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인간도 자신의 근원이 죄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죄사함을 받고 난 뒤에 비로소 자신에게서는 죄 외에 아무 것도 나오지 않음을 압니다.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3) 엘리사의 저주로 인하여 난데없이 나타난 암콤에 몸이 찢겨서 죽은 아이들의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 봅시다.
과연 우리가 늘 십자가 안에서 생활하는지 돌아봅시다.
아이들은 그 시대의 자식들이고, 아이들은 그 시대를 왜곡됨이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거든요.
옛날에 저도 그랬습니다. 어른들이 이야기하게 되면 거기에 딱 앉아서 말은 안 꺼내지만 다 들어요. 들은 그것이 우리 안에 자아를 형성하는 요소가 되고 정보가 됩니다. 세상을 어떤 식으로 봐야 하느냐를 그 어른들의 말 속에서 배우게 되는 거죠.
이 아이들이 동네에 대머리만 나타나면 그냥 무작정 “대머리야!”라고 놀린 게 아니에요. 선지자의 존재에 대해서 무시하고 얕잡아보고 있었던 당시의 경향을 어른들, 기성세대로부터 이미 다 익히고 배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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