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하고는 상대할 가치가 없지요. 가치가 없기 때문에 상대가 어떤 사람이 오든 내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내가 그 사람에게 보여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받은 사랑뿐입니다. 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엔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요한일서에서는 이렇게 표현했어요. 네가 형제를 미워하면 곧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 요한일서 이야기는 지키라고 준 말씀이 아니고, 못 지킨다. 내 개별적 자아의식으로서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그런 말씀으로 다가오시면서, 다시 한 번 네가 밟을 때마다 지뢰 터지듯이 잘난 네가 늘 팡팡 터져버려라.
그러면 남는 것은 오직, 사랑밖엔 난 몰라. 깨어지지 않는 내가 깨어지도록,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사랑을 날마다 지뢰처럼 맞닥뜨리게 하는 이것조차도 하나님의 사랑 스케줄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의도적으로 그런 사랑과 환경을 몰아세우신 거예요.
마태복음 3장 16-17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이제 여러분들은 성경 전체 뜻을 다 알았죠? 성령께서는 아버지의 모든 깊은 뜻을 다 알게 하셨기 때문에 성령 받은 사람은 다 알아요. 다 안다는 것은 성경구절을 다 안다는 것이 아니고, 전체 프레임을 다 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스케줄이 어떻다는 것을 다 아는 거예요. 아는 상태에서 비로소 이 말씀이 이해가 돼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뭡니까? ‘하나님은 자기들의 팀워크를 자랑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밖에 모르는구나.’ 그렇게 이해가 되죠.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성부, 성자, 성령 3인조가 드디어 자기들끼리의 사랑관계를 개시했구나. “비둘기 같이 내려” 또 비둘기 같이 내려와서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끝!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만의 만족스러운 세계 건설에 도저히 끼어들 수 없는 예수님의 자기 공로를 담는 사랑의 그릇으로 지독한 질투에서 나온 사랑을 일방적으로 담아서 하나님의 사랑의 그 공간에다 백성으로 영원한 영생이라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추방된 땅에 있었던 영생나무의 영생을 맛보도록 조치를 해놓고 잠가버려요.
쥐나 개나 오지마라. 올 이유가 없어요. 주님이 찾아오지 않으면 올 이유가 없어요, 주님의 영이. 딱 걸어놓고 이 사랑을 모독한 자에 대해서는 질투심으로 “지옥이나 가라”고 마귀한테 명령하는 것. 이것이 고린도전서에 나타나 있고 성경 전체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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