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뜻

옛언약 방식과 새언약 방식의 차이(이근호)061022

아빠와 함께 2013. 3. 2. 10:12

옛언약 방식과 새언약 방식의 차이 
이근호   2006-10-22 07:58:33, 조회 : 110, 추천 : 2

옛언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마음까지 들어오지를 못하고 외부에 멈추고 있다.

따라서 비록 택함받은 자(이스라엘 백성)라도 그 외부에 있는 거룩한 말씀을 지켜야하며 만약 지키지 못할 시에는 저주를 받게 된다. (신명기 28장)

자신의 의지를 어떤 식으로라도 추스리고, 관리하고, 반성하고, 복종과 순종을 하고, 혹은 절제를 하든지간에 어디까지나 본인의 마음 능력의  책임 하에 그 말씀이 요구하는 일치된 성취를 달성해야 만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선지자를 보내도 소용없고, 성전을 허락해도 소용없었다. 심지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도 죽여버렸다.(포도원과 악한 농부들의  비유에서)

이는 인간의 마음이 이미 악마의 수중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아담으로부터 줄기차게 내려오는 죄는 인간의 마음을 왕적인 통치를 하면서 지배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영이 왔지만 그 영은 인간의 구원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는 없었다.

새언약의 시대에는 구원방식이 전혀 다르다.

인간이 자기 인생을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다.

밖에 있던 말씀이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전에 옛 언약 시대에 인간이 차지했던 그 자리를 말씀이 차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말씀의 성취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그 인간에 대해서 책임지는 방식으로 구원이 전개된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전 1:8)

"그러므로 자기(예수님)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히 7:25)

새언약 시대의 성도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증거하는 증거인의 역할을 하게 된다.

예수님과 그 예수님의 영에 의해서 구원 되기로  이미 확정되었음을 증거케 하신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새언약에 행할 선한 일이요 의로운 일의 바탕이다.  왜냐하면 성도는 이제 선한 일의 책임자나 주인공에 있는 자가  아니라 '의의 종'의 자리에서 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의 강도나 성실함을 내세운다면 마귀가 웃을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디까지는 옛언약 방식 안에서 자기 자신을 증거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내 힘으로 지켜내어서 그 덕으로 구원받았다"라는 주장은 악마가 고대하고 고대하면서 듣고 싶어하는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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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옛언약 방식과 새언약 방식의 차이 
이준   2006-10-23 05:52:50, 조회 : 62, 추천 : 0

   이 말은 좀 이해 하기가 힘듭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 왔지만 그 영은 인간의 구원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는 없었다."
   하나님의 영은 "성령님"을 말씀하심이 아닌가요 ?
   - 책임을 질 수는 없었다 -  이렇게 말하면 구원할 능력이 없으신 성령님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

   에녹의 구원은 어떻게 설명하여야하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구원과
   엘리야의 구원은 어떻게 설명하여야 합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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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옛언약 방식과 새언약 방식의 차이 
이근호   2006-10-23 07:34:06, 조회 : 61, 추천 : 0

성령님, 혹은 '하나님의 영', 혹은 '하나님의 신'께서는 온전히 독자적인 기능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언약에 준해서, 언약이 정해진 범위 안의 내용만을 가지고 일하실 수가 있습니다.

구약, 즉 옛언약 시절에는, 영께서 언약이 허락한 것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용하시기 때문에, 신약(새언약)의 시절처럼 구원에 관한 온전한 전 내용을 성도에게 다 담아줄 바탕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께서는 구약의 성도들에게 오실 분을 고대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대표적인 분입니다. 예수님 오시기를 고대하다가 만나 뵙고 기뻐했습니다.(요 8:56)

엘리야나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마 17).

그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에녹이나 엘리야나 모두 하늘로 승천합니다. 단지 그들이 보여주어야 될 구원의 내용이 신약의 경우처럼 온전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마 11:11)


이처럼 구원이란, 그 사람의 영생소유에 초점을 둔 개념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보여주어야 하는 예수님의 온전하신 내용의 충실한 기능과 관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