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계약서

아빠와 함께 2025. 11. 9. 21:49

계약서 

2025년 11월 9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51:15-19

51:15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51:16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51:17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의 만든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만든 우상은 거짓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51:18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시는 때에 멸망할 것이나
51:19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이스라엘은 바벨론이라는 거대 제국이 일거에 무너질 줄을 정말 알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흠모한 제국이기 때문입니다. 이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희망 삼을 나라가 있다는 것은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즐거움이 됩니다. 자신의 이상(理想)적인 나라의 존재로 인해 다른 사람마저 삶의 보람을 갖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 우상 같은 바벨론이 형편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 현상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렘 51:15)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점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대단하시고 권능이 있다면 왜 자기 백성, 자신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느냐고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선지자를 통해서 알려주신 바에 의하면 ‘야곱의 분깃’에 대한 언급입니다. ‘분깃’이라는 말은 ‘상속, 혹은 상속분’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왔을 때, 이 ‘상속’을 거론하셨습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상대하는 것은 만만한 인간들뿐입니다. 하나님하고 상대하기가 버거운 법입니다. VIP이란 ‘접근하기 힘든 존재’를 말합니다.

처음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었을 때에 그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들이 잘 납득이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본인들이 충분히 이해 잘 하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기대와 요구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비로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이라는 것도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분깃’, ‘상급’, ‘상속’ 개념으로 오셨습니다. 즉 “너희들 만큼은 이 하나님의 것으로 제공받을 것이다”는 점을 마땅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갈수록 ‘하나님의 것’보다 ‘세상의 것’으로 ‘자기 것’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게 어느새 편하게 느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계약서대로 찾아오십니다. 한결같습니다. 변동도 없으십니다. 계약서들고 찾아오신다는 말은 두 가지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첫째는 인간쪽에서 아무리 하나님을 만나려고 나서도 하나님께서는 거부하신다는 겁니다. 둘째는, 일단 계약서를 앞장 세우고 다가오면 두 번 다시 하나님쪽에서 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이런 관계가 바로 ‘분깃’, 혹은 ‘상속’ 혹은 ‘상급’입니다. 부모에게 있어 자식이 제일 중요하고 그 자식에서 자신의 제일 중요한 것을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자식으로 대하시면 상속분을 주시겠다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계약서의 내용을 차지하는 취지입니다.

평소에 인간들은 하나님의 계약은 멀리하고 쉬운 상대인 인간들을 생각하기에 자신들이 하나님의 계약서에 의하면 명백한 죄가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즉 그들은 거대한 바벨론 제국이 번영이 죄 덩어리인 줄을 몰랐습니다. 바벨론의 죄가 곧 이스라엘의 죄입니다. “그 무리가 다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며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곧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모 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여”(합 6:2)

즉 ‘자기 것’을 끌어모으는 것이 죄였던 겁니다. 하나님의 계약성에 의하면 자기에게 속한 민족에게는 ‘거저 주신다’는 것이 곧 ‘상급’이라는 이름으로 주시는 ‘거저 주심’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나 일반인들은 이 ‘거저 주심’이 인간으로서이 자존심에 손상을 입히는 처지라고 여깁니다.

외부의 것을 거저 얻기 보다는 강한 세력으로 남은 것을 뺏아 자기 것 삼는 그런 모습이 같은 인간으로 이상적인 성공적인 삶으로 여겨졌던 겁니다. 하나님께서 내미신 계약서의 취지나 내용에 대해서 이스라엘 자체가 흥미를 잃었던 겁니다. 바벨론처럼 자기 것을 자신을 많이 끌어 모아 그것으로 대외적으로 자랑해서 스스로 자아가 뿌듯해진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겁니다. 바벨론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사회 체제나 구조가 자기가 끌어모은 것으로 유지할 수 있는 체제일까요? 아닙니다. 민수기 18:20에 보면,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 성도의 자기 구원의 보증은 본인이 나설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2) 이 말씀은 자기 구원이 본인 책임 하의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당연히 이러한 사실 또한 이미 하나님께서 내민 계약서 속에 있습니다.

구약 신명기 14:27-29에 보면,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3년 만에 각출하게 되는 십일조 혜택에 기업이나 상속을 땅으로 받지 못하는 레위인은 물론이고 여기에 나그네와 고아나 과부들도 여기에 속하게 됩니다. 이들의 특징은 ‘자기 것’이 없다는 겁니다. 즉 자신의 것으로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마치 배가 고파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은 시켜 먹었지만 제 때에 돈이 오지 않아서 식당에 그냥 묶여있는 자와 같급니다.

이럴 때,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밥을 대신 내어주면 그 사람은 ‘혜택 입은 자’의 모습으로 새출발이 가능합니다. 신명기 계약서에 의하면 ‘십일조’라는 율법을 통해서 가진 것이 없는 자가 약속의 땅에서 계속 살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매일의 일상에서 ‘내 것으로 내가 사는 모습’이 죄라는 것을 계약서를 통해서 알아가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것으로 살려는 우리의 마음을 십자가의 피 능력에 준해서 잘라내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179강-예레미야 51장 15~19절(계약서)251109-이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51장 15~19절입니다. 구약성경 1138페이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의 만든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만든 우상은 거짓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시는 때에 멸망할 것이나,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과 차이 나는 특징은 하나님께서 계약에 의해서 구원하시는 겁니다. 계약서가 있다는 뜻이죠. 확실하다는 거죠. 그리고 그 계약서대로 구원이 되면, 인간 입장에서는 단점도 있고 장점도 있는데, 단점은 뭐냐? 계약 대상이 아니면 애초부터 구원은 없습니다. 그게 단점이고, 장점은 계약된 사람은 계약서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의 행함과 상관없이 이미 구원이 확정되었습니다.

천국 합격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삽니다’라는 그걸 자꾸 내세우지 마시고, ‘하나님의 계약서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라는 계약서를 앞장세워야 해요. 그 계약서를 앞장세우면, 남들 보기에는 ‘그건 네 주장이고 너 혼자 우기는 것이 되잖아’라고 반박이 들어올 거예요. 보통 계약서에는 변호사가 보증을 서잖아요.

마찬가지로 인간 대 인간의 만남에서 서로 ‘내가 확실하다. 내 믿음은 분명하다. 나는 구원이 확정적이다’라고 서로 우길 수가 있어요. 그때 보증하시는 분이 또 개입합니다. 누구냐 하면 성령님이에요. 성령께서 보증하십니다. 성령께서 보증한다는 말이 여러분 듣기에 기분 좋게 다가올 수가 있어요. 고린도후서 1장 21~22절에 보면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보증으로 성령을 보냈다는 말은 네가 너를 변호하는 변호사 노릇을 그만두라는 뜻이에요. 네가 네 인생을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고 장담하지 말고, 계약서를 내놓고, 계약서는 성경을 말합니다, 성경을 펴놓고 이 성경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일을 그대로 진행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이렇게 성경대로 진행됨에 있어서, 네 노력과 의지는 빠진다.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내가 거기에 끼어들 쨉이 못 됩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대로 설명하면 “분깃(야곱의 분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야곱의 분깃”이라는 말을 해요. 야곱의 분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려주셨던 할당금, 할당된 것. 하나님의 계약서대로 주어진 은사, 선물. 분깃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데, 이것과 같은 용어입니다. 상급. 상급이라는 것도 분깃과 용어가 동일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주신 할당 몫이라고 하죠. 그것보다 더 쉽게 가면, 유산. 유산이라는 것은 아버지가 될 때, 이게 유산이 됩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줄 때, ‘유산을 남긴다’라고 하지요.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의 상급이다”라는 고백을 해요. 이게 계약의 기초입니다. 창세기 15장 1절에 보면,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라고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상급이 돼요. 그런데 시편 73편 26절에 보면, 어떻게 바뀌느냐 하면, 순서가 이렇게 바뀝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그래서 오늘 설교는 그 여정을 따라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상급이고 분깃인데, 이게 어떤 과정을 통해서 뭐로 바뀌느냐 하면, 이제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분깃이고 상급이 된다는 겁니다.

보물이 된다는 거죠. 이 세상에서 부모에게 제일 귀한 것이 자식이죠. 자식을 가지고 ‘이건 내 몸에서 난 상급이다’라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시편에도 그렇게 나와요. 그런데 신약에 와버리면, 구약에서 하나님이 낳은 자식이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이스라엘입니다. 구약에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신약에는 이상하게 성도 입장에서, 성도가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자리에서, ‘나의 보물은, 나의 상급은 우리 주님이야.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난 자랑해. 나는 딴 거 자랑 안 해. 십자가를 자랑해’라고 마치, 자기 몸에 하나님의 상급이 들어 있는 것처럼, 또 들어 있기도 하죠, 들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변화를, 저와 여러분들이 그 변화의 노선에 같이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 과정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 가를 이제 오늘 본문에서 보시면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여기 바벨론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세우셨다”라고 창세기 이야기를 언급합니다. 그 이유가 뭐냐. 지금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선지자죠. 그 이스라엘에게 알려줍니다.

뭘 알려주느냐 하면은 바벨론이 이제 망한다는 이야기거든요. “너희들은 바벨론이 망할 거라고는 미처 예상 못 했다. 그렇게 강한 나라, 바벨론이 망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그러니까 이거는 뭐냐 하면, 이스라엘이 포로 잡힌 이유가 하나님보다 바벨론의 권세를 더 세게, 더 대단하게 봤다는 그 잘못을 주께서는 지적해 주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 권력을 이렇게 믿는 이유가 뭐냐.

오늘날도 마찬가지잖아요. 오늘날도 사람들이 세상 권력에, 뉴스에 더 관심을 두는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인간들이 접근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접근이 가능해요. ‘VIP’라는 게 있어요. ‘Very Important Person’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 VIP의 뜻이 뭐냐. 접근하기 힘든 존재를 이야기해요. 접근하기 힘든 존재 존재라면 우리가 무시하면 되는데,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가 돼요.

얼마나 귀했으면, 얼마나 대단했으면, 얼마나 소중했으면, 즉, 하나님이 VIP가 되겠는가. 그만큼 우리는 VIP와 만날 수 있는 입장과 그러한 수준이 못 된다는 것을 먼저 우리에게 지적해 주는 거예요. 말씀으로. 지적 못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뭐를 상대했느냐. 힘센 바벨론과 상대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자기가 버티려고 애를 쓴 겁니다.

여기서 상급 날아갔죠. 분기 다 날아가 버렸죠. 특히 날아간 것이 뭐냐? 계약서가 무용지물이 된 거예요. 하나님의 계약서가. 처음에 하나님에게 계약 받을 때는 이렇게 아주 쉽게 생각했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계약서를 가지고,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리를 어떤 경우라도 지켜준다’라고. 그건 굉장히 틀린 말이 아니죠. 굉장히 쉬운 말이죠.

굉장히 쉬운 말이라서 당연히 그렇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접근하기 쉬운데 대단해 보이는 바벨론 나라가 옆에 있고, 앗수르 나라가 옆에 있고, 잘 먹고 잘사는 이방 민족이 잘살았을 때, 갑자기 계약서 날아가 버리고, 상급과 분깃이 다 날아가 버렸어요. ‘나 저 사람처럼 될래. 나는 엄청난 VIP한테는 접근 안 할래’라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식으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걸 성경에서는 범죄라고 하는데, 범죄 한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해서, 내가 나에게 나의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거.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무심코 하는 그 모든 것을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범죄였습니다. 그러면 선지자의 역할은 뭐냐. VIP를 만나는 거예요. 엄두가 안 날 정도로 접근하기 힘든 존재를 “너 한번 만나 볼래?”라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왜요?’라고 그러면 “그분이 너의 상급으로, 그분이 너의 분깃으로, 그분이 네가 참석하지 않는 계약서를 들고 너한테 찾아오는데, 한번 만나 볼래?”라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처음에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 민족과 같이 있지 않을 때는, ‘그럼, 만나는 것이 당연하지’라고 되는데, 지금 포로 잡힌 상태에서, 이건 당연한 게 아니고 만나면 안 되는 분처럼 그렇게 느껴지는 거예요.

아무리 상급이고 분깃이고, “내 아들아, 내 아들아”라고 찾아와도, ‘아닙니다, 아닙니다’라고 밀어내는 거예요. ‘저 같은 거는 만나면 안 돼요. 수준이 안 맞아서, 주님은 주님대로 사시고요. 저는 세상 사는 게, 이게 몸에 익숙해서 이게 좋아요’라고 자꾸 세상 쪽으로 기어들어 가는 겁니다. 숨어 들어가는 거예요. 주께서 포기하실까요? 그래서 주께서 떠나버릴까요?

못 떠납니다. 주께서 못 떠납니다. 왜냐 하면 계약서 때문에 그래요. 그러면 계약서를 적용하는 방식은 지키려는 자를 부수는 방법으로 계약서가 거기에 들어갑니다. 부수는 방법이 바로 이스라엘을 파괴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이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자신의 죄가 뭔지를 알아야 만날 수 있습니다. 간단한 문제입니다. 자기 죄만 알고 있으면 돼요.

그러면 오늘 설교에서 핵심 부분, ‘그러면 목사님 제 죄가 뭡니까?’ 그거는 성경에 하박국 2장 6절에 보면 그 죄에 대해서 이렇게 나옵니다. 우리 인간들의 죄의 결집, 죄의 결과, 죄보다 더 센 것을 하박국 2장 6에서는 바벨론으로 그렇게 규정하고, 그 바벨론에게 이렇게 죄를 묻습니다.

이 바벨론 나라에 죄를 묻는 것은 오늘날 우리도 그 바벨론 나라가 잘되고, 잘 먹고 잘사는 것을 흠모하는 우리, 우리 자신의 죄를 바벨론을 통해서,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지금 완전히 멸망한다고 이야기했거든요. 그 멸망 당하는 바벨론을 통해서 우리 죄를 알려줍니다. 그게 이렇게 돼 있어요. “화 있을찐저” 벌써 저주가 나오죠?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자기 소유에 목적을 두고 그 소유를 끌어모으는 거, 그게 바로 하나님의 계약서에 접근하기 힘들게 만드는 거예요. 주께서는 계약서대로 하면 그냥 그냥 줘요. 내 상급이고, 내 상속자요, 내 분깃이기 때문에 주께서는 다 준비했는데, 우리는 우리가 접근하기 쉬운 세상 사람과 모방하고 흉내를 내다보니까, 내 것이 있어야 하나님도 만난다는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4.2.~1875.8.4., 덴마크 동화작가)의 ‘빨간 구두’라는 동화에 보면, 이 아가씨는 춤을 잘 추는데, 춤 하나는 멋지게 추고 싶어서, 남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업(up)! 업! 업!~’이라고 노래 부르면서 춤을 추고 돌아다니는데, 그것도 빨간 구두를 신고 춤추고 싶어요. 그래서 빨간 구두에게 내가 춤을 너무 잘 출 수 있게 해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 빨간 구두를 신었어요.

이게 마법이 걸렸습니다. 동화에는 마법이 잘 걸려요. 춤을 너무 잘 추는 거예요. 빨간 구두가 시키는 대로 춤을 추면,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박수를 치는 겁니다. 문제는 빨간 구두가 안 벗겨진다는 겁니다. 안 벗겨져요. 우리 인생을 딱 닮았어요. VIP에 접근하는 거, 너무나 지존하신 하나님 만나는 생각은 너무나 격이 다르기 때문에 안 만들려 하고, 그저 만만한 사람들을 만나서, ‘나 이렇게 잘 살고 이렇게 멋있게 산다’라는 걸 자랑하다 보니까 이게 악마의 마법에 걸렸어요.

그런 식의 생활 방식을 내 몸에서 벗겨낼 수가 없습니다. 그저 뭐 새로운 거 바꾸고 바꾼 데다가 또 바꾸고, 계속해서 자기의 멈출 수 없는 욕망에 춤을 추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동화의 결론은 간단합니다. 발을 잘라버리는 거예요. 빨간 구두와 헤어지는 방법은 내 발을 잘라버리는 겁니다. 내 눈이 범죄 하면 빼버리는 겁니다. 마가복음 9장의 말씀처럼.

이스라엘은 또 우리 인간은 자기의 죄를 알 수 없었던 거예요.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뭐냐? 진짜 그런 식으로 상황을 몰아가시면서 기어이 찾아오실 때, 주님께서는 상황 자체를 동반해서 우리를 환경 속에서 만나게 해주는 거예요. 만나게 해줄 때 하나님은 계약서대로 환경이 찾아왔고, 우리는 내가 생각해 놓은 어떠한 예상도 못 한 사태가 일어났고, 그 사태에 대한 발상의 원인은 알 수 없고, 주님은 아시고, 우리는 무서워하고 도망치고 겁내고 염려하고 걱정하고 그런 겁니다.

제가 경험했는지 안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렸는데요. 식당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밥은 다 먹었는데, 그냥 테이블에 앉아 있는 거예요. 그 주인이 ‘식사 끝난 지 벌써 10분 됐는데 왜 안 가십니까? 가격 빨리 치르고 가셔야지요. 우리도 이제 늦은 밤이니까 가게 문 닫고 나가야 합니다. 식사비 주세요’라고 하니까, 그 60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계속 휴대폰으로 전화만 누르고 있는 거예요.

보니까 누가, 자기 친척인지 누군지 아는 사람이, 그걸 어떤 사람은 ‘지인(知人)’이라고 하는데 나는 지인이라는 단어 굉장히 듣기 싫어요. 근래 만들어진 거라 지인이라는 단어가 딱 듣기 싫은데, 하여튼 어떤 아는 사람이, 당신 휴대폰으로 돈 보내줄 테니까, 돈 없어도 일단 식사하게 되면, 나중에 보내준 쿠폰인가로 찍으면 계산이 된다고 한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전화를 안 받고 돈도 안 보내줘요. 교회 와서 천국 가겠다고 뭘 갖출 건 다 갖췄는데, 저쪽에서 상급이 안 오고, 분깃이 안 오고, 계약서가 오질 않네요. 그래서 그걸 봤던 다른 테이블에 있는 아저씨가 ‘그거 얼마입니까?’라고 대신 돈 계산을 치르고 그 아주머니는 무사히 고속버스 타고 자기 집에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계약서도 같이 따라와 줘야 해요. 이게 뭐냐? 성령의 보증입니다. 성령의 보증을 다시 말씀드릴까요? 성령의 보증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는 그것과는, 내가 준비한 그 미래 환경의 삶에 상황과는 완전히 달라요. 일방적으로 계약서에 있는 대로 주께서는 환경이 오기 때문에, 우리는 난처하고, 당황스럽고, 어쩔 줄을 모르고, 그냥 무작정 휴대폰만 바라보면서 값을 치를 때만 오기를 기다리는데, 그런 방식은 안 됩니다.

누가 나 대신 희생을 치러 줘야 해요. 고속버스 터미널 식당에서, 옆에 있던 점잖은 아저씨가 돈을 대신 치른 것처럼, 누가 값을 치러야 해요. 그 값이 VIP에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그 VIP가 유일하게 접근하는 방식이 그 방식입니다. 그 방식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다 경험했습니다. 너는 안 된다는 겁니다. 네가 네 쪽에서 인간이 나올 수 있는 방식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너는 평생 너의 것을 충족하는데, 우리는 평생을 소비했습니다. 내 것 가지면 된다. 근데 내 것 가지면 VIP에게 접근 불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평생 해온 것은 바로 남한테 춤 잘 추는 거, 멋있게 보이는 거, 맨날 그런 것만 계산하고 그것만 따지면서, 내가 얼마나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는가를 늘 파악하는 거, 그거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지요.

그러면 계약서를 보는 걸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민수기 18장 20절에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레위인은 땅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소유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예 애초부터 소유가 없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그게 바로 신명기 14장에 나옵니다.

신명기 14장 27~29절에 “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찌니라,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게 계약서입니다. 이 계약서 안에, 그 상황 속에 우리가 끼어들려면, 우리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그러한 신세인 것을 계약서대로 보증받을 필요가 있어요. ‘너는 가진 거 많잖아. 너는 독자적으로 너의 힘으로 살래?’라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해요? ‘아니야! 아니야! 이거 내가 가진 거는 VIP가 안 받아. VIP가 받는 것은 나 대신 하나님의 지시로 말미암아 십일조로 얻어먹은 거야’

이들은 3년 만에 오는 십일조로 얻어먹는 거예요. 이거는 십일조라는 율법에 준해서 내 것도 아닌데, 외부에서 대신 내 생계를 책임지는 그러한 비용이 주어졌다는 거, 그것만 이 계약서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벨론에 포로 잡혀서 완전히 거지로 만들고, 그래 놓고 하는 말이 “너희들은 야곱의 분깃이다”라고 이렇게 규정하시는 이유가, “네가 재산이 있든 없든 그건 네 것이 아니야. 중요한 것은 나는 네 것을 안 받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값으로 치른 그 값만, 나는 너희에게 받는다”라는 이게 영원한 계약서, 이게 바로 핍니다. 내 살과 내 피가 없으면 영생을, 천국에 못 간다는 거. 이것이 바로 고아와 과부의 사정, 그것을 하나님이 일부로 발생시켜서, 자기가 믿고 싶어도 아무것도 믿을 거 없고, 의지하고 싶어도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직감하죠.

물론 그 고속버스 터미널에 아주머니처럼 벌벌 떨고 그러면 안 돼요. 그 사람은 계약서가 없어요. 우리는 계약서부터 이미 줘서 하나님의 상급이 된 이상은, 이제는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은 결코 나를 영생으로, 또는 나를 영원히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남은 생애를 돈이나 벌면서 열심히 사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경 말씀을 알게 하옵소서 그 안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활동하는 것도 알게 하옵소서. 그 활동이 우리가 무심코 하는 모든 활동을 낱낱이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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