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이준 성도님의 글이 왜 이 시대에 중요한가(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3. 1. 28. 08:36

1. 기독교는 이제 문화일 뿐이지  더이상 신앙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시절에 돌입해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서비스 업종의 일종인 교회는 기독교라는 문화 콘텐츠에 초점을 맞추어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신의 밥벌이를 정당화하고자 '제한적인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신앙'이라는 장벽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살후 3:2)

고객이 한정되면 안된다고 보고 고객의 폭을  넓히기 위한 논리로 그들은 전환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한적인 신앙의 자리에다  신앙 대신 '훈육', 혹은 '교육', ' 영적 양육', '영적인 훈련' 같은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워넣습니다.  

즉 '나는 가르칠 만한 자고, 너희는 나에게 배울만 하니, 저희 천국 보험에 가입하시고 회비 꼬박꼬박내시면서 저에게 교육받으시면  필히 구원도 간편하게 보장됩니다'는 보험상품을 고객들에게 판매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영적 지도자', 혹은 '인격적 인도자'라는 서비스 업종의 정당성이 활개를 칠 것입니다. (물론 목사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이것이 정당화되려면, '영적 지도자'만큼은 죄인을 거의 짓지 아니하며 남들과는 달리 완전한 삶이 주는 권위의 무게를 싣고 살아갈 필요가 있겠지요. 

이런 노림수를 지니고 있는 자들에게  '날마다 우리를 죄인으로 규정하고 늘 죽어야 한다'는 십자가 복음을 외친다는 것이  그들을 괴로워할 수 밖에 없는 큰 가시인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눈에 띠는대로 짓밟고 또 짓밟고자 하는 겁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원수는 늘 그러하듯이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도 소위 '교회 지도자'들이 맨 앞 좌석을 차지하게 되는 겁니다. 

소위 '주의 종'이라고 여기는 자들, 또한 소위 '성직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을 십자가 복음으로 용서하지 않고 저주하고 또 저주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만 지옥갈 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지옥하게 하고 구원받을 자까지 심하게 핍박하는 자들입니다.       

2. 이준 성도님의 논리정립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닙니다.

신학적 지식과 정보를 충만히 갖고 있어도 악령이 노골적으로 일하지 아니하면 그 신학적 용어나 개념 안에 역사적으로 접혀있는 의미의 깊이들을 제대로 이해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즉 악령을 받은 자들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주지 아니하면 펼치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겁니다. 그리고 악령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시기가 자주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활화산이라고 해서 늘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잠복기가 있듯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악마의 종들의 활동도 성령에 의해서 저지당합니다.

따라서 이번 일들처럼 악령들의 정체가 제대로 폭발하는 경우가 자주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준 성도님은 이 시기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나 후학들을 위해서입니다. 

이 참에 정리될 것은 정리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 성도로서 주님이 주신 기회에 마땅히 순종하는 길이라고 믿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3. 목숨 바쳐 쓰는 글입니다. 

살고자 하는 자들, 그 뒷까지 봐야 합니다. 십자가 피를 삭제해버리고  그 빈자리에 인간의 자질과 무한한 예지와 깨끗해보이는 신앙적 양심에 호소하려는 야심을 박아넣어, 신학하는 자도 이 땅에 그 신학으로 밥먹고 살 권리가 있음을 주창하고 싶은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살고자 하는 욕망은, 복음을 죽이고도 남을 만큼 악발리로 처신하게 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밥벌이용 신학'을 들추어내는데도 역시 목숨을 내던지듯이 고발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겁니다. 

그야말로 지금 당장 이 생을 끝내고 싶을 정도로 주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런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저쪽 악마 쪽은 기어이 목사로서 권위유지하면서 그 권위로 밀어붙여 밥벌어 먹겠다고 나섭니다.

즉, "이런 참된 진리를 갖고 있는 나에게 돈 안 갖다 바치는 놈들이 있다면 그 놈들은 다  이단이요 지옥가기로 작정된 놈이다! "라는 음흉한 내면의 목소리를 늘 나즉하게 깔면서 살고 있기에

십자가 쪽에 서 있는 사람은 십자가를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영광이다는 식으로 나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곱게 이야기해서 될 사항이 아닌 것입니다. 

살고자 하는 자가 사는지, 죽고자 하는 자가 사는지 갈데까지 가는 겁니다.

하지만 악령받은 자들이 잠복기에 들어가면 십자가 쪽도 주님의 뜻인줄 알고 잠잠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어쨌든 이준 성도님은 이 시기를 놓치기 싫은 겁니다. 누가 하라해서가 아니라 왠지 해야 될 것 같아서...

 

    

 이진수 (IP:211.♡.221.232) 06-12-22 00:18 
존경하는 목사님^^
해야할 것 같은 일을 하는 것도 자기 의가 될 수도 있음을 이미 이해하고 읽었습니다. 그래서 더 십자가의 피만이 주의 사랑임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됩니다.

악마, 악의 영들, 너무나도 살벌하지만 그 표현이 주는 상대적 감정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가옵니다.
죄를 왕으로 섬기던 우리들에게 쏟으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
무엇을 하든지 어떻게 살든지 자기를 온전히 부인할 수만 있다면...
우리 이미 죽어 천국에 있겠지요?

개인적으로도 이 글을 깊이 공감하면서,
'이준 성도'님의 이런 몸부림과 맘부림 속에서
'이준 성도'이 '이준 성도'님의 죄와 '이준 성도'님을 용서하신 '주님의 은혜'를 발견하길 바래봅니다.
이런 붓놀림을 통해 스스로(성령의 자비로) 주님과의 관계를 가지며 회개의 탄식과 주님 경외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여기에 쓰신 목사님의 글 이면에도
같은 사랑과 은혜, 회개와 용서가 십자가의 피바름으로 주님 은혜의 흔적되어 있기를 소원합니다.

늘 사랑으로 존경하는 이진수목사 올림
 김헌식 (IP:69.♡.200.142) 06-12-23 04:17 
이진수님,
저는 뚜렸한 복음의 차이를 보이고있는 양쪽을 오가며 한쪽에다가는 "성령이 인도한다" 하고 한쪽에다가는
"사랑을 느낀다. 존경한다 " 라는 표현을 쓰는 님이 이해가 않됩니다.
뚜렸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양쪽 모두를 칭하며 "모두 복음을 전한다" 라고 표현하는 님이 도저히 이해가
않됩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님이 생각하는 "사랑" 인가요 ?

P.S : 님의 본뜻이 님이 전에 말한 바와같이 "손무성님이랑 나랑은 이렇게 살다가 갈 것이니 그냥 내버려
      둬라 ! "  라는 것에 있다면 이러한 식으로 글을 쓸것은 아닙니다.
      차라리 딱 까놓고 말씀하시는 것이 떳떳하지 않겠는지요 ?
 이근호 (IP:220.♡.214.30) 06-12-24 08:02 
이진수님,
이준 성도님의 죄가 무엇인지를 저는 모르겠습니다. 도리어 그분을 제대로 후원하지 못하고 못도와드리는 우리가 주님 앞에서 죄를 짓고 있는 느낌입니다. 칼빈주의라는 이름으로 행세하는 악마의 집단에 대해서 더욱더 주님의 심정으로 더 혹독하게 저주하지 못하는 것이 아마 그 분의 죄라면 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