도 처음 예수 믿었을 때만 죽었다가 시간이 흐르면 다시는 되살아나 (거듭나서) 두 번 다시 죽는 것도 없이 본격적으로 자아가 말씀 성취의 행동대장이 되어 펄펄 살아 그 동안 미진했던 말씀지키기에 제대로 완벽을 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열심히, 부지런히, 정신 차려서, 진지하고, 성의있게 말씀을  지키면 말씀이 지켜진다는 겁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지키도록 힘을 실어준다는 겁니다.

그렇게해서 지켜서 얻어낸 자기 만의 의로움으로 성도는 하늘 나라에서 차등지게 상을 나누어 갖는다는 겁니다.

이 의로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얻어낸 의로움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겁니다.

즉 예수님의 의나 예수님의 공로만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만'의 의가 따로 장만 못한 자는 아무리 예수님의 공로만 의지해도 구원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설사 구원되더라도 '부끄러운 구원'일 뿐이라는 겁니다.

즉 구원의 종류가 둘로 나뉘어지는 겁니다. '부끄러운 구원'이 따로 있고 '자랑스런 구원(?)'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욕먹이는 구원관이죠. 예수님이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구원관입니다.  

그런데도 만약 이런 개혁주의 식으로 성도를 안 가르치면 성도는 태만에 빠지고 방종에 빠져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가 못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 지키기에 있어 우선 성공 사례를 많이 가진 목사들은 칼빈의 주장처럼 필히 일반 평신도 위에 군림해서 그들에게 가르치는 스승이 되어야 하고, 그 스승의 자리와 제자들이 자리는 영적 권위로서 격리되어야 마땅하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목사가 돈 내라면 잔말말고 돈 내라 라는 겁니다. 

교회 돈 갖다바치면 거듭난 자요, 돈 안 갖다 바치면 아직 거듭나지 않는 자라는 겁니다.

만약 이러한 목사의 권위에 복종 안하면 세례고, 성만찬이고 참여할 자격이 박탈당해도 마땅하고,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하며 교회에서 나간 자는 칼빈의 주장대로 지옥갈 자라는 논리입니다.

이 모든 개혁주의 이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목사 말 들으면 천국가고, 목사 말 안들으면 지옥간다" 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모든 일은 일단 목사를 거쳐서 일하시기에, 목사가 모든 영적 권위를 위임받은 위치에 있다는 겁니다.

이로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점은 없습니다.

단지 목회자의 다수성에서 벗어나 일인 최고 목사를 수하에 모든 위임된 영적 권위를 효율적으로 통합했다는 것 뿐입니다.

어느 성도가 성령받았는지 아니받았는지는, 목사가 사전 심사할 수 있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모든 사태가, '살고자 하는 자가 살게 되는 자이다'라는 원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죽기 위해서 사는 자가 정말 살아있는 자'이다는 목사가 되었던 평신도가 되었던 상관없이 누구에게도 발생되는 기적의  성령의 사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