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값
2025년 11월 30일 본문 말씀: 히브리서 13:5
13: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돈을 소지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돈으로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값을 치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돈을 소지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것에 대해서 악마는 인간규정에 자신감을 보입니다. ‘인간 치고 자신의 소유로 살지 않는 자는 없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인간의 출생지 자체가 이미 악마의 유혹으로 통치되는 장소입니다. 이곳을 예수님께서도 방문하게 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1-3)
예수님에 의해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세상은 악마가 인간을 상대로 시험하는 장소입니다. 세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경제, 다른 하나는 종교, 다른 하나는 정치입니다. 세 가지 덮개로 덮혀져 있습니다. 인간들은 기반부터 발을 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돈으로 촘촘히 질서잡혀 있는 세상입니다.
모두 동일한 기반에서 묶여있습니다. 마치 돈의 질서에 모는 눈금이 그어져 있는 지경입니다. 상태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돈에서 발을 뺄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인정사정은 이 돈의 질서 위에서 증발되어 버립니다. 구질구질한 변명이나 핑계는 필요없습니다. 오로지 돈에만 집중함을 강요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종교는 다음과 같이 사기를 칩니다. “더는 경제문제보다 하나님을 찾으면 여러분들이 원하는 돈도 제공됩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분명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살후 3:10-12) 즉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살후 4:11-12)
구약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잠언 10:4에,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일하기 싫어하면서 신의 덕을 보겠다는 자는 다시 맨 아랫 덮개인 경제층으로 내려가서 거기서 혹독한 저주의 맛을 보라는 겁니다.
인간들이 죽도록 일하다가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7-19)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상관없이 인간이 이미 흙으로 돌아가야 될 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른 인간을 하늘에서 보내셨습니다. 그분으로 흙으로 마감되시는 분이 아닙니다. 생명이며 길이며 진리되셔서 그 세계로 돌아가실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몸과 보통 몸과 이 세상에서 다른 절차를 보여주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영생의 세계로 들여다 넣기 위해서 경제 덮개를 벗겨나는 작용에 나서십니다. 구약에서는 욥입니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1:9-11)
이처럼 욥은 하나님에 의해서 사단의 덮개가 벗겨진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존재로 활용됩니다. 신약의 비유에서 이런 예가 나옵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나오는‘불의한 청지기 비유’입니다.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 16:8)
분명 이 직원은 불의합니다. 그런데 도리어 칭찬을 받습니다. 왜요? 그것은 인간들의 의존하는 종교나 권력의 덮개가 벗겨진 채로 인간은 기반은 돈에 매여 있음을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즉 돈이 있어야 인간이 살고 그 돈 문제는 내가 알아서 책임지겠다는 자신의 내부 본질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흙으로 질주하는 인간을 어떻게 피의 노선으로 돌려놓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자신께서 채권자로 인간에게 나타나시는 겁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만약에 인간들이 하나라도 어기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지옥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 5:25-26)
이러한 주님의 권한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선악과를 따먹고 간 것에 대해 마땅한 처벌입니다. 선과 악의 지식으로 인간들은 자체적으로 마음의 짐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 18:21-23) 주님께서 생명을 언급하시면서 ‘자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셨습니다.(요 6:51) 그런데 제자들에게 결국에서 친히 살과 피를 먹이십니다.(마 26:27-28)
로마서 5:8-9에서 이렇게 단언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인간의 돈은 결코 죄를 씻는 값이 되지 못합니다. 이렇게 영생의 나라의 능력, 즉 부활의 능력으로 죄 안에서 예수님의 아이가 탄생됩니다. 이것이 새로운 자아의 처음 자리입니다. 속물인 어른의 의식은 말씀에 의해서 뜯겨져 나갑니다. 값이 치러진 의로운 자아, 이것이 바로 성도의 자아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값으로 샀기에 피의 세계 너머의 영생의 세계를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95강-히브리서 13장 5절(피 값) 251130-이근호 목사
하나님 말씀은 히브리서 13장 5절입니다.
히브리서 13: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여기 돈 이야기가 이렇게 나오는데요, 돈에 대한 사람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곧 예수님의 관점이죠.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세상의 형편을 한꺼번에 보신 적이 있어요.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께서 예수님에게 의도적으로 ‘세상이 어떤 구조로 돼 있는가?’를 알려주는 그런 경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활동하기 전에 성령에 이끌려서 먼저 세상의 그 주인,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사단, 마귀, 성경에 마귀로 돼 있는데요, 악령을 먼저 만나게 했습니다. 어디서 만나느냐 하면, 광야에서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금식하는 상태에 놓여 있게 되었고, 그때 마귀를 만났습니다.
인간 세상 전체를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인간은 악마한테 포박당해 있다. 악마가 인간을 삼중으로, 삼중 덮개로 덮고 있다.’ 누르고 있는 거예요. 그것을 두고 성경에서 ‘시험당했다’(눅 4:2)고 표현하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마귀로부터 시험당했다. 예수님은 시험을 당하지만 인간은 거기서 태어났죠. 출생을 한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누가 자기를 시험하는 자가 없어요. 인간이 마귀한테 속해 있다는 특징이 뭐냐? 악마한테 속했다는 특징이 뭐냐? 자기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몸이 아프다. 그러면 의사가 하는 유-튜브 방송보면서 거기에 집중하는 거예요. ‘내 인생 문제는 내가 해결하겠다.’ 이게 시험 든 거예요.
내가 악하면 안 되니까 선하게 살겠다, 바르게 살겠다 이게 시험 든 겁니다. 바르게 산다는 그것이 마귀의 덮개에 눌려 있는 상태인 거예요. ‘내가 알아서 이 난관을 해결하겠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면서 인간 사회의 체계, 그 내막이 확 드러났는데 그게 3중구조로 돼 있었습니다.
여러분 잘 알다시피 첫째는 경제 문제, 두 번째가 종교 문제, 세 번째 권력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경제 문제와, 그리고 종교 문제지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말씀대로 실행에 옮기면 그걸 보고 사람들이 너를 메시아로, 교주로 추종할 것이다’라는 이런 종교 문제, 그다음에 세 번째가 ‘나한테 절하면 천하 모든 영광을 주겠다’는 권력 문제가 나옵니다.
누가복음 4장에도 동일하게 예수님이 사단으로부터 시험받는 대목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순서가 역시 경제 문제가 기초예요. 경제 문제가 기초인데 그다음에 종교가 아니고 권력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종교 문제가 나옵니다.
종교라고 하는 것은 신의 존재 여부잖아요. 신으로부터 어떤 기적을 기대하는 마음, 신으로부터 기적을 기대하는 마음조차도 마귀로부터 시험당하는 형편, 그런 사정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을 인간이 몰라요. 인간이 보는 세상은 이걸 모르고,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이 보실 때 예수님 보실 때에만 바로 이것이 확 하고 다 다가오는 겁니다.
이것을 제일 먼저 예수님이 경험했어요. 누구와 더불어서?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마귀와 더불어서 시험 든 상태, 유혹에 빠져 있는 상태, 모든 인간이 유혹에 빠져 있을 때 그 빠진 상태에서 ‘그 육의 안에서 인간은 어떤 식으로 나름대로 몸부림치고 아주 발작하면서 살아보려고 애를 쓰느냐?’ 그게 광야에서 이제 보입니다.
첫 번째는 뭐냐? 돈 문제예요. 경제 문제입니다. 사람은 몸으로, 세포로 되어 있고 세포에는 곡물이 들어가야 하고, 세포 안에서 곡물은 에너지로 화하지요. 곡물을 살려면 돈이 필요하고요. 그러니까 이 세상은 ‘돈의 모눈종이 위의 삶’이라고 볼 수 있어요. 모든 천지가 돈의 천지고 돈의 편재성 위에 있습니다.
인간이 날고뛰어도 돈 위에서 날고뛰는 거예요. 마치 반도체가 기판에 촘촘히 박힌 것처럼 어디를 가든지 간에 돈을 벌 수 있느냐를 묻는 그 집단, 업체, 그러한 지역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걸 고상한 말로 ‘돈의 편재성’이라고 합니다. ‘모든 가치는 돈에서 나온다는 것, 구질구질하게 변명하지 말고 돈에만 집중하라.’
그래서 인정사정은 돈의 판 위에서 증발합니다. 인간이 언어를 이야기할 때 그것은 돈의 판 위에서 말을 주고받게 돼 있어요. ‘전부 다 개판’이 아니고 ‘전부 다 돈 판’입니다. 이걸 분명히 해야 돼요. 그런데 이 마귀가 종교를 가지고 돈 판을 감춰버려요. ‘신이 있다면 돈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식으로 종교에서 그렇게 얘기하는데 그거는 사기입니다, 완벽한 사기입니다.
모든 인간은 돈의 편재성의 세계, 돈의 모눈종이, 씨줄과 날줄이 돈으로만 촘촘히 정사각형으로 그어져 있는 그 판, 마귀가 이걸 이미 인간존재의 기반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누구도 여기에 발목 잡혀 있고 여기서 누구도 벗어날 수가 없어요.
돈에 발목 잡혀 있으면서 하나님을 언급한다? 이것은 사기술입니다, 사기술이에요! 12월 23일에 의성에서 조수미가 성악 콘서트를 엽니다. 조수미 혹시 들어본 적 있습니까? 60대 여자분 있는데 만약에 거기에 참석을 해보겠다 하면 뭘 내냐? 돈을 지불하거든요.
돈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실체, 물건이 있어서 돈을 주고 저것을 내 것으로, 내 소유로 만들 때 그 돈이 지불되는 거예요. 그 공연에 참석했다 합시다. 돈은 분명히 냈는데 얻어내는 건 뭡니까? 거기에 무슨 실체가 있습니까? 소리? “아아아아~” 하는 그 소리가 그 돈값을 충분히 한다는 말입니까?
그 소리가 돈값을 합니까? 그 소리 들으면 그 소리가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입니까? 우리 세포에 영양분을 제공하는 겁니까? 아니죠.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가 되느냐 하면, 조수미의 그 공연에 참석하는 것이 얼추 밥은 먹고 사는 사람에게나 해당된다는 거예요. 10만 원이라는 돈을, 그게 10만 원인지 얼마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좌석에 따라서 다르겠지요, 어쨌든 그만한 돈을 지불하는 거예요.
지금 당장 먹을 것도 없는데 조수미의 노래 그 실체도 없는 거, 들을 때야 좋았는데 돌아오면서 그 소리가 공중으로 다 날아가잖아요, 없잖아요. 어느 정도 금식되지 않은 상태, 굶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게 아니야. 사람은 정신적으로 풍요해야 돼.”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일단은 이 몸이 살 만큼 먹을 게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나 이 정신 문제에 관심이 있는 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왔다. 교회 와서 점심값으로 천 원이라도 냈다 합시다. 참, 점심값은 실체가 있구나. 점심을 먹었으니까요. 그런데 만약에 만 원 냈다 합시다. 교회 가서 만 원 내고 왔다. 뭘 갖고 왔죠? 갖고 온 게 뭐가 있어요?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은 계십니다’가 어디 물건입니까? 어디에 보입니까?
종교라는 것, 교회라는 것은 사기중에 사기예요. 봉이 김선달처럼. 아무 실체도 없는데 자기가 노동해서 힘들게, 뼈 빠지게 자기 에너지 소비하면서 번 돈을 아무 실체도 없는 구라 떠는 곳에 내면서 산다? 아……. 사람이 사기를 치는 이유가, 인간 본인이 이미 마귀로부터 가짜 인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래요. 자기 자신이 누군지를 모르는 상태에요.
본인이 누군지를 모르거든요. 사람이 사기당했다는 말은, 본인이 진짜라고 우기면서 타인에게 사기 치려 하다가 사기를 당한 거예요. ‘주님께서 시험을 당했다. 유혹을 받았다.’ 이 말은 엉터리 같은 세계, 마귀가 만든 세계에서, 우리가 출발한 거예요.
본인이 누군지를 몰라요. 모르면서 제일 먼저 마귀가 쳐놓은 그 덫은 뭐냐? ‘사람은 떡 없이는 못 산다’라는 이 경제 문제부터 맞닥뜨리게 된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목을 빼지를 못해요. 컴퓨터 반도체 칩 판처럼 거기서 빠지면 죽어요. 발을 빼면 죽는다고요.
고상한 척을 해보지만 고상한 척한다는 것은 사실은 뭘 감추고 있는 겁니다. 뭐냐 하면, 나는 돈에만 집중한다는 1층 구조, 제일 첫 번째 무거운 덮개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하면서도, 안 그런 척하면서 정신적인 문제, 종교적인 문제, 신의 문제 그런 것을 언급하고 있다는 말이죠.
성경은 우리를 도로 1층으로, 2층의 종교 문제에서 1층으로 내려가라고 지시합니다. “성경 보면서 잘난 척하지 말고, 성경 안다고 고상하게 영적 이야기하지 말고 네 주제 파악부터 먼저 해라.”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아주 사도바울이 잔혹하게 이야기해요. 엄격하게 이야기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정말 잔인하지 않습니까? 사랑의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께서 “사랑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1-1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너희에게 명한것 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남들이 너의 가난 때문에 신경 쓰지 않도록 너 먹을 것은 네가 벌어라. 어디서 어줍지않게 1층도 못 떠나면서 2층 언급하고, 주님이 어떠니, 신이 어떠니, 신의 존재가 어떠니…, 네 밥벌이는 했냐?’ 이런 거예요.
잠언 23장에서는 아주 노골적이에요. 잠언 23장 21절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잠언 10장 4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밥도 아깝다는 뜻이에요, 밥도 아깝다. 주께서 많은 말씀으로 우리로 하여금 ‘일하기 싫은 자는 결국 망해서 굶어 죽는다’ 하는 이것은, 이 세상이 얼마나 정확하게 말씀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냐를 알려주는 거예요. 하나님 믿고 쿵짝쿵짝 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이 현실과는 괴리된 망상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처럼 돈을 사랑하지 말라, 또 있는 바를 족하게 여기라고 나오면 어떤 생각을 하느냐? 요령 부릴 생각을 하는 거예요. 노는데 하나님이 도와줘서 밥 먹고 사니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 아니냐? 여러분, 심지어 수녀원도 안 놀아요. 된장 만들고 참기름 짠다고 애 먹는다고요. 천주교 그 사람들은 바보입니까? 그냥 막 먹여주는 줄 알아요.
고노동 저임금이에요. 파티마 병원 수녀들 보세요. 얼마나 일 많이 한다고요? 월급은 50만 원밖에 안 돼요. 다른 데 가면 2백만 원, 3백만 원 할 월급을 50만 원 주고 때운다고요. 그래야 파티마 병원이 돌아갈 거 아닙니까? 허경영도 마찬가지고 모든 종교 단체가 다 그래요.
이 세상의 기본이 “노는 자는 망해라.” 그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는 거예요, 말씀대로. 그리고 ‘열심히 일하니까 역시 부자가 되었구나.’ 그게 뭐냐? 시험 든 거예요. 아니 가난하게 돼도 시험 든 거고, 말씀대로 열심히 노동해서 부자 된 것도 시험 든 거고, 도저히 마귀가 만든 세상에서 우리가 빠져나갈 시간이 없네요.
14세기부터 16세기 유럽에서 처음으로 본격화된 게 대부업이에요. 은행입니다. 은행이 발달한 나라는 잘 살고요, 은행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는 못 살게 돼 있어요. 순수하게 밭에 나가 농사짓든지, 바다에서 고기 잡든지, 들에서 짐승 키우든지, 이렇게 자기 노동을 직접 투자해서 얻는 농업 국가의 특징이 가난한 나라가 되는 거예요.
14세기에서 16세기 근대 국가에 들어와서 부자가 되려면 빚으로 살아야 이게 부자가 됩니다. 그래서 부자 나라의 특징은 뭐냐? 모든 개인이 대부업을 하는 나라가 부자 나라입니다. 모든 개인이 대부업을 해요. 대부업이라 하는 것은 어떤 뜻이냐? ‘다음에 갚아줄게. 일단 돈 다오.’ 이게 대부업이에요. 다음에 갚아줄게.
현재 전 세계의 빛이 420경 원입니다. 미국의 빚이 5경 원이고, 중국의 빚이 3경 원이에요. 우리나라는 한 7,500조의 빚이 있어요. 그런데 빚이 없는 나라는 가난한 나라예요. 북한 같은 나라. 그런데 빚이 있는 나라는 잘 삽니다. 참 이상하죠.
미국의 빚은 누구한테 졌는가? 자기네 상업은행들한테 빚을 졌어요. 빚내서 뭘 하는가?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가 국채를 발행합니다. 국채를 발행해서 집 안 장롱에 있는 돈으로 국채를 사게 합니다. ‘국채를 사게 되면 다음에 이자 쳐서 갚아줄게.’ 이렇게 되는 겁니다. 어느 인간도 이렇게 안 살고 자기가 직접 몸으로 노동해서 먹고사는 것은 상대적으로 가난해질 뿐이고, 빚으로 살 때 부자 되는 세상입니다.
그 빚을 뭐라고 하느냐? 투자라고 이야기해요. 펀드, 투자, ‘은행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돈 맡겨줘. 잘 투자해서 수익률 높게 쳐줄게.’ 이걸 은행만 하는 게 아니고 개인들도 주식 투자를 해요. 회사 취직해서 일해서 돈 번다. 그거 말고 따로 투자를 또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 마귀의 세계에서, 인간은 갈수록 돈에서 발목을 못 빼도록 만드는 식으로 세상이 돌아갑니다. 그렇게 돌아가게 해서 부자를, 성공을 선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부자에 대해서 인간들은 종교를 갖다 붙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부자 되게 하셨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경에 그렇게 돼 있습니까? “있는 것으로 족하게 여기라.” 인간 머리에는 그게 없어요. 인간들은 도대체 6백억이 있어야 족합니까, 7백억이 있으면 족합니까? 인간들은 있는 바를 족한 줄 몰라요. 왜냐하면 이미 시험 든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내막을 밝힙니다. 그게 욥기에 나와요. 욥기 1장 11-12절에 이런 말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제쳐두고 악마와 사탄과 더불어서 이야기합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그래서 이제 사탄이 욥의 뭘 빼앗는가? 욥의 모든 소유물을 빼앗습니다. 사탄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탄은 인간에 대해서 알아도 너무 잘 알아요. 인간은 모든 것이 자기의 소유화 돼 있다는 것, 자기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으로, 그것을 키우고 소유한 그 돈의 힘으로 이 땅에서 서로서로 소통하고 만나는 거예요. 그렇게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걸 마귀가 너무 잘 아는 거예요.
물론 하나님도 잘 알죠. 그래서 사탄 보고 “네가 욥에게 한번 손대 봐라.” 왜냐하면 마귀가 장담을 했습니다. “제가 인간을 아는데 인간은 자기 소유하는 맛에 살아갑니다.”라고 장담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뭐냐? 마귀의 장담이 곧 현실이다. 우리의 모든 마주하는 현실은 배후의 악마의 장담, 그 큰 소리가 그대로 현실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오늘 말씀 “있는 바를 족하게 알라. 돈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잖아.” 하는 이 말씀의 내용은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가? 그것은 절차를 밟아야죠. 어떤 절차? 예수님이 와서 광야를 통과하시고 하늘나라 아버지께로 가신 것처럼 우리도 그대로 통과해야 돼요.
뭐부터 통과하느냐? 경제적인 문도 통과, 그다음에 종교적인 거, 그다음에 권력적인 것을 통과해야 돼요. 마태복음 4장에서는 종교 다음에 권력으로 되어 있지만 아까 말씀드렸듯이 누가복음 4장에서는 권력 문제부터 먼저 하고 그다음에 종교 문제 나옵니다. 제가 보기에는, 권력까지 소유해야지만 제대로 신 행세를 할 수 있다는 면에서 누가복음 4장의 설명이 더 잘 됐다고 봐요.
어쨌든 인간들은 경제 문제에 딱 들어가게 되면 그다음부터 이 경제, 내 소유를 키워달라고 신에게 하소연하게 돼 있어요. ‘하나님이 부자 되게 해달라. 그게 하나님의 기적이다.’ 거기에 종교인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사기꾼들이 대기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나쁜 짓을 해서 가난한 거니까 이렇게 하게 되면 여러분이 소원하는 경제 문제 풀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기를 치는 거예요. 아무 실체도 없어요. 없는데 정신적으로 그 소리가 돈값을 치를 만한, 들을 만한 소리로 이어집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층, 그게 권력인데 권력에서 누구를 마주치느냐? 비로소 악마의 본색과 마주치게 되었어요.
하여튼 진짜 악마가 이 세상의 권력을 쥐고 있는 권력체라는 걸 맞닥뜨리게 돼 있어요. 성도의 특징은 뭐냐? 지금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뭔가 내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간파하는 자가 성도입니다. 간파되도록 예수님께서 또 말씀을 해주셔요.
돈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첫걸음을 내딛는가는 누가복음 16장에 나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불의한 청지기 이야기가 나오는데 8절에 이렇게 돼 있어요.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말씀이 어렵죠. 주인이 자기 돈을 횡령한 그 퇴직한 직원에 대해서 “너 옳지 않아!”라고 해요. 옳지 않다. 상당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인데 “너 옳지 않아. 너는 죄를 지었어.” 쉽게 말해서 “너는 지금 나한테 잘못하고 있는 거야.”라고 단정 지어요.
그런데 그 옳지 않은 자가 그다음에 칭찬을 받아요. 옳지 않은 자가 칭찬을 받는다고요. 왜 칭찬받느냐? 이 세상의 근원적인 바닥은 돈으로 깔려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그 점이 종교의 층, 또는 권력의 층을 뜯어내고, 그딴 망상적인 것, 실적 없는 것들 다 무시하고 정말 집중하는 것은 뭐냐? “나는 돈 없이는 못 산다”라는 것을 집중해서 보여주는 것이 불의한 청지기예요.
교회 50년 다니고 60년 다니고, 하나님 믿고…, 그딴 것은 다 갖다 버리고 정작 인간이 꽂혀 있는 것은 그 돈이라는 기판, 그 기판에 꽂혀서 평생토록 발을 못 뺀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자가 불의한 청지기입니다. “이것부터 출발하는 거야, 이것부터!” 구질구질하게 핑계 대지 말라는 거예요.
돈 문제에서부터 발을 못 빼는 자가 예수를 믿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가 믿는 예수는 허상이에요. 실체가 없어요. 사도행전 5장 4절에 아나니아 삽비라 이야기 나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애써서 번 돈입니다. 그 돈을 교회에 헌금했습니다. 땅 판 돈이 있어요.
땅 판다고 얼마나 고생하고 신경 썼겠습니까? 부동산에 투자한 것도 에너지를 써서 투자했잖아요. 그것도 일종의 노동이다, 그 말이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땅 판 돈의 반을 헌금했습니다. 인간들의 차원에서, 같은 인간 입장에서 내 돈의 반을 내든 3분의 1을 내든 다 내든 그것은 내 자율이에요. 내 거니까 내 소유니까 내 마음대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헌금할 때 ‘이 돈은 내 돈인데 내 돈 중에서 반을 교회에 기부하겠습니다, 헌금하겠습니다.’ 한 거예요. 그 부부 그날 둘 다 죽었어요. 성령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죽을 때 그냥 죽으면 안 되죠. 죽는 이유를 알아야 되지 않습니까?
사도행전 5장 3-4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성령 받은 베드로가 이 이야기를 합니다. “바치지 말고 네가 그 돈을 그냥 갖고 있으면서도 ‘이 돈은 결코 내 소유가 아닙니다’는 말을, 그런 고백을 왜 할 줄 모르느냐?”는 거예요. ‘나는 나의 소유가 아닙니다’라는 고백을 왜 못하느냐 하는 거예요.
“네가 반을 냄으로써 ‘나머지 반은 내 거’라는 것에 대해서 너는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 지금 ‘자기는 자기 거’라는 거예요. 이거 참 무서운 이야기 아닙니까? 아니 헌금했다고 죽여버리고요. 차라리 헌금 안 했으면 안 죽을 걸 헌금해서 죽어버려요.
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느냐 하면, 성경에 보면 인간의 끝은 흙에서 stop이에요. 흙에서 스톱이 된다고요. 흙에서 스톱되는데 창세기 3장 19절의 말씀에 보면, 그냥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실컷 일하고 노동하고 그걸 내 거 만들기 위해서 아등바등 애를 썼는데 그 결과는 뭐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이겁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인간이라는 게 이겁니다. ‘네가 흙 되기 전에 무엇을 했느냐?’의 그 행동과 네가 흙으로 마감되는 것과는 아무 연관성이 없어요. 네가 무슨 짓을 해도 흙이니 그냥 흙으로 가는 겁니다.이미 이것은 결정 난 거예요. 명백한 사실이고요, 명확한 사실이에요. ‘스톱’이라는 말은 그걸로 끝이라는 뜻입니다. 실컷 마귀 노릇하다가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걸.
자기 소유에서 결별할 인간은 아무도 없고, 자기 소유로 인하여 ‘나는 나다’라는 것을 확정지으면서 살아가는 인간, 본인이 알기에는 그 인간만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사탄은 그만큼 장담하고 자신만만해합니다. 인간에 대해서는 사탄이 더 잘 알아요. ‘자기가 가진 것이 나다.’ 거기에 철두철미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그렇게 욥을 치게 한 이유가 있어요. 그건 뭐냐? 그 인간 세계에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를 사람으로 보내기 위한 예비 절차가 인간을 치게 하는 절차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흙이다. 인간은 죽으면 끝이다.’ 과연 그게 끝일까? “사탄아! 과연 그런 인간밖에 없을까? 사탄, 네가 자신만만한데 하나님 나도 자신만만하다. 내가 다른 인간을 보낼게.” 그래서 그 인간을 보냈는데 그 인간은 뭐냐? 그 인간은 흙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영생이 마감이었어요. 영생의 나라로 넘어왔어요.
영생의 나라로 넘어오면서 ‘나는 길이요, 나는 진리요, 나는 생명이라.’(요 14:6) 하는 분을 이 땅에 보냈습니다. 그 생명이 이 땅에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으로 오시면서 어떤 끝을 보여줍니다. 기존 인간의 끝은 흙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의 끝은 뭐냐? 이 땅에서 피가 끝이에요, 피!
인간은 피에서 멈춰야 돼요. 피에서 멈춤으로서 인간의 몸과 예수님의 몸이 다르다는 사실,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흙에서 끝나는 몸이 있고, 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흙을 넘어 영생, 생명으로 이어질 다른 몸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오셔서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인간이 흙으로 마감되는 이유는, 인간은 이미 돈에 매여 있고 경제에 매여 있기 때문에 아무리 발작해도 흙이 될 수밖에 없는 데서 벗어나질 못해요. 거기에 대해 인간들은 자기에게 어떤 이상한 문제를 못 느껴요.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전혀 감 잡지 못합니다.
그저 죽지 않기 위해서, 흙이 되지 않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어요. 그것뿐이에요. 그 이유는 뭐냐?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거예요. 백 프로 전형적인 사탄의 모습이에요.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한다는 것. 내 생명을 연장하고 조절하는 것도 내가 알아서 한다는 거예요.
주께서 하는 방법을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주께서 이런 인간, 돈에서 발을 못 빼는 이런 인간을 어떻게 자기 백성으로 만드는지 주께서 하신 작업이 뭐냐? 하나님께서 채권자가 되시는 방법이에요. “너 나한테 빚 갚아라.” 이렇게 나와요. “빚 갚아라.”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빚을 갚도록 강요해요. 왜냐하면 인간은 이미 선악과나무 과실을 훔쳐 마귀와 더불어 도망쳤기 때문에 주님한테 빚진 자입니다. 마태복음 5장 17-18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놓고 마태복음 5장 26절에 보면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지옥에서 나오지 못한다. ‘말씀대로 다 이루지 못하면 절대로 옥에서 나오질 못한다. 내가 그렇게 정해버렸다. 너 나한테 빚 갚아라.’ 빚 갚으라고 하는 거예요.
인간은 선악적으로 빚을 갚으려고 해요. 나쁜 일을 했을 때 착한 일로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자체적인 어떤 자극이 와요. 선악 자극이 와서 ‘착하게 살아서 빚 갚고 천국 가겠다’라고 노력을 하는 데 그걸 불교에서는 ‘업보’라고 하잖아요. 흔히 교회에서는 ‘상급’이라고 하죠.
그거 안 됩니다. 율법 하나라도 어기면 저주받습니다. 주께서 그렇게 호락호락 대충 넘어가주시는 분이 아니에요. 마태복음 18장에서 이미 베드로가 그걸 고백했습니다. “예수님! 제가 남을 용서할 때 몇 번 용서하면 됩니까?” 그게 바로 빚 갚는 이야기에요. “몇 번 용서하면 됩니까? 일곱 번 용서할까요?”(21절)
왜 그런 생각이 듭니까? 그 정도로 남을 배려하고 너그러운 인간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냥 넘어갈 줄 알았어요? 마태복음 18장에서 베드로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예수님께서 단박에 나온 이야기가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23-24) 이렇게 빚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요.
미리 정답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창세기 41장에서 요셉이 한 행동을 하면 돼요. 요셉은 최초의, 사재기의 원조였습니다. 어떻게 사재기를 했는가?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7년 대풍년을 줬어요. 인간들은 그 풍년의 생산물을, 특히 애굽의 바로 왕은 내 것, 내 소유물로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그 뒤에 7년 대흉년이 와서 앞의 풍년을 다 갉아먹어요. 그러면 기본적으로 돈이 없어요. 흉작이 되면 인간이 기본적으로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로 왕이 “이것을 미리 알게 된 요셉아! 대책을 세워라. 널 총무 대신으로 앉혀줄게. 제2인자로 앉혀줄 테니 네가 알아서 다 해라.”
그때 요셉이 한 것이 사재기를 했습니다. 처음에 7년 대풍년이 왔을 때 그 소유를 바로 왕의 소유로 하지 않고 유보시킨 거예요. 유보시켜서 창고를 많이 지어 사재기를 해놓고 그다음에 흉년이 왔을 때 주변 모든 나라에 엄청난 프리미엄을 붙여서 되팔기를 해요. 요셉은 최초의 금융가입니다. 투자에 성공한 겁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요셉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출애굽에 들어오게 되면 애굽 나라가 나오는데 그 애굽 나라가 뭘 잊었냐 하면, 요셉을 잊었어요(출 1:8). 요셉을 잊으면서 나타난 게 열 가지 재앙을 얻어맞는 거예요. 요셉에게 꿈을 준 여호와 하나님이 남긴 백성들이 애굽에 살던 히브리인들이거든요.
바로 왕이 그 히브리인들을 건드렸습니다. 건드리니까 여기에 대해 “요셉이 사재기해서 은혜로 살아남은 자를 누가 손을 대?”라고 열 가지 재앙을 때렸거든요. 때릴 때 그 때리는 방식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는 세 가지의 덮개 경제, 종교, 권력 다 나옵니다. 이 층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요.
물이 없으면 농사가 안 되잖아요? 재앙을 내려서 그 물이 피가 되었을 때, 그리고 개구리가 올라왔을 때도 애굽의 바로 왕이 자기 종교인들을 동원합니다. 마법사 술객들을 동원해요. 그들에겐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권력자인 바로 왕만 속이면 되니까 속임수를 써요. 8장 7절에 보면 “술객들도 자기 술법대로 이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그런데 그다음에 모기, 이, 파리…, 술객들도 이젠 항복합니다. “임금님,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건 신이 하는 일입니다”(출 8:18-19). 그런데 그 신이 어딜 치느냐? 처음에는 일시적인 생활의 불편만 있었어요. 재앙 1부터 4까지 1) 나일강이 피가 되는 것 2) 개구리 3) 이 4) 파리가 오는 것은 일시적인 생활의 불편입니다.
그런데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가축에 악질이 생기고 신체에 종기가 생기는 신체적 고통이 오고요, 그다음에 재앙 7은 우박, 8은 메뚜기, 9는 흑암, 이렇게 자연 세계를 흔들어서 근원적인 생산 기반, 경제 기반에 재앙을 때려버려요. 그리고 마지막 초점으로 겨냥하는 것은 인간은 육이라는 것, 장자를 죽여 버려요. 장자를 죽입니다.
경제 층, 곡물 생산이 안 되면 못산다는 것, 이 기본적인 생산 체제를 흔들어버리는데요, 종교인들을 동원해도 아무짝도 소용없었습니다. 종교인들은 거짓 기적과 행운이 아니면 돈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요.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데살로니가후서에도 나와요.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9-10).
온갖 기적을 일으켜서 사람들로 하여금 거기에 현혹되게 하는데 그 거짓 선지자가 누구와 한패냐? 짐승과 한패에요.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같이 잡혀서 요한계시록 19장에 보면 영원한 불속에 들어간다고 되어 있어요.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계 19:20).
왜? 사기를 쳤기 때문에. 사기를 쳤어요. 인간 자체를 뜯어내는 이유가, 사탄이 속해 있는 세상 자체가 시험이거든요. 인간은 모르죠. 자존심이 세서 내가 누구한테 유혹받는다는 생각을 안 해요. 난 똑똑하다, 이것밖에 모른다고요.
똑똑한 체하면서 밥은 먹어야 되겠고, 어려우니까 신에게 빌고, 그것도 안 되니까 권력에 복종하고요. 권력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에요. 바깥 권력은 내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내부권력을 작동시켜서 연동해 같이 일어나요. 그러면 주님의 대책은 뭐냐? 그 대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로마서 5장에 나옵니다. 8-9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하여튼 성경은 굉장히 명쾌하고 명백합니다. 뭐 주저리주저리 할 것도 없어요. 그냥 받아들이면 돼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피입니다, 피!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도대체 이 말씀에서 우리가 뺄 게 있습니까? 뭔가 골라잡을 게 있어요? 이건 믿을 만하고 이건 안 믿어야 되고, 이런 게 있습니까? 없죠. 인간의 마지막은 ‘흙’이 아니고 ‘피’라는 것으로 네가 교체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네 정신이 교체되어야 해요. 피에요, 피.
그러면 피는 뭐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봐야죠. 피가 구성되기 위해 하나의 스토리를 임의대로 한번 짜봤어요.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20대 후반이 군에 다녀와서 취직하려고 합니다. 자기 실력으로 입사에 성공했다. 이게 첫 번째입니다. 그런데 ‘흙’에서는 통과지만 ‘피’ 앞에서는 탈락이에요. 피 앞에서 탈락합니다.
왜냐? 누가복음 6장 24절에 보면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따라서 ‘인간은 위로의 대상이 아니다. 위로받겠다는 것도 사탄의 시험에 빠진 상태이기 때문에 위로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죽게 되어 있는 네가 받은 위로는 앞서서 마귀한테 다 받은 거예요. 인간은 위로의 대상이 아닙니다. 인간은 왜 위로받고자 하느냐? 자기 연민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어려울 때나 힘들 때나, 잘 될 때나 자기연민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합니다. 끝까지, 죽을 때까지 자기 연민을 질질 끌고 가요.
‘나는 이런 고생할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아플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치매 걸릴 사람이 아닌데 난 이렇게 힘들게 인생 살 사람이 아닌데…’, 이 모든 것이 자기연민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이건 당연히 사탄의 시험에 빠진 거죠. 그래서 첫 번째, 인간은 자기 실적, 그리고 성공에서 못 빠져나오고요. 두 번째, 인간은 자기 위로, 자기연민에서 못 빠져나옵니다.
세 번째, 주님께서는 교체를 시도합니다. 교체를 어떻게 시도하느냐? 네 속에 자라나는 아이를 들추어내기 위해서 이미 속물이 된 어른스러운 너를, 이것을 제껴버리는 일을 하는 거예요. 네 속에 아이처럼 자라는 것,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 예수님의 성령에 의해서 네 속에서 잉태되어 자라나고 있는 것, 그걸 드러내기 위해서 사탄에게 시험받았던 우리의 이 권력층, 종교층, 경제층을 뜯어내는 작업으로 교체되는 작업을 합니다.
1번, 자기 실적과 성공. 2번, 자기연민과 자기 위로. 3번, 예수님이 아버지 앞에서 버림받는 것. 이 1번, 2번, 3번을 합쳐버리면 뭐가 되느냐? 피가 돼요. 피. “그냥 나 믿고 천국 와라.” 주께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와서 우리로 하여금 1번, 2번, 3번을 우리가 다 인식하도록 만듭니다.
1번은 뭐냐 하면, ‘이런 일을 해서 나는 인생 성공했다’라고 느끼게 만들어요. 그러나 그 인기, 성공한 것은 2번, 자기가 자기에게 하지 말아야 할 그 위로, 자기 위로로써 스스로를 다 갉아먹는 거예요. 왜 위로받기를 원하느냐? 자기 연민에 빠져 있으니까요. 자기가 자기에게 불쌍해서 미쳐요, 자기 연민으로.
인간은 처음으로 돌아갈 줄을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흙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것은 지옥 가는 사람이고, 주께서 그 처음이라는 것을 새롭게, ‘흙 대신 흙이라는 처음’ 말고 다른 처음 자리, ‘피의 자리를 처음으로’ 처음 자리로 만드는 새로운 아이를 우리의 더러운 속물 같은, 어른이 돼버린 우리 안에서 자라나게 해서, 그것을 두 번째의 자아, ‘차이 나는 자아, 나’로 그걸 끄집어내서 그 아이를 구원해 내시는 겁니다. 그게 ‘소자’라는 거죠. 아무것도 아닌 자. 그게 피의 능력에서 나오는 겁니다.
‘장철웅’이라는 사람이 불렀던 노래가 있어요.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
이게 뭐냐 하면, 지금 내가 잘못되어 있다는 거예요. <서울의 달>(1994)이라는 유명한 드라마의 OST, 주제곡인데 ‘서울 이곳은’이라는 노래예요.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
2절 가사에 보면 “처음으로 난 돌아가야겠어.” 근데 처음이 어딘지 모르는데요? 처음으로 자기 마음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처음으로 돌아가면 그냥 흙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내게 필요한 것은 휴식뿐이야.” 그동안 사귀던 여자가 있었던 모양이죠? “약한 모습 보여서 미안해.”
‘미안해’라는 말, 선⸱악에서는 떠날 때 떠나더라도 착하게 해 주면 나에 대한 연민의 기반이 되는, ‘내가 그다지 막 살지는 않았다’라는 ‘자기의’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어디로 돌아가지요? 인간은 돌아갈 때 흙밖에 없는데요. 이게 이미 정해놓은 건데요.
주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돌아가려면 내 피로 돌아오라고 해서, 주께서 제자들에게 나눠준 게 있습니다. “이것은 내 살이고 내 피다.”(51절) 요한복음 6장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54절)라고 해서 네 쪽에서 예수 내 쪽으로 뭘 해야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제자들이 다 떠나버린 때는요, 제자들이 예수님께 뭘 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는 게 있어요. “이것이 내 살이고 이것이 내 피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
“이게 너의 처음 자리고 이것이 마지막 자리다. 이게, 이게 바로 생명이다. 예수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소유물은 없다. 너에게 돈이 있어야 하거든 그 돈을 내가 주는데, 있는 바를 족하게 여겨라. 하지만 너를 지켜주는 것은 돈이 아니고 내가 너를 지켜줄게.’ 이게 오늘 본문 말씀이에요.
생명, 영생보다 더 소중한 건 없습니다. 그 소중한 것 앞에서 나는 나를 위로했고, 나는 나에게 연민이 있으며, 나는 자칭 성공한 자로 자처하고 싶은 이 모든 것이 바로 죄고, 그 죄를 위해 죄 없으신 분이 대신 죽으심으로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는 하나님의 계획에 여러분, 흡수 통합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게 하옵소서. 세상 따라가다가, 그것이 유혹인 줄도 모르고 따라가다가 같이 넓은 길로 지옥 가는 법이 없도록 주께서 조치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