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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

아빠와 함께 2025. 11. 19. 09:45

508강-YouTube강의(나의 책 욥기 19:23)20251118-이 근호 목사


제508강, ‘나의 책’. 사람들이 자기 일기장을 어릴 때 쓰잖아요. 그런데 어릴 때 썼던 그 일기장 내용을 나중에 커서 다시 보게 되면 고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인간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살아간다.’라는 말이 우선적으로 타당한 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손님 올 때 갑자기 예의바른 척 한다든지 옷매무새를 다듬는다든지 청소를 한다든지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손님 가고 난 뒤에 그만 퍼지죠. 이것은 ‘뭔가 보여주기 위한 삶이다’ 할 수 있는데 더 정확히 말해서 이렇게 해야 맞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나를 위해서 과거의 나도 있고 남도 있다’, 지금 살아있는 나를 위하여.

과거의 나하고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내가 되기 싫은 거예요. 중요한 것은 과거의 나라는 것조차도 지금의 내가 나답게 되는 데에 뭔가 보탬이 되어야 돼요. 도움이 되어야 된다고요. 그런데 과거 어릴 때 썼던 일기장을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어요. 그래서 가끔은 보지만 자주 보기는 싫어요. 자기의 허점이 막 보이는 거예요.

허점이 보인다는 말은, 지금은 자기가 완결된 존재라고 자부하고 싶어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끼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내가 완결된, ‘뭐 그만하면 됐어’ 할 정도로 완결된 사람이고 싶어 하는 겁니다. 이걸 달리 이야기하면, 지금껏 내가 살아온 모든 인생은 오늘 느꼈던 ‘지금의 나’라는 이 내용을 위해서 그동안 줄기차게 발전해왔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일기장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허점이 보인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 말은 잘못된 말이에요. 왜냐하면 7살 때 일기를 썼잖아요. 7살 때 일기장을 쓴 그 날에 자기는 완결해요. 완벽하고. 자기는 더할 나위 없이, 부족함이 없이, 일곱 살 애지만 스스로 보기에 잘했어요. 왜? 여섯 살보다는 발전했기 때문에. 다섯 살보다는 발전했기 때문에.

그래서 인간은 항상 순간순간 완전하기 때문에 이 완전함, 완전함, 완전함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고대합니다. 그런데 갈수록 인간들이 자꾸 본인의 모습에 대해서 실망하기 시작해요, 그 다음부터는. 속된 말로 내가 삭아진다는 뜻이죠. 점점 내가 생각했던 내가 아니고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럴 때 이미 그 사람은 자신의 일기장을 그만둔 시기입니다. 여섯 살 때 일기를 쓰든 일곱 살 때 일기를 쓰든 일기를 쓴다는 것은 그때 자기 완전함에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책을 쓰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일기장을 나이 많을 때까지 쓰는 사람이 없어요. 본인한테 너무 실망스럽기 때문에. 자기의 뜻대로 모든 게 안 될 때 자기 보라고 쓴 책에다 그 분노를 터트리면 결국은 자기가 자기한테 화내는 게 되기 때문에 이건 본인이 상처받잖아요. 내가 상처받을 그 책을 내가 쓸 리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여러분, 자신한테 연애편지 쓰는 사람 봤어요? 없죠? 자기한테 연애편지 안 써요.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어떤 죄책감이 있는데 내가 제대로 내 관리하지 못했다는 그 죄책감이 항상 인간한테 있어요.

어릴 땐 그게 없어요. 일곱 살 때 일기 쓸 때는 ‘오늘은 맑다. 엄마가 해주셨다. 신난다. 오늘도 엄마가 주신 간식 먹고 편안히 잤다.’ 끝. 그 나름대로의 자기는 완벽하고 행복하기 짝이 없어요. 어린 애에게서의 죄책감은 잘 없습니다.

죄책감은 언제 생기느냐 하면 본인 인생을 본인이 관리해야 된다고 생각할 때부터 죄책감이 생기고 그때부터 정신적으로 구조적으로 뭔가 흐트러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흐트러지기 시작하면서 그게 흔적으로 안 남기를 바라요. 일체 책을 안 씁니다. 기껏 쓰는 것은 전세계약서나 쓰지, 그 외에 쓰는 것은 없어요. 부동산 중개학원 가서 노트 필기하지, 그런 실무적인 거 하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욥기에 보면 욥이 책을 쓰기를 원했던 대목이 나와요. 책을 쓰기 원했던 대목이 어떤 대목이냐 하면 자신이 형성한 모든 관계가 다 끊어질 때, 나라고 여겼던, ‘이것은 내 영역이다. 내 나와바리다.’ 여겼던 것들이 허물어질 때 억울하고 억울하고 너무나 억울해서 하나님께 호소하려고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 책을 쓰는 거예요.

욥기 19장 23절에 보면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연(鉛)으로 영영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하나님께 다 고자질할 거야’ 이런 뜻입니다. ‘이 억울한 것을, 내가 죽고 난 뒤에는 하나님 만나서 다 하소연할 거야. 내가 당했던 사연을 다 이야기할 거야.’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러면 이 욥이 그전에 어떤 수모를 당했기에 이걸 책으로 남기고자 하느냐? 책으로 남긴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말하기도 감당 못하고 말할 수 없는 고통, 그 고통의 깊이를 내가 글로 써놓으면 하나님께서 그 글을 통해서 내 아픔까지 마저 헤아려주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책을 쓰는 겁니다.

욥기 19장 13절에 보면 “나의 형제들로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외인이 되었구나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 내 집에 우거한 자와 내 계집종들은 나를 외인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청하여야 하겠구나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嫌疑)하는구나” 혐의한다는 뜻은 혐오한다는 뜻이죠.

책은 언제 쓰느냐? 바로 본인 내 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벌어지는 상황, 내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벌어지는 상황이 너무나 나에게 고통과 억울함과, 특히 억울함이죠, 억울하다는 것은 낯선 고통을 억울하다 해요, 나에게 원인이 알려지지 않는, 내가 이유도 모르는 고통이 밀물처럼 밀려올 때 ‘나 이거 고자질할거야. 나 이거 탄원할거야. 나는 하늘에 고소할거야. 책으로 쓸 거야.’하고 욥은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이 바로 십자가에서 구성된 성경책입니다. 욥기 19장이에요. 하나님은 욥이 당했던 억울한 것을 하나님이 쓰신 책 안에다 그 내용을 삽입시켰습니다. 그러면 그 삽입된 욥의 고통 외에 삽입된 모든 다른 성도들의 고통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이 근원이 되어서 그 고통을 할당받고 분배받기 때문에 이유 없는 억울함을 당하는 그러한 욥의 일대기가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의 일대기는 어디서 흘러 들어와야 됩니까? 성도의 일대기는 주님의 억울함이 계속해서 점철되어 밀리고 밀려서 오늘날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습니다. 나쁜 짓해서 감옥가는 그런 억울함 말고, 남을 사랑해서 지옥가지 마라고 한 번 이야기했는데 된통으로 10배, 30배, 100배로 보복을 당하고 관계가 끊어지고 ‘난 너하고 안 놀아. 너하고 말 안 섞어.’ 이런 식으로 당했을 때, 전도한 효과가 하나도 없고 오히려 기대했던 사랑했던 사람한테도 욕 얻어먹는 이런 현상이 벌어질 때, 주께서 십자가에서 당했던 고통에 같이 참여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구원 받은 강도. 강도의 일대기. 누가복음 23장에 보면 강도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42절,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우리들의 이야기도 성경에 들어있습니다. 들어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이 성경을 보게 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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