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뜻

방종에 관한 의견들

아빠와 함께 2013. 1. 28. 10:44

방종문제에 대하여........ 
고관규   2006-10-10 04:08:02, 조회 : 174, 추천 : 0

전...만 45세의 평범한 개인사업을 조그만하게 서울에서 영위하는 집사입니다,
성경과,진리의 복음과,십자가의 영광스러운 복음안에서 자유를 누리지만, 그 자유를 멋대로 즐기는?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분이 방종의 문제와,헌금의 문제를 들고, 의문을 제기헸기에 한 말을 하고저 합니다.

현상적으로 진짜와,가짜는 구분되기는 어렵습니다
허나  실제적에 있어서는 철저히 구분됩니다.

방종의 문제에 대하여.....
진정한 언약백성에게 있어서는 방종을 논하지 않는 것이 정석입니다.
방종을 언급하는 쪽에서는ㅡ 다분히 그 근저ㅡ에 이미 하나님의 편에 서 있어서 살인까지도 하던 비느하스의 마음과 하등에 다를 것이 없다ㅡ는 겁니다.
열심이 있다  이거죠?
그러나...
방종을 말 하다는 것은 복음에 대한 곡해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물론 비느하스의 열심은 치하해야 합니다.
그러나 방종을 언급할때는 비느하스의 열심을 대입,,시킴은 오해입니다.
거듭난 참된 그리스도인들이.....방종을 물먹듯이 하거나,,,구원을 쉽게 여겨 그런 짓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 백성이 방종하듯이 보이는 것은......그의 영적침체와...실패로 보고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항상 성령충만을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나 그 실패가 지속될 수는 있죠...그의 그,,지속됨을  방종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이 쪽의 문제가 있기에 그런겁니다.
그 그리스도인이 실패하고,침체의 상태에 있음을ㅡ 오히려 이 쪽에서 방종으로 몰고 가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자칭 말씀의 심판자의 위치에
가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겁니다.
결국,,방종이라고 언급하는 자는  이미,,그 속에 율법주의적인 사고가 박혀 있기에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것이죠.
지나친 잘못된.....비느하스적인 열심이 말입니다.
비느하스의 열심은 사실은 그런 면에 써 먹을 야기가 아닙니다.
비느하스의 예는ㅡ 반대로 이 쪽에서 언급을 해야 할 말이지요, 뭐냐면 사도바울의 열심이며, 율법주의자등을 향한 바울의 열심에 대입시켜야 할 말입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방종을 한다면 그의 영적침체와 연결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치 않고...
방종으로 몰고 가면..전혀  엉뚱한 구원론과 직계되는 겁니다.
그럼 뭐라고 그 쪽에서 공격하느냐 하면...방종하는 네가 진정,,구원받은 자이냐...라고 묻거든요
바로 이게  문제의 질문들 입니다....
그들은 이쪽에서 회초리의 문제로 걸고 나오면,,,,뒤로 주춤하게 됩니다.
주춤하는 이유는,,,그들은 얻어 맞은 적이 없기에 모르는 겁니다...ㅠㅠ. ㅎㅎㅎ  항상 잘하려고 하니....
경험을 안해밧스니 몰라요
항상 그들은  모범생이엿고,,모범생인거처럼,,보엿거든요
그리고..모범생으로..존속되려고  노력을 하니,,모든게  그런걸로 보이는 겁니다.

우리에겐   방종이라함은 없는 겁니다.
만약  궂이  방종이라는 말을 쓸때는....침체라는 말이 더,,,성경적입니다.
방종은 없습니다.
방종에는 회초리가 없으며,,
침체에는 회초리가 있습니다.

침체는 무질서이며,,혼돈이며,,무감각이며,,,성령의 소욕을 거절함입니다.
방종은 희망없음이며..해결 못함이며...율법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언어입니다.

방종이라 할 때는ㅡㅡㅡㅡ 거짓회심의 결과로 나올 수는 있습니다.
                                    거짓회심의 내용에는 무인격적인 하나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그러니 징계가 없죠 !!
                                    거짓회심자들의 특색은  자연계시의 일종인 양심의 가책,,으로는 나타닙니다.
침체라고 할 때는 ㅡㅡㅡㅡ진짜 회심자에게 나오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진짜회심의 내용에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그러니 회초리가 있죠 !!!
                                    진짜회심자들의 특색은 특별계시의 일종인  회개와,각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바로 이 차이가 
방종에 대한 이해입니다....

고로...진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방종은...없읍니다
방종이라 함은   바로,,,희망없다라는 것으로 귀결되기에 그런 겁니다...

방종하고 있지 않느냐? 라고 걸고 넘어 지는 질문은...아직도 나에게 아직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의 반증이며..
복음과는 상관없는    율법적 사고방식의  결과입니다.

참  희한하네요....쓰고 보니  이준님의 맥락과 같네요  허허허  참으로 요상하군요,

고견을 바랍니다...여기에든ㅡ  질문답변에든지 말입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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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방종문제에 대하여........ 
이근호   2006-10-10 10:22:47, 조회 : 181, 추천 : 0

말씀하신대로 방종이 되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로마서 8:10)

그리고

자신의 방종을 자신이 처리하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 성령님이 처리하고 주님이 처리하십니다.

그리고

남들로부터 잔소리 듣고 방종을 그치는 자도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자신에게 지시하는 그 사람 손에 놀아나는 그 사람의 종일 뿐입니다.

성경은 상호 권면하라고 하십니다. 단 서로 마음을 낮추면서 말입니다.(롬 12:16)

누가 누구의 지시나 종이 되지 않고 오로지 모두가 그리스도의 문어발(지체)임을 인정하는 자만이 진정 마음을 낮출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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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방종문제에 대하여........ 
고관규   2006-10-10 13:36:05, 조회 : 149, 추천 : 1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라는 말씀은  복음을 알기 전의 상태이든, 복음을 안 후의 상태이든...
누구에게나 적용이 되고,우리를 공격합니다
이러한 죄의 공격에서 여기서 자유로운ㅡ 사람은 없을겁니다.
마치 로마서 7장의 탄식이ㅡ 회심전의 상태든,회심후의 상태든...똑 같듯이 말입니다.
사실 때론 방종ㅡ이라는 말이,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형태,,로서 ㅡ나태.멋대로 행함.영적게으름.무질서...등등..ㅡ으로
나타날 수는 있겠죠. 허나  우려하는 것은...
방종을 말하는 사람들의 많은 퍼센테이지가... 거의  구원의 문제를 슬쩍 언급한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문제의 본질 !! 이라는 것이죠 ㅡㅡㅡㅡㅡㅡ
이것이 잘못입니다.
거꾸로..그 사람이  문제가 있게 됨을 보이는 것입니다.

설사,,어떤 자가 방종ㅡ한다고 하면  이건 주님이 타치 하실 문제이지...내가 타치할 문제가 아니거든요.
주님이 이루신 복음을  왜 내가,,나서서 어저니 저쩌니 하는냐라는 겁니다.
타치한다고 할 때는..또  왜?  본질을 건드리냐는 겁니다
본질은 주님의 권한이며, 우리가 떠든다고~ 도와주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의 권면이...그에게나,당사자에게나 필요한것이죠
방종을 언급하고, 걱정한다고....주님의 편에 서,,있는 자는 아닙니다.
주님은 속마음의 어떤 !! 상태를 보시기에 말입니다.

제가 볼 때....강단에서 행해지는 방종을 경계하는 설교들과..글들과,누구든 이와같은  모습의 형태로 접근한다면... 군중들을 다시 ...종의ㅡ 형태로
묶으려는 어떤  저의가 있다라는 것이죠..

마치 바울이 어디서,,언급한 것 처럼,,,,(갑자기 기억이 안남..)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준 자유를  누가 와서 다시,,너희를 종으로 만들려고 하느냐? 라고 했듯이...
오늘도 그러한 가 봅니다.

고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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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종 중의 방종 
이근호   2006-10-10 08:53:17, 조회 : 201, 추천 : 1

방종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1. 공부하지 않는 방종, 그것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방종, 그것도 밥 먹을 순간에서도 책에서 눈에 떼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방종

2. 혼인을 해서 육신의 고난을 자초한  방종(고전 7:28), 그것도 진정 주를 위해서라면 진정 혼인하지 말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혼인을 포기 못한 방종, 게다가 자식까지 덜렁 낳아버린 방종, 그것도 둘째 자식까지 낳아버린 방종, 더구나 아내가 돈 못보는 남편이라고 이혼을 요구하자 애걸복걸 사정봐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계속 사는 방종.

3.  우유 배달 하듯이 매일 이른 아침부터 교인들 집을 찾아가서는   "오늘 이 집안의 우환이 무엇이며 기도하고 싶은 사항이 무엇입니까? 그 사항 제가 가져가서 대신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교인들의 애로를 직접 현장에서 접수하면서 하루 일과를 기도 서비스로 시작하지 않은  방종

하지만 이런 방종보다 더 큰 방종은,

예수님처럼 자신을 대속물로 내놓지 않은 방종이다.

누가 이 방종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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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생활 하면서 기쁨이 없는 이유 
이근호   2006-10-11 18:51:44, 조회 : 270, 추천 : 10

'소유' 때문이다.

인간은 자꾸만 소유하려고 한다. 영생도 소유하려고하고 생명도 소유하려고 하고 예수님과 하나님도 소유하려고 한다.

소유가 소유에서 멈추지 않는다.

일단 소유했다고 여기면 여기서부터 '당연히 소유 할만한 해서 소유 했다'는 식으로 나아간다.

즉 소유가 비대해지는 것이다. 비대해진 소유에서 비로소 구원에 안심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의 구원방식은 이런 식이 아니다.

소유를 뺏아버린다. 소유를 불러일으키는 그 인간을 늘 죽인다.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고후 4:12)

즉 '우리'라는 존재는 따로 소유할 입장이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사망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신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려 쪼개기까지 하며"(히 4:12)

이로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벌거벗긴다.(히 4:13)

그리고 이제부터 성도는 주님의 소유가 되어버린다.

이 관계성을 가지고 '살았다'라고 말한다.  성도는 주 안에서 주님의 소유라는 신분으로서만 계속 영원토록 살아야 하는데  그 관계가 언약의 관계이다. 

즉 언약의 취지가 담기는 그릇이 된다.

왜 죄가 넘치는 곳에 은혜가 넘치는 지를 보여주는 지체가 된다. (롬 5:21)

성도는 새끼(작은) 십자가 조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서 성도가 사는 곳은 '십자가 안'이다. (갈 6:14)

그 안에서 바깥 세상을 본다. 세상의 비성도는 몽땅 죽은 자이다. 그런데 세상은 또한 십자가 안에 틀어박혀 있는 성도를 보고 '죽은 자'라고 말한다.

"그래 너희들이 말이 맞다.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롬 6:4)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주님의 소유로서 (고전 6:20)는 살아있다.(갈 2:20)."

따라서 이제부터 성도의 운명은 뭐든지 단독적으로 '살았다' 혹은 '죽었다'라고 말할 처지에 있지 않다.

항상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늘 죄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 기준에 준해서 죽어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그리스도는 우리와의 관계성으로 인해 '살았다'고 말씀하신다. "

이런 관계를 고백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자기 의를 소유할 엄두도 못된다.

신앙 생활 하면서 기쁨이 없는 것은 여전히 '나에게 소유된 나의 존재', '나에게 소유된 영생'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소유성을 포기하고 주님과의 언약적 관계성만 남기면 이제부터 주님이 부리는대로 부림받을 뿐이다.

주님으로부터 마음껏 부림받다는 신세, 이 신세는 천사도 흠모할 영광스러운 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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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복음이 복음다와야 복음이지.. 
김세은  (Homepage)  2006-10-13 13:31:36, 조회 : 143, 추천 : 0

이글을 읽고, 천년간 목에 걸려있던 생선가시가 빠진 느낌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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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신직수   2006-10-13 23:35:37, 조회 : 110, 추천 : 1

하나님이라는 분은 소유를 절단내버리시는 분이십니다.

이루고자하는 목회성공을 포기하도록 죄의 희열로 이끌어 자기 거룩은 웃기는 짬뽕이라고 말씀하시니 어쩌겠습니까?

이 말씀이 너무 강력해서 포기하고 또 포기하게 하시며 또, 또, 또, 포기하게 하시니

정말이지 너무하고 하나님께 검나게 욕할뻔 했습니다.

근데요, 그게 감사하고 고마우니 어쩌겠습니까?

그 눈물 속에 기쁨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쁨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죽이시는 나의 소멸되는 없어짐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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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메이슨,,,, 
고관규   2006-10-14 13:11:12, 조회 : 160, 추천 : 1

보고,듣고,알고는 있었읍니다만...정말 무섭군요
음모론..... 카톨릭의 배후 ㅡㅡㅡㅡ !!
일루미네이트와 제수이트...
도데체..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도출 할 수 있나요?
이런 부분은 철저하게  가려져 있는데,,,, 알만한 사람들은 안다고 들,,하지만,,
정말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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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프리메이슨,,,, 
박윤진   2006-10-16 09:22:19, 조회 : 102, 추천 : 1

귀하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일루미네이트와 제수이트는 모르고 계십니까?
그 분의 십자가 능력이
그들을 이김에 부족합니까?

귀하께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앞에 꿇게 하실
그 능력 안에 포함되신 분이시라면

포함된 자체로
충분히 감사할 만 하시지 않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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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세계질서 (New World Order) 
최은성   2006-10-14 08:56:52, 조회 : 245, 추천 : 40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
Freemason(자유석공조합) 그리고 그 음모들에 관하여.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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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참고들 하세요. 
이준   2006-10-14 19:34:44, 조회 : 145, 추천 : 0

질문답변 게시판에서 옮겨온 아래 글들을 참고하기 바람.

************************************************************옮겨온 글들*******************************************************

[re] 이런 곳은 어떤가요? 
이근호   2005-08-08 21:14:47, 조회 : 348, 추천 : 35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특이한 사상들을 거론하는 것은
사실 본인들의 이단성을 숨기기 위한 연막술입니다. 
현대인들에 있어 종교란 일상의 지루함에 못견뎌서 기분전환용으로 가끔 기웃거리는 취미와 오락입니다.
심심함을 잠시 달래보겠다는 식으로 종교 단체에 관심가집니다.
따라서 무슨 종교를 가지든 자유입니다.
어차피 취미는 다양하기 마련입니다.
정말 복음에 관심이 있다면  
프리메이슨 조직이나 다빈치 코드 같은 것에 신경쓸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를 아예 이단 집단으로 보고 덤벼들어야 할 것입니다. .  


[re] 시온의 정서 가 뭔가요? 
이근호   2006-07-08 17:53:16, 조회 : 165, 추천 : 1

열등의식의 집약
스스로 못났음에 어쩔 줄 모르는 자들의  화풀이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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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그러나.... 
이성민   2006-10-14 19:47:40, 조회 : 122, 추천 : 0

우리가 일상생활에 일어나는것들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고
이근호 목사님도 철학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하는 맥락으로 보시면 안될까요?

철학을 배운다고 해서 성경을 아는것은 아니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조금 더 알고자 추가적인 부분이라고 생각되는데


프리메이슨이나 그런 세상흐름에 대해서 조금 더 안다고해서 문제가 될지 모르겠네요...
예를 들어 프리메이슨쪽에 관련된 기독교 인물들이 활동하는 교회나 그런 인물의 설교는 더더욱 조심할수
있지 않을지요? 

어차피 프리메이슨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것이 예수그리스도를 반대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그런 악한 흐름을 보고서 예수님의 재림을 더더욱 소망하는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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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그러나.... 
이근호   2006-10-14 20:40:51, 조회 : 166, 추천 : 1

조폭(조직폭력배)이 특정 구역을 접수하고 영업을 신나게 하고 있는데

프리메이슨이라든지, 통일교라든지, 여호와 증인이라든지 하는 개성있는 조직폭력배들이 새로이 주목을 받게 되면 ,

제 3자는 이런 기회를 통해서 종교 내의 세력 게임을 즐기고 싶어합니다. 

"붙어라, 붙어라 누가 이기나 보자"

어릴적 동네 공터에서는 흔히 방과후 끼리끼리 모인 꼬마들이 나름대로 힘의 재편을 가름하는 주먹다짐을 가끔 접하게 됩니다.

걔들은 나름대로 심각합니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여길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악마의 정체를 이런 집단들 (프리메이슨)과 관련시키는 것이 도리어 악마의 전략으로 보여집니다.

우리 자신이 지금이라도 당장 악마의 종으로 변할 수 있고, 실은 악마의 편에 서서 예수도 모르고 십자가도 모르고 자기 자신의 생존만 고려하면서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한 인생이다는 것을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세요. 성경은 다른 인생을 말씀하십니다. 

순교 순간을 맞이한 스데반 집사의 안목에서 볼 때 (그분은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운운하는 것이 그 당시 종교 종사자들이 곧 악마의 진수가 아닐까요?

우리는 성령님이 역사하심이 아니면 언제라도

자기 생존과 존재문제로 용수철처럼 강하게 되려 돌아서는 탄성을 보이는 자들입니다.

왜 성령께서 십자가 속에서 자기 성도를 호출하십니까?

그것은 프리메이슨이라든지 한국 교회 자체가 이단이라고 소리치는 우리 자신들조차 성령의 은총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그들과 합세할 수 밖에 없는 관성에 떠밀린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돈 줄로서 우리를 가치있는 존재라고 부축이면서 회유할 때 과연 그들의 손길을 잡지 않을 위인이 있는가?)

"이미 너희는 죽었기에 더이상 땅의 것을 생각치 말라. 왜냐하면  너희 생명은 이 땅에서 찾을 수 없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라는 취지의 골로새서 3:2-3의 말씀은 우리에게 자신을 보는 다른 관점을 확인하는 겁니다.

오락, 모든 게 오락입니다.

남의 오락을 욕하지 맙시다.

일단 생존에 자신이 있는 배부른 자에게는 나머지 모든 것이 세월 때우기 오락쪼가리에 불과합니다.

만약 욕하고 싶다면 늘 자신을 보고 다음과 같이 욕해야 합니다.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은 나에게도 항상 생존과 생계과 관련지어서 고려된다.  생존만 허락된다면 그 놀이터가 어떤 놀이터인지 그 오락이 어떤 종류의 오락인지 구애받지 않고 뛰어들 마음 준비가 되어 있다.  바로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주님이 얼마나 애통해 하실까? 주여, 스데반 집사님처럼 주님의 자비만 쳐다보며 과감히 죽게 하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하늘 위에서 자기 백성을 주시하십니다.

"죽기를 무서워해서 악마의 종이 되어 있는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라"(히 2:15)

이 관점에서 자신을 포함시켜 세상을 다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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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그러나....  이성민   2006-10-14 19:47:40, 조회 : 122, 추천 : 0
[re] [re] 신앙과 호기심 충족은 다릅니다. 
이준   2006-10-14 19:57:42, 조회 : 139, 추천 : 1

저 또한 한때 그런 것들에 심취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무슨 의협심 같은 것까지 한데 어우러져서
심취했던만큼 그 방면으로 한때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랬던 철부지 시절 기억이 어언 2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 가네요.
제 개인적으론 그런데 관심 있는 분들...
지나고 보면(언젠가 철이 들면) 아무런 열매 없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왔으면...하는 바람이 있습니다만...

그런 것들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 땅에 그런 것들을 처음 직수입한 서달석이나
아님 노우호나 이송오 등에게도 한번쯤 찾아가서 같이 "놀면" 됩니다.

어차피, 제목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호기심 충족과 복음에 대한 신앙은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런 것들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귀하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니까요.
언약 밖에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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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는 성도의 목표 
손무성  (Homepage)  2006-10-16 09:54:21, 조회 : 179, 추천 : 8

구약의 십계명과 제사법과 시민법은 윤리로서가 아니라 사랑을 입은 자에게 나타나는 필연적 결과이며 확인과정이다. 그리고 그 언약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선택된 자의 관계의 성립여부를 검증해야한다. 즉 선택된 자인가 아니면 비선택된 자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언약이란 세상을 쪼개는 역할을 하는 것인지 결코 세상을 개혁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자기 백성을 찾아내는 역할을 할 뿐이다. 악한 세상의 존재이유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소품역할을 하기 위해서 있다. 악한 세상의 부정적 역할은, 악한 세상에서 선택된 자를 모아 그리스도의 모습을 띠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기 위해 몽둥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즉 너희들은 저런 식으로 살다가는 오히려 그들로부터 매 맞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치는 앗수르와 이스라엘을 귀환시킨 바벨론 처럼).

신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명령어들은 윤리라기보다는 구원받는 성도의 목표라고 볼 수 있다. 즉 그 목표와 비교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신분성을 확인하고 그리스도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목적이 있다. 예를 들면 성도가 성경이 요구하는데 까지 미치지 못했을 때, 거룩을 요구하는 성경귀절은 일종의 성경을 통한 경고조치가 됨을 알게 된다. 이때 성도는 다시금 그리스도의 연합을 인식하고 그분께 기도하게 될 때 그 연합된 관계에서 성령에 의한 열매로서 거룩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흔히 윤리라고 하는데 이것이 윤리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거룩한 행위가 비록 성도가 행했지만 사실 그가 한 것은 그리스도께 복종한 것뿐이고 그 복종된 관계에서 성령께서 일하신 것이다. 분석적인 측면에서 분명히 그 당사자가 일한 것은 분명하나 성경은 거기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했다는데 초점을 두기를 원하고 있으니 우리들도 그 뜻에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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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카톨릭과...복음의 원수들.... 
고관규   2006-10-17 05:28:48, 조회 : 102, 추천 : 0

신세계질서를 올리신 님의 원글을 보며, 이 분이 혹시 침례교중 근본주의 또는 세대주의계통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서달석목사의 성경침례교회교단... 도서출판 안티오크계통의 교제권....킹제임스보존학회계열.....등이 이 문제에 아주 박식합니다.
주님 승천하신 이후부터...역사적으로 이제까지..분명 로마캐톨릭이 사단의 회이며..배도집단입니다.
다른 복음의 가장 핵심은ㅡ 구원론ㅡ이며,,,,,이것을 역사에 씨뿌린 집단이 로마 캐톨릭이고, 사단이라면...
로마캐톨릭은 현재적인 적그리스도입니다.
프리매이슨의 후원자는 바티칸 로마집단들일 것이며, 복음의 원수이죠
중세때에 카톨릭이  을마나.. 재세례파(재침례교)들을 핍박하였는가는 문헌을 통해 확인합니다....철천지 원수들입니다.

복음의 말살과,변형,왜곡이,,,,,그들의 술책이죠
소위..기독교의 와해라고 합니다.
제수이트들의 그리스도인들의 살해.핍박,,문서파괴등
일루미네이트의 공작
프리매이슨의 후원........이 모든것은 의미심장하게 보길 원합니다.
이것이 사실이기에 경각심을 갖게 되고,,더 더욱 복음안에서 감사와,각성,회개와,전도구원을 위해 일매진 한다면 조은 것이 아닐까요?

원글을 올린 님도 아마..이런 차원일 것입니다.
님이 이런 글을 올리고...정보지식 자랑?습득 차원에서 멈춘다면 의미는 없을 겁니다..그러나 본인이 복음의 회복과,복음의 성취,,도의 전파의 측면에서 뜨거운 맘으로 올렸다면 고무할 만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님을 폄하?하거나,,소시적의 호기심으로나...복음의 소이해로나,,,,편집광적인 면으로 본다면  우린 ,,,아닙니다.
이곳에는 특별히 걸리는ㅡ 일만 아니라면...
누구나 글을 올릴 수는 있는 것이죠.

복음을 이해하고,누리고.즐긴다는 측면에서,,
윗글과 같은 경험은 새롭게 우리를 다시..복음의 귀함으로 이끌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경험들이  우릴  복음으로부터  멀리 하게 될까요?
또 그분의 경험이,,,복음의 중심이 아닌 ㅡ 변두리에서만  맴맴 돌고 있다고 혹시? 보는 건가요?

제가 저의 지난 글에 언급하였던,,,,,
우린  과연 역사에서 무엇을 도출 할 수가 있는가? 라고 했던건ㅡ
주님의 힘없으심을 말 한 것도 아니요...주님이 쉬고 있음을 말 한 것도 아니겠죠?
그 만큼 역사는 혹독하다는 겁니다.
묵시가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묵시는 그럼에도ㅡ  역사에서 일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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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오락의 종류 
이근호   2006-10-17 07:49:43, 조회 : 109, 추천 : 0

사람은 '놀이'나 '오락'이 없으면 하루하루 생활이 밋밋해서 견디지를 못합니다.

니이체 라는 철학자가 말하는 '초인(超人)' 사상도 그 내용은 '자유롭게 놀이하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감정이 이끄는대로 즐기다가 그냥 대자연 속으로 미련없이 사라져 주는 것이 인간의 참된 의미라고 보는 겁니다.

종교라는 것도 오락입니다.

종교가 패가 많이 갈려 있다는 마치 드라미틱한 삼국지를 보는 것처럼 스펙타클한 흥미를 제공합니다.

쉽게 말해서 '골라 먹는 재미'를 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종교들이 많이 등장하여 자기네들끼리 서로 옳은 진리를 펼친다고 선전해서 제 3자들에게  정신 세계에서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을 보다 많이 만들어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지극히 당연히 오락과 놀이에 생의 즐거움을 갖는 것이 천성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는 사태가 일부의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그것은 자신을 십자가 앞에다 세워놓고 처음부터 죄인이라고 규정받는 사태입니다. 

이렇게 되면 눈 앞에 '십자가' 외에는 뵈는게 없습니다.

남들 신경쓸 필요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보나마나 십자가 앞에서, 율법 앞에서 죄인인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천주교가 되었던 장로교인이 되었던 상관없이 말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 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종교를 갖던 종교를 갖지 않던 이미 모든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존재들입니다.

십자가 사건만이 이것을 말해주는 사건입니다.

오락?

놀이?

생의 즐거움?

모든 인간들은 이것들을 누릴 그 어떤 자격도 권리도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성도라면 무엇을 증거해야 할까요?

우리 교회, 우리 교단은 잘났고, 대단함을 증거해야 할까요? 상대방 종교보다 우월함을 과시해서 거대한 종교시장에서 고객 확보에 좋은 이미지를 얻는데 주력하는 것이 진정 선교요 전도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지금 당장 지옥가도 할 말이 없는 자들이고, 예수님의 십자가 성과만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하나님의 뜻입니"라는 점을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믿고 전적 의지하는 겁니다.(요 6: 29 참조)

종교 세계가 펼치는 힘의 게임을 관람하는 것도 정신세계가 주는 신나는 오락일 수는 있지만,

오직 십자가 복음만이 우리를 진짜 죄인으로 돌려세우는 유일한 주님의 사건이므로 그 십자가에서 한 시도 시선 돌아가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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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뉘시오니이까? 
박윤진   2006-10-17 14:28:45, 조회 : 116, 추천 : 2

주인은 종의 존재 밖의 인물이다.
그러므로 종은 자발적으로
주인을 부를 수 없고
확인할 수 없고
복종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주인은 자신의 주인됨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종의 존재 속에는 주인됨을 확인할 수 있은 능력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종이 인식하고 있는 주인은 이미 주인이 아니다.
단지 주인이라는 이름으로 숨겨진
종의 자식일 뿐이다.


종은
주인께서 친히 자신을 종으로 삼아주실 때만
비로소 주인을 알게 된다.
이것을 주인'되심'이라고 한다.

주인되심에 의해 종은 비로소
자신의 종'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즉, 주인은 종이 왜 종일 수 밖에 없는가를
통해서만 자신의 주인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종을 종답게 하는 것이 바로 주인되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스스로 '주'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없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진정 종되게 하시는 분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동안 자신이 불러왔던 주인이
가짜 주인인 것을 안다.


주인은 종의 몸 밖에 있는 것임을,
종은 처음부터 주인을 인식할 수 없음을
전부 인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래서 질문할 수 밖에 없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우리의 주인이시다.

하지만 주인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안에서
여전히 우리의 질문을 촉발시키신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십자가 안에서 나의 종됨을
날마다 확인시키시는
주인이 바로 참 주인이다.


그런데, 십자가를 자신의 주인됨으로
착각하는 자들이 있다.


십자가 안에서
예수님께서 나의 종됨을 어떻게 확장하고 계시는가에는 관심이 없고


특정 시점(경험)의 예수님의 주인됨과 나의 종됨을
통째로 근거삼아
자신도 주인되었음을 주장하고 싶어한다.


간증, 성화, 성도의 양심, 방종의 문제 등은
모두 이러한 맥락이다.

성도는 평생 십자가에서
주여 뉘시오니이까를
연발한다.


그리고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주인되심으로 인하여
자신의 종됨을 깨닫고
감사하고 또 기뻐하게 된다.


이러한 종됨의 클라이막스가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4 :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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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오늘날의 가미가제 
이근호   2006-10-17 17:34:55, 조회 : 105, 추천 : 3

2차대전 말, 일본군은 발악한다. 자살 폭격대를 만들어 불나방처럼 미국 군함의 함포 속으로 돌진한다.

이 자폭부대가 '가미가제 특공대'이다.

그들에게 삶의 가치를 묻는 이는 없다. 가족과의 감격스러운 재회를 약속해 주는 이도 없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운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읽을 수 있다.

십자가는 새로운 운명을 주신다.

십자가를 안 사람은 세상을 보는 걈을 잡은 사람이다.

악의 원천과 의의 원천을 목격한 사람이다. 

악의 원천은 세상이고, 의의 원천은 십자가이다.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고, 

그 폭발력은 2000년 세월을 타고서도 소진되지 않았다.

"십자가가 눈 앞에 보이거늘 누가 너희들을 꾀더냐?"(갈 3:1)

눈 앞에 보인다.

성도의 완결된 운명이 보인다.

남은 것은 가미가제 같은 인생이다.

성도는 수시로 경악한다. 내 인생은 이미 나의 손에서 떠났음을 직감하고....

"부질없이 맹세하지 말라.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면 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 된다."(마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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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처럼 
최은성   2006-10-18 05:09:07, 조회 : 127, 추천 : 1


   어떤 사람의 글 중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그의 배와 부딪히면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빈 배이니까.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치며 화를 낼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배가 비어있다면 그는 소리치지도 않을 것이고 화내지도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 라는.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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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빈 배처럼 
이준   2006-10-18 07:53:01, 조회 : 122, 추천 : 1

강(나루)이라기 보다는 포구가 어울릴 듯합니다.

귀하께서는 음모론이라는 거창한 배를 타고서
십자가마을이라는 이 초라한(?) 포구(항구가 아니고)로
잘못 들어오셨던 겁니다.

그러니
이 포구에 영원히 닻을 내리고 있던 몇몇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말들이 들려오는 것이구요.

"맞서려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예정론의 실제적 적용을 감안한다면
맞선다고 모두다 설득당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음모론 따위의 내용을 즐겨 논하는
다른 포구들로 부디 귀하의 배를 선회하셨으면 합니다.
이 또한 설득 아닌 권면입니다.

팻 로버트슨의 모든 번역서를 읽어본 이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