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떤 구슬을 실에 꿸 때 보통 구슬이 중요하잖아요. 그 보석이. 그런데 성경은 언약이 꿰는 줄이 더 중요해요.
줄로, 줄로 계속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 오늘 강의 중에 분명히 이야기했어요. 아브라함을 받는 게 아니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받는다고요. 이삭이 아니고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그 때 사건마다 결실 또는 열매 같은 것을 맺습니다.
초과와 꿈과의 연관성. 꿈은 요셉에게만 꿈 되면 안 되고 같은 언약에 있는 우리에게도 꿈이 되어야 되고 초과가 되어야 되고 주님의 일관성, 하나님의 언약의 일관성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요셉처럼 다루어져야 된다는 그 점을 제가 언급하는 겁니다.
‘율법에 있어서 이웃 사랑의 의미가 뭐냐’
‘너와 나의 관계’에요. 삐걱거림. 삐걱거림은 지금 표현이고 아까 강의 중에는 뭐라고 했습니까? ‘절뚝거림’.
하여튼 삐걱거리고 절뚝거리는데, 삐걱거리는 것과 절뚝거리는 것이 약간의 뉘앙스 차이는 있어요. 삐걱거리는 것은 나 혼자 봤을 때 내가 정상적으로 발걸음을 못한 거고, 절뚝거림이라 하는 것은 둘이 너와 나 사이에 막대기를 갖고 있는데 이 막대기를 운반하는 게 부자연스러울 때. 아까 운동회할 때 (2인 3각 경기) 이야기 했죠? 이상하게 안 맞는 거예요. 맞지를 않는 거예요. 맞질 않는데 왜 맞지 않는가?
삐걱거림, 절뚝거림을 통해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무한’이 나온다 했어요. 무한이 나온다는 거예요. 보통 인간은 유한하잖아요.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만나는 하나님이 허락한 방법은 뭐냐? 남을 만나는 거예요. 남을 만나서 어떻게? 삐걱거림과 절뚝거림에서 오는 그 짜증, 분노, 화남. 화남이 바로 인간이 무한한 분을 만날 때에 나타나는 특이성으로서 그 특이성을 타인을 통해 경험케 하는 거예요. 경험케 하는 겁니다.
실습해야 됩니다. 실습하게 되면 삐걱거림과 안 된다는 거예요.
안 되는 결과가 뭐냐? 내 인생의 힘든 것은 전부 다 남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내세울 때, 아, 이게 유한을 통과해서 무한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내 쪽에서 진짜 있는 무한한 분에 대한 공격 성향을 내가 애초부터 부정성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거예요 이것을 신약 로마서에서 간단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죄를 죄 되게 한다.’ 그 격막. 도저히 통과할 수 없는 격막이 내 안에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놓쳐버린 겁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십자가 영이 오거든요. 십자가 영이 오게 되면 내가 통과할 수 없는 격막을 십자가로 해서 나를 아예 끌어당겨버렸다. 이 격막 속에 나를 끌어당겨버리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바로 내가 구원될 수 없는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이 격막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신 이것을 느끼면서 나는 주님의 십자가 증인 되는 거예요.
인간 대 인간의 만남에서 자신의 유한의 한계를 발견하고 같은 인간끼리 부딪치게 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인간에게 기대하지 마세요. 인간은 아무 기대할 게 없습니다. 기대를 안 하면 남을 원망 안하게 돼요. 너 때문에 내 인생 조졌다는 이야기를 안 하게 되고 그런 겁니다. 뭐든지 기대하는 게 죄가 돼요. 이 한 마디만 할게요. ‘기대하는 게 죄’라 하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게 되면 ‘죄란 구조를 모르는 것’.
인간은 보편성 바깥에 따로 나만의 개성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고집인지. 결국 인간은 똑같습니다. 이쪽 진영에서 똑같고 저쪽 진영에서 똑같아요. 그래서 말씀이라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 따로 나라는 것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말씀의 효력이라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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