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고한 날
2007년 4월 8일 본문 말씀: 전도서 12:1-2
(전 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 12: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후원자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창조자이십니다. 계속해서 창조하십니다. 그 창조를 위해 죽음의 힘을 사용하십니다. 죽음이 곧 하나님이 벌리시는 창조 과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체이지요. 하나님의 창조는 기존의 것을 없애므로서 인간들의 원하는 인간상을 거부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뿐만 아니라 전 성경 말씀은 원숭이나 코끼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형상과 관련없는 존재들입니다. 인간들만이 하나님의 형상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창조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성을 가지고 인간을 찾아오시고 다루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진 것을 창조 이전으로 사라져주어야 합니다. 이렇듯 인간이란 하나님의 창조성을 증거하는 대상이 됩니다. 이 증거를 위하여 인간은 죽어주어야 합니다.
청년이란 아직 죽기 전의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몸을 통해서 내리시는 곤고함의 조치를 실감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창조를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자기 몸에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곧 죽음의 문턱 너머로 축소되어 사라지는 늙은이들을 소재로 하여 하나님의 창조성을 소개합니다.
늙은이들을 마치 로벗처럼 간주해서 인체의 조각조각을 통해 발산되는 죽음의 기운을 소개하십니다. 그렇게 죽게 하시는 것이 바로 생명의 창조작업이라는 겁니다. 신약으로 설명하면,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는 말입니다. 겉을 썩게하시는 분이나 속을 날로 새롭게 하시는 분이나 동일한 창조작업이라는 겁니다.
욥처럼 말한다면,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시는 자도 하나님이시다”라는 겁니다. 따라서 만약에 자기 몸을 계속 자기 것이라고 우긴다면, 창조자의 창조작업에 반역하는 셈이 됩니다. 곧 헛되고 헛된 것을 그냥 헛됨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작업의 방해물로 등장될 것입니다.
3절부터 8절까지 인체의 붕괴를 기능적인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맨처음에 골격의 흔들림을 말하고 있습니다. 골격이 떨고 구부려진다는 겁니다. 젊은이들은 상상이 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내 팔, 내 다리는 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당연시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내 것이 아니기에 내 마음대로 안됨을 알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치아의 마모와 빠짐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우리 몸에 하나님이 보내신 죽음의 전사들은 박테리아들입니다. 마모된 우리 신체의 일부는 그들의 양식이 됩니다. 이것을 맷돌로 묘사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안력이 쇠하여지는 것을 나타냅니다. ‘창문’으로 눈을 표현합니다.
우리의 안구를 조절하는 세포가 세포분열을 제대로 못하면 DNA의 하달지시를 제대로 이행할 수가 없습니다. 안구 속으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거나 빛이 분산되어 사물을 명확하게 볼 수가 없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 귀로 어두워지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리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서지 않으니 타인의 말소리에 대해서 곡해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괜히 늙은이를 모함하고 욕하고 있지는 않는지 마음으로 예민해지게 됩니다. 사람은 나이가 30세를 정점으로 하여 고음 청취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음을 분간못하고 말하는 것에도 그 음에 대해서 찾지 못하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 목소리가 갈라집니다. 노래조차 제대로 제 음을 찾아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니 자기 노래에 자신이 실망하는 겁니다. 또한 기력이 약하니 멀리 여행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는 것도 삼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피부가 상하게 됩니다.
얼굴이 끼인 기미란 일종의 세포의 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포는 자기가 처리한 잿더미에 의해서 스스로 파묻혀 죽을 수가 있습니다. 젊은이들 보다 늙은이들은 색소가 엷어서 기미가 고루 퍼지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강한 햇볕에 의해서도 노인들은 잘 타지 않습니다. 시커멓게 피부가 타는 것은 젊은이들의 특권이지요.
그 다음에는 무거운 것을 겁내게 됩니다. 자기 몸이 감당 못하는데 다른 외부 물건을 들 수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성욕이 감퇴합니다. 성욕이란 심장과 관련 있습니다. 심장이 튼튼하지 못하면 부부관계가 힘들어집니다. 연세 80세가 되는 노인은 20세 젊은이보다 심장 기능이 40% 밖에 안 됩니다.
그 다음으로 결정적으로 죽음의 때가 찾아듭니다. 살아있을 때에는 뻔질나게 남의 장례식에 자주가지만 막상 자신이 죽게 되면 그 장례식장의 주인공은 본인이 되는 겁니다. 자식들은 자신의 사늘한 시신을 궤짝 속에 집어넣어서 낑낑거리고 들어서 장례식장 죽음 시신들이 안치되어 있는 곳으로 밀어넣고 자신들은 부조돈 챙기기 바쁘고, 밤 세워 술마시고 있을 것입니다.
별로 우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대부분은 잘 죽였다고 속으로 쾌재를 부를 것입니다. 일종의 음식 쓰레기 비우듯이 상쾌함마저 드는 것을 속일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마치 은행에서 대기표 뽑아서 들고 있는 것처럼 각자의 번호표를 들고 자기 장례를 치를 대기자들입니다.
이런 죽음의 힘이 바로 창조자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힘입니다. 잠언 16:31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늙는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창조작업이 많이 진전되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머리가 하얗게 쉬어버렸음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 원칙에 대해 인간이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입장에 있음을 아는 지혜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생이란 헛되고 헛되다고 하십니다. 이 헛되고 헛됨을 슬프게 받아드릴 것이 아니라 신나고 즐겁고 고맙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작업이 이미 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미 우리의 것이라고는 우리에게서 찾을 수 없음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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