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판별
이단은 있다. 그런데 이단들이 변신에 변신들을 시도하기에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단들은 말씀 덩어리로 자신을 뚤뚤 감고 버티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에 귀신들려 고통 하던 병자들이 있었지만 진짜 이단들은 멀쩡하게 거리를 활보했고 정치를 했고 신을 경배했다. 말씀을 달고 다녔고 걸핏하면 ‘말씀의 생활화’를 외쳐대었다. 그들이 바로 악마를 아비로 두고 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다.(요 8:44) 이 평가는 예수님의 일방적 평가들이 그들이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어쨌든 전형적인 이단들이었다.
바로 이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인식에 근거해서 오늘날 기독교식 이단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 실천에 열심이다. 십자가 믿으라면 십자가 믿고, 성령 법아라 면 자신을 성령 받은 자로 간주한다. 바르게 살아라 하면 바르게 살고, 이웃 사랑하고 이웃을 용서하라면 주저 없이 사랑하고 용서하며 산다. 새 생명 속에서 살라 하면 새 생명 속에 살 용의가 되어 있는 자들이다. 옛 육에 속한 악한 일을 하지 말라하면 단호히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외친다. “성령을 받아 예수 믿게 된 자들은 이제 예수님의 정신과 영과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선하고 착한 일에 나서서 하나님을 닮아서 하나님 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전형적인 이단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은 벌써 우리가 간음자이다 는 것을 전제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것들은 그들은 모른다. 전 성경에서는 모든 인간이 이미 ‘간음자’라는 것을 선포하시면서 새삼 그 이유를 언급하시는 식으로 십자가 복음이 작렬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단들은 실제로 성령을 받은 적이 없는 이들이기에 이런 식으로 성경을 볼 줄 모른다. 기껏 다음과 같은 식이다. “아직은 간음 안했으니 앞으로도 성령님의 간섭과 도움 하에 간음 안해야지” 하는 식으로 나온다.
성경에서 “예수 믿으라”는 말은 그 누구도 ‘예수 믿는 자가 아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즉 인간이 아무리 예수 믿는다 고 우겨도 날마다 성령께서 믿게 하여 주시지 아니하면 안 믿을 자들이 인간인 것을 그들 이단들은 고백하지 못한다.
그들이 정작 지키고 싶었던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고 성령님도 아니다. 자신의 명예와 위신과 가치를 지키는 것을 곧 하나님의 위신과 명예와 위신을 지키는 것과 직결 된다고 여긴다. 당연히 십자가의 원수들이다.( 빌 2:18 ) 옛날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방식을 그대로 사도들의 명령과 권면에다 적용시켜서 결국 건져내려는 것은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지키기’ 이다.
당연히 근원적인 회개가 뭔지도 모른다. 어디까지 내려가야 회개인 것도 모른다.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다 는 사도의 의미를 모른다.(갈 2:20) 그들은 죽는 척을 해서 다시 자기 자신의 가치를 건져내는데 늘 성공(?)하고 있다. 성령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십자가를 앞장세우고 자신은 죄로 인하여 죽어 있는 자로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뭘 해도 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백 못한다. 그들이 십자가 대신 앞장세우는 게 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말씀을 생활화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바로 그들이 주장하는 그 하나님을 그들의 손으로 지금도 날마다 죽이고 있는 것이다. 기어이 자기 가치를 사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 때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자가 예수님을 만났던 사도 바울은 정반대로 나오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이단의 판별은 따지고 보면 간단하다. 자신이 뭘 해도 죄인이다 는 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으로 살면 죄가 나오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성령은 책망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요 16:8)
이단에게까지 베풀 자비는 하나님께 남아 있지 않다.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일 5:16)
임청일 230206
이단은 구분이 되는데, 뭘 해도 죄인인 것도 백번 동의가 되는데도
아직 주님의 기쁨이 온전한 내 기쁨이 되지 못하고 있는 나는 과연 무엇인가요?
이근호 230206
'이단 구별하는' 자랑보다 십자가 자랑하면 자신을 스스로 무시하는데서 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임청일 230206
주님, 저도 십자가자랑 좀 시켜주세요!
아니 시키시는데도 거부하고 있는 제 자신을 제발 무시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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