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대구강의]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17 - 진동
25,09,01 강의 : 이근호, 정리 : 구득영
* 수렁에 빠진 인간 !!
오늘은 교재 157페이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 '인간론' 이라고 되어있는데, 그냥 인간은 없다는 겁니다. 수렁에 빠진 인간인데, 여기서 '수렁' 이라는 것은,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공간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정작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이 수렁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는 겁니다. 자신이 어디에 빠졌다고 여기는 것, 그러면 수렁에 빠졌으니까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수렁에서 탈출을 시도하든지, 그게 아니면 그냥 수렁에서 살든지, 둘 중에 하나를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 두 가지 생각 가운데서, 그게 아니고 제3의 어떤 계획이 있느냐는 겁니다. 수렁에 빠졌으면 거기서 빠져나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눌러앉아 버리든지, 둘 중에서 하나라는 것이죠. 여러분 가운데서 이것이 아닌 제3의 생각이 혹시 떠오르는 분이 있습니까?
제3의 생각이 떠올라야 성경이 이해가 되는데, 수렁에 빠졌으니까 나와야 된다는 것도 정답이 아니고, 그리고 눌러앉는 것도 정답이 아니라고 하면, 우리 인간의 생각 가운데는 정답이 없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뜸을 드리지 않고 정답을 바로 말씀드리면, "인간 자체가 수렁이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자기가 거기에서 빠져나왔다고 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눌러앉는다고 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성경과 기존의 이 인간세상에서의 교훈이나 윤리도덕과의 차이점이 바로 그런 점이라는 말이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책들은 자기가 어떻게 잘되느냐에 관한 책인 반면에, 성경은 인간 자체가 개조되어야 한다고 나온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이미 수렁에 빠진 채로 나왔기 때문에,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면 자기는 괜찮은 인간이라고 여기는 생각, 그 자체를 어디서 배웠느냐 하면, 그것을 수렁에서 배웠다는 말이죠.
수렁에 빠져있는 인간이, 그것이 진짜인 줄 알고 그 수렁에서 벗어나면 된다고 여기는, 이 '수렁' 이라는 말의 어감을 더하기 위해서 그 수렁 앞에다가 무엇을 하나 더 붙이면 구분이 잘 되는데, 그래서 '빚 수렁' 이라고 해보자는 겁니다.
그래서 "빚의 수렁에 빠졌다" 라고 하면 실감이 나는데, 그렇게 되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고달파진다는 말이죠. 쉽게 말해서, 사체빚에 빠져서 사체업자들에게 매일같이 시달리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 빚 수렁 VS 빛 수렁 !!
그런데 여기에 점을 하나 딱 찍는데, 그러면 '빚 수렁'이 아니고 '빛 수렁'이 되다는 말이죠. 그러니 빛의 수렁에 빠졌다고 하면, 여기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습니까? 없는데, 빠져나오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빛나는 빛 수렁의 반대말이 뭐냐하면, 그게 어둠의 수렁이라는 말이죠. 이 어둠의 수렁에 빠진 자가 누구냐 하면, 그게 바로 인간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인간이라는 것은 어둠을 만들어내는 장소다" 라고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레미야서에 보면,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어제 오후 설교시간에 "예수님께서 죽은 것이 자연 현상인가? 인간 때문인가?" 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왜 죽었습니까? 예수님이 번개에 맞아서 돌아가셨습니까? 그게 아니면 가뭄이 들어서 돌아가셨습니까?
*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 예수님 !!
자연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런데 무엇이 문제냐 하면, 악이 인간 속에 대기하고 있다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공격을 함으로서, 그래서 창조주, 또는 심판주가 되신 예수님이 인간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말이죠.
거기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죄이고, 그게 악이라는 겁니다. 죄악이 거기서 만들어지는데, 즉 십자가 사건, 그 십자가에서의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을 통해서, 기존의 수렁에 빠진 인간들이 몰랐던 죄와 악에 대한 모든 실체가 다 드러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데, 왜냐하면 수령에 빠진 채로 있기 때문에 말이죠. 그저 수렁에 빠진 채로 자기들끼리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전부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리가 아닌데, 오히려 그것은 다 거짓된 것들이라는 말이죠.
이제 그런 입장에서, 여러분이 아직 정신이 있을 때 후딱 중요한 문제를 하나 내겠습니다. 이것은 '파스칼' 라는 사람이 낸 문제인데, 이 문제를 제가 여러분에게 소개를 해드릴 테니까, 여러분이 풀어보시기 바랍니다.
* 파스칼의 4가지 분류 !!
그게 뭐냐 하면, 파스칼은 인간의 아이디어가 두 가지가 있다는 겁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 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라는 것인데, 그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파스칼은 사람이 또 하나의 분류가 있다고 하는데, 먼저 "하나님은 있다" 라고 하는 자들이 있고, 두 번째는 "하나님은 없다" 라고, 이런 두 가지 분류가 있다는 겁니다. 파스칼은 이 두 개를 합쳐놓고 문제를 내는데, 여기서 다음의 4가지가 나온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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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이 없다.
(2)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이 있다.
(3)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하나님이 있다.
(4)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하나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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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마지막에는 자기도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신의 존재도 아예 없는 경우인데, 이렇게 4가지를 구분해놓고, 모든 종교가 이 4가지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자신만만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하나 따져봅시다.
자기는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이 없는 경우, 이렇게 되면 자기 인생에 약간의 손실이 온다는 말이죠.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십일조를 하고 교회봉사를 하면서 시간을 바쳤는데,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이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보상이 없는데, 그러면 이것은 시간 낭비라는 것이죠.
두 번째의 경우에, 자기는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도 계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영원한 축복이 있다는 말이죠. 세 번째는, 자기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그런데 하나님이 계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되는데, 지옥의 영원한 저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죠.
네 번째는, 자기는 하나님 믿지 않는데, 그리고 하나님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입니까? 약간의 자기 위로가 되는데, "역시 나는 결정을 잘했어" 라고, 그렇게 자기 위로를 받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파스칼을 대신해서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는데, 이 4가지 경우 가운데 여러분은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들이 기껏 온갖 아이디어를 다 동원해봤자, 딱 이 4가지 경우, 이 게임 바깥으로는 나갈 위인이 없다는 겁니다.
* 보험들기, 걸쳐놓기 !!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이 계신 경우", 이것을 선택한다는 말이죠. 저는 이것을 선택하는 경우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싶다는 겁니다. '보험들기' 라고 말이죠. 즉 미지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 현재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뭐냐 하면, 일단은 보험을 들어놓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는 경우라고 할 경우에, 약간의 위험이 수반되어서 손실이 있지만, 그런데 진짜 있는 경우라고 하면, 그러면 완전히 영원히 끝장아 나버린다는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하는고 하니,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걸쳐놓기' 라고 할 수 있는데, 다리를 하나 더 걸쳐놓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이것 인정해줍니까? 아니면 부정합니까? 성경에서는 부정해버린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야고보서 1장 18절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약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이렇게 걸쳐놓는 것이 한 마음입니까? 두 마음입니까? 두 마음이란 말이죠. 혹시 안 되면 한 쪽 발을 뺄 생각을 하고 있는데, 즉 마음이 둘로 나누어져 있다는 겁니다. 수렁에 빠진 이 세상에서는 이런 태도를 '요령' 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게 뭐냐 하면, '불신앙'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인간이 끄집어낸 아이디어에서는 이 4가지 경우밖에 없는데, 그러면 성경에서는 어떻게 이것을 변형할 수 있느냐 하면, 여기에 다른 요소를 집어넣는다는 겁니다. 그 다른 요소가 무엇인고 하니, 세상에서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 믿지 않는다" 라는 것과 "하나님이 있다. 없다" 라고 하는 경우밖에 없는데, 즉 두 가지에 조립된 두 가지 사항이 있다는 말이죠.
* 내가 진짜 인간인가? 가짜 인간인가?
그러면 여기에 무엇을 추가하는고 하니, "내가 진짜 인간인가? 가짜 인간인가?" 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 여기 기존의 4가지의 경우는 어떤 경우냐 하면, 자기가 가짜 인간이었을 경우인데, 그런 가짜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진짜 인간으로 이것을 바라보게 되면, 이런 것은 모두 부정을 당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진짜 인간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란 말이죠. 예수님만이 진짜 인간이기 때문에, 가짜 인간은 기껏 해봐야 이런 경우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가짜 인간이 진짜 인간이 되려고 하면, 진짜 인간에서 무엇이 나오느냐 하면, 진짜 인간이신 예수님의 마음이 이렇게 흘러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죠. 즉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성령을 말이죠.
그래서 성령을 받게 되면 그 특징이 뭐냐 하면, 자기가 가짜라는 것을, 즉 자기가 그 어떤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도 하나님은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게 성령을 받은 사람의 특징이라는 말이죠.
보험 들기, 혹은 한 다리에 걸쳐놓기, 이런 얍삽한 짓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자기를 안심시킬 수는 있지만,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안심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안심이 되는 자기가 가짜이기 때문인데, 그래서 인간론의 핵심은 뭐냐 하면, "나를 위한 인간론은 하나님께서는 거부하신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가짜인 자기를 지키고 가짜인 자기를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애쓰는 그 모든 것,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는 말이죠.
* 진짜 인간과 가짜 인간 !!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론의 초반의 부분은 뭐냐 하면, 진짜 인간과 가짜 인간이 어떤 식으로 연결이 되어있는지, 그것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그것이 교재 157페이지에 나오는데, 즉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고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선 자니" 라고 한다는 말이죠.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님에게만 해당되고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형상은 하나님이 받아주지 않는 가짜였다는 말이죠. 사실은 가짜 정도가 아니고 마귀의 형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그대로 적용시키게 되면, "진짜 인간이신 분은 예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하나님 형상, 즉 아버지의 형상은 오직 예수님께만 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모든 인간은 가짜 인간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뭐냐 하면, 그것이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 아담은 무죄 상태 !!
지금까지 한 것은 이해했다고 치고, 교재 157페이지 초반부터 다시 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죄를 짓기 이전에는 인간이 없고, 죄를 짓고 난 뒤에는 죄인이 없다" 라고 하는데, 어때요? 그 말이 맞습니까? 틀렸습니까?
언뜻 들으면 맞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죄를 짓기 이전에는 죄라는 것이 성립이 안 되는 무죄 상태였다는 겁니다. 죄를 짓기 이전, 그게 아담이라는 말이죠. 지금 여기에 중요한 게 들어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아담은 무죄 상태라는 겁니다. 즉 "죄가 있느냐? 없느냐?" 라는 것을 주님께서 따지지 않았던 시절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처음이 아담이 만들어진 것은 무죄 상태라는 겁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 하면, 나중에 죄를 짓고 죄인이 되었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 죄인을 보고, "처음의 아담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아담으로 돌아갈 것인가?" 라고, 이것을 묻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옛날에 죄를 짓기 이전의 아담이 기준인가? 아니면 마지막 아담, 혹은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이 기준인가?" 라고, 바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말이죠. 예수님의 영인 성령이 오게 되면, 아담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느냐 하면, 예수님께로 간다는 말이죠. 아담은 잊으면 되는데, 왜냐하면 아담은 그냥 하나의 재료라는 겁니다. 즉 예수님을 보여주는 재료라는 것이죠. 그래서 골로새서 1장에 보면, 만물이 예수님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는 겁니다.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렇다고 하면 예수님을 위해서 만들어진 게 표준입니까? 예수님이 표준입니까? 예수님이 표준이라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교회에 나왔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예수님이 표준이 되는 겁니까? 아니면 죄를 짓기 전에 괜찮았던 자기가 표준이 되는 겁니까?
여기서 어느 쪽입니까? 예수님이 표준인데, 그래서 세리와 강도가 구원을 받았다는 말이죠. 바리새인들은 지옥에 간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의 표준은 뭐냐 하면, 예수님이 아니고, 괜찮게 되는 자기가 표준이라는 것이죠.
* 예수님이 표준인가? 인간이 표준인가?
그래서 자기가 실수를 줄여서, 자기 스스로가 보기에도 "이 정도로 쓸 만한 인간이 어디에 있어?"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그들은 그렇게 자기가 설정한 자기의 이상형이 표준이 되어서 여호와를 섬겼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런 바리새인들의 요소가 우리한테 있을까요? 없을까요? 바리새인들이 우리의 선배인데, 그러니까 모든 인간들은 교회에 나와도 그런 요소가 다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렇게 욕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것을 우리를 보고 욕하는 것인데, 즉 "네가 수렁에 빠졌다. 괜찮은 네 모습에 네가 빠져있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하는데, "그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라고, 그렇게 순진하게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서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으면 참 좋았겠다" 라고 하는 것은, 참 좋은 상태를 아담으로 보는 겁니까? 예수님을 보는 겁니까? 아담 상태로 보고 있다는 말이죠. 그런 아담 상태, 그것을 기존 교회에서는 '성화' 라고 한다는 겁니다.
*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
성경에서 "아담은 오실 예수님의 표상이다" 라고 하는데, 이 표상을 상징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표상이나 상징과 같은 말 자체가 또 어렵다는 것이죠. 말 자체가 어려우니까, 제가 쉽게 바꾸어보겠습니다.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표상, 이것을 일종의 '스티커' 라고 말할 수가 있는데, 이 스티커는 무엇입니까? 이게 실물입니까? 실물이 아니고, 그냥 이미지고 그림 조각이라는 말이죠. 그림 조각, 즉 납작하면서 폭을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평생 화투를 쳐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르지 싶은데(ㅋㅋ), 5월에 보면 난초가 예쁘게 피어있다는 말이죠. 거기에 빨간 대가 서있는데, 것을 3개 모으면 홍단이 되고, 그리고 파란 것을 3개 모르면 청단이 된다는 겁니다.
그 난초가 아주 예쁜데, 그러면 그게 실물입니까? 그림입니까? 그림이란 말이죠. 그러니 우리는 그림인데, 예수님의 타일 조각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인식을 가지고 교회에 다녀야 하는데, 우리는 예쁘다는 것이죠. 물론 화장을 하고 오시면 더 예쁘고 말이죠(ㅋㅋ).
* 죽음의 색깔을 뒷판으로 깔고 !!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엇입니까? 그림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예쁜 화투장 밑을 들쳐보면 무엇이 나옵니까? 어둡고도 칙칙한 색깔이 나온다는 말이죠. 마음에 들지 않는 색깔이 드러난다는 겁니다.
이게 죽음의 색깔인데, 잘난 자나 못난 자나, 심지어 어린아이나 나이가 많으나, 모두가 다 죽음의 색깔을 뒷판으로 깔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죠. 마치 가상의 무대 세트장처럼, 우리 뒤편에는 지금 바짝 죽음의 힘이 우리 등쪽에 작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독일에서 축구선수로 뛰고 있는 김민재의 경우에, 그는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비 선수라는 말이죠. 공격수가 공을 받으려고 하면, 그러면 김민재가 다가가서 민다는 겁니다. 공격수가 공을 받아서 슛을 해야하는데, 그런데 공을 받기 전에 바짝 다가와서는 그 공을 자기가 빼낸다는 것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어도,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도, 우리 옆에는 무엇이 붙어있다는 겁니까? 죽음이 있어서, 그 죽음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욕심이 장성하여 죄를 낳고, 그 죄가 결과가 사망이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자꾸 사망에 의해서, 그 제공되는 죽음이 우리 인생을 망치고 있다는 겁니다. 마치 5월 화투장의 뒷면처럼, 그게 인간론이라는 말이죠. 우리는 무죄로 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죄로 가지 않으면 어디로 가야할까요? 의인으로 가야한다는 것이죠.
* 무죄가 아닌 의인의 상태로 !!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죄사함은 우리를 무죄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의인으로 만든다는 겁니다. 그러니 너무나 황송하다는 말이죠. 그게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로마서 5장에 나오고 고린도후서 5장에도 나온다는 겁니다.
로마서 5장의 경우에는, 죄인을 용서함으로서 의인이 되게 했다는 내용이고, 또한 고린도후서 5장의 경우에는, 한 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서,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는 겁니다. 움직이는 하나님의 의를 말이죠.
(롬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게 우리가 의인이 되는데, 여기서 우리가 할 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일체 우리가 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겁니다. 성경에서 우리를 보고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게 한 두 개가 아닌데, 수백 개가 넘는다는 말이죠.
*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
시도 때도 없이 복음을 전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또한 범사에 감사하고, 그렇게 "하라, 하라" 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러면 우리를 보고 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것은 이사야서 6장 5절에 보면 나온다는 겁니다.
(사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왔을 때, 그 말씀 쪽에서 우리를 어떻게 합니까? 아담으로 가려는, 즉 수렁에 빠진 가짜 인간을 예수님 쪽으로 돌리는 능력이 그 말씀 자체에서 나온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말씀 자체를 예수님께서 다 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즉 말씀을 이루신 분이 말씀을 쥐고 자기 백성에게 말씀을 뿌려주기 때문에, 그 말씀이 오게 되면, 우리는 "내가 이것을 해야지, 저것을 해야지"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라고 하게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저는 아무리 더 오래 산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말씀 앞에서 나는 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인 것을 또 다시 노출시켜 주시니,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게 말씀의 능력이라는 겁니다.
* 나를 미워하는 사랑 !!
그래서 어제 낮 설교 끝에 "나를 미워하는 사랑에 감사합시다" 라고 했는데, 후딱 지나가면서 말이죠. 왜냐하면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영생은 어떤 경우에만 발생되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미워하지 아니하면 생명은 없다"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요 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교인들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거론하고 예수님을 거론하고 성령을 거론하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사랑하는 자기를 더욱 더 사랑할 만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는 말이죠.
새벽 기도회 때 녹음기를 가지고 와서 녹음을 해보라는 겁니다. 물론 그 사람의 사생활은 알 필요가 없지만, 그 사람이 새벽에 잠을 깨워가면서 교회에 나와서 억지로 기도하는 내용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게 하나의 일상이 되겠지만 말이죠.
그게 자기를 미워하는 내용일까요? 그게 아니면, 자기와 자기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좀 도와달라는 내용일까요? 어느 쪽입니까? 특히 성당은 100퍼센트라는 겁니다. 마리아 상 앞에서 비는 그 모든 것은, 자기를 좀 행복하게 해달라고 한다는 말이죠. 자기가 만족스러운 자기 욕망을 성취하게 해달라고 빈다는 겁니다.
* 마리아의 덕을 우리도 좀 누리자 !!
우리가 천주교에 대해서 좀 알아야 하는데, 천주교가 예수님도 그리워하지만 마리아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있다는 말이죠. 예수님은 십자가를 졌지만 마리아는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아들 덕분에 호사를 누리는 대상이라는 말이죠. 그게 엄마인 마리아인데, 그 덕을 좀 보자는 겁니다.
여러분 주변에도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물론 건성으로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지런하다는 말이죠. 제가 천주교를 불교라고 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인데, 그들은 꼭 인간의 행함이 추가가 되어야 어떤 결과를 나온다고, 그렇게 믿는다는 겁니다.
여기서 "나의 추가적인 노력이 있어야 결과를 믿는다" 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고 하면, 결국은 "나는 궁극적으로 나를 믿는다" 라고 할 수가 있다는 말이죠. 즉 "궁극적으로 나는 나를 부정하지 않으련다" 라는 겁니다.
"나는 나를 싫어하지 않을래", 또는 "나는 나를 미워할 필요 없어" 라는 것인데, 이것을 아까 공부한 대로 하면, "나는 가짜인 나를 버리지 못한다" 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즉 "가짜는 나는 나 때문에 산다. 내가 살아있는 것, 그것이 나의 사는 원동력이 힘이고 보람이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 자식은, 자기 존재의 의미 !!
그러면 자기가 늙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는 죽어도 자기 자식이 있다는 겁니다. 자식은 자기 파트이기 때문에, "비록 나는 늙어 죽지만 젊은 내 자식은 살아있으니까,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는 것이죠.
그런데 자식이 먼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식이 먼저 죽으면 자기도 같이 죽는데, 자식은 자기 존재의 의미라는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 유월절에 아버지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자식을 죽이라고 했는지를 아시겠지요?
출애굽기 4장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세가 숙소에서 애굽으로 내려가서 자기 백성을 건지려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모세에게 힘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죽이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이죠.
(출 4:24)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모든 인간의 자식은 예수님이기 때문인데, 특히 언약 백성의 자식은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다윗의 자손 정도가 아니고, 아담의 자손도 예수님이란 말이죠. 그래서 마지막 자식에게 하나님께 일을 일으키면, 그 일으킨 이가 앞당겨서 태어난 모든 부모에게 똑같이 혜택이 돌아가는 원칙을 하나님이 세웠다는 겁니다. 자식 덕을 보게 한다는 것이죠.
* 에녹과 노아 !!
그런데 그 자식으로 오신 예수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땅에 와서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했다는 겁니다. 바로 그것을 미리 조상 때에 보여준 게 뭐냐 하면,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늘로 갔다는 말이죠.
성경은 "아담은 예수님의 표상이다" 라고 하는데, 즉 화투짝이라는 겁니다. 똑같은 말로 "에녹은 예수님의 화투짝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노아는 어떨까요? 노아의 경우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을 했는데, 그러면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을 했습니까?
물론 동행을 했는데, 그런데 보세요.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런데 노아는 죽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동행은 같이 했는데, 왜 대우는 달라야 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노아도 죽음을 보지 않고 올라가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죠. 누구는 죽음을 보지 않고 가고, 누구는 왜 죽느냐는 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에녹은 개인적으로 죽음을 보지 않았지만, 노아는 언약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즉 영생이라는 상황을 누구보다도 노아에게 구체적으로, 그 형상을 많이 부여했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 세상에 살다가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동행을 했으면서 죽음을 보지 않는 그 이유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에녹보다 노아에게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실어놓았다는 겁니다.
에녹도 화물차고 노아도 화물차라고 하면, 그 화물차에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 라고 했던 인간들이 실려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 "정녕 죽으리라" 라는 것을 이겨내는, 즉 "죽지 아니하리라" 라는 것이 노아에게 더 많이 실려있다는 겁니다. 죽지 않고 올라간 에녹보다도 말이죠.
여기서 열왕기하 13장 21절을 보겠습니다.
(왕하 13:21)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적당을 보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 엘리야와 엘리사 !!
엘리아의 경우에, 그도 에녹처럼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겁니다. 거기에서 엘리사가 기대했던 것은 뭐냐 하면, 하늘에서 불수레가 1대가 아닌 2대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말이죠. 그런데 섭섭하게도 엘리야를 데려가는 불수레만 오고, 같이 붙어있는 엘리사에게는 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엘리야보다 엘리사에게, 장차 오실 예수님이 구원하시는 그 구원의 정보가 더 많다는 것이죠. 엘리아는 죽지 않고 불수레를 타고 올라간 것으로 끝인데, 그런데 엘리사는 죽고 난 뒤에, 다른 사람의 시체가 엘리사의 시체에 닿자마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분명히 죽었는데, 살아났다는 겁니다.
물론 부활이 아니고 소생인데, 그렇다면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의 옷깃을 만진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도 고침을 받았는데, 심지어 사도바울의 손수건을 붙들고 살아난 사람도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베드로의 경우에는, 죽은 과부를 살렸다는 겁니다.
제가 어제 낮 설교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천국은 소유가 아니고 일하는 곳이다" 라고 말이죠. 천국은 결코 우리의 소유가 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가짜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소유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는 무엇입니까? 이미 소유된 분에 속해서, 즉 이미 천국을 다 이루신 그분의 일부분을 드러내는 것, 바로 그것이 성도에게 부여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도의 역할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른다는 말이죠.
* 굳이 내 것이 있을 필요가 없다 !!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두 종류로 나눈다는 것, 그것은 우리 대구강의에서 제가 여러 번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 즉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소유할 생각을 했다는 말이죠.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즉 자기에게 무엇인가가 주어지면, 그것을 날름날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와 열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자기의 것은 없고, "주인이 있다" 라는 것으로 만족해했는데, 즉 "굳이 내 것이 있을 필요가 없다" 라는 생각으로 주인의 일을 계속해서 했다는 말이죠.
(마 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자기 소유가 없다는 말은 "내가 없다" 라는 뜻인데, 즉 "내가 나를 붙들 가치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태어날 때 수렁에 빠졌다는 말이죠. 그렇 수렁에 빠졌으니까, 무엇이든지 좋은 것은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런 자기를 자기가 스스로 미워할 수 없다는 말이죠. 우리는 그럴 능력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어떻게 하시느냐 하면, 말씀을 주셔 가지고, 그 말씀과 딱 맞닥뜨리게 하신다는 것이죠.
* 내가 미워요 ♬
그래서 그 말씀을 보니까 자기가 미워진다는 겁니다. 심수봉의 노래에 보면 "내가 미워요" 라고 하는데, 왜 자기를 미워할까요? 예상치도 못한 사랑 앞에서, 아직도 자기 것을 챙기는 자신이 그 사랑의 가치를 훼손하니, 자기가 밉다는 겁니다.
지금 제가 가사를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이유를 아시겠죠? 지금 가사 내용을 따지는 게 아니고, 물론 "나를 버리고 떠난 당신이 미워" 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말이죠. 그런데 저는 그것을 바꾸었다는 겁니다.
주신 사랑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직도 그것이 얼마나 자기에게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지, 그것을 따지는 자기 자신이 밉다는 말이죠.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가치를 모르는, 그런 자기 자신을 미워해야 한다는 겁니다.
* 장기기증이 착한 일인가?
여러분에게 문제를 또 하나 내드리겠는데, 장기기증이 착한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장기기증을 착한 일이라고 하면, 이런 착한 일에 빠져버리면 그게 도박이 된다는 말이죠. 즉 중독이 된다는 겁니다. 장기기증의 유효기간이 6년인데, 그래서 장기기증을 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죠.
아내는 남편의 장기기증을 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데 남편이 일방적으로 해놓으면, 그게 6년만 지나면 자동적으로 취소가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헌혈도 마찬가지인데, 똑같은 중독현상이 일어난다는 말이죠.
이 장기기증을 나라에서 적극 권장하는데, 왜냐하면 장기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줄을 서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국가적으로는 장기기증이 이익이 된다는 것인데, 선진 의료체계에서는 이익이라는 말이죠.
* 자본주의는 선과 악을 이익과 손해로 !!
그렇다면 이제 제가 묻겠는데, 착한 일을 독려하는 이유가 장기를 부여받은 사람에게 무엇이 되기 때문이라는 겁니까? 그것은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착한 일이 이익입니까? 이익이 되어야 착한 일입니까? 여러분은 이 질문이 어떻습니까?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허점인데, 자본주의는 선과 악을 무엇으로 보느냐 하면, 자기한테 이익이 오면 선이고, 반면에 손해가 오게 되면 악이라고 규정을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사회 속에, 그런 수렁에 빠져서 태어난다는 말이죠.
어떤 친척이 장기가 필요하다고 하면 뭐라고 하면 될까요? "이 인간아, 그냥 죽어라. 이 지옥과 같은 세상에서 장기기증까지 받아 챙기면서 굳이 살아갈 필요는 없어. 그렇지?" 라고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래, 맞다. 살아가는 것도 고달픈데, 이 참에 그만 죽자" 라고 하고 하면서 마음을 비웠는데, 그런데 옆에 있는 식구들이 용서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러면 "가만히 있어봐라. 돈이 좀 들어도 장기기증을 받자. 그렇게 해서 자식들을 조금이라도 더 봐야지"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자식들이 아버지 재산을 쳐다보면서, 효도경쟁을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 "아버지, 내 쪽의 장기를 해야합니다" 라고 하면서, 자기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하면, 물론 그런 가능성은 적지만 말이죠.
*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자본주의의 인식인데, 이런 것 자체가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라는 것에 초점이 모이게 되는데, 그러면 그게 과연 착한 일이냐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과연 선한 일일까요? 그게 아니라는 말이죠.
그 정도로 우리는 가짜 세상, 즉 거짓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나의 이익은 선이다" 라는, 여기에서 우리가 무슨 수로 빠져나옵니까? "교회에 다녀서 착한 일을 하는 것도 좋은데, 그래도 역시 남는 것은 돈이다" 라고 하는, 그것은 우리가 마음이 나빠서가 아니라, 우리 몸의 생리가 되었다는 말이죠.
* 돈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
다시 말해서, "돈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라는 것인데, "주 예수보다도 더 귀한 것은 없다" 라는 찬송가 가사를 바꾸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 할래? 돈 할래?" 라고 하면, 우리의 속마음은 "돈 할래"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우리가 왜 그렇게 돈을 원하는고 하니,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르고, "지금 나에게 이익이 있으니까, 나는 착한 사람이 맞잖아. 그래서 복을 받았잖아" 라고 밀어붙이는데, 그것이 아담이라는 겁니다.
그게 가짜 인간인데, 하나님의 형상은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죠. 하나님의 형상이 있던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 성취가 목적이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게 하나님의 의가 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러면 이제 우리에게 남아있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나는 내 기분과 의논하면 안 된다" 라는 것인데, 이것은 명확해졌다는 겁니다. 자기 기분과 의논해서 사는 것은 반칙이라는 말이죠.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사망이 마치 김민재처럼 딱 붙어있기 때문인데, 즉 우리는 그냥 그림조각이기 때문에,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죽는다는 겁니다.
앞의 그림은 가짜이고 진짜 죽음은 생생한데, 그 생생한 죽음이 무서워서 우리는 그 티를 내지 않으려고 바깥을 그림을 화려하게 장식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얼마나 위선자입니까? 그래서 지금 문제가 뭐냐 하면, 자기 힘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결부가 됩니까? 안 되는데, 그것은 명확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 그 형상이 마귀의 형상이 있는 우리 자신에게, 그 다음에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영인 성령이 찾아오게 되면, 가짜 인간 속에 진짜 인간의 마음이 스며들게 되는데, 그러면 된다는 말이죠.
* 공명 효과 !!
그 스며드는 방식이 뭐냐 하면, 그것을 '공진', 혹은 '공명'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제가 지금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여기에 그네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그네에는 어린 딸이 앉아있고, 그 뒤에 아버지가 서있다는 말이죠.
딸은 이 그네를 타고 싶은데, 그래서 아버지에게 자기 뒤를 좀 밀어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가 너무나 어설퍼서, 딸의 그네가 내려오면 밀면 되는데,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말이죠.
이쪽 딸에게 있는 파동과 아버지의 에너지 파동이 일치가 되지 않으면, 그네는 하늘 높이 올라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미는 그 타이밍과 파동이 합치가 될 때 힘껏 올라가게 된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공명 효과' 라는 것이죠.
모든 전자는 안에 그냥 같이 존재하면, 여기서 정전기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정전기를 아시죠? 제법 찌릿찌릿하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전자가 속도를 내면, 여기서 파가 나온다는 겁니다. 즉 전자가 속도를 가지면 움직이고, 그 속도에서 파가 나온다는 것이죠.
* 주님과의 공명 !!
그 파를 증폭시키는 것이 뭐냐 하면, 그것이 바로 고주파인데, 그게 라디오나 TV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증폭을 시키느냐 하면, 라디오에서 채널이 맞지 않으면 '찌찌직' 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하다가 딱 맞으면 어떻게 됩니까? 깨끗한 음성이 들린다는 것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주님이 하늘에서 파를 보내면, 이 지상에서 자기의 고유한 파, 이것을 다른 말로 '진동'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자기의 고유 진동과 예수님의 진동이 맞아버리면, 예수님 말씀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예수님과 주파수가 맞아서 그러한데,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면, 자기는 그만 깨어진다는 말이죠.
* 깨어지는 유리컵 !!
예를 들어서, 지금 여기에 유리컵이 있는데, 이 유리컵을 가지고 실험을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본 적이 있지 싶은데, 유리컵 앞에서 소프라노가 고음의 소리를 내면 그 유리컵이 그만 깨어진다는 말이죠. 그것은 유리컵 구조를 유지할 수 있던 그 한도가 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이 유리, 즉 물질은 모든 원자로 되어있고, 원자 물질은 고유의 고유의 자기의 원자가 있으면 그 원자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진동이 나온다는 겁니다. 바로 그 진동과 소프라노 진동이 일치가 될 때, 유리입자는 그 본래의 모습이 날아가고, 그만 파괴가 되어버린다는 말이죠.
그런 특정한 진동이 하늘에서 내려와야 하는데, 그런데 그 특정한 진동을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하늘에서 계신다고 해서 특정한 진동이 오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그 예수님이 지상에 와서, 이 지상의 지옥과도 같은 형편을 모두 다 겪고 난 뒤에, 그 몸이 하늘로 승천을 해서 성령을 보내보내는데, 그렇게 해서 성령이 오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즉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필요한 진동과 주파수가 서로 맞게 되면, 자기의 기존에 있던 아담은 어떻게 됩니까? 그 가짜 인간, 옛날 구닥다리 아담의 것은 깨어지면서, 그렇게 공명이 되면서 다시 주님 쪽으로 회수가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4절을 보겠습니다.
(행 2: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 2: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말은 각기 다른데, 즉 기존 아담의 몸에 아는 것은 지식은 다들 다른데, 그런데 그 내용은 어떠하다는 겁니까? 말은 달라도 내용은 똑같다는 말이죠. 그 내용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즉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그 사람이 갖고 있던 몸의 개성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그 내용은 똑같은 의미를 발산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늘에서 성령이 오는 희한한 일이 일어나야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말이죠.
그러면 여기서 '방언' 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언어는 달라도 동일하게 복음적인 내용이 들어있을 때, 그것을 방언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물론 이 세상에서는 지방에서 사용하는 사투리를 두고 방언이라고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왜 방언이라고 표현을 했을까요? 이게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인간들은 들어도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모른다는 말이죠. 말씀을 들었는데,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 당신은 마귀에 눌린 자가 맞습니까?
여기서 제가 시험을 해볼까요? 여러분이 시험대상은 아니지만,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자기가 성령을 받았는지, 거기에 대해서 테스트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 말씀을 전하는데, 그것이 사도행전 10장 38절이라는 말이죠.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방금 이 말씀을 들었죠? 수능 듣기 평가시험인데, 여기서 이제 문제가 나갑니다. 문제는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 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라는 것인데, 여러분이 답안지에 그 의미를 한번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 거기에 나는 포함이 된다" 라고 생각하면 성령을 받은 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의미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말이죠. 그런데 "나는 마귀 같은 것은 모르겠고, 나는 평생 동안 내가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라고 하면, 그 사람은 이 말씀을 이해를 못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씀을 이해를 못하니까 자기에게 의미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다는 말이죠. 그런 사람에게는 성경 전체가 무의미하게 여겨진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 성경말씀이 어떻게 됩니까? 계속해서 거부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죠.
* 나는 내가 아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산다 !!
다시 한번 정리하면, "당신은 마귀에 눌린 자가 맞습니까?" 라고 했을 때, 맞다고 하면 성령을 받은 자라는 겁니다. 그러면 마귀에 눌린 자의 예를 한번 들어보면, 그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는 말이죠.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이 모두 그런 삶이라는 것이죠.
제가 여러분에게 좀 더 친절을 베풀어서, 마귀에 눌린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드리겠는데, 그게 이렇다는 겁니다. "나는 내가 아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지금까지 살아있다" 라고 하면, 이것이 바로 마귀의 눌린 자라는 말이죠. 영적 요소가 다 빠져 있다는 것이죠.
마귀도 빠져있지만 누구도 빠져있습니까? 성령도 빠져있고, 예수님도 빠져있고, 하나님도 빠져있고, 모두 다 빠져있다는 겁니다. 즉 "내가 아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라고 하는, 이게 마귀의 눌린 자라는 말이죠.
마귀 이야기만을 하는 게 아니고, "마귀고 하나님이고 간에, 그딴 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 라고 나오는 것인데, 바로 그 내용이 "나는 내가 아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산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현재 KBS, MBC, 그리고 모든 TV 뉴스시간에 매일같이 쏟아내는 내용이라는 말이죠. 이것이 이 세상에 통용되는 소식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통용되는 소식, 그것은 파가 무슨 파인고 하니, 그게 '지옥파' 라는 말이죠.
마귀가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그들만의 진동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그들만의 진동이기 때문에, 각자 가짜 인간들끼리는 이 진동에는 채널이 잘 맞다는 것이죠. 소리가 잘 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연예인이 결혼했다" 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같은 아담끼리 고유 진동이 맞으니까,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인지를 안다는 겁니다.
예수의 무덤에 제일 먼저 찾아간 여자가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인데,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하지만 지금 자기 진동과는 맞지 않는, 즉 불필요한 일이라는 말이죠. 알아도 되지만, 굳이 알 필요가 없는 내용으로 다가온다는 말이죠.
막달라 마리아가 전했던 것, 특히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해서 지금도 살아서 일하신다" 라고 하는 것, 그 말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신경을 쓰거나 관심을 끄는 이슈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그런 설교를 들으면 잠이 오고 한다는 것이죠.
그것은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인데, 인간 사회에서도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죠. 의미가 형성되는 채널, 즉 공명이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친구가 된다는 겁니다. 공명이 되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가 없다는 말이죠. 관심사가 같아야 같이 모인다는 겁니다.
* 진동의 결과, 속성, 원천 !!
성경에서는 이 진동에 대해서 매우 중요시하는데, 왜냐하면 이 세상 자체를 진동하고 있는 세상이라고 보고 있다는 말이죠. 지금부터는 이 진동에 관해서 성경을 찾아보는데, "진동의 결과, 진동의 속성, 진동의 원천", 그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찾아보겠습니다.
우선 진동의 결과인데, 출애굽기 19장 18절을 보겠습니다.
(출 19: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연기가 피어오르고 온 산이 어떻게 되었다고 합니까? 온 산이 크게 진동했다는 겁니다. 지진이 났다는 말이죠. 산은 자연현상에 속하는데, 그 자연현상에 속하는 것이, 하나님이 임하니까 여기에 진동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 다음은 사사기 5장 4절입니다.
(삿 5:4)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전쟁에 모든 자연현상까지 합세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땅이 진동하고 있다는 말이죠. 이스라엘 전쟁을 할 때마다 진동이 일어났는데, 그러면 그 진동은 왜 일어나는고 하니, 그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이사야서 13장 13절을 보겠습니다.
(사 13:1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여기서는 하늘과 땅이 모두 진동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것은 심판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아까 소프라노의 목소리에 유리컵이 깨졌다고 했는데, 그러니 자연형태 그 자체를 완전히 박살내버린다는 말이죠. 진동해서 불로 태우듯이 없애버린다는 것이죠.
두 번째인 진동의 속성에 대해서는 시간 관계상 넘어가겠는데, 그러면 그 진동의 진원지가 어디인고 하니, 그게 학개서에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서 학개서 2장 7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학 2:7)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게 어디냐 하면 바로 성전인데, 즉 시온에서 진동이 출발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시온에서 진동이 출발한다는 것은, 시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즉 "더 이상 이 세상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제는 끝났다" 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건이 시온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죠.
그게 예루살렘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만군의 심판주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이제 이 세상은 종쳤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게 무슨 사건인고 하니, 십자가 사건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밀쳤다는 것인데, 그러니 이제 인간은 자기의 본색을 오롯이 다 드러냈다는 말이죠. 배후에 마귀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없이 우리끼리 살자" 라고 나오는데, 그런 인간 본연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서 노출시켰다는 말이죠.
그게 무슨 권세라고 했습니까? 악마의 권세라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살겠습니다.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없이 우리는 우리끼리 살겠습니다" 라는 것인데, 그래서 예수님이 심판을 하신다는 겁니다. 그게 진동인데, 그러면 이게 신약에도 있을까요?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는 말이죠.
여기서 사도행전 4장 31절을 보겠습니다.
(행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구약에서 진동했다고 하면, "구약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데 신약에 와서도 어떻습니까? 기도를 하고 성령이 임하니까 진동했다고 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징후' 라고 하는데 말이죠.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지각, 이 지구의 멘틀, 이것은 한시적인 공간이라는 겁니다. 이게 영원히 갈 것처럼 보여도, 사실 얼마 가지를 못한다는 말이죠. 흐트러지고 파괴될 진동의 대상이라는 겁니다.
* 내 마음 속의 진동 !!
이제 끝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방금 이야기한 것은 무슨 진동입니까? 자연, 즉 천지 창조에 대한 진동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천지가 진동한다고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까? 구원받지 못하는데, 우리 안에 진동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마음 안에, 이 가짜 인간, 아까 무슨 권세라고 했습니까? 그게 마귀의 권세인데, 즉 "나는 내가 아는 것과 내 능력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라는 것인데, 그게 바로 악마에 눌린 우리 인간의 모습이라는 말이죠. 우리는 악마에 짓눌려있다는 겁니다.
구약시대인 노아 때는 외부에서 언약이 왔는데, 그런데 오늘날 마귀의 울림은 그 의미가 외부에서 오지 않고, 자체적으로서 그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말이죠. 자체적으로 진동을 만들어서, 즉 "네 주파수와 내 주파수를 맞추자" 라고 하는데, 그것을 공명, 또는 공진, 즉 "같이 움직인다" 라는 의미라는 겁니다.
실제로 여러분도 땅이 진동하는 것을 만들 수가 있는데, 예를 들어서, 축구경기에서 한 골 넣었을 때 관중들이 '우와' 라고 소리를 치면 어떻게 됩니까? 땅이 막 움직이는데,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말이죠. 실제로 지진계를 가지고 관측을 해보면 측정이 된다는 말이죠. '우와' 라는 소리 에너지가 구조물을 흔들어서 진동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주는데, 그래서 야구를 할 때 각 팀의 야구팬들이 외치면 그게 선수들의 마음 상태에도 도달을 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열심히 자기 팀을 응원한다는 겁니다.
지금 악마가 이 세상에서 공명을 일으키고 있는데,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지금 살아가고 있다. 걱정하지 말자" 라고 말이죠. 이게 마귀의 힘인데, 그런데 여기에 누가 있느냐 하면, 이 마귀로부터 벗어나서 하늘나라로 가신 예수님의 마음이 주파수를 가지고, 즉 특정한 주파수로 공명되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 우리 인간 속에 들어온다는 겁니다.
* 저항과 증폭 !!
그렇게 오게 되면, 여기서 무엇이 일어나느냐 하면, 저항이 일어난다는 말이죠. 하나의 진동이 고유 주파수를 가지기 위해서는 저항이 있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전자기학적으로 보면, 그 저항이 증폭이 된다는 말이죠. 그런 증폭이 되지 않으면 전류가 먼 데까지 갈 수가 없는데, 그것을 발전기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발전기가 증폭하는 방법은, 저항을 만들어서 그것이 자기에게 쌓이고, 또 그것을 다시 자기가 끌어당겨서 내놓고, 그렇게 하면서 점점 더 일정한 특정 주파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죠. 그래야 전파를 쏠 수 있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 속에 저항이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저항이 있으면,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겠습니다. 주님의 성령이, 그게 주파수이니 진동이라는 말이죠. 그 진동이 우리에게 오게 되면, 우리 안에서는 그냥 곱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저항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렇게 저항이 생기면, 성령께서도 근심을 하신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근심을 하시면서 또 찾아오고, 근심을 하시면서 또 찾아오고, 그렇게 되면 결국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주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일치되는, 그런 주파수가 형성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이 약한 사람에게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그렇게까지 고맙지가 않다는 말이죠. 물론 믿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고, 일단 믿기는 믿지만, "성령이 무슨 의미가 있어?"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령이 오게 되면, 주님이 보시기에는 이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주파수, 즉 진동이니까 그 주파수 안에서 뭔가 의미가 되지만, 주님이 보시기에 주파수 바깥에는 무엇이 된다는 겁니까? 무의미가 되어버린다는 말이죠.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을 가지고 오게 되면, 우리 속이 비어있는 상태가 아니고 마귀가 들어있으니까, 우리는 말씀에 대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댄다는 말이죠. 주의 말씀이 달콤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듣기를 싫어한다는 겁니다.
* 특정 문양의 패턴 !!
여러분, 어떤 판 위에 쇳가루를 놓고 그것을 흔들면 어떻게 됩니까? 거기서 일정한 패턴의 모양이 비치는데, 그런데 그 패턴이 항상 바뀐다는 말이죠. 더 센 것이 오면 그 모양도 더 자동적으로, 그것이 무질서한 게 아니고 특정 문양의 패턴을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그러한 모양새가 나오듯이, 우리가 말씀을 받을 때마다, 신앙생활을 할 때마다, 그때그때마다 새로운 특정 패턴이 나오는데, 그 패턴이 어디를 찾아가느냐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받았던 그 마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의 그 마음과 합치가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조절해 나가신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의미가 있기 때문인데, 그것이 사도행전 4장 31절 말씀이라는 말이죠. 즉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 여러분, 살림살이가 나아졌습니까?
끝으로 이 질문을 하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할 때 하늘과 땅까지 진동이 일어났는데, 그래서 이들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까? 아무런 염려가 없었습니까? 걱정거리가 없었습니까? 가정이 화목했습니까?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게 매우 중요한 질문인데, 여러분이 답변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답변을 해야 이 강의를 마칠 수가 있는데 말이죠(ㅋㅋ). 어떻게 하나님께서 도와주워서 살림살이가 나아졌습니까? 대통령이 바뀌고 15만원을 받았는데, 어디 좀 나아졌습니까?
분명히 달라진 점이 있는데, 어떤 점이 달라지는고 하면, 이전에는 자기가 교회에 다니고 말씀을 듣고 했을 때,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으면 마구 짜증이 올라온다는 겁니다.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어? 거짓말이야" 라고 하는데, 전도연이 나온 '밀양' 이라는 영화에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온다는 말이죠.
예수님을 믿어도 가정이 어렵고 힘들면, 그럴 것 같으면 예수님을 믿을 이유가 무엇이 있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반복이 되면, 즉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계속 성령을 보내서 조정하게 되면,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내가 받은 사랑에 비하면 우리 가정이 파탄이 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오히려 너무나 마땅한 거야" 라고 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래야 성경에 보면 "처나 자식이냐 나보다 사랑하는 자는 합당치 않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말씀이 생각나면서, 그 말씀에 자기 자신을 비추어보니까, 그동안 자기가 살면서 구축했던 것을 모두 다 버리고, 하루 빨리 얼른 떠나야 될 입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 살았다는 겁니까? 자기 구조, 즉 자기가 평생 모아놓은 것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을 해댔는지 모른다는 말이죠.
그런데 나중에 주파수, 즉 진동수가 딱 맞게 되니까 어떻게 나옵니까? "주여, 소원이 있습니다. 어서 이 땅을 떠나게 하옵소서. 나는 떠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라고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성도에게 주어진 자유라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성령이 임할 때 고난조차도 주님이 감당한 것처럼,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한 것처럼, 저희들도 모든 일에 대해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성령을 받은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5,09,07 오전 12시에 마침.
Everyone, is your living b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