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

주님의 얼굴

아빠와 함께 2025. 10. 22. 08:18

506강-YouTube강의(주님의 얼굴 시편 90:8)20251021-이 근호 목사


제506강, ‘주님의 얼굴’.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보죠, 표정을 읽고. 좋은 사람이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이고, ‘좋은 관계가 아니다’ 또는 상대방의 표정이 어둡다 하면 ‘그 사람은 상종하지 못할 사람이다’라는 것을 뭘 보고 아느냐 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대략 결정합니다.

상대방의 얼굴을 본다고 해서 내게 손해가 되고 이익이 되고 그런 게 있을 수 없죠. 내 눈이 상대방의 얼굴을 본다, 내가 상대방을 보면 내 눈이 갑자기 시력을 잃어야 되고 그런 게 됩니까? 그렇지 않죠. 봤다가 내 마음에 안 들면 제키면 되고 마음에 들면 계속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귀면 되고. 내 쪽에 어떤 이익이나 손해는 없어요. 그리고 상대방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현재 내 얼굴이 나한테 있고 이 얼굴이 있는 한 나도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 아니다’ 뭐 그런 생각이 들겠죠.

그런데 만약에 어떤 분의 얼굴을 봤는데, ‘내가 그 사람 얼굴을 보고 내 마음에 들면 사귀고 들지 않으면 사귀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그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내 낯짝, 나를 엉망으로 파괴한다면? 그런 얼굴이 있다면? 우리는 예상 못합니다.

본다는 것은 일방적으로 ‘너 가만히 있어. 나 혼자 보겠어.’가 ‘본다’가 아니에요. 내가 남을 본다는 것은 남에게 나의 얼굴을 보여주는 겁니다. 보여주게 되면 저쪽에서 내 얼굴 및 나의 전체에 대해서 어떻게 박살낼지, 나에게 상처를 줄지 그것은 우리가 미리 예상을 못 해요. 나의 얼굴에 손상을 가하고 내 얼굴을 박살내는 그 얼굴. 그 얼굴이 주의 얼굴입니다. 이게 주님의 얼굴이에요.

우리가 평소에 사람하고 상대하고 사람하고 만나잖아요. 그러니까 상대방 만난다고 해서 내 얼굴이 다칠 이유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뭐 소주병 깨고 달려들지 않는 한, 그 사람 만나고 난 뒤에도 내 얼굴은 멀쩡하죠.

시편 90편 8절을 보면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주의 얼굴의 기능, 할 일은 우리 얼굴을 멀쩡하게 붙들고 있게 하는 게 아니고 반대로 우리 속에서 죄라는 죄는 몽땅 끄집어내는 그러한 힘이 나오는 얼굴.

그 얼굴을 저나 여러분들이 자진해서 만나고 싶어 하겠습니까? ‘나 그 사람 만나면 내 죄가 막 나와. 그 사람은 나를 가만두지 않아. 잘난 나를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려.’ 그렇게 하게 되면 겁나서 못 만나겠죠. 만나더라도 멀찍이 만나겠죠. 그게 바로 우리 자신이 타인을 만날 때 선제적으로 우리가 타인을 평가하는 관찰자로 행세하기 때문입니다. 관찰자 또는 관람자.

말까지 끄집어내지 않는다면 구경꾼이 되겠죠. 카페에서 두 사람이 만났는데 한쪽에서 이야기한다. 그러면 자기는 말 안하고 상대방 보고 하는 말이 “이야기 해보세요. 이야기 해보시라고요.” 이러면 나는 뭐가 됩니까? 턱 괴고. 구경꾼 되는 거예요. ‘자,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내가 속으로 한번 평가를 해보죠.’하고 구경꾼 되는 거죠.

이게 인간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평소에 해오던 요령입니다. 나는 안 다치고 상대를 함부로 평가할 수 있는 구경꾼 또는 관람자 또는 측정자, 이게 평소에 우리의 버릇이 되고 말았어요.

자, 지금 인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자기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얼굴은 상처 난 얼굴이었어요. 일그러진 얼굴이었고 십자가에 매달려서 고통을 보여준 얼굴이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 상처 난 얼굴에 호응하지 못하고 그 의미도 모르고 관람객 또는 관찰자로 남았어요. ‘아, 예수님 참 안 됐다.’

어떤 아주머니들은요, 예수님이 고통스럽게 십자가 지고 가니까 너무 애틋해서 막 울었어요.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멀쩡한 너희 딸들을 위해 울어라. 지금 내가 굉장히 고통스러워 보이니까 이 십자가 문제가 내 문제로 보이냐? 나중에 너희들에게 닥칠 일을 내가 일그러진 얼굴로 너희에게 먼저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날 보고 울 생각하지 말고 너희 딸의 미래, 너희 딸의 장래가 십자가 지는 나의 일그러진 얼굴과 관련성이 있다.”는 겁니다.

더 어렵게 말해서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달린 고통을 보고 모든 사람, 관람객들이나 관측자들이 하는 말이 “저 사람은 죄를 지어서 저렇게 고통스럽다.” 하잖아요. 그런데 주님의 그 일그러진, 망가진 얼굴은 자신의 죄 때문에 망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 죄 때문에 망가진 거예요, 우리 죄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평소에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 볼 때 뽀시시한 얼굴을 보고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안심을 하고 ‘휴우, 다행스럽다. 오늘도 내가 안 망가져서 참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시편 90편 9-10절 보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 하였나이다” 그냥 확 지나가는 거예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여기에 ‘70년 살았다, 80년 살았다’가 이 자체로 보면 굉장히 긴 기간이고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절,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 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주님의 진노하심이 나한테 원인이 있습니다.’라고 진노하심과 주님 얼굴 앞에 서 있는 내 죄와 관련시키는 자가 누구냐?” 이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느냐?”라고 우리에게 반문하고 있어요.

우리는 평소에 자기 이미지 관리에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나 괜찮은데. 나 정상인데. 나 멀쩡해. 나 이 멀쩡한 거 유지할 거야. 나는 잘났기 때문에 누구를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 그 사람 눈에는 타인의 얼굴, 사람의 얼굴만 보이지, 주님의 일그러진 얼굴은 벌써 잊어버렸어요. 그걸 생각 못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이런 생활을 평소 우리 일상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놓고 ‘70 살았다. 나는 80까지 살 거야.’ 그게 다 주님의 얼굴 앞에 분노의 기간, 진노 받을 만한 이유를 축적하는 그러한 인생의 기간이라는 거예요.

주의 얼굴, 하늘나라의 멋있는 천사 얼굴 찾지 마세요. 말씀이 육신이 된, 십자가에 일그러진 얼굴. 그것이 바로 우리와 관련되어서 나타난, 우리 앞에 나타난 진짜 주님의 진짜 모습입니다.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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