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4강-YouTube강의(탈옥 누가복음 3:20)20250916-이 근호 목사
제504강, ‘탈옥’. 탈옥이라는 것은 우선 옥, 감옥이 먼저 있어야 되겠죠. 감옥이 있고 그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을 ‘탈옥’이라 합니다. 그런데 감옥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취지가 뭐냐? 탈옥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어떤 경우라도 이 감옥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온갖 장치, 모든 장치를 다 쏟아 부은 곳이 바로 감옥이에요.
감옥 자체에 들어갔다 하면 ‘두 번 다시 감옥을 벗어나는 일은 없다’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탈옥을 했다는 말은 ‘감옥을 만든 자의 취지를 완전히 무산시켰다’ 그렇게 보시면 돼요. 감옥을 만든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어떤 인간이 감옥에서 탈옥했다면 ‘그 인간은 기존의 인간들이 생각하지 못한 다른 힘에 의해서 다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보시면 되는 겁니다.
사도행전 5장 23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감옥이 있고 감옥에 사람을 집어넣었는데 그동안 이 감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집어넣었겠습니까.
저도 예루살렘에 가본 적 있는데 지하 감옥이에요. 어떤 사람도 이 지하 감옥에서 탈옥된 사람은 없죠. 감옥에서 나오는 경우는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를 감옥에 집어넣은 사람에게 잘 보인다든지 앞으로는 충성을 다하겠다든지 ‘감옥에 집어넣은 그 사람과 죄수로 취급받은 내가 실은 같은 생각이었다. 오해가 있었다.’ 이럴 때는 집어넣은 사람에 의해서 그 사람은 거기서 풀려나오겠죠.
그런데 사도행전 5장 22절, 23절에 보게 되면 여기에 사도가 들어가요. 사도가 감옥에 들어간다고요. 그러니 사람들이 뭐라고 오해하느냐 하면 ‘우리들이 예수 복음 전하는 자를 감옥에 집어넣었다.’ 이렇게 생각할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도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죠. ‘주님께서 세상권세를 다스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님의 종 우리에게 잠시 감옥의 맛을 보게 했다. 그것도 ‘잠시’ 맛을 보게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은 집어넣었는데 주님은 끄집어냈으니까. 이렇게 되면 주님 보시기에 인간 감옥의 무용론(無用論)이 등장하는 거예요. 인간의 감옥은 쓸데없는 짓에 해당된다. 누구한테나 그러느냐 하면 ‘주님의 종들한테는 인간 감옥이 아무 의미 없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 본문 사도행전 5장 22절, 23절에서 이 본문이 있고 사도들이 감옥에 갇히는 그런 체험을 굳이 해야 될 이유가… 바로 창세기 39장 20-22절에 보면 거기 요셉이 나오거든요. 요셉이 감옥에 갈 때, 감옥을 설립한 애굽 사람이나 요셉 본인 입장이나 감옥에 갇힐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 감옥에 갇히는 거예요. 자기가 보디발의 아내를 겁탈하지도 않았는데 겁탈했다고 다른 사람의 죄를 뒤집어쓰고 그 죄값으로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단 말이죠. 그럼 남들 보기에 어떻습니까? ‘아, 요셉 참 억울하겠다.’ 요셉 본인도 억울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창세기 39장 20-23절까지 보면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여기서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라 해서 장차 이 감옥에서 왕의 신하들을 만나게 돼요. 그러한 계기가 된다고요.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감옥 관리자한테 오히려 좋은 대우를 받게 하고 “전옥(감옥 관리자)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이렇게 되어 있단 말이죠.
바깥사람들이 보면 요셉은 감옥에 갇힐 만한 죄인이 되는데, 바깥세계에 통하는 원리원칙과는 별개로 감옥 내에 새로운 원리원칙이 작용하도록 주께서 일부러 요셉을 그 감옥에 집어넣은 거예요. 요셉을 감옥에 집어넣었다는 말은 ‘요셉을 꿈꾸게 한 그 꿈이 요셉과 동행해서 감옥에 새로운 원리와 원칙을 거기다 발생시켰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감옥 한번 가고 싶어요? 주와 함께라면 감옥에 가고 싶습니까? 마치 예수님이 이 땅에 굳이 오시면서 이 땅에 발생되는 모든 일은 예수님의 손에 맡긴 것을 미리 요셉의 꿈을 통해서 보여준 것 같아요. 보여줬습니다. 일단 억울하잖아요. 예수님도 억울하고 요셉도 억울하잖아요.
그러면 이 세상에 대해서 성도는 어떻게 봐야 됩니까? 이 세상 자체가 감옥이니까 이 세상을 살게 함으로 말미암아 성도로 하여금 성도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참 죄도 없이 억울한 채 네가 한 80, 90 평생을 살아가는구나. 욕본다.” 그런 평가가 성도한테 주어진다는 사실을 성도가 알게 하는 겁니다. 알게 하는 거예요.
“참 고생이 많다. 죄 씻음 받아서 죄도 없는 상태에서 온갖 설움, 구박을 다 받으니 네가 참 고생이 많지만 우리 예수님도 이 세상에 와서 억울하게 이런 감옥생활을 했잖아. 너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서 힘들게 이 땅에서 80평생 100세까지 살게 하는 취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더하사 그것도 하나님의 사랑인 줄 이제 이해하겠지?” 그런 측면에서 성도가 받아들이면 되잖아요. 그런 생각이 안 든다고요?
마태복음 25장 39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형제를 모집해요. 자기 형제를 모집하는데 예수님은 심판주로 이제 구원이 됐고 예수님 덕분으로 천국에 영원히 살 사람을 모집하는데 모집 조건이 나와요. 거기 보면 옥이 나와요. 39절에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여기 ‘예수님이 갇혔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의 견해고, 보통 인간들의 견해는 ‘예수님은 갇힌 적이 없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고 죽으셨다. 부활했다.’ 그걸로 끝나잖아요. 그런데 이 소자, 지극히 작은 자한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주님께서는 여기 대치성, 대신하는 것, 바꿔치기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대신해서 갇힌 작은 자를 여럿 이 땅에 두시고 두신 그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일체감을 주시는 방법으로 자기 형제, 자기 백성들을 천국으로 모집한 겁니다.
이걸 흔히 하는 말로 ‘거리 캐스팅’이라 해요. 가다가 캐스팅되어버렸어요. 가다가. “어이, 이리 와. 너 내 사람이야.” ‘내 사람’될 때 성도에게 주어진 것은 이 세상이 감옥이라는 사실이에요. 주님이 다녀가셨기 때문에 감옥으로 이미 규정 난 개념으로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이 바로 감옥, 교도소라는 사실이에요.
끝으로 누가복음 3장 20절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3장 19절, 20절을 보면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옥, 감옥이라는 세상 안에 인간들은 또 감옥을 만들었어요. 그럼 세례 요한은 어디까지 가느냐? 감옥 속에 있는 감옥까지 세례 요한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죄가 없어요. 그러니까 죄가 없는 바로 그곳, 죄 없는 자가 갇히게 된 감옥의 입장에서 자기를 가두게 된 세상 전체가 큰 감옥이에요. 스케일이 큰 감옥이에요.
주님께서 거기서 최초로 탈옥을 했어요. 그다음 차례는 누구냐?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탈옥시켰습니다. 탈옥시키면서 새로운 안목을 갖게 하셨어요. 이 세상은 거대한 스케일 큰 감옥이다.
이것을 창세기 2장과 견주면 선과 악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이미 미리 주어진 지옥, 이 세상이라는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지옥의 감옥에 그들은 꼼짝 못하고, 더 중요한 것은 거기서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 이걸 보면서 탈옥하게 된 성도는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기쁘게요. 너무나 고맙죠. 내 힘으로 안 빠져나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