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대구강의] 지옥의 하나님 21 - 주님 경유
23,02,20 강의 : 이근호, 정리 : 구득영
* 메시야는 이러이러해야 한다 !!
오늘은 교재 91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여기에 '정치적 제안' 이라고 되어있는데, 이것도 역시 마귀가 한 제안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마귀가 왜 자꾸만 예수님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까? 그것은 이 땅에 맞는, 즉 악마가 인간에게 유포한 메시야에 맞게 살아가 달라는 것인데, 예수님에게 그런 요구한다는 말이죠.
인간들은 이미 틀을 잡아놓았는데, "메시야는 이러이러해야 한다" 라는 겁니다. 그게 3가지인데, 먼저 경제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하는데, 즉 "경제여건이 사람다움을 결정한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게 마귀의 주장인데, 정말로 전혀 틀린 소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젊은 사람들이 성경에 관심이 없는데, 왜냐하면 경제문제가 확보되지 아니하면 나중에 사람구실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지금 돈 벌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 라는 것인데, 이게 마귀가 한 소리라는 겁니다. 젊었을 때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말고 부지런히 일해서 벌어놓아야, 나이가 들어도 남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다는 말이죠.
사람들이 다 여기에 대해서 이구동성으로 동의하는데, 그렇지요?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 속에 마귀가 동일한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나이가 들어서 돈이 없으면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내가 젊었을 때 좀 벌어놓았어야 하는데" 라고 한다는 말이죠.
* 늙어서 돈이 없으면 추잡해진다 !!
"늙어서 돈이 없으면 사람이 ( )다" 라고 한다면, 여기 ( )속에 무엇이 들어갈까요? 사람이 추잡해진다는 겁니다. 남들에게 폼을 잡는 것은 있고, 그런데 집구석에는 돈은 하나도 없고, 그러면 자기가 자기를 싫어하게 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남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 척을 하면서 손을 벌리는, 그런 자기의 이중적인 태도가 너무 싫다는 겁니다.
그러니 젊어서부터 늙어질 때까지 자기의 자존감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그 바탕에는 무엇이 깔려야하는고 하니, 남들에게 꿀리지 않는 수입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여기에 대해서 누구나 다 동의를 하는데, 이게 바로 마귀정신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마귀가 얼마나 인간을 철저하게 다루어왔는지 모르는데, 그것을 체험하라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이렇게 살려주고 있다는 말이죠.
하나님이 은혜로 보내주신 분이 메시야인데, 그 메시야는 첫 번째로 경제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그것을 원한다는 말이죠. 그게 왜 첫 번째인고 하니, 그렇게 되어야지 사람구실을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종교와 같은 것은 여유가 있을 때의 일이라는 말이죠.
그런 것은 나중에 숨을 좀 쉴 때 하면 되는데, 즉 죽기 전에 해결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때 성경말씀에 몰입하게 되면, 돈은 돈대로 벌고 영혼문제는 또 그렇게 성경의 복음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육과 영의 문제를 모두 다 해결할 수가 있다는 것인데, 이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은 경제문제라는 겁니다.
* 경제, 종교, 정치를 보장해주는 메시야 !!
이것을 피라미드식으로 그려보면, 제일 밑에는 경제문제, 이게 해결이 되어야 자식에게 무시를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부모자식은 서열의 문제인데, 부모가 우선이고 자식은 나중인데, 그 서열이 가정과 가문을 유지시켜주는데, 그런데 돈이 없으면 그게 뒤집어진다는 겁니다.
맏이가 차남보다는 서열상 분명히 위인데, 하지만 그 맏이인 장남이 그만 돈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만 그 집안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만다는 것이죠. 그래서 동생들부터 "저 인간이 또 왔나? 무엇을 가지고 가려고 왔지?" 라고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종교문제이고 세 번째가 정치문제인데, 이것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순서가 다르다는 말이죠. 첫 번째가 경제문제인 것은 둘 다 같은데, 누가복음은 두 번째로 권세, 즉 정치문제가 나오지만, 마태복음은 종교문제라는 겁니다. 우리 교재는 마태복음의 순서를 따르고 있기에 두 번째로 종교문제가 나오는데, 이것은 순서를 따지지 말고 같다고 보면 된다는 말이죠.
아무튼 그렇게 첫 번째 경제문제, 두 번째 종교문제, 세 번째 정치문제를 모두 보장해줄 때, 그러면 그것은 인간들이 원하는 메시야가 된다는 겁니다. 즉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교회에서 이것을 팔아먹으면서 장사를 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마귀가 가르쳐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인간들의 소원을 담은 엉터리 하나님이라는 말이죠.
* 씻김굿의 세상 !!
어제 오후시간의 설교제목이 '씻김굿' 이었는데, 즉 이미 온 재앙은 떨어지게 하고 앞으로 다가오는 재앙은 차단하겠다는 겁니다. 설교제목치고는 참 유별나다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런데 이러한 본능을 우리 인간들 마음 속에 마귀가 이미 집어넣어 놓았다는 말이죠.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늙어서 돈이 없으면 사람은 추잡해진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 사람이 추잡해지지 않으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종교적으로 제 아무리 거룩하고 정치적으로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해도 소용이 없는데, 역시 자기 호주머니에 돈이 많이 있어야 사람이 덜 추잡해진다는 겁니다. 이것은 아무도 부정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짜 인간인데, 하지만 자기가 자기를 먹여서 살려야하기 때문에, 가짜든 진짜든 버릴 수가 없다는 겁니다. 어제 우리교회 사이트에 "천국에 가면 우리 몸이 어떻게 됩니까?" 라는 질문이 올라와서 오늘 아침에 답변을 해놓았는데,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으로 말이죠. 흙에 속한 몸이 있다면, 나중에 하늘에 속한 몸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
* 목사님, 성경에서 말씀하고있는 기독교적 죽음관은 무엇인가요? 성경이 말하고 있는 땅의 장막집과 하늘에 있는 집은 어떤 연결고리가 있나요? 기독교인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고후 5: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 답변 - 인간의 원형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영광된 육체가 모든 율법을 다 이룬 그 결과로 얻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지체가 되는 성도는 이 영광된 육신을 바뀌어집니다. 변화산에서의 모세와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9절의 말씀처럼 흙에 속한 형상(육체)가 하늘에 속한 형상(육체)가 됩니다.
(고전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
* 나는 가짜다 !!
왜냐하면 인간의 원형은 따로 있는데, 우리는 가짜이기 때문에 원형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죠. 그러면 누가 원형입니까? 예수님이 원형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나는 진짜인데, 그 진짜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라고 하면, 질문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우리는 가짜인데 진짜 인간은 어떤 영광을 받습니까?" 라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늘의 영광을 받는데, 그게 변화산이라는 말이죠.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해와 같이 빛났다는 겁니다. 사실은 해보다 더 밝게 빛이 났는데, 그게 빛의 세계라는 말이죠.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있는 곳이 빛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떻다는 겁니까? 이 세상은 어둠의 세계라는 겁니다.
이번에 수련회에서 요한복음 1장을 하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이 어둠에 세계에서는 인간은 가짜인데, 즉 "나는 가짜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이것을 인정하면, 그게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추잡해진다는 것은 곧 마귀의 생각이구나. 그러니 고쳐야겠다" 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다는 말이죠.
우리 인간이 "경제적인 여건이 되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라는 것을 무슨 수로 고칩니까? 도저히 고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고쳐보려고 불교나 천주교에서는 무소유를 주장하고 구제를 강조하는데,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도 안 된다는 것이죠. 러시아 작가인 톨스토이는 실제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농민들에게 나누어주고 했는데, 물론 그래도 부자였는데 말이죠.
자기가 아무리 청빈하게 산다고 해도, 인간의 그 기본적인 죄가 없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은 경제문제와 종교문제와 정치문제에 얽매여 있는데, 여기에서 마귀는 실질적으로 무엇을 노리고 있는고 하니, 우리가 가짜 인간이라는 것이 들통나지 않도록 하는 것, 여기에 주력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갈라디아서 2장 16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여기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라고 하는데, 이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말이죠. 이것은 무엇을 전제로 하는고 하니, 사람이 현재 의롭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면 의롭지 않는 자가 완벽과 완벽함을 찾고 있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90퍼센트 정도로 의롭게 되면 하늘나라에 넣어줍니까? 99,99퍼센트도 안 된다는 말이죠. 하늘나라는 100퍼센트 완벽하고 완전하게 의로워야 하는데, 아니 100퍼센트도 모자라는데, 그야말로 의가 차고 넘쳐야 한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해서 이미 이것을 알았는데, 완벽하게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들은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그리고 자체적으로 경쟁을 했다는 겁니다. "누가 더 의롭고 완벽에 가까운가?"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도바울이라는 겁니다. 사도가 되기 이전에 사울 시절에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려고 했다는 것이죠.
*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 !!
그래서 빌립보서 3장 6절에 보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라고, 그렇게 자기를 소개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보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즉 "죄인 중에서 나보다도 더 죄인이 있으면 나와봐" 라는 겁니다.
(빌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니 율법으로 흠이 없다고 하던 자에서 졸지에 죄인 중에 괴수로 바뀌고 말았는데, 이것을 제가 아까 이야기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나는 가짜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왜 가짜입니까? 물론 자기에게는 자기가 진짜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가짜라는 겁니다. 하늘의 안목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은 받아주지 않는 가짜라는 말이죠.
그러면 받아주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우리 안에 다른 분이 들어오시면 된다는 겁니다. 정말 쉽지요? 우리 안에 예수님이 오시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우리가 진짜라서 오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가짜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신다는 말이죠.
교회를 50년을 다니고 60년을 다녀도 이것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데, 아니 전혀 없는데, 그래서 "진짜 하나님이여, 진짜인 내가 진짜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체가 완전히 엉터리인데, 왜냐하면 자기가 진짜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질문을 하고 있다는 말이죠.
* 복음이란, 가짜에 진짜가 들어오는 것 !!
하지만 성경은 그것이 아닌데, 사울에서 사도바울로 바뀔 때는 그런 것이 전혀 아니었다는 겁니다. "나는 탈락이구나" 라는 것인데, 즉 "내가 구원을 받겠다는 것은 전혀 주제파악이 되지 않아서 나온 나의 욕구였구나" 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은 너무나도 간단한데, 가짜에 무엇이 들어온다는 겁니까? 가짜에게 진짜가 들어오는 것, 그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복음이라는 겁니다. 자기의 이름은 분명히 가짜인데, 그러나 자기에게 들어오는 주의 이름은 진짜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야곱은 가짜인데,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들어온다는 겁니다. 물론 자기 이름은 멀쩡히 있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위해서, 즉 자기 체면과 위신을 위해서 산다는 말이죠. 그런데 거기에 무슨 일이 발생합니까? 주의 이름이 들어온다는 겁니다. 주의 명예와 위신과 희생이, 즉 주님의 행하심이 들어온다는 말이죠.
그렇게 되면 주님은 무엇을 보고 우리를 건져내시는고 하니, 우리 자신의 이름이 아니고, 즉 우리가 율법을 지키고 행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우리 속에 들어있는 주님의 다 이루심, 그것을 보고 끄집어내신다는 말이죠.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복음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 우리 힘내자. 파이팅 !!
이것이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인데, 마귀는 자꾸 우리를 붙들고 뭐라고 합니까? "열심히 해라. 이번에 집안 일이 꼬이는 것은 네가 기도를 하지 않고, 성경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어. 이번에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않았지? 우리 열심히 하자. 인간답게 살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가 원하는 건강과 돈을 주시고, 자식도 잘 되게 해주신다. 우리 힘내자. 파이팅!",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죠.
물론 교회에서 목사가 "파이팅!" 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예배 마지막에 하는 축도가 그런 의미라는 겁니다. 즉 "이번 주도 열심히 하시면 복을 받습니다. 믿습니까? - 예, 믿습니다" 라고, 그렇게 단합대회를 한다는 말이죠. 무슨 다단계 회사도 아니고, 사실 다단계 회사가 맞는데, 그래서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그게 성경에 나오지만, 악마의 이야기라는 것이죠.
바로 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사도바울은 그 이전에 마귀에게 붙잡힌 인생을 살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살게 하셨다는 말이죠. 이것은 사도바울의 입장이나 오늘날 우리 입장이나 동일한데, 사도바울이 사도가 되기 이전에 유대교를 믿었는데, 그 유대교가 무엇인고 하니까,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 라는 종교라는 말이죠. 즉 말씀을 지켜서 구원을 받겠다는 겁니다.
* 유사 유대교 생활 !!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교회에 오기 전에도 복음을 모르고, 교회에 와서도 모른다는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알기 전에는 무슨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고 하니, 유사 유대교 생활을 할 수밖에는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게 타고난 본성이니 말이죠.
유대교도 마귀의 종교이고, 우리의 삶도 역시 마귀의 삶이니, 서로 죽이 맞다는 겁니다. 그것도 교회에서 말이죠. 그래서 "목사님,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라고 하면, "예, 이렇게 이렇게 하시면 복을 받습니다" 라고, 그렇게 서로 잘 통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가짜입니다" 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대화단절인데, 왜냐하면 생판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말이죠.
* 악마의 '유심칩' !!
지금까지는 기본적인 것을 했으니까, 이제부터는 약간 어려운 것을 해보겠습니다. "경제, 종교, 정치", 이것은 악마가 이미 우리 안에 심어놓았다는 말이죠. 외국에 나가면 휴대폰이 터지지 않아서 뭔가 휴대폰에 집어넣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유심칩'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물론 요즘은 그런 것도 필요가 없지 싶은데, 아무튼 이 유심칩이 바로 악마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악마가 우리 속에 집어넣은 것이 있는데, 즉 "우리 열심히 해보자. 너는 존엄성이 있어. 너의 목숨은 천하보다 귀해" 라는 게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나' 라는 것에 매달려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딸려간다는 말이죠. 즉 자기 가족과 자기의 지난 인생에 매달려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의 지난 과거, 자기의 흘러간 인생사를 기억하는 것을 '욕심' 이라고 하는데, 우리 조상인 아담이 바로 그 욕심을 내었다는 말이죠. 그 욕심으로 인해서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이 야고보서 1장에 나온다는 겁니다.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러면 그 욕심이 아직까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는 살아왔던 자기 이력, 즉 '나의 나됨'에 대한 집착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의미라는 말이죠. 그러면 우리가 이것을 버릴 수 있습니까? 없다는 겁니다. '나의 나됨'이 확고하게 굳혀져 있는데, 악마의 칩이 심어져 있다는 말이죠. 그게 욕심인데, 이 욕심은 가속도가 붙는 경향이 있어서, 한 번 욕심을 내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줄곧 내닫는다는 것이죠.
* 이런 여자와는 결혼하지 마세요 !!
어떤 이혼전문 변호사가 "절대로 이런 여자와는 결혼하지 마세요" 라고 하면서 남자들에게 3가지를 당부했는데, 그 첫 번째가 성형한 여자, 두 번째가 청소하지 않는 여자, 세 번째가 게으른 여자라는 겁니다. 그게 자기가 5만건의 이혼상담을 한 결과로 내린 결론이라는 말이죠. 물론 쌍꺼풀 수술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가 있는데, 그야말로 성형에 중독된 여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하고 싶은데, 그것이 쇼핑중독이라는 말이죠. 하루종일 인터넷을 보면서 신상을 찾아다니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4가지를 다 구비하고 있는 여자가 이 소리를 들으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겠습니까? 전혀 그게 아니라는 말이죠. 오히려 "그래, 나는 내 혼자 살 거야"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ㅋㅋ).
* 욕심은, 청산할 수 없는 나의 기억 !!
제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는고 하니, 그것이 바로 '욕심' 이라는 말이죠. 자기가 살아온 패턴이 있는데, 자기 얼굴을 성형하고, 집안 청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동안의 그런 자기 집안 분위기에 휩쓸려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혼을 할 때는 상대방의 집안을 살펴보고 한다는 것이죠. 물론 아무리 봐도 별 수 없지만 말이죠.
그러면 욕심을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청산할 수 없는 자기의 기억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생긴 것이 아니고, 이미 마귀가 집어넣어 놓았다는 말이죠. 그러면 여기에서 어렵다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어떻게 하면 일거에 이것을 바꿀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 거룩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의 내부에 있는 "경제, 종교, 정치" 라고 하는, 악마가 심어놓은 욕심의 종이 되지 않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느냐는 말이죠. 물론 우리의 힘으로는 바꿀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러한 경제와 종교와 정치의 반대말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거룩' 이라는 말이죠.
그게 우리가 방금 살펴본 갈라디아서 2장인데, 이 거룩을 '사랑' 이라고 할 수도 있고 말이죠. 그러면 이 거룩은 어떻게 얻어집니까? 썩은 우리가, 즉 가짜가 위에 올라갔다가 내려옴으로서 거룩이 생긴다는 겁니다. 이게 성경전체를 관통하는 원리 중의 하나인데, 즉 올라갔다가 걸러서 내려온다는 것이죠.
여기서 욥기 38장을 보겠는데, 1절에서 22절입니다.
(욥 38:1)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
(욥 38:12)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욥 38:13) 그것으로 땅끝에 비취게 하고 악인을 그 가운데서 구축한 일이 있었느냐
(욥 38:14) 땅이 변화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고 만물이 옷 같이 나타나되
(욥 38:15) 악인에게는 그 빛이 금한바 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욥 38:16)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욥 38:17)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욥 38:18)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욥 38:19)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욥 38:20)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
(욥 38:21)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 때에 났었나니 너의 연수가 많음이니라
(욥 38:22)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 하나님의 집을 경유하면 !!
하나님께서 욥에게 제일 먼저 이야기한 대목이 욥기 38장인데, 그 이전에는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앞에는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인간들의 이야기였다는 말이죠. 그런데 욥기 38장에서 당사자인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고 하니, 그게 바로 '처소' 이야기라는 겁니다.
12절에서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라고 하는데, 그러니 빛을 비추는 태양도 어디를 경유해서 나타난다는 말이죠. 16절에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라고 하는데, 물도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거쳐서 나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19절과 20절에서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 라고 하는데, 여기에 집이 나온다는 말이죠. 또 22절에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라고 하는데, 눈도 그냥 내리는 것이 아니고, 어디를 거쳐서 내려온다는 겁니다.
* 지식이 아닌, '지혜' !!
이것은 자연세계가 단순히 위에 내려온다는 차원이 아니고,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은 지금 지식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지혜를 말씀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식은 우리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혜는 하나님을 경유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지식은 우리 인간의 삶에 있어서 효율성이라고 하면, 반면에 지혜는 오히려 그러한 효율성을 파괴해버린다는 겁니다. 즉 "너 같은 가짜 인간은 없어져도 괜찮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 이 지혜는 하나님의 관점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것을 한 글자로 '집' 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즉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 어떤 더러운 인간이라도 하나님이 계시는 집을 경유해서 오게 되면 거룩이 되고, 그리고 그 거룩이 가짜 인간에게 또 하나의 칩이 되어서 박히게 되면, 그것이 악마의 모든 것을 이겨낸다는 말이죠.
* 다 이루었다 !!
방금 제가 이야기한 것은 욥기, 즉 구약인데, 이 욥기의 지혜가 신약으로 넘어오게 되면 복음이 된다는 겁니다. 구약의 지혜는 "이렇게 된다" 라는 것이고, 신약에서의 복음은 "다 이루었다" 라는 것인데, 이게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나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악마는 이 "다 이루었다" 라는 것이 인간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한다는 겁니다.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 자유란, '나'로부터의 이별 !!
그런데 성령에 의해서 이 "다 이루었다" 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나는 가짜 인간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인데, 그러면 '나'로부터의 이별이 가능하게 된다는 말이죠. 하지만 이 "다 이루었다" 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자기가 "다 이루었다" 라는 것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곧 삶의 스트레스라는 말이죠.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살아야하니 경제적 스트레스이고, 성화가 되어야하니 종교적 스트레스이고, 남들에게 꿀리기 싫으니 정치적 스트레스라는 겁니다. 그러니 악마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가 심어놓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도록 만듭니까?
악마는 이것을 잘 알고 있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이 땅은 하나님의 땅이라는 말이죠. 그 하나님의 땅에서 악마의 마음으로 살게 되면, 우리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스트레스라는 겁니다. 이 땅의 원리와 우리 인간이 욕심을 가지고 추진하는 원리가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균열이 일어나고 힘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 하나님이여, 이 세상이 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까?
이것을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이여, 이 세상이 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까?"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지금부터 이것을 한번 분석해보자는 겁니다. 우리 인간이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을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말이죠.
이것을 우리가 방금 공부한 것을 적용시켜서, 인간의 마음에 주목해보자는 겁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 안에는 기억이 들어있고, 그 기억은 욕심이라는 말이죠. 그 욕심이 잉태해서 죄를 낳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누구와 연결이 되어있는고 하니, '나'와 결부가 되어있다는 말이죠.
우리가 아는 바에 의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그런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이 작용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은 창세기 3장 15절에 의하면, 여자의 후손을 보내서 뱀의 후손을 작살내는 것인데, 그게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말이죠.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의 뜻은 악마를 박살내는 것인데, 그런데 인간 마음에는 이미 악마가 심어준 유심칩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은 균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합치가 되지 않고 벌어져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벌어진 틈이 바로 스트레스인데, 그래서 암에 걸리고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내막도 전혀 모르고서, 우리가 수시로 느끼는 그것이 바깥으로 툭툭 튀어나오게 되면, 그러면 그 표현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조금 전에 이야기한 것인데, 즉 "하나님이여, 이 세상이 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까?" 라고 하는, 바로 그것이란 겁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이것을 새벽기도를 하면서 첫 시발점으로 삼는다는 말이죠. 새벽기도회에서 목사는 설교를 하고 나서, "이제부터는 각자 기도하시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교인들은 어떻게 합니까? 인상을 쓰면서 "하나님, 제 인생이 왜 이렇게 꼬입니까?" 라는 것으로 기도의 발동을 건다는 겁니다. 그 다음부터 방언이 터지고 난리가 난다는 것이죠.
* 가짜 인간, 가짜 하나님 !!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과연 어떤 하나님입니까? 우리 인간의 자기 중심으로 만든 하나님이 과연 진짜 하나님일 수 있습니까? 자기가 가짜인데, 그 가짜가 기대하는 하나님이 과연 진짜 하나님일 수 있느냐는 겁니다. 당연히 가짜 하나님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자기가 한 달 전에는 절에 다니다가 이제 교회에 나왔다고 하면, 그러면 그게 차이가 날까요? 전혀 차이가 없는데, 왜냐하면 '나' 라는 것이 가짜이기 때문이란 겁니다. 간절히 빌고 있는 그 인간이 그 인간이라는 말이죠. 한 달 전이나 한 달 뒤나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런 인간이 찾는 하나님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말이죠.
* 형식 없는 주체 !!
이러한 '나'를 어렵게 표현하면, 그것을 '형식이 없는 주체' 라고 한다는 겁니다. 내용은 자기가 알아서 모두 채우고, 그리고 그 형식은 고정이 되어있지 않으니, 그것이 부처가 되던 하나님이 되던 상관이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소중한 것은 '나' 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엉터리이고, 그 엉터리 하나님에다가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정작 이런 사람은 세상에 대해서도 모른다는 말이죠. "하나님이여, 이 세상이 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까?" 라고 했을 때,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무엇인고 하니, 자기와 가까운 거리, 그런 가까운 현실을 세상이라고 본다는 겁니다. 즉 자기가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을 수집해서 '세상'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 나와 가까운 현실이 곧 세상 !!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단독주택에 살고 있고 자식놈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계속해서 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여, 이 세상이 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까?" 라고 했을 때, 자기가 원하는 세상은 무엇입니까? 자식이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잘 다니는 것이란 말이죠.
그러면 그 사람이 자기 옆집에 있는 나무의 나뭇잎이 몇 개인지 알겠습니까? 전혀 모르는데, 왜 그렇습니까? 관심사가 다른 것에 가 있다는 겁니다. 오로지 자기와 가까운 것에만 관심이 있는데, 그러니 그 사람에게는 자기 옆집도 너무나 멀다는 것이죠.
눈을 뜨면 분명히 밤하늘에 별이 있고 달이 떠있는데, 그런데 자기 자식이 취직이 되지 않으면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관심이 있는 것만 일방적으로 뽑아내서, 그것을 꽃다발로 만들어서 뭐라고 한다는 겁니까? 그것을 두고 '세상' 이라고 표현을 한다는 말이죠.
* 모든 것은 인연이다 !!
이것을 불교가 잘 알고 있는데, 그래서 불교에서는 세상의 더 범위를 넓혀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인연이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관계망'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나고, 저것이 일어나면 이것이 일어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모든 것이 그물코처럼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냥 좁게 보아서 "왜 이렇습니까?" 라고 하지 말고, 넓게 보아서 "아하, 내가 모르는 저쪽의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인연이 되어서 내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 라고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교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이라는 말이죠.
---------------------------
※ 인연(因緣) -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또는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을 뜻한다. 비슷한 말로는 연고라고도 한다. 불교의 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인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고, 연은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다. 비슷한 말로 유연이 있는데, 불교의 원인이 되는 결과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석가모니는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이 합하여져서 생겨나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는 말을 남겼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여러 삶의 변수나 사건의 결과로서 맺어진, 사람 혹은 사물과의 '관계'나 '연줄'의 의미로 쓰이는 일이 많다. 운명과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불교에서의 인연은 "인연(인과)일 뿐 자성이 없으므로 집착할 것이 없다"에 가까운 맥락으로 쓰이는 반면, 현대 한국어에서는 "인연이므로 하나로 맺어지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는 의미에 가깝게 사용되고 있다. - 나무위키백과
---------------------------
* 3,000원의 위로 !!
이번에 튀르키예에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 전화 한 통이면 3,000원을 보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무리 돈을 아끼던 사람도 전화를 걸고 한다는 말이죠. 왜 그렇게 하는고 하니, 그렇게 지진이 일어나서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고 하는 것을 보면서, 잠시 무엇을 잊어버리는 겁니까?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경우를 접촉하는 순간, 자기가 불행하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는 행복하고 여기게 되는데, 그래서 그 행복의 값으로 3,000원을 보낸다는 겁니다. 전화를 몇 번 더 걸 수도 있고 말이죠. 이것이 일종의 종교마약과 같은 것인데, 그렇게 함으로서 "아하, 나는 행복하구나" 라는 것이 남게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사도바울에 의하면 그것은 전혀 해결책이 아닌데, 사도바울은 "아하, 나는 행복하구나" 라는 것이 아니라, "나는 가짜구나"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종교적으로, 목사가 "여러분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십니까?" 라고 하는 것도 역시 마귀의 술책에 불과하다는 말이죠.
자기보다 더 못한 사람을 만남으로서 상대적으로 자기의 처지가 더 낫다고 여기는 것은, 물론 좋게 생각하면 위로가 되지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것은 자기보다 더 못한 사람들만 찾아다니면서 상대적인 우월감에 빠지는, 그런 일종의 취미생활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한 불행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래도 인생에 승리한 대목이 있구나" 라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싶은 심보가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여전히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데, 그런 것에 우리가 속아넘어가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만나면서 하루하루를 땜질하는 식으로, 그렇게 위로를 받으면서 살지 말라는 것인데, 그것은 세상을 속이고 자기를 속이는 짓이라는 말이죠. 남이 못되면 신이 나고 남이 잘 되면 화가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을 그런 식으로 유지해왔음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 욥아, 나 하나님을 경유했느냐?
다시 욥기를 보겠는데, 아까 처소, 혹은 집이라고 했는데, 38장 20절에 보면, 하나님은 "그 집의 길을 아느냐?"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눈이 내리고 비가 쏟아지게 만드는 처소, 아지트, 그 원형의 본부를 아느냐는 겁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욥에게 묻고 계신다는 말이죠.
(욥 38:20)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
이것은 과학적인 설명이 아닌데, 그렇게 접근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욥아, 나 하나님을 경유했느냐?" 라고, 즉 "욥아, 나의 뜻을 알고 있느냐?"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그러면 욥이 과연 무엇을 몰랐던가요? 또한 이것은 우리가 몰랐던 것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여기서 욥기 1장을 보겠는데, 6절입니다.
(욥 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욥기를 보게 되면 욥의 입에서 사단이라는 말이 나온 적이 없는데, 그러니 욥은 무엇을 모른다는 겁니까? 하나님과 악마가 결탁해서 자기에게 고난을 준다는 것을 욥은 내내 모른다는 말이죠. 그러니 인간의 사정,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 인간의 손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즉 메시야와 악마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는 말이죠. 그러한 영적인 전쟁터에 우리 인간이 본의 아니게 낑긴(끼어있는) 상태라는 겁니다. 그게 걸려든 것이 우리 인간의 입장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인생의 짐을 우리가 질 필요가 없는데, 우리의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을 짐이라고 여기면 그 짐은 어디서 오는고 하니, "그 짐은 나에게서 온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자기 자신이 곧 짐의 출발점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욥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욥에게 짐이 된다는 것인데, 그런 출발점과 결과점을 낳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 욥기를 통해서 문제가 해결이 되었는데, 욥의 출발점은 욤 자신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욥의 고난이 욥에게 짐이 되지 않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무엇인고 하니까, 욥의 본래 처소, 즉 집을 경유하면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출발점이 자기 자신이 아니고, "어디에서 도출된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나다" 라고, 그렇게 여기면 된다는 겁니다.
* 새로 만들어지는 욥 !!
하나님께서는 욥을 새롭게 만들려고 하시는데, 그러면 기존의 욥은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사라져야 한다는 말이죠. 하나님은 그렇게 욥을 갈아치우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물론 이것은 성도에게만 해당이 되는데 말이죠.
우리 각자의 기억 속에 있는 '나', 그것은 가짜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갈아치우신다는 겁니다. 주님은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것은 짐 때문에 그러한데, 우리 각자가 인생의 짐을 한 가득 짊어지고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내가 아니면 이 자식들을 어떻게 키우겠노?" 라고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백내장이 남들에게 생기면 자기에게 짐이 됩니까? 되지 않는데, 그런데 자기에게 생기면 짐이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백내장에 걸려서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먼저 발동을 거는 기도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여, 제가 충성을 다했는데, 그것을 다 아시면서 저에게 이런 병을 주십니까?" 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왜 세상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까?" 라는 것인데, 짐을 들고 왔다는 말이죠.
* 의젓하게 걷고, 의젓하게 살아라 !!
해결책이 있어야 질문의 의미가 생기는데, 그렇지요? 그러면 제가 그 해결책을 제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결과부터 말씀을 해드리면, 제가 최근에 정말로 가슴에 팍 박히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걸을 때 의젓하게 걷고, 그리고 의젓하게 살아라" 라는 겁니다.
어깨에 무거운 짐이 있으면 자세가 그만 구부정해지고 마는데, 그런데 어깨에 그 짐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어깨가 펴지고 당당해진다는 말이죠. 그러니 자기 어깨에 짐이 없다고 하면, 걷던지 무엇을 하던지 간에 어떻다는 겁니까? 의젓하고 당당해진다는 겁니다.
* 율법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의 !!
그런데 만약에 남에게 욕을 먹었다고 하면, 그게 짐이 됩니까? 계속해서 의젓해야 합니까? 아까 갈라디아서 2장을 하면서 했는데, 남들에게 욕을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율법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구원은 율법의 행위로 됩니까? 하나님의 의로 됩니까? 우리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어떻게 하십니까? 워낙 우리가 자기 주제파악을 하지 못하는데, 그래서 우리는 자기가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주위에서 그런 것을 많이 보았기에, 그게 진리인 줄 알고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진리가 아니고 지식인데 말이죠.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다 하는데, 그런데 왜 똑바로 당당하게 서서 걷지를 못하고 구부정하게 걷고 있느냐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올바로 믿고 싶어도 우리 내부에서 끌어당기는 것이 있다는 말이죠. 즉 악마의 유심침이 우리에게 이미 박혀있다는 겁니다.
남들의 평가와 시선, 그리고 "나는 이 정도야" 라는 것이 연결이 되니까,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일단 고집은 있어서 버티기는 버는데,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기 어깨 위에는 "나는 의로워야한다" 라고 하는 짐이 놓여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계속해서 구부정하게 걷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가 마귀에서 속아서 언제까지 계속해서 불행하게 살아야만 하겠느냐는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정말 행복합니까? "내 손으로 해결해야 진짜 나답다" 라는 것은 마귀가 가르쳐준 것인데, 그것은 마귀가 우리에게 세뇌시킨 것으로서, 마귀의 작품이라는 말이죠.
* 너무나 무거운 욥의 인생 !!
그래서 욥기가 중요한데, 욥기에 나오는 욥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남들이 보기에 전혀 흠이 없었는데, 완벽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욥에게 무엇이 왔습니까? 하나님께서 마귀를 통해서, 여기서 마귀가 중요한데, 이 마귀라는 존재가 욥에게 고난을 주니, 욥의 인생자체가 너무나 무거워지고 만다는 것이죠.
그래서 욥이 뭐라고 합니까? "나의 생존을 취소해주소서"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생존취소에 대한 호소인데, 별로 유명하지를 않나요? (ㅋㅋ)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렇게 나오겠느냐는 말이죠. "이 딴 식으로 살게 하려면 저를 태어나지 말게 하셔야지, 왜 태어나게 했습니까?"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이런 욥의 심정으로 새벽기도회에서 발동기를 돌리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지 싶은데, "우리 집안에 이런 우환에 생기게 하실 것이면 저를 왜 태어나게 했습니까?" 라는 식으로 말이죠. 여러분 가운데 그런 기도의 경험이 있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는데(ㅋㅋ), 기도원에 갈 때는 그냥 놀려고 가는 것이 아니고 다 목적이 있어서 간다는 겁니다. 하나님에게 무엇인가를 고발하려고 말이죠.
"왜 남들처럼 화목한 가정을 저에게 허락해주지 않습니까? 왜 남들처럼 건강을 저에게는 허락해주지 않습니까? 저의 몸이 무슨 종합병원도 아니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굳이 저에게 이렇게 하셔야만 합니까?"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 언약대로의 '전지전능' !!
말이 나온 김에 '전지전능' 이라는 의미를 잠시 설명해드리겠는데, 어떤 일만 생기면 전지전능이 등장하는데, 하나님이 무슨 어벤져스도 아니고 말이죠. 전지전능은 반드시 그 앞에 무엇이 붙는고 하니, '언약대로'의 전지전능이라는 겁니다. 물론 하나님은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바꿀 수 있지만, 그것은 언약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러니 인간이, 혹은 악마가, 혹은 모든 피조물이, 이게 다 같은 의미인데, 그런 피조물이 그 어떻게 해도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하시는 것, 그것을 하나님의 전지전능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이, 악마가, 모든 피조물이 못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언약대로 이루는 것인데, 그것을 하나님이 해내신다는 말이죠.
* 다 이루었다 !!
다시 말해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의 '다 이루었다' 라고 하는 것, 그것을 우리 인간은 해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인간은 언약을 이룰 수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피는 예수님의 피와 같지 않고, 인간의 살점은 예수님의 살점과 같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악마는 인간을 자체적으로 지배했는데, 그래서 악마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무엇인고 하니까, '다 이루었다' 라는 겁니다. 그것도 예수님이 홀로 다 이루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 '다 이루심'에 숟가락이라도 올리면 안 된다는 말이죠. 일체 보태어서도 안 되고, 보탬도 안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다시 갈라디아서 2장 16절을 보겠습니다.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아니요 !!
여기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라고 되어있는데, 제가 여러 번 이야기를 했지만, 중요한 것은 반복해도 괜찮다는 말이죠. 이렇게 중간에 '아니요' 라는 것이 들어있으면, 그 앞의 내용은 무엇인고 하니, "지금 너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라는 의미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 사람들은 이러 이러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라는 것인데, 그러면 그 뒤에 '아니요' 라는 것이 붙는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여기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라고 되어있으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이다" 라고 하는, 그런 의미라는 겁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잔소리인데 말이죠.
누군가가 이렇게 명령과 잔소리를 할 때,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에 되면 인간은 의롭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아니요' 라는 것 앞에까지의 이야기라는 말이죠. 교회에도 법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데, 그리고 성경에 보면 전부가 다 "하라, 하지 마라" 라고 되어있다는 겁니다.
"분을 품되 해지도록 품지 마라" 라고 하고, 또한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복음을 전파하고, 기도에 열심을 내라" 라고 한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라고 하고 말이죠. 이렇게 성경에는 전부가 다 "하라, 하지 마라" 라고 하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벧전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그래서 '아니요' 라는 것을 모르는 자들은 그 '아니요' 라는 것까지 가지 않고, 그 앞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려고 한다는 말이죠. 거기에 인생승부를 걸려고 한다는 겁니다. 즉 "내가 기독교에 귀의해서 말씀대로 지켜서, 그렇게 해서 나를 천국에 올려보내는 것에 올인을 하겠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 신천지나 구천지나 !!
그러니 그야말로 도박판인데, 이것이 사도바울 이전의 사울의 모습이고, 마귀에게 완전히 속아넘어갔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신천지에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천지에 법이 있어서 갑니까? 법이 없어서 갑니까? 법이 있어서 간다는 말이죠. "당신이 전도하면 144,000명에 넣어주겠다" 라는 것인데, 이게 법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욕망에 라이터로 불을 지르게 했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야, 내가 사는 보람과 열정이 여기서 나올 수 있구나" 라는 것인데, 이것이 조금 전에 이야기한 악마의 종교적인 열심이라는 겁니다. 말이 신천지이지, 기존 교회인 구천지도 역시 모두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짐을 내려놓아서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고, 짐이 점점 더 늘어나서 무거워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과연 이것을 감담할 수 있을까요? 성경말씀 가운데서 자기가 지킬 만한 것을 골라서 보니 지킨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성경말씀을 제대로 안다고 하면 그렇게 나올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 말씀을 지켰다고요? 그러면 이것은요? 이것은요?" 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지켰다고 여기는 것도, 사실은 전혀 지킨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여호와 증인도 역시 그러한데, 너무나 비겁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교인들에게 지킬 것만 한 것들만 골라서 제시한다는 말이죠. 물론 기존교회도 그러한데, 성경을 보면 인간이 지킨다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겨자씨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산을 들어서 바다에 빠트리게 할 수가 있는데, 그러면 그 말씀을 왜 지키지 않느냐는 것이죠.
(마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 팔공산아, 포항 앞 바다에 빠져라 !!
여기에 앞으로 국립공원이 된다고 하는 팔공산이 버티고 있는데, 그러면 그 팔공산을 향해서 눈으로 레이저를 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서 팔공산을 과연 포항 앞 바다에 던져 넣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죠.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런 말씀은 왜 지키려고 하지 않느냐는 말이죠.
그러면 교회에서 그 말씀을 목사들이 어떻게 설교를 합니까? "이것은 꼭 된다는 것이 아니고, 그만큼 열심을 내라는 것인데, 여러분이 0.1퍼센트라도 노력을 하면, 나머지 99.9퍼센트는 하나님이 도와주시겠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듣는 교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는데, 왜냐하면 자기의 열성을 목사가 인정해주니 말이죠. 자기가 열심히 노력한 것이 그대로 빛이 나니, 그것이 자기 마음에 든다는 겁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아니요' 라고 하는 것은, 그 '아니요' 라는 것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가짜다" 라고 하는, 그런 의미라는 말이죠.
계속해서 2장 16절을 보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라고 하고, 그 다음에 보면 역시 '아니고'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율법을 지키려는 행위로서는 예수님의 믿음을 받을 수 없다" 라는 뜻이라는 말이죠.
* 나의 행함 VS 주님의 행함 !!
이게 중요해서 다시 해보겠는데,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내가 믿으라고 하는 그 율법의 행위를 믿음으로서 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인데, 그것과는 별개라는 겁니다. 그러니 "내가 행할 수 있는 것, 즉 내가 예수님을 믿는 행위를 행하는 것과는 별개로 주님은 주님의 행함으로 나에게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셨다. 그래서 내가 믿게 되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나의 행함'과 '주님의 행함'이 섞이지 않고 다르게 찾아왔다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게 갈라디아서 2장 뒷부분에 나온다는 것이죠. 그것은 제가 아껴두겠는데, 물론 너무 오래 아껴두지 않고 곧 말씀을 해드리겠는데 말이죠(ㅋㅋ).
다시 욥기로 돌아와서, 이 욥기에서 처소, 집, 혹은 본래 자리라고 했는데, 그런데 이 욥은 여전히 무엇을 모르고 있다는 겁니까? 하나님과 사단이 서로 결탁했다는 것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본래의 하나님의 집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들, 즉 천사들이 있는 회의장소라는 말이죠.
-----------------------------------
※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 - 성경에 나오는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인간들을 일컫는다. 창세기에 언급된 하나님의 아들들은 일반적으로 셋 계통의 자손들로 보고 있다(창 6:1-4). 그리고 욥기에서는 천사적인 존재들을 가리켜 사용했다(욥 1:6, 2:1). 또한 바울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롬 8:14)이라고 함으로써, 중생하지 못한 자들과 구별하여서 중생한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렀다(골 3:4, 요일 3:2) (라이프성경사전, 2006)
-----------------------------------
* 욥은 회의장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어 !!
그 회의장소에 대해서 욥은 아는 바가 전혀 없는데, 그게 처소라는 겁니다. 그러면 거기에 들어가는 것이 관건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그 회의장소에 들어갑니까? 그것이 신약에 나타나는데, 지식으로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것을 욥의 친구들이 보여주는데, 친구들을 모두 다 동원했어도 안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한 인간의 지식으로는 안 되고, 그러면 무엇으로 된다는 겁니까? 지식이 아닌 지혜로서 되는데, 이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다는 겁니다. 지식은 올라가지만 지혜는 내려온다는 말이죠. 그렇게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욥을 올라가도록 만들어주는데, 그것이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나오는 '십자가' 라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갈라디아서 20장을 보겠는데, 16절에서 20절입니다.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갈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인간의 행함을 거부하시는 예수님 !!
먼저 17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예수님을 자기의 행위로 믿었는데, 그렇게 믿고 난 뒤에 그만 죄를 지어버렸다는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누가 우리를 더욱 더 죄를 짓도록 유발을 시켰다는 겁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죄를 짓도록 유발한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데, 그렇지요? 하지만 그런 예수님은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말이죠.
자기의 행함을 동원해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나오는 것, 그것 자체를 예수님은 거부하신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가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연장선에 놓여있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그것과 동일한 속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는 가짜인데,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그 가짜에서 무엇을 끄집어내려고 합니까? 자기에게 인생의 무거운 짐이 있으니, 그것을 자꾸만 내려놓으려고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 가짜에서 가짜 행위가 나오게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것을 가짜 행위로 보지 않는데,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가짜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말이죠. 자기가 이렇게 숨을 쉬고 있고 움직이고 있으니 진짜로 여긴다는 겁니다. 즉 "나 말고 다른 나는 없다" 라는 것인데, 하지만 이것이 바로 불신앙이라는 말이죠.
* 새로운 임신 !!
강의 처음에 우리 안에 예수님의 의를 넣으면 예수님의 새로운 창조가 시작된다고 했는데, 우리가 새로운 우리를 임신한 셈이 된다는 겁니다. 예수 안에서 새롭게 된다는 말이죠. 우리는 기존의 아담계통이고 예수님은 새로운 아담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나' 라는 것은 기존 아담계열의 소속이란 겁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가 삼성그룹에 취직을 했는데, 그런데 이 삼성그룹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감사하게도 엘지그룹에서 데리고 가기 위해서 자기에게 엘지의 요소를 심어놓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새로운 신분, 새로운 자리가 자기에게 주어진다는 겁니다.
* 믿음은, 자리를 선점함으로서 !!
어제 주일오후 설교시간에, "믿음으로 난 믿음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그것은 '자리'로 얻어진다" 라고 했는데, 즉 자리를 선점함으로서 얻어진다는 말이죠. 사무엘상 10장에서 사울이 예언을 한 것은, 그가 사무엘의 자리에 오다가보니 그렇게 된 것인데, 즉 아무 것도 아닌 사울도 사무엘의 자리에 오니까 예언이 터졌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속한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를 신약에서는 '예수 안', '십자가 안', '복음 안'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즉 십자가는 자기 믿음의 행위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로 나간다는 겁니다. 자기를 이미 죽은 자로 간주하는 능력, 그게 십자가의 효과라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인데, 우리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
여기에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을 세 글자로 바꾸면, '죽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즉 "나는 죽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게 되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숨을 쉬지 않기 때문이 아니고, 아직 화장터로 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고, 제 아무리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움직이고 해도, 하나님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라는 말이죠. 그게 곧 하나님의 의가 없는 것이고, 그것이 99.99퍼센트가 아니고 100퍼센트인데, 그것을 두고 '죽었다' 라고 한다는 것이죠.
* 죽은 자의 몸에서 죽은 자로 !!
이것을 우리의 생일로 환원시켜보면, "나는 죽은 죄인의 어미 몸에서 죽은 자로 태어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오늘의 강의제목을 '죽은 자로 태어남' 이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죽은 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죽는다는 말이죠. 그게 창세기 3장에 나오는데, 즉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라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겁니다.
(창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고 짐을 없애주는 것인데, 우리를 짓눌리고 있는 인생의 짐을 말이죠. 우리가 의젓하게 살지 못하고,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그것이 곧 공포라는 겁니다. 그렇게 남들의 평가와 자신의 과거와 자존심에 눌려서, 그 자존심도 짐이라는 말이죠.
그러한 남들의 평가로 인해서, 즉 "너는 고개를 들지 말고 숙여" 라고 하면, 그러면 우리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이러면 안 되는데, 그만 죽어버릴까?" 라고 하는데, 그러니 그게 짐이라는 겁니다. 우울증, 공황장애 등등, 그런 것들이 다 남들의 평가로 인해서 생겨났다는 것이죠. 그게 누적이 되어서 뇌에 문제가 생기는데, 물론 물려받은 DNA의 측면도 있지만 말이죠.
* 네가 죽으면 십자가를 안다 !!
그러면 그것을 없애는 방법이 무엇인고 하니,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인데,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마귀가 어떻게 나올까요? 마귀가 가만히 있지를 않는데, 마귀는 "네가 죽으면 십자가를 안다"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인간에게 죽는 것도 행위인데, 그러니 자기가 죽어서 십자가를 아는 법은 없다는 말이죠. 인간은 죽어도 십자가를 알 수 없는데, 십자가가 다가와서, 즉 십자가의 효과이어야만 하는 것이지, 자기가 죽는 효과로 인해서 스스로 십자가를 알고 받아들이는 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에 와서 제 아무리 고난을 받고 순교를 해도, 그런 것은 전혀 소용이 없고, 다만 십자가가 다가오게 되면, 즉 주님의 '다 이루었다' 라는 것이 오게 되면, 그러면 주님이 주신 유심칩이 우리의 몸에 새겨져서, 기존의 아담의 몸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결별하게 된다는 말이죠.
* 점점 더 나와 헤어지는 즐거움 !!
그러니 성도에게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점점 더 자기와 헤어지는 즐거움이 있다는 겁니다. "나의 자존심이여, 안녕!",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무거운 짐과의 작별을 고하게 된다는 겁니다. 자기 몸은 마귀에게서 왔으니 마귀에게로 돌려보낸다는 말이죠. 그러니 마귀에게 줄 것은 주고,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는 겁니다.
여기 갈라디아서 2장 19절에서 사도바울은,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라고 하는데,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율법은 자기를 죽이는 것인데, 그 다음의 20절에서, 십자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는 겁니다. 즉 "십자가 안에서 나는 이미 죽었고, 그 안에서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고 있다"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죠.
* 내가 다 지켰다 !!
여기서 제가 질문을 하겠는데, 우리는 이미 죽었고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살아있다는 겁니다. 그럴 때 성경말씀 전체에 놓여있는 "하라, 하지 말라" 라는 것이 우리의 눈에 들어온다는 말이죠.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께서는, 그 성경말씀에 대해서 '지켜라' 라고 하십니까? '지켰다' 라고 하십니까?
이것이 '다 이루었다' 라는 것인데, 즉 예수님께서 이미 다 지켰다는 겁니다. 마귀가 계속해서 우리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고 있다고 하면, 우리 속에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이미 다 이루셨는데, 그러면 우리의 껍데기는 어떠하다는 겁니까? 지금은 죽은 자인데, 그러면 우리가 숨을 쉬지 못해서 죽은 자입니까? 왜 죽은 자입니까?
우리는 율법으로 인해서 죽은 자인데, 그러면 우리의 껍데기는 이 율법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는 말이죠. 그것은 바로 율법이 주어짐으로서, "그 율법으로 인해서 나는 진정으로 죽은 자가 맞구나" 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고 마주해야 한다는 말이죠.
* 범사에 감사해라 !!
예를 들어서, 성경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라고 했으면, 또한 "범사에 감사해라" 라고 했으면, 물론 다른 것도 많이 있지만 이 두 가지만을 해보자는 겁니다. "너희는 빛에 속했으니 어둠에서 벗어나라" 라는 말씀도 있는데, 나머지는 다 동일하게 적용을 시키면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 라고 하는 말씀에 대해서 우리의 육신이 반응을 합니까? 반응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미 죽은 자인데, 숨을 쉬지 못해서 죽은 자가 아니고, 여전히 맥박을 뛰고 있는, 우리의 과거가 그대로 살아있는 채로 죽은 자라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 자존심을 걸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하겠습니까? 하지 않습니까? 지키려고 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범사에 감사해라" 라고 했으니, 그렇게 감사하려고 노력을 한다는 겁니다. 아닌가요? 그런데 그것을 어떤 범주 안에서 하게 됩니까? 이미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은 그 말씀을 모두 이루셨는데, 따라서 우리가 하는 기도와 감사는 어떻게 됩니까? 주님이 주시는 환경 속에서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실패를 거듭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자기가 행하고 지키는 감사가 아니라, 자기는 계속해서 실패를 하면서도 모든 일에 대해서 감사를 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것은 자기가 행한 것이 아니고, 누가 했다는 겁니까? 자기 안에 계시는 주님이 하셨다는 겁니다. 일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이죠.
* 모방된 신앙생활, 그런데 !!
여러분이 평생 성경말씀을 보고 교회에 다니면서도 여러 가지 요소를 놓치고 있는데, "내가 가짜다" 라는 것도 놓쳤고, 마귀가 우리를 보고 "네가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네가 책임지지 않으면 네 인생은 끝났어" 라고 하면서 협박공갈을 했던 것도 놓쳤다는 겁니다.
그리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을 진다" 라는 의지 하나로 교회에 나와서, "천국도 내 힘으로 가겠다" 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는지, 그것을 컨닝까지 해서 흉내를 내면서 부지런히 모방적인 신앙생활을 해왔다는 말이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전혀 쓸데없는 짓이 아니고, 그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야 했었구나" 라고 하면서 말이죠. 우리는 그런 실습을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하게 되는데, 물론 주님이 시킨 실습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자기 안에서는 일이 다 끝났는데, 그런데 아직 육신이 남아있으니, 주의 성령이 누구와 싸우는고 하니, 육신과 싸운다는 말이죠. 이제 이 대목만 설명하고 마치겠는데, 갈라디아서 5장 17절을 보겠습니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실패가 즐거워요 !!
여기 마지막에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라고 하는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인데, 주의 성령은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즉 "말씀을 내가 지켰다" 라고,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네가 하지 않아도 된다. 괜히 짐을 만들지마" 라는 것인데, 그것을 우리는 결과적으로, 혹은 후차적으로 알게 된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모르는데, 그래서 "내가 믿음으로 열심히 살아야지" 라고 하는데, 그런데 성도에게는 그게 실패로 끝난다는 사실이 즐겁다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번 어떻게 하게 됩니까? 잊어버린 성령, 잊어버린 십자가, 잊어버린 거룩, 이미 그것이 우리 안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되새겨주는 하나님의 일관된 사랑,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찬미하지 않을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주께서 저희들을 주의 나라에 갈 때까지 마음껏 충분하게 사용해주시기를 소원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3,3,4 오후 6시에 마침.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에 감사하면서 살게 하옵소서 !!wldhr
'대구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옥하나님17-목숨바칠 명분 (0) | 2023.04.17 |
---|---|
빼앗긴 나-지옥하나님22 (0) | 2023.03.23 |
지옥의 하나님-예수님의 앵콜곡 (0) | 2023.02.22 |
지옥의 하나님-만나 (0) | 2023.02.06 |
새로운 차원 (1) | 2022.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