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읽으면서

권을 쓰지 않고 참는다

아빠와 함께 2024. 1. 2. 11:30

고린도전서 9장 12절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 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권리)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다른 사람처럼 나도 결혼할 수 있고…, 옛날에는 결혼하면 요즘과 같지 않아서 하나의 비서, 매니저 역할, 충실한 종을 하나 갖는 걸 의미하죠. ‘내가 다른 사람처럼 여자 비서 하나를 둘 권한이 없겠느냐? 하지만 난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복음을 위해서다.’ 그걸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뭐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부득불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전한 것이 아니고 주께서 그렇게 상황을 조성하게 하는 것, 조성하게 하는 이유가, 내가 상을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무슨 상? 내가 행해서 내 것으로 돌아오는 상은 일체 내게 없게 만드는 그것이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는 상황이에요. 복음에 장애가 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천국 갈 수 있는 조건은 뭐냐?

어떤 소유도 내 소유가 되지 못하는 작용이, 그 힘이 복음에서 나온다는 거죠. 이걸 아주 간단하게 줄여버리면 이런 겁니다. 고생은 되게 했는데 일한 것은 하나도 없게 만들어 버려요.

고생들 되게 해요. 그런데 내가 일하지 않았어요. 내가 일하지 않았다는 말은, 내가 일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가 책임질 필요는 없다, 이 말이에요, 아무것도. 일한 게 있어야 책임을 지죠. 일한 게 있어야 책임을 지죠. 아무것도 없어요.
그거 왜 그러냐면요?

항상 우리가 현재-현재-……, 가 연속되면서 나중에 구원받을 때도 구원받는 순간이 현재가 되는데 현재가 되면 그 과거에 있던 모든 것이 현재의 취지를 위해 재소집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건 누가 한게 되느냐 하면, 주님이 한 게 되어서 일체 우리가 책임질 게 없어요. 책임진다는 그게 복음의 방해자예요. 내 인생에 대해서 책임지겠다는 그거 자체가 수상한 거예요. 지옥 갈 사람이에요.
■그래서 구원받는 사람의 특징이 뭐냐면, 윤리 도덕의 게껍질을 뚫고 나오는 상황 고백이, 자백이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윤리 도덕적으로 나 이렇게 살았다, 가 아니라 그걸 깨부수면서 구멍을 뚫고 ‘내가 이런 고백을 왜 하지? 미친 거 아니야?’ 이런 생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불가능성, impossible. 내게서 나올 수 없는, 나를 지키는데 몰두하는 내게서 도대체 나올 수 없는 고백인데 그게 상황 고백이에요. ‘내’가 아니라 내가 속해있는 이 상황이 이런 상황이었다, 상황 고백이 나오는 현상이 일어나면 합격입니다. 내가 뭔데, 또 합격이라고 함부로 할 수는 없지만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는 거거든요, 사람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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