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이준 성도님 심방기(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3. 1. 28. 08:34

오지 말래는 것, 억지로 갔다. 모두들 궁금하게 여기시는 분이라  누군가 총대를 매어야 했다. 언제까지 이준 씨를 괄호 안에  머물게 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만나주지 않을 것이 뻔하지만 행여 고대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대구가는 버스에 몸을 담았다. 거의 부곡에 가까이 왔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김해 중앙교회에서 오후 5시에서 5시 30분 사이에 뵈올 수 있다는 것이다. 허겁지겁 부곡에서 내려 대합실에서 40분 기다리자 김해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닟선 타지에 가면 나는 20대가 된다. 옛김해는 화장기 하나 없는 마을이다. 시간마저 눌러앉은 자리가 다정하게 다가온다.  중앙교회 계단에서 보니 맞은편에 촌 다방이 보인다. 시커먼 반소매 티를 입은 40대 마담이 70대 노인네와 마주앉아  있다. 집사님으로 보이는 분들이 나를 보고서는 지네 목사줄 알고 인사들을 하고 지나간다. 어디가도 '대충 목사'도 목사로 처주는 모양이다.

5시 30분을 조금 넘겨, 비좁은 구형 소형차에서 4사람이 내린다. 차가 용하다. 세상에, 네 분 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잠시 메시야가 된 기분이다. 이준씨와 이준씨의 어머니 되시는 집사님과 이준씨의 누나와 그리고 자기 차를 운전하고 오신 장집사님이라는 여자분이시다.

이준씨는 말을 잇지 못한다. 이준씨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누가 더 반가워해야 하고 고마워 해야 하는지 원...

이준씨는 차에 도로 올라 타서 어디론지 갈 생각을 않고서는, 자신의 감격스러움을 힘들여 전한다. "목사님 만나뵈리라고는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좁은 차에 5명이 타고가면서, 조기에 이 감격스러운 분위기를 깰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환상과 실제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위험한 지경이기 때문이다. 나의 타박이 시작되었다. 차 안에 좁아서 내 말은 안듣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는 상태가 상당히 고마웠다.

"성도는 더이상 '내가 누구냐'라는 질문은 성립되지 않고 '누구의 것이냐'로 확정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 곧 지체입니다. 지체로서만 존재합니다. 따로 '내가 누구냐'라는 시도는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체성은 단독으로 머물지 않고 다른 지체와 교제를 나누게 되어 있는데 그것이 그리스도  몸이 발휘하는 자연스러운 기능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준씨, 모임에 얼굴 좀 보이세요'라는 뜻을 우회적으로 말한 것이다. 이준씨 어머니 되시는 집사님께서는, 차를 내어주시고 운전까지 수고해주시는 장집사님의 호의에 대놓고 감사를 표했다.(이준씨는 휴대폰 뿐만 아니라 차도 없으시다. 교육학 박사 딴다고 돈을 거기다 쏟아부었다.  )  교회에서 가장 친한  집사님이라신다.  가까이 지내면서 복음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분이 계시다니 덜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분 쯤 달리자, '한솔'이라는 한식집에 도착했다.  모친께서 메뉴판을 보이시면서 나보고 아무 것나 먹고 싶은 이야기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주저없이 '돈까스요'라고 겸손하게 말했더니만 이준씨 가족들이  놀라는 기색을 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서  즉시 수정을 요구하고 나셨다. "우리 가족은 그런 것(돼지고기 종류)은  안 먹습니다. 산채 비빔밥이 좋아요" 

의견통일, 한 몸의 지체로서 바람직한 결론이다고 서둘러 정리했다. 모친께서는 어린 이준씨 남매를 데리고 그동안 힘들게 살아오신 내력을 말씀해주셨다. 귀한 집 딸로 부족한 것 모르고 성장했지만 막상 시집 와서는 하나님께서 여러모로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낮추셨다고 하셨다.  특히 남편 죽고 당한 수모는 평생에 한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재밋고, 또 전도 받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니 그것이 평생이 낙이다고 하셨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와 생명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전했음에도 그 어린아이들이 다음번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놀랍다고 소견을 피력해주셨다. 

나도 뭐라도 이야기해야 했다. 이준씨의 가정은 망망대해, 일엽편주같은 같은 보트 안에 가여운 세 식구가 죽기살기로 부지런히 노를 저어대는 상황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그 보트를 실어 위로 솟구쳐 오르게 하는 거대한 잠수함 같은 실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공로'이다.

"집사님, 성도는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고생해도 그 고생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습니다"

이준씨의 가정이 고생한 것을, 난데없이 방문한 방문객이 어떻게 그 아픈 심정을 동참할 수 있겠는가. 그저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힘들었으면"하고 속에서만 위로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준비해온 자신의 가족 사진과 그리고 스스로 초라하다고 여기시는 500평 친정집이 부분적으로 찍힌 보여주셨다. 그리고 시를 써오신 것도 건네 주셨다. 옆에서 이준씨가 거든다. "저의 어머니 시집 내드리는 것이 저의 작은 희망입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오후 7시 30분 버스를 염두에 두어야 했다. 정집사님이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다시 얼굴 보지 맙시다. 나는 보잘 것 없는 인간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준씨는 다시금 자신의 지금 심정을 전한다.  "목사님을 이렇게 뵙기 되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느 듯 김해 들녁에 식어진 해가 가라앉고 있었다. 왠지 더 많은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은데... . 이대로 헤어지면 안될 것 같은데...  저분들의 아품을 다 안 들어주지 않으려고 억지로 얼굴을 돌린 죄를 지은 것 같은데....

서로가 살아가는 지대 위로 '예수님의 공로'만이 공룡처럼 솟아오르기를 빌어본다.

 

제목 : 심판

 

재물과

부요와

온갖 낙을 누려도

족함이 없는 인생

식욕은 차지 아니하고

탐욕은 채워지지 아니하고

마셔도 마셔도 갈증은 끝이 없고

심령이 낙이

족하지 못하여

호기심에 찬 눈이

바람을 잡느라

피곤한 몸부림을

멈추지 않는다,

죄를 모아

만리장성을 쌓는다

그림자 같은 인생이

헛된 것을 더하느라

띠끌 같은 날을 흩었어도

마침내

한 곳으로 갈 뿐

그러나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그 분이 말씀하신다.

   

 

 

 

 이미아 (IP:121.♡.51.183) 07-06-06 02:24 
반가운 얼굴을 만나고 오셨습니다.
박윤진 성도님이 나타나셨을 때 이제는 이준 성도님만 나타나면 된다고 하셨는데....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언젠가는 모두가 만날 날이 오겠지요.
 오용익 (IP:59.♡.201.208) 07-06-06 10:28 
잘 읽었습니다.

윗글에서 제일 맘에 드는 문구 - 오지 말래는 것 억지로 갔다.

저 첫마디가 주님의 음성처럼 들렸습니다.

"너는 네가 원치 않아도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너는 네가 원치 않아도 전해야 할 소식이 있다고."

시간속에서 스러져야갈 뿐인 부끄러운 몸뚱이인줄 알면서도, 가감없이 온전한 말씀이 담긴 몸이기에 이리 저리 두루 두루 가게 하시고 만나야 하는 분들을 기어이 만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서경수 (IP:122.♡.190.11) 07-06-06 11:00 
어제 부산 성경공부가 끝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난데없이 이목사님이 이준 씨 집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견을 말씀하셨다. 나는 너무 기뻤고 반가왔다. 이장우 목사님이 그쪽 지리를 아시니까 앞장서고 우리 차는 뒤 따라가면 될 것 같았다. 김해에서 제일 큰 지붕을 지닌 교회에 다닌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기에 114로 전화해서 김해 00 교회 전화번호를 묻고, 이준 씨 모친 성함을 이목사님이 기억하고 계셔서 교회에 전화해서 물었더니 '지금은 집에 계시지 않고 30분 후에 전화를 하라'는 뭐 그런 내용으로 이장우 목사님이 통화하시는 것을 옆에서 들었다. 
"일단 출발합시다. 그곳에 가서 기다리던지 하지." 그러면서 식당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이목사님이 "서목사님도 같이 가시게요?" 라고 하셨다. 저는 "예. 당연히 가야지요." 하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난 후 생각해 보니, 초청 받은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쳐들어가는 자리에 너무 많은 불청객이 가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아쉬웠지만 생각을 고쳐 먹었다. 이장우 목사님과 이근호 목사님 두 분만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나는 집사님이 운전하는 차에 최형중 목사님이랑 셋이 같이 울산에서 타고 왔기에 김해를 가려면 우리 차 세 사람도 같이 가야하는데 너무 많은 숫자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저뿐 아니라 십자가 마을 식구들의 마음이 한결같이 십자가 복음을 믿고 사랑하는 자가 있다면 당연히 어떤 분인지 보고싶고 궁금한 것 아닌가. 예전히 여러 분들이 "이준 씨가 어떤 분입니까?" 하고 제게 묻곤 했다. 그러나 저도 옛 십자가 마을 쪽지를 통해 이준 씨랑 몇 차례 주고받은 글과 이준 씨 모친이 전화를 걸어와서 40분 정도 통화한 내용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기에 궁금해 제게 묻는 이준 씨에 대해 속시원히 답해 주지 못했다.

십자가 마을 여름수련회 때에는 이준 씨랑 모친을 꼭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근호 (IP:220.♡.122.170) 07-06-06 11:24 
여탕에 남자가 문열고 들어갈 때의 당혹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식이 아니면 '예수님이 공로'(개인이 형성한 모든 평생 가치를 깡그리 모독하고 또 모독하는 발언)로만 구원받는다는 초대장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남탕에도 여성이 한 번 들어와 보시라고... 예수님의 공로에 대해서만 감사하자고...
 이미아 (IP:121.♡.51.183) 07-06-06 19:45 
서경수 목사님께서 이렇게 리플을 길게 올리신 것은 처음이신 것 같습니다(저의 기억으로는).
그만큼 목사님의 심정이 애틋하셨으리라고 짐작되어 집니다.
목사님의 긴 리플을 보니 너무 반갑기만 합니다.
언젠가 쓰신 목사님의 글이 생각이 나네요.

"연령 차이, 학력 차이, 성격 차이, 기타 등등 다양한 차이가 있지만
교회는 십자가 피로 씻음 받은 자이기에
십자가 앞에서 누가 더 잘나고 못난 것도 없이 모두가 죄인이며,
그 피의 용서만이 유일한 소망이며,
그분의 말씀만이 등불이 된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서울과 울산이 먼 거리이지만 늘 함께 있음을 느낍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하는 말,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고전5:3)라는 말씀이 떠오르네요."
 김명현 (IP:121.♡.51.183) 07-06-07 10:37 
서울과 울산은 멀지요. 비행기가 아니면 움직일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만나기가 어렵잖아요. 김해도 먼데, 이준씨를 뵈옵게 되었다니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