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

일곱 교회

아빠와 함께 2025. 6. 8. 18:20

일곱교회 250608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의 하나님의 말씀은 밧모 섬의 요한. 요한이라는 사람은 예수님이 부활할 때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을 때 예수님이 찾아갔어요. 예수님이 찾아가서 베드로하고 예수님 요한이 있을 때 찾아가니까 누가 놀랬겠어요? 찾아가 예수님이 놀랐겠어요? 아니면 제자들이 놀랐겠어요? 제자들이 깜짝 놀래가지고 "예수님. 절 찾아왔어요?" "그래. 니 찾아왔다." "아이고. 예수님 이렇게 우리는 주님 버렸는데 주님이 친히 찾아주시니. 참 고맙긴 하는데 이렇게 찾아오실 이유가 뭡니까?" 이렇게 하니까 이렇게 묻지도 않았지만 “이제 야들아. 이제는 내 제자가 살아야 돼. 내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이제 너가 그 이야기를 해야 된다고. 알겠지?” 집에 가서 그 이야기하세요.

근데 우리 예수님이 날 찾아온 예수님이 죽었다가 이제 살아났어. 그걸 전하라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이 사도들에게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왔어요.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린 사람입니다. 우리만 버렸다고 서로 후회하지 하지 마세요. 사실은 제자들도 다 버리고 주께서 다시 다 찾아와서 구원해 주는 겁니다. 절차가 그런 거예요.

찾아와서 이제 하는데 전했지요. 전하니까 세상사람 나라가 가만두지 않고 “야. 이거 이상한 이야기한다.” “그거 누가 이야기해?” “예수님의 제자인데 요한이라는 사람이 전하더라.” “그 사람 당장 잡아.” 잡아서 지중해 연안에 있는 밧모 섬에다가 이 요한을 가두고 말았어요. 이 섬에 가두었어요. 섬에 가두니까 사도 요한이 “너희들이 날 가두면 내가 못할 줄, 내가 안 전할 줄 알았지. 나는 글로 쓸 게.” 하고 글로 썼어요.

사실은 그 글은 본인이 쓴 글이 아니고 예수님이 천사한테 이야기했고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이야기해서 쓴 글이 요한 계시록이라는 글을 썼어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딱 이렇게 글로 섰어요. 끝났어. 너희들 끝났어. 끝났어. 이 책 안으로 다 이 책대로 이루어질 거야. 그게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딱 보는데 그 쓰고 났을 때에 갑자기 이제 주님이 나타났어요. “잘 쓰고 있나?” “예. 잘 쓰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영광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어요.” “그렇지. 나를 좀 시사해 봤나?” “그래요. 시사해 봤어요.” “해보니 어때?”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지. 이제 그런데 내가 가만히 보니까 소위 교회라는 것들이 말이야. 교회가 교회답지를 못해. 내가 니 편지 안에 집어넣어. 이런 이런 교회가 문제 있다고.” 그래서 일곱 교회가 지금 터키 지금 튀르키에 지방에 있는 교회가 7군데 있었어요.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데비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이 교회 7군데가 있는데 7군데를 주님께서 택해가지고 그 교회마다 문제점 하나를 문제점 여러 개를 다 끄집어내요.

에베소 교회는 “니가 첫째 사랑을 버렸다. 처음 사랑을 니가 버렸다. 처음 사랑” 그리고 서머나 교회는 “니가 교회를 다니면서 우상이 있는 데서 니가 교회 다니기가 상당히 니가 힘들지? 서머나 교회. 내 부탁한다. 다른 사람들은 우상 섬기더라도 니는 안 섬기면 니가 죽지?” “죽어요.” “죽도록 충성해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이 있을 것이다.” 버가마 교회에서는 역시 그 사탄의 제단이 여기 있었어요. 두아디라 교회에서는 이거는 사탄이 제단이 아니고 인간 마음속에 교회 안에 인간들 마음속에 악마가 이렇게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이제 살펴보라고 이야기하고 그런 걸 쭉 전한 거예요.

사데 교회는 뭐냐 하면 사데 교회는 “니가 나는 이제 살았다라고 하지만 이제 구원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니 죽은 자야. 니가 평가해서 되겠어? 내가 평가하지. 니 죽은 자야. 어디서 산 모습이 어디서 그런 모습이 나오냐? 니 죽은 자야.” 그 다음에 이제 빌라데비아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는 이제 책망이 없고 그 대신 격려와 칭찬을 해줬어요. “빌라데비아 교회. 너는 참 잘하고 있구나. 근데 고생이 많다. 나 예수님 때문에 고생 많다. 고생 많아도 영광인 줄 알아라.” 하고 이렇게 했고 이게 빌라델비아 교회 이게 이상한 교회 이거 교회라고 보면 안 돼요. 하여튼 예를 들어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거 아주 바르게 한다. 이 그림에서는 이렇게 돼 있는데 여기 보세요. 남자. 교회 올 때 츄리닝 입고 안 오죠? 여성 집사님들 보세요. 단정하게 오지요. 또 성경책도 어떻게 합니까? 교회 놔두고 왔다갔다 하는 게 아니고 옆에 갈 때 올 때 성경 보배처럼 끼고 오죠. 아주 단정하게 오잖아요. 단정하게. 꼭 여호와 증인 같아요. 지금 이러한 겉모습이 폼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이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렇게 착실한 것은 사람이 착실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이겨낼 수 있는 그 힘을 이것은 이고 이것은 가짜고 이건 진짜라고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견딜 수 있는 거예요.

그 다음에 이제 마지막 교회가 뭐냐 하면 라오디게아 교회인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거는 교회가 너무 잘 살아요. 너무 잘 사니까 너무 까불고 해퍼. 우리는 다 부자다. 복 받아서 다 부자다 이렇게 까불고 있으니까 주님께서 가만둘 수가 없지요. 니가 그렇게 잘 먹고 잘 사는데 얼마나 니가 속이 썩었으면 자랑할 게 그 세상 것 가지고 자랑하느냐? 니가 보기에는 지금 이게 라오디게아 교회 같은 경우에는 눈 질병에 좋은 온천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이에요. 사람들이 눈 고치려고 많이 오는데 안약도 바르고 그러니까 교회에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눈 고치려고 하지 말고 니 마음눈이나 고쳐라.” 이런 식으로 대놓고 그렇게 비난을 했습니다.

비난을 하면서 이제 주님께서 끝으로 하신 말씀이 전체 일곱 교회 보고 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하면 교회가 잘 된다가 아니라 사실 교회는 내 손 안에 있다고 했어요. 주님이. 내 손 안에. 내 손 안에 있기 때문에 진짜 내가 만든 교회는 어떤 경우라도 실패함이 없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우리 교회 몇 명이고 뭐 어떤 데 가면 다른 교회 있고 이런 거, 니 교회 내 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 손 안에 있는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가 왜 굳건하게 있느냐? 마지막에 요한계시록 2장 3장에 7 교회 마지막에 이런 게 있어요. 내가 문을 두드리면 그 진짜 교회는 문을 열고 그 다음부터는 혼자 사는 게 아니고 주님과 함께 더불어 먹고 더불어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가 이 세상에서 어떤 고생을 할지라도 사도 요한에게 찾아온 주님처럼 내가 영광 중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거니까 비록 니가 죽는다 할지라도 어떤 고난이 온다 할지라도 니 혼자 있냐? 내가 함께 있잖아. 내가 너한테 찾아왔잖아. 그러니까 자꾸 나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같이 있다고 생각하고 같이 있다고 그런 눈으로 그런 쪽으로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럼 같이 있다는 게 뭘까요?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이에요? 한 집에 두 사람이 있다. 그러면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입니까? 시키는 사람이 주인이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고 살면 종이 되겠죠. 이처럼 같이 있다는 것은 주님은 우리의 주가 되시고 우리는 주님이 이제는 시킨 대로 하면 종이 된다는 이 기쁜 관계로 같이 있는 게 바로 이게 바로 교회라는 거예요.

앞으로 이 땅에 살면서 왜 주님이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고 내가 아니라 주님이 주인인지를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매 순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인이 아닌 것을 우리가 언제쯤 알겠습니까? 내 인생 내 미래 마지막까지 이미 주께서 다 정해 놓았다는 것을 알고 이제는 혼자 살지 말고 주님과 더불어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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