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말래는 것, 억지로 갔다. 모두들 궁금하게 여기시는 분이라 누군가 총대를 매어야 했다. 언제까지 이준 씨를 괄호 안에 머물게 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만나주지 않을 것이 뻔하지만 행여 고대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대구가는 버스에 몸을 담았다. 거의 부곡에 가까이 왔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김해 중앙교회에서 오후 5시에서 5시 30분 사이에 뵈올 수 있다는 것이다. 허겁지겁 부곡에서 내려 대합실에서 40분 기다리자 김해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닟선 타지에 가면 나는 20대가 된다. 옛김해는 화장기 하나 없는 마을이다. 시간마저 눌러앉은 자리가 다정하게 다가온다. 중앙교회 계단에서 보니 맞은편에 촌 다방이 보인다. 시커먼 반소매 티를 입은 40대 마담이 70대 노인네와 마주앉아 있다. 집사님으로 보이는 분들이 나를 보고서는 지네 목사줄 알고 인사들을 하고 지나간다. 어디가도 '대충 목사'도 목사로 처주는 모양이다.
5시 30분을 조금 넘겨, 비좁은 구형 소형차에서 4사람이 내린다. 차가 용하다. 세상에, 네 분 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잠시 메시야가 된 기분이다. 이준씨와 이준씨의 어머니 되시는 집사님과 이준씨의 누나와 그리고 자기 차를 운전하고 오신 장집사님이라는 여자분이시다.
이준씨는 말을 잇지 못한다. 이준씨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누가 더 반가워해야 하고 고마워 해야 하는지 원...
이준씨는 차에 도로 올라 타서 어디론지 갈 생각을 않고서는, 자신의 감격스러움을 힘들여 전한다. "목사님 만나뵈리라고는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좁은 차에 5명이 타고가면서, 조기에 이 감격스러운 분위기를 깰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환상과 실제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위험한 지경이기 때문이다. 나의 타박이 시작되었다. 차 안에 좁아서 내 말은 안듣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는 상태가 상당히 고마웠다.
"성도는 더이상 '내가 누구냐'라는 질문은 성립되지 않고 '누구의 것이냐'로 확정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 곧 지체입니다. 지체로서만 존재합니다. 따로 '내가 누구냐'라는 시도는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체성은 단독으로 머물지 않고 다른 지체와 교제를 나누게 되어 있는데 그것이 그리스도 몸이 발휘하는 자연스러운 기능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준씨, 모임에 얼굴 좀 보이세요'라는 뜻을 우회적으로 말한 것이다. 이준씨 어머니 되시는 집사님께서는, 차를 내어주시고 운전까지 수고해주시는 장집사님의 호의에 대놓고 감사를 표했다.(이준씨는 휴대폰 뿐만 아니라 차도 없으시다. 교육학 박사 딴다고 돈을 거기다 쏟아부었다. ) 교회에서 가장 친한 집사님이라신다. 가까이 지내면서 복음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분이 계시다니 덜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분 쯤 달리자, '한솔'이라는 한식집에 도착했다. 모친께서 메뉴판을 보이시면서 나보고 아무 것나 먹고 싶은 이야기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주저없이 '돈까스요'라고 겸손하게 말했더니만 이준씨 가족들이 놀라는 기색을 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서 즉시 수정을 요구하고 나셨다. "우리 가족은 그런 것(돼지고기 종류)은 안 먹습니다. 산채 비빔밥이 좋아요"
의견통일, 한 몸의 지체로서 바람직한 결론이다고 서둘러 정리했다. 모친께서는 어린 이준씨 남매를 데리고 그동안 힘들게 살아오신 내력을 말씀해주셨다. 귀한 집 딸로 부족한 것 모르고 성장했지만 막상 시집 와서는 하나님께서 여러모로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낮추셨다고 하셨다. 특히 남편 죽고 당한 수모는 평생에 한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재밋고, 또 전도 받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니 그것이 평생이 낙이다고 하셨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와 생명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전했음에도 그 어린아이들이 다음번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놀랍다고 소견을 피력해주셨다.
나도 뭐라도 이야기해야 했다. 이준씨의 가정은 망망대해, 일엽편주같은 같은 보트 안에 가여운 세 식구가 죽기살기로 부지런히 노를 저어대는 상황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그 보트를 실어 위로 솟구쳐 오르게 하는 거대한 잠수함 같은 실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공로'이다.
"집사님, 성도는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고생해도 그 고생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습니다"
이준씨의 가정이 고생한 것을, 난데없이 방문한 방문객이 어떻게 그 아픈 심정을 동참할 수 있겠는가. 그저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힘들었으면"하고 속에서만 위로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준비해온 자신의 가족 사진과 그리고 스스로 초라하다고 여기시는 500평 친정집이 부분적으로 찍힌 보여주셨다. 그리고 시를 써오신 것도 건네 주셨다. 옆에서 이준씨가 거든다. "저의 어머니 시집 내드리는 것이 저의 작은 희망입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오후 7시 30분 버스를 염두에 두어야 했다. 정집사님이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다시 얼굴 보지 맙시다. 나는 보잘 것 없는 인간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준씨는 다시금 자신의 지금 심정을 전한다. "목사님을 이렇게 뵙기 되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느 듯 김해 들녁에 식어진 해가 가라앉고 있었다. 왠지 더 많은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은데... . 이대로 헤어지면 안될 것 같은데... 저분들의 아품을 다 안 들어주지 않으려고 억지로 얼굴을 돌린 죄를 지은 것 같은데....
서로가 살아가는 지대 위로 '예수님의 공로'만이 공룡처럼 솟아오르기를 빌어본다.
제목 : 심판
재물과
부요와
온갖 낙을 누려도
족함이 없는 인생
식욕은 차지 아니하고
탐욕은 채워지지 아니하고
마셔도 마셔도 갈증은 끝이 없고
심령이 낙이
족하지 못하여
호기심에 찬 눈이
바람을 잡느라
피곤한 몸부림을
멈추지 않는다,
죄를 모아
만리장성을 쌓는다
그림자 같은 인생이
헛된 것을 더하느라
띠끌 같은 날을 흩었어도
마침내
한 곳으로 갈 뿐
그러나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그 분이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