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메시아의 일에 나서시면서 첫 번째로 만난 자가 마귀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이미 이 세상은 마귀의 권력 아래 놓여져 있는 형편이었다. 자기 구역에 들어온 예수님을 마귀가 보고만 있을 리 없다. 마귀는 자기의 통치성을 계속 유지시켜 나가면서 예수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즉 마귀가 인간을 통치하는 방식과 방법을 예수님이 그대로 수용해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민중들을 떡으로 먹이고, 기적으로 민중들의 종교 욕구를 만족시켜 주고, 지금까지의 인간 문화와 문명의 영광성을 그대로 수긍하고 긍정하는 분위기 안으로 예수님을 끌어딩기고 싶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오직 '말씀' 성취만 고집한다. 즉 말씀으로만 지배되고 말씀 성취에 의해서 새롭게 창조되는 새 세계를 위하여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 자신부터 말씀 성취가 이 지상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곧 '죽음' 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악마가 통치하는 세상에서 잔인하게 거절당하고 죽어야만 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민중들에게 무엇을 제공하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모든 것을 빼았는 분인 것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가족을 빼앗고, 소유를 빼앗고, 명예와 지위와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아 버리고, 이 세상 전부를 심판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인 것을 민중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다.
그러나 마귀가 만들어 놓은 종교는 민중들에게 그런 식으로 교육해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와도 같아서 열심히 떼쓰고 기도하고 겸손하게 신앙생활에 열심 내고 윤리적인 마음씨를 가지고 있으면, 항상 칭찬하고 복 주는 하나님으로 소개해 왔었다. 즉 빼앗는 분이 아니라 더욱 주시고자 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이었다.
구약성경 옵기에서는 옵이라는 신앙인을 중심으로 이러한 구분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사단과 하나님의 차이는 무엇인가?
욥의 친구들의 주장은 한결같이 하나님은 바르게 살면 북을 주신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욥의 생각은 그들과는 달리 의인에게도 하나님은 재앙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들어서 하나님은 사단 앞에서 욥의 신앙을 칭찬한 것이다.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난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고난을 배제한 채 공의로움과 정의로움을 연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주셔야 의로운 하나님이지 모든 것을 빼앗는 분이 어떻게 바른 하나님일 리가 있느냐는 것이다.
빌닷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에 대해서 크게 오해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5-7) 바로 이런 점이 사단이 그 동안 인간 세계의 민중들에게 심어 준 종교관이요 하나님관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히 몇몇 사람들의 적극적인 정치력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민중들의 비호응 속에서 그 가치성을 짓밟힌 가운데 쓸쓸하게 세상을 하직하신 것이다.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홀로 하나님 된 분으로 사람에게 버림받으신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내용은 지금까지 민중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하나님과는 전혀 판이하고 낯선 것이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이 세상에 의가 없기 떄문이다. 의라는 것은 인간 속에서 더 이상 나올 수가 없다. 이미 죄가 왕으로 군림하여 모든 인간의 영혼을 압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란, 반드시 의로운 심판이 먼저 주어진 후에 그 의로서 이미 선택된 자를 새롭게 구원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이 죽음과 이 부활은 늘 반복되는 십자가 사건으로만 가능하다. 이 일은 성령의 소관이다. 참된 성도는 항상 주님께 모든 것을 빼앗긴다. 그리고 그 빼앗긴 자리에서 주님의 생명으로 채움을 당하는 자이다.이것만이 바른 교회이다.
-이근호 저 '기독교의 허상1' 212쪽 '하나님과 사단의 차이'
'만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8/23-분노를 드러내세요 하나님께 (0) | 2025.08.23 |
|---|---|
| 8/22-사랑밖엔 난 몰라 (3) | 2025.08.22 |
| 8/21-참된 기독교 (0) | 2025.08.21 |
| 8/20-고후4:18 (0) | 2025.08.20 |
| 8/19-남 탓하지 말고,불평하지 말고 (1) | 2025.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