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대구강의] '창세기'속의 그리스도 30 - 인간의 소실
21,06,2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여자의 후손 !!
오늘은 교재 113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여자의 후손'이 나오는데, 이것은 아담이 범죄를 하고 난 다음에 나타나게 되는 여자의 후손이라는 겁니다. 이 여자의 후손은 '사람 대체' 라고 이해하면 되는데, 즉 사람을 대체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 여자의 후손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사람은 어떠한고 하니, 그때 사람은 '있음'에서 '없음'이 된다는 겁니다. 즉 '살아있다' 라는 것에서 '죽어간다' 라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는데,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어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그러면 이 여자의 후손은 인간을 대체하기 때문에, 여기서 인간은 죽어가니 인간이란 없는데, 그래서 그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서 등장하게 되니, 여자의 후손의 특징은 '없음'에서 '있음'이 된다는 겁니다. 즉 죽은 것에서 살아나게 되는데, 그게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이죠.
여러분이 궁금하기 여기지만 차마 질문할 수 없는 것이 "천국은 어떻게 생겼어요?" 라는 것인데, 천국은 어떻게 구성이 되어있느냐는 겁니다. 그렇지요? 천국에 가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그런 것이 궁금하다는 말이죠. 반응이 없는데, 저만 그런가요? (ㅋㅋ) 자기가 갈 곳이 어떠한지,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겁니다.
* 천국환경과 지옥환경 !!
이 천국의 삶이 방금 이야기한 것과 관련성이 있는데, 이것을 '천국의 환경' 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천국의 환경은 어떠한고 하니, 우리가 그 반대가 되는 것을 여기서 알아서, 그러면 그것과 반대가 되는 것이 곧 천국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 천국의 환경과 반대가 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게 곧 지옥의 환경이라는 말이죠. 그렇다면 지옥의 환경은 어떠한고 하니, 지옥에 가는 자들을, 즉 그 지옥의 구성원들을 조사하면 된다는 겁니다. 지옥은 악마가 가고, 그리고 인간들 중에서 불신자가 간다는 말이죠. 그러니 복음을 모르는 자들이 지옥을 구성하는 환경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데살로니가후서를 보겠는데, 1장 7절과 8절입니다.
(살후 1: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살후 1: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여기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능력으로 천사들과 함께 하늘에 나타나신다고 하는데, 그런데 그 다음인 8절에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예수님의 복음에 복종치 않는 자들이 나온다는 말이죠. 이러한 자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야말로 널려있다는 겁니다.
복음을 모르면 하나님을 모르게 되어있는데,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믿어도 가짜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말이죠. 복음은 모르는데 하나님은 아는, 그런 것은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복음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말하는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다시 살아남이라는 말이죠.
그런 복음에 꽂히지 않은 자들, 즉 복음에 박혀서 살아가지 않는 자들이 구성하는 사회인데, 그러면 그런 사회를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24번 YTN을 틀면 나오는데, 그리고 신문마다 다 나온다는 겁니다. 학교에 가면 모아놓았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자,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꽂혀서 살아가지 않는 자들이라는 말이죠. 물론 군대나 병원도 그렇고, 심지어 교회도 그렇다는 겁니다.
* 이미 시작된 지옥 !!
그것이 바로 지옥의 환경인데, 그러니 지옥은 "보고 싶다" 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이 되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물론 이 땅에서는 지옥을 보고 지옥이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데, 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정상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말하면, 언약을 알면 성도라고 할 수 있고, 언약을 모르면 성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지옥은 무엇인고 하니,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천국이 없다" 라고 하는 하나님의 언약에 관심이 없는 것이 바로 지옥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언약을 모르면 성도가 아닌데, 그런 자들이 언약을 아는 성도를 보고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미쳤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앞에 하나 더 붙이면 "정말 미쳤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비정상이라는 것인데, 같은 식구라도 복음을 모르면, 이런 소리를 듣게 되어있다는 것이죠. "그냥 옆에 있는 교회에 다니지, 왜 거기까지 가나?"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옥에 대해서 데살로니가후서 1장에 보면 분명히 나오는데, "주 예수의 복음을 모르는 자는 지옥에 간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누가 정상인고 하니, 언약을 알고 성도가 된 자들이 주님이 보시기에 정상이라는 겁니다. 성도가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누가 누구에게 핍박을 받는고 하니, 지옥에 가는 자들이 천국에 가는 자들을 시기하고 질투를 한다는 겁니다. 자기들과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고 해서, 정상이 아니라고 하고 미쳤다고 하나는 말이죠. 물론 그런 비난을 받으면 거기에 대해서 감사히 여겨야 하는데, "과연 이 세상이 지옥이 맞네" 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언약 때문에 성도를 보고 '비정상이다' 라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은 평소에 자기들이 살던 동네라는 말이죠. 그렇게 평소에 살던 동네에는 역사와 전통과 관행과 관습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동네에 태어나서 그냥 살아가는 것, 그것을 두고 그들은 '정상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죠.
* 아니, 왜 굳이 십자가에?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인정을 해주겠다고 하는데, 그런데 굳이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셔야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되면, 자기들이 평소에 살던 이 동네가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이 세상이야말로 정상이 아니고 지옥이라는 것이 들통이 난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냥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복을 주세요" 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굳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하는 것, 만약에 그렇게 되면 그것은 다른 주위의 사람들에게 "당신은 미쳤다" 라고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 삶에 있어서 불편함을 느낀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그냥 평소에 살던 대로 이웃과 마음을 맞추어서 같이 살아가면 참 좋은데, 그래서 그것을 관행상 계속해서 밀어붙이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뭐라고 합니까? "굳이 그렇게 요란을 떨지 말고, 이렇게 주위에 교회가 많이 있는데, 그 교회들이 모두 다 틀릴 리가 있나?"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 이 땅에는 인간이 없다 !!
다시 말씀을 드리겠는데, "결국 이 땅에는 인간이 없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더욱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 같은 인간은 없다" 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그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가 줄줄이 사탕이라는 겁니다. 사탕이 사탕을 낳고, 사탕이 사탕을 낳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있어도 없어지고, 살아도 죽고, 그렇다는 겁니다.
우리는 남의 장례식에만 가는데, 자기 장례식도 이미 번호가 정해져있다는 말이죠. 전에는 조의금을 들고 갔지만, 이제는 관 속에 누워있는 역할이라는 겁니다. 자식들은 옆에 서 있고, 자기는 누워있다는 말이죠. 우리의 육신은 죽음을 이기지 못하는데, 그런 인간은 하늘나라에서 인간으로 취급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 천국에는, 악마가 없고 사람도 없어 !!
그러니 인간 같은 인간은 이 땅에 없는데, 그게 바로 지옥이라는 말이죠. 이 세상은 지옥의 환경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지옥의 환경은 악마와 인간들이 모여서 만들었는데, 그렇다면 천국의 환경은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죠. 천국의 환경은 그 반대인데, 그러니 천국의 환경에는 악마가 없고, 그리고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게 천국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천국에서 어떻게 살까?" 라는 생각은 금물인데,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천국에 어떤 특정한 사람이, 즉 이 땅에 살던 사람이 거기서 또 다시 사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니체는 "천국에서는 권태로워서 살지 못한다" 라고 했는데, 하지만 그것은 이 땅에서 자기의 살던 행세가 그대로 천국에서도 이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여기서 교재 113페이지를 보겠습니다.
--------------------------------------------
** 여자의 후손에서 여자는 시간을 타고 흐르면서 이사야서의 계시에 와서는 잉태지 못한 여인, 즉 남편이 없이 홀로 사는 여인으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남편이 없는 여인이라면, 거기에 대한 반대말이 등장함으로서 의미가 추가됩니다. 그 반대말이 무엇입니까? 남편이 있는 여인인데, 남편이 있는 여인은 여자가 아닌 것이죠. 남편이 있는 여인은 그냥 남자가 있는 여자인데, 성경에서 말하는 여인은 아닙니다. 잉태지 못하는데 무슨 자식이 나옵니까? 잉태지 못하는데 어떻게 자식이 많습니까? 여기서 시간의 역전 현상이 일어납니다.
--------------------------------------------
* 잉태지 못한 여인 !!
'여자의 후손' 이라는 것은 잉태지 못한 여인의 후손인데, 그래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처녀의 몸으로 낳게 된다는 겁니다. 즉 마리아는 잉태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죠.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가 이삭을 낳을 때도 어떠했습니까? 전혀 잉태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도저히 이 땅에 나타날 수 없는 자들, 그들이 곧 천국을 구성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에 반해서 지옥의 환경은 어떠한고 하니, 일단 육신이 있다고 하면 모두들 태어나는 인간들, 그들이 지옥을 구성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게 바로 지옥이라는 것이죠.
계속해서 교재를 보겠습니다.
--------------------------------------------
** "남편이 없어? 그러면 그 여인이야. 잉태지 못해? 그러면 그 여인이 맞아."
--------------------------------------------
자식이 많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자식들이 어디서 나오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잉태지 못한 자들만 천국에 간다고 하면, 그러면 없는 자식인데, 그래야 천국을 구성한다는 말이죠. 이 땅에서 인간의 힘으로 태어날 수 없는 자식, 그렇게 되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땅에 태어나지 못했다" 라고 하는 것은, 만약에 태어났다고 하면 그만 지옥의 환경에 주눅이 들어서 거기에 맞추어서 사는 습성들이 있을 것인데, 그런 것은 천국에서 모두 거부를 당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천국에서의 삶은 이 땅에서의 삶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데, 이 땅에서의 삶은 지옥을 설명하는데 적절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인간들이 모여서 그냥 살아가는, 그게 바로 지옥이라는 말이죠. 거지 나사로 비유에서, 지옥에 간 부자가 하는 행세를 보라는 겁니다. 이 땅에서 하던 행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지옥의 삶은 죽어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이 땅에 태어나면서 이미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지옥의 삶은 인간에게 당연한 것인데, 지옥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담으로부터 잉태가 되었기에 말이죠. 자기가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본의 아니게 잉태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잉태가 되었다고 하면 제거대상인데, 천국에 도저히 갈 수가 없다는 말이죠. 아주 간단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간다" 라고 하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미쳤다' 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세상에 교회가 너무 많다가보니, 그리고 거짓말을 했다는 겁니다. 잉태된 채로 천국에 간다고 하는데, 그것은 '여자의 후손' 이라는 원리에 위배가 된다는 말이죠.
* 다시, '여자의 후손' !!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천국은 여자의 후손이 많은 자식을 잉태하는데, 그 잉태가 무엇인고 하니까, 잉태지 못한 여인의 자식들이라는 겁니다. 그 잉태치 못한 여인을 창세기 3장에서는 '여자' 라고 하는데, 그 다음에는 '자식'이니, 그러면 그게 '여자의 후손'이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 여자의 후손은 어떻게 되는고 하니,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육으로 난 자식은 역사와 전통과 관습에 의해서 환경을 마련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는 이게 역사이니,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흐르고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여자의 후손은 어떻게 되는고 하니, 이 여자의 후손은 여기 구약에서는 없는데, 앞으로 등장을 해야한다는 겁니다. 그 여자의 후손이 바로 예수님인데, 그러면 여자의 후손인지 어떻게 아는고 하니, 악마의 후손을 이길 때, 그분이 여자의 후손임을 알게 된다는 말이죠. 악마와 그 존재에 대해서 정수리를 치고 승리할 때, 그분이 여자의 후손이라는 겁니다.
물론 악마가 예수님을 죽였지만, 그것은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다는 말이죠.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죽였는데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겁니다. 악마가 이 땅에서 큰소리를 치지만 결정적 타격자는 되지 못한다는 것인데, 최후의 승리자는 아니라는 말이죠.
* 빠져나오신 예수님 !!
악마의 최종무기가 죽음인데, 그런데 예수님은 그 죽음을 뚫고 이김으로서, 죄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악마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악마 쪽에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더 이상 건드릴 수 있는 게 전혀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거기서 빠져나왔는데,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게 빠져나왔으니, 그 이전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데, 마치 로켓을 타고 올라가면 자기가 살던 지구가 보이듯이 말이죠. 그래서 성도는 자기가 빠져나온 곳을 아는데, 하지만 불신자들은 빠져나온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냥 이 땅에서 우르르 몰려다닌다는 말이죠. 집으로 몰리고, 또한 회사로 몰리고, 그리고 교회로 몰리고,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직장이나 회사에 가면 역사와 전통과 관행이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여자의 후손의 경우에는 역사가 마감이 될 때, 그것을 종말이라고 하는데, 그 종말에서 거꾸로 잉태치 못한 자식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여기 교재 113페이지 끝에 보면 "잉태치 못한, 자식이 없는 여자가 자식이 많습니다" 라고 되어있다는 말이죠.
이것이 갈라디아서 4장에 나오는 말씀인데, 그곳이 곧 하늘나라인데, 그래서 하늘나라에 들어온 자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이 땅에서 육으로 잉태지 못한 자들만 고스란히 받아준다는 겁니다. 그런 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인데, 이 땅에서 잉태치 못했는데 하늘나라에 가 있는 자들이 말이죠. 그들이 천국을 구성하는 환경이고 요인이라는 겁니다.
(갈 4:27)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이 땅에서 잉태치 못했다는 것은 육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러면 육으로 태어나지 않았는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육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말이죠. 그것을 성령으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렇게 성령으로 태어난 자들은 육의 태어남과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육은 아무리 다시 태어나도 육인데, 그러니 천국에는 입장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제가 조금 전에 "천국에는 사람이 없다" 라고 했는데, 조금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천국에는 육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오직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 즉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 역사의 종말에서 거꾸로 자기 후손을 많이 남긴, 그런 자들만 있다는 것이죠.
* 시간이 흐르지 않는 천국 !!
그러한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역사를 끝내고 하늘나라로 가시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는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성도는 천사처럼 묵시적인 존재가 되는데, 역사나 정통이나 관행이나 관습에 전혀 구애받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죠.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 자유라는 것보다 더 신나는 것인데, 왜냐하면 자유에는 자기 책임이 동반된다는 겁니다. 여기가 자기 집인지 남의 집인지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는 말이죠. 회사에 사표를 내었는데도, 여전히 회사에 출근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청와대에 가도 누가 막지도 않고,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데, 그야말로 유령과 같다는 말이죠.
존재를 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자들인데, 그것을 사도행전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감옥에 집어넣었으면 그 존재는 감옥에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천사와 내보내준다는 겁니다. 사도바울과 베드로와 같은 자들인데 말이죠.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강도의 위협과 도적의 위협과 강의 위협과 바다의 위협에도, 때로는 굶기도 하고 때로는 먹기도 하고, 그러면서 자기 인생이라는 것은 일관되게 잉태치 못한 자의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죠. 그게 사도바울이 말하는 자유성이고 구애받지 않음인데, 그런 가운데 무엇이 발생하는고 하니, 이것은 예수님과 동일하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자유성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고 가시는 곳에는 무엇이 발생하는고 하니, 악마에 속한 자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알고 살아가기 때문에, 여러분의 주위에서도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지 싶은데, 아닌가요? 제가 지금 억지로 강요하는 것 같은데 말이죠(ㅋㅋ).
여기서 디모데전서 1장 20절을 보겠는데, 누가 한 번 읽어보세요.
(딤전 1: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바울은 귀신의 나라에서도 유명한 인물인데, 귀신들도 사도바울을 잘 안다는 겁니다. 그게 사도행전 19장에 나온다는 말이죠. 사도바울이 진짜 주님의 종인 것을 귀신들도 잘 아는데, 그러니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마귀가 꼬이듯이 사도바울이 가는 길에도 역시 꼬인다는 겁니다.
(행 19: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행 19: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그래서 악마가 사도바울이 주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훼방을 놓는대, 복음의 내용을 말하지 말라고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인간들이 자기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말이죠. 평소에는 악마가 보이지 않는데, 그런데 그 악마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되면, 악마가 미련을 가지고 달려든다는 겁니다.
뱀의 역사가 곧 인간의 역사인데, 그 역사를 악마가 쥐고 있기 때문에, 역사와 전통과 관행을 계속해서 유지하게 한다는 말이죠. 악마는 그것을 무기로 삼아서 인간들을 보고, "그렇게 하면 너는 사회에서 매장을 당한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게 곧 역사인데, 즉 "네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인간답게 살아라" 라는 것이죠.
그것이 곧 악마의 속삭임인데, 악마는 이 세상에 천국에 갈 인간이 있다고 한다는 겁니다. 즉 "잉태한 인간들이라도 천국에 갈 가능성이 있다" 라고 주장한다는 말이죠. 잉태된 인간이 종교적이고 헌신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그렇게 악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 묵시적 존재의 등장 !!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율법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는데 성령이 임하면 어떻게 됩니까? 졸지에 죄사함이 되어서, 회개고 반성이고 간에, 그것을 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되는 게 아니고, 그만 시간이 묵시가 되어서 일방적으로 죄사함의 혜택이 주어져 버린다는 말이죠. 그게 묵시적 존재라는 겁니다.
예수님 자신이 시간적으로 묵시적 존재로서 역사에 구애받지 않는데,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미 일괄적으로 죄사함을 주게 되니까, 이제 남아있는 것은 "이런 인간도 죄사함이 가능하다" 라는 것인데, 그런 쪽으로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이 천국에 갈 백성들을 이 땅에서 생산해내신다는 겁니다.
여기서 교재 114페이지를 보겠습니다.
-----------------------------------------
** 구원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잉태가 있게 합니다. 상처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존재가 있는 것처럼, 구원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그 구원을 보여주기 위해서 세상에는 자연적인 시간 속에서 출산이 가능한 많은 여자들을 등장시킵니다.
-----------------------------------------
* 구원, 그 다음이 잉태 !!
이게 참 어려운 말인데, 구원이 먼저 있고 그 다음이 잉태라는 말이죠. 이게 로마서 9장에 나오는데,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결정을 하셨다는 겁니다. 십자가의 계획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우리 인간이 있다는 말이죠.
(롬 9:10)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롬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롬 9: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롬 9: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것은 기존의 역사나 관행을 완전히 이탈하는 것인데, 제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여러분이 성령을 받았으면 여러분이 떠난 자리가 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기 이전에는 역사와 관행과 관습에 얽매여서 그들이 요구하는, 즉 "사람답게 살아라" 라고 하는 것에 얼마나 애를 많이 썼는지 모른다는 것이죠.
이 땅은 지옥환경인데, 그러니 이 땅에서 가르치는 것, 즉 "이렇게 살아야 짐승이 아니고 사람답다" 라는 것이 딱 나온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사두개인들이고 바리새인들이었다는 말이죠. 즉 "사람이라면 율법을 지켜야하고, 그래야 천국백성이다" 라는 것인데, 그게 그들의 매뉴얼에 나와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들에게 죽였다는 말이죠.
그들은 악마가 자기들의 마음속에 들와와서 "이렇게 살아야 천국백성답다" 라고 시켰다는 것, 그것을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몰랐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고 난 다음에도 몰랐는데, 왜냐하면 악마가 "예수님 한 몸만 제거해라. 그러면 원상복귀가 된다" 라고, 계속해서 그것만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죠.
* 안동 권씨 18대손과 복음 며느리 !!
예를 들어서, 복음을 아는 아가씨가 시집을 갔는데, 그래서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집안이 하필이면 안동 권씨 18대손이라고 하면, 그것도 그 집에 맏며느리도 들어갔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여자가 복음을 지식으로 아는 게 아니라 진짜 성령을 받았다는 말이죠.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성령이 시키는 대로 이야기하고 움직인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집안에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데, 모여서 어떻게 나오겠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그 모임에서의 관건은 당연히 "여기서 무엇만 하나 잘라내면 우리가 예전처럼 다시 돌아가겠느냐?" 라는 것인데, 그래서 당연히 그 여자를 두고 '비정상이다' 라고 하면서 잘라내어 버린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당한 수난인데, 그 수난을 성령을 받은 자들은 이와 똑같이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안동 권씨 18대손이 모두 모여서 거창하게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그 며느리가 음식을 하면서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떡에도 십자가 모양의 무늬를 넣어서 제사상에 놓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도포를 입고 갓을 쓴 노인네들이 그야말로 기겁을 하는데, "이런 귀신이 우리 집안에 어떻게 들어왔는가?" 라고 나온다는 것이죠. 자기들이 귀신이면서 말이죠(ㅋㅋ).
* 예수 하나만 잘라내면 된다 !!
지금까지는 쉬운 것을 했는데, 이제 어려운 것을 좀 해봅시다. 그렇다면 악마가 계속해서 추진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은 결코 나쁘지 않고 희망적이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줄기차게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하나만 잘라내면 된다. 그러면 과거처럼 희망찬 인간세계를 만들 수 있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그러면 앞으로도, 즉 2021년, 2022년, 2023년, 그렇게 계속해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인데, 즉 "역사라는 활주로에서 비행기를 타고 천국으로 날아보자"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역사를 벗어나게 못하게 해서, 계속해서 그런 시도를 하게 만든다는 말이죠. 하지만 성경에 보면 그게 아닌데, 사도행전에 그런 내용들이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서 데모데후서 4장 1절을 보면, 여기에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라고 하는데, 이런 게 가정이나 직장에서 싫다는 말이죠. 예수님이 심판을 하시는데, 산 자와 죽은 자를 모두 심판을 하신다는 겁니다. 살아있는데 심판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미 지옥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딤후 4: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 죽어도 지옥이고 살아도 지옥 !!
그러니 죽고 산 것이 차이가 없는데, 죽어도 지옥이고 살아도 지옥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장례식장에 가서 울 이유가 없다는 말이죠. 울려고 하면 살아있을 때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을 보고 울든지 해야지, 죽고 나면 그런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살아있을 때도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죽어서도 믿지 않는다는 말이죠.
이 땅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총괄해서 내려다보면서 심판을 한다는 것, 이것은 소위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당신이 감히 나를 건드리겠다고? 내가 가만히 있는지 두고 봐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런 격한 분노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 예수님의 잔소리 !!
그러니 우리가 그들을 이해해주어야 하는데, 마귀가 들려서 그렇다는 것을 말이죠. 그들은 자기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마귀와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 자기에게 잔소리를 하든지 하면, 어떻게 그 잔소리에 대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말이죠.
모든 범죄의 90퍼센트가 잔소리 때문이라고 하는데, 술을 마시고 들어가면 마누라가 잔소리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사고를 친다는 말이죠. "네가 나이 30살을 지났는데도 취직을 하지 않고 뭐하노?" 라고 하면, 자식이 그만 아버지를 죽여버린다는 겁니다. 가만히 두면 되는데, 건드리면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가 바로 이 잔소리 때문인데,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되는데, 그들을 보고 잔소리를 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세상이 지옥이라는 말이죠. 악마의 입장에서는 무엇인고 하니까, "당신은 지금 여기에 오실 분이 아닌데, 여기는 우리가 있는 곳인데 왜 오셨습니까?" 라고, 마귀는 그것을 문제로 삼는다는 겁니다.
* 악마의 상식 !!
마귀는 예수님도 알고 사도바울도 아는데, 그래서 악마는 사도바울을 추적한다는 말이죠. 데모데전서 1장에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나오는데, 귀신이 들린 자라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도 보면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성령이 나오는데, 그게 사도바울의 눈에는 보인다는 말이죠.
(고후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사도바울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보이는데, 하지만 어떻게 그들만을 탓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겁니다. 너무나도 보편적이라는 말이죠. 소위 '상식' 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상식은 악마의 상식이라는 것이죠. 악마가 가르쳐준 삶의 방식 자체가 곧 상식이라는 겁니다.
* 우리는 조용히 살고 싶지만 !!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다는 것은, "너는 성령을 받고 난 뒤에 조용히 살아라" 라는 차원에서 주신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죠. 물론 우리는 조용조용히 살고 싶은데, 그런데 성령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떻게든 그 티를 낼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아이가 엄마가 키우지 말라고 하는 도마뱀을 몰래 키우고 있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집에 와서 도마뱀을 그만 냄비 속에 넣어놓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엄마가 오면 그 냄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덜거덕거리겠습니까? 도마뱀이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움직인다는 말이죠.
그렇게 성령이 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고 싶어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성령께서 자꾸만 돌아다니는데, 그래서 속으로 "성령님, 지금은 회의시간이니 제발 좀 가만히 있어주세요" 라고 하면, 성령님은 어떻게 나오십니까?
성령님은 우리의 그런 요구사항을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네가 말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네 속의 성령이다" 라고 하면, 그러면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것을 두고 이 세상에서는 '미쳤다' 라고 하는데, 정말이지 제대로 미쳤다는 겁니다.
* 미쳤어, 정말 미쳤어 !!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3절에서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라고 하면서 자기는 미쳤다고 했는데, 빼내주신 주님의 사랑에 미쳤다는 말이죠. 자기를 대속해주신 그 사랑에 자기는 도저히 미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주님의 그 사랑에 꽂히고 박혀버렸다는 말이죠.
(고후 5: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리고 딤모데후서 4장 14절에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라고 하는데, 이 알렉산더로 인해서 사도바울이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가 사도바울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애를 많이 먹였다는 말이죠.
(딤후 4:14)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딤후 4:15)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하지만 사도바울은 이 모든 것이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주님께서 시켜서 자기는 부득불 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하면서도 이렇게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주님이 자기 육적인 존재를 없애는 방향으로 일을 시키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기가 했던 그 모든 것을 자기가 했다고 도저히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것을 두고 '믿음' 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믿음이 있는 자가 자기가 해놓고도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나온다는 말이죠. 그게 믿음이 있는 자의 모습이라는 것이죠.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가 자기가 아기를 낳고도 낳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러니 그것이 믿음이라는 겁니다. 즉 "주께서 낳게 하신 것이지 내가 낳은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란 말이죠. 그것은 마리아도 마찬가지인데, 그러니 천국에 가는 사람은 이런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사도행전 8장을 보겠는데, 26절부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행 8: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행 8: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행 8:28)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아사야의 글을 읽더라
(행 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행 8: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행 8: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행 8:32)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행 8: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행 8: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행 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행 8: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행 8:37) (없음)
(행 8: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행 8: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행 8: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 인간소실 !!
여기에 빌립 집사가 나오는데, 이 빌립 집사에게 성령이 임했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그 존재의 태도는 누구의 성과라는 겁니까? 당연히 성령님의 작품인데, 이 빌립 집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이 텔아비브에서 가자지구로 갔다는 말이죠.
거리가 제법 되는데, 서울에서 대전정도로 보시면 된다는 겁니다. 성령께서 이 먼 거리를 빌립 집사를 꼭 집어서, 어디로 데리고 간다고 말씀도 하지 않고 데리고 가셨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빌립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게 오늘의 강의제목이 될 수도 있는데, 즉 '인간의 소실' 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인간 자체가 없어졌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겁낼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이죠. 오히려 고맙게 여겨야 하는데, 왜냐하면 인생사 자체, 즉 삶이란 무엇인고 하니, "삶은 억지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이 억지인데, 왜냐하면 자기가 원하지 않는 파도에 계속해서 휘둘린다는 말이죠.
이것을 꼭 나이가 70이 넘어서 알아야 하는 게 아닌데, 성령을 통해서 나이 40이라도 얼마든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어제 낮 설교시간에 강제로 여러분에게 알려드린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유언의 매뉴얼' 이라는 말이죠.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성도의 유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겁니다.
* 나는 평생 루저다 !!
그것은 바로 "나는 평생 루저다" 라는 것인데, 이 '루저' 라는 게 무엇인고 하니, '패배자' 라는 말이죠. 그냥 실패를 한 정도가 아니고, 완전히 패배를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중요한데, "그래서 신났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억지스러움을 놓게 되었다는 것이죠.
꾸역꾸역 자기가 자기답게 되기 위해서 얼마나 그동안 가짜 삶을 살아왔느냐는 겁니다. 그야말로 억지인데 억지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웃음을 띄면서 살아야 했다는 말이죠. 그래서 자기 자신을 소실, 즉 없애버리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없애면 여자의 후손이 생산한 천국에 가는 인생이 개시된다는 말이죠.
그러기 위해서 먼저 인간이 소실되는데, 이것을 쉽게 '나의 소실'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내가 사라지는 삶' 이라는 겁니다. 그게 여기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데, 26절부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 패배자 !!
빌립 집사가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났는데, 이게 그가 읽고 있던 이사야서라는 겁니다. 이사야의 예언이라는 말이죠. 이것을 쉽게 말씀을 해드리면, "어떤 분이 이 땅에 오시는데, 이분은 패배자가 되어도 입을 열지 않고, 그리고 그분이 왜 그런 고난을 받는지, 그것을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고, 그냥 소리도 없이 자기 생명을 빼앗겨 버렸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과 인간의 소실이 무슨 관계가 있는고 하니, 빌립 집사가 가자지역에 갔는데 거기에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마차를 타고 오는 자가 있더라는 말이죠. 빌립 집사는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는데, 그가 에디오피아에서 큰 권력을 쥐고 있던 내시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때 그 자의 손에는 이사야서 53장이 펼쳐져 있었다는 말이죠.
* 너는 빠져 !!
그러면 이게 왜 인간의 소실인고 하니, 이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 빠져야 한다는 겁니다. 즉 '나' 라는 것이 빠져야 하는데, 자기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그것을 빼버리고 이야기해 주어야 이 세상의 핵심부분의 마개를 열고 이야기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아니고 자기 엉덩이로 이 세상의 중심을 막고 있으니, 그러면서 "주님이여, 저를 구원해주세요. 제가 어떻게 살면 천국에 갑니까?" 라고 하니, 이 세상의 핵심, 즉 진리에 전혀 접근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눌리면서 막고 있다는 말이죠. 즉 "너는 빠져" 라는 것인데, 그게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서 나를 빼라" 라는 것인데, 즉 마이너스라는 말이죠. "주님이 현실을 만드는데 네가 왜 끼어 들어? 그러니 너는 빠져" 라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는 빠지고 그분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셨는지, 그것이 이사야서에 나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빌립 집사가 이사야서 53장을 가지고 시작하는데, 거기서 온 우주를 다 설명해버린다는 것이죠.
그러니 이것은 그냥 빌립 집사가 아니고, 성령을 받은 빌립 집사가 그 일을 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에게는 그 성령이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찾아왔는데, 그렇지요?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성경말씀을 어떻게 봐야한다는 겁니까? "너는 빠져" 라고, 즉 자기는 빠져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자기는 빠지고 여기에 여자의 후손인 메시야를 집어넣고, 그 메시야가 이 땅에서 아무런 낌새도 없이, 그러니 사람들이 그분은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냥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이 땅이 곧 지옥임이 들통나는 결정적인 사건이라는 것이죠.
물론 이 세상 사람들은 몰라도 악마는 알고 있는데, 그리고 누가 압니까?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것을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하, 그분이 소리소문도 없이 이렇게 망가지는 가운데 천국에 갈 백성들이 잉태가 되는구나"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 예수님의 삶에서 잉태가 된 자 !!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삶에서 잉태가 된 자라야만, 천국에 가서 천국의 삶을 행세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살던 사람이 그냥 천국에 가면, 천국에서 어떻게 행세를 해야하는지를 전혀 모른다는 말이죠. 잉태치 못한 환경에서 생산된 자리야, 천국에 가서 적합한 삶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원칙인데, 지옥에 갈 자들은 이 땅의 삶을 그대로 가지고 가면 그야말로 맞춤이라는 말이죠. 그 반대가 천국의 삶인데, 천국의 삶은 이 땅의 삶과는 너무나도 단절이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런 이 세상과 공통점이 없는 삶은 예수님으로부터 먼저 시작이 되었다는 것이죠.
* 어느 아가씨의 '막 죽음' !!
이렇게 시작된 예수님의 삶에 대해서 제가 어제 오후시간에 잠시 설명을 해드렸는데, 물론 그때 분위기는 "목사님은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라는 것이었는데 말이죠(ㅋㅋ). 그때 제가 시골에서 올라온 20살 먹은 아가씨 이야기를 예를 들어서 했다는 겁니다. 이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는 말이죠.
20살 먹은 아가씨가 서울에 와서 남자를 만났는데, 그래서 서로 친구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는 그 여자친구를 자기 아버지가 하는 식당에 취직을 시켜주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 아버지가 그만 그 아가씨를 건드린 모양인데, 그래서 이 남자가 자기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를 제거했는데, 즉 자기 여자친구를 그만 죽여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이 여호수아서 1장 7절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말이죠. 어제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자유가 평행선을 달린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고 율법을 이룰 수 없다" 라고 했는데, 그 내용과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겁니다.
------------------------------------
** (어제 설교)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자유가 대결 상태에 있는 그 실상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알려집니다. 여호수아 1장 7절에 보면,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라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좌로나 우로나' 라는 것은 율법을 기준점으로 할 때 나타나는 인간의 자율성 발휘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가운데 있는 율법은 하나님의 자유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자유가 어떻게 거리가 벌어져 있는지, 결코 일치될 수 없음을 보이기 위해 제공된 겁니다.
------------------------------------
물론 관계가 있는데, 왜냐하면 20살을 먹은 그 아가씨의 운명은 무엇과 대조가 되는고 하니, "기어이 나는 나의 의를 나는 갖겠다" 라고 여기는, 이것을 욥이 이야기를 했다는 말이죠. 그렇게 욥이 자기 의를 가짐으로서 자기 됨을 유지하는 것과, 그런데 이 아가씨의 죽음은 '막 죽음' 이라는 겁니다. 마치 아벨과 같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을 죽인 가인을 보호해주는데, 그것도 오버해서 말이죠. 그래서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이 7배다" 라고 하셨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 앞에서 율법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인을 건드리면 하나님 자신을 건드리는 것이 되어서, 그 벌을 무려 7배나 받게 된다는 말이죠.
(창 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 그냥 맥없는 죽는 운명 !!
그렇다면 이 법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고 하니, 장차 오시는 하나님의 운명, 그냥 맥없는 죽는 운명이 거기에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율법을 정조준해서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인간은 기어이 자기 것을 고수하기 때문에 말이죠.
그러면 성도라고 하면, 여기서 자기 모습을 욥에 두어야 합니까? 그게 아니면 서울에 와서 그냥 힘도 없이 그냥 죽어버린 아가씨에게 두어야 합니까? 어느 쪽이 우리의 운명이 되어야 하느냐는 겁니다. 이 아가씨의 운명이 억울하게 죽어버린 아벨의 운명과 동일하다고 하면, "아가씨, 그렇게 그냥 허무하게 죽으면 안 되지. 너무 억울하잖아" 라고 하고 싶은데, 그런데 그게 아벨의 운명과 같다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말이죠.
그러면 살짝 갈등이 오는데, 우리는 이왕 태어났으면 "나는 이렇게 나답게 살았다" 라는 것을 만들고 싶어하는데, 그러한 충동이 우리에게 다들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천국에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아담의 모습이기에 말이죠.
* 철없는 인간들 !!
제가 20살 먹은 아가씨 이야기를 한 것은, 천국과 지옥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그냥 서울에서 살고 싶을 뿐인데, 굳이 거창한 구호를 걸고 데모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말이죠. 그냥 자기 몸뚱아리 하나 살리고 싶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위에서 남들이 가만히 두지 않고 죽여버렸는데, 그 아가씨는 그냥 혼자였으니 말이죠. 예수님이 그렇게 돌아가셨는데, 예수님 주위를 포진하고 있던 12제자들은 도망치기에 바빴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과연 예수님을 알고 믿는다고 할 수 있느냐는 말이죠.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너희에게 생명이 있다" 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엉뚱한 곳에서 생명을 찾지 말라는 것인데, 달리 말하면 자기가 잘되는 곳에서는 생명이 없다는 겁니다. 자기가 유명인사가 되고 대단하다고 칭찬을 받고 팬들이 많은, 이런 구성은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의 욥과 같은, 그야말로 철없는 태도라는 말이죠.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 중의 하나가 "철이 없다" 라는 것인데, 자기 자신도 모르고 또한 세상도 모르고, 그냥 자기가 밥이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것인데, 그러면 자기는 루저가 아니고 성공한 자라고 자부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간만 보내는데, 그렇게 죽음을 향해서 미끄러지고 있다는 겁니다.
* 어머, 이게 웬일이야?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 라는 유명한 노래에 보면, "지금까지 내가 남들에게 별로 해를 끼친 것도 없고, 남자로서 이 정도로 살았으면 잘 살았다고 자부한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주님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지옥에나 가라"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흔하고 흔해빠진 것이 지옥에 가는 자들인데, 거기에는 친구들도 있고 동창생들도 있고 같이 성경공부를 하던 자들도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마음을 다음과 같이 먹어야 하는데, 만약 천국에 가는 자가 있다고 하면, "이게 웬일이야?" 라고 하면서 반기면 된다는 말이죠. 지금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기뻐해야 하는데 심각해지고 있다는 겁니다(ㅋㅋ).
* 빌립 집사와 에디오피아 내시 !!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빌립 집사가 성령을 받아서 멀리 가사로 가서 에디오피아의 고관대작인 어느 내시를 만나게 되는데, 그리고는 이사야서 53장을 보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핵심부분인데, 즉 모든 진리가 쏟아져 나오는 핵심을 펼쳐서 보게 되었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이사야서 53장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맥없이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 이유를 몰랐다. 끝!",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이게 진리이고 생명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인간들 손에 반항도 하지 못하고 죽음으로서 생산과 살과 피, 그분만이 유일하게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겁니다.
그러자 여기서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묻는데, "그분이 누구인가?" 라고 말이죠. 그러자 빌립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이 말이죠. 이것은 빌립 집사의 아이디어가 아니고 성령께서 딱 뽑아 들어서, 그 내시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그를 만나게 해주셨다는 겁니다.
* 잉태지 못한 자들끼리의 만남 !!
이게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나오는데, 여기게 백부장인 고넬료가 나오고 베드로가 나온다는 말이죠. 두 사람은 거리상 멀리 떨어져있는데, 욥바, 즉 지금의 텔아비브에 베드로가 있었고, 고넬로는 멀리 남쪽의 가이사랴에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천사가 양쪽에 다 가서 소식을 전했는데, 그래서 만나게 해주었다는 말이죠. 성도와 성도끼리, 즉 잉태지 못한 자들끼리 만나게 해주었다는 겁니다.
(행 10: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행 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행 10: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행 10: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행 10: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행 10:6)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이 모든 것을 성령께서 다 일일이 주선을 해주셨는데, 그러니 지금 성령은 놀지 않고 있고, 또한 주님께서도 놀지 않고 있다는 말이죠. 우리만 딴 짓을 하고 있는데, 걱정을 늘어지게 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게을러서 교인들 숫자가 늘지 않는가?", 혹은 "내가 못나서 자식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가?" 라고 한다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농땡이를 쳐서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게 결코 아닌데, 택한 백성은 지옥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한 번 들어선 좁은 길은 되돌아설 수 없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이죠. 성령을 보증으로 해서 값까지 다 치루었는데, 그러니 소유권이 이미 다 넘어갔다는 겁니다. 즉 "너는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 성도는, 역주행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
그러니 한 번 들어선 좁은 길, 그 천국에 가는 길에서 우리는 되돌아설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역주행'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오늘의 강의제목으로 하고 싶은데 말이죠. 이 역주행의 특징이 위험하다는 것인데, 그런데 성도는 역주행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 땅에서 역주행을 하셨다는 말이죠. 악마가 위험하다고 하면서 말렸는데, 심지어 십자가를 지는 순간까지도 말렸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광야에서 말렸고, 또한 십자가를 지는 순간에도 회유를 했다는 말이죠. 즉 "네가 만약 진짜 메시야라고 하면, 지금 당신의 뺨을 누가 때렸는지 알아 맞춰봐라" 라고, 그런 식이었다는 겁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이것을 모르는데, 이 세상은 역주행을 하는 자들이 있고, 그리고 상식대로, 관행대로 사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죠. 이 두 가지 흐름이 성령을 받게 되면 비로소 보인다는 것이죠. 성령을 받지 않으면 이러한 갈라짐을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역주행이 없는데, 서로 같은 트랙에서 나란히 달리면서 누가 승리자이고 누가 패배자인지, 서로가 그런 경쟁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서 "내가 너보다도 더 빠르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이것을 두고 '분노의 질주' 라고 하는데, 지금 이 영화가 무려 7편까지나 나왔다는 말이죠.
* 분노의 질주 !!
차를 가지고 속도경쟁을 하는데, 이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잘 묘사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냥 질주가 아니고 분노의 질주라는 말이죠. 요즘 20대를 보면 알바를 해서라도 무엇을 먼저 사려고 하는고 하니, 고물이라도 외제차를 사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천만원짜리 벤츠를 산다는 말이죠. 남들에게 결코 기가 죽지 않겠다는 겁니다.
제가 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고 하니,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말이죠. 그것이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다 허세고 허풍이라는 겁니다. 즉 분노의 질주에 끼어들어서 자기는 승리자가 되고 싶어한다는 말이죠. 사람들이 스포츠를 왜 좋아합니까? 그것은 승자가 있기 때문인데, 그 승자와 자기가 감정이입이 된다는 겁니다.
이게 비단 20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40대나 50대나 60대가 되어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말이죠. 선거가 바로 그러한데, "윤석열, 나와라", 그리고 "이재명, 나와라" 라고 해서, 그 다음에 어떻게 합니까? 서로 경쟁을 시켜서, 거기에서 승리하는 쾌감을 맛보려고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성도는 역주행인데, 경쟁에서 이기는 자가 승리자가 아니라는 말이죠. 다른 사람들이 속력을 내면서 마구 자기 옆을 지나가는데, 역주행을 하니 그게 보인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로 가는 겁니까? 열심히 달려서 지옥에 가고 있다는 말이죠.
* 참 재미가 없다 !!
그래서 복음을 알게 되면 그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까, 저에게 많이 하는 이야기가 "참 외롭다" 라는 것인데, 그 다음에는 "이 세상에 재미가 있는 것이 없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당연한데, 떠나야할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이사야서를 통해서 자기가 소실되고 그리스도가 모든 것의 주인공임을 알게 되었다면, 굳이 이 세상이 재미가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재미가 있다고 하면, 이게 위험하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재미가 있으면 범죄가 일어나는데, 그것은 유혹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재미가 있는 것이 시시해지면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래서 "하라, 하지 말라" 라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한꺼번에 다 시시하다고 여겨지면, 하고 말고 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는 겁니다.
*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
그래서 비가 오면 우산을 쓰면 되고, 잠이 오면 잠을 자면 된다는 말이죠. 그리고 시험이 있으면 준비하면 된다는 겁니다. 더러우면 청소하면 되고,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된다는 말이죠. 이게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천국에 가는 것에 비하면 사소하고 시시한 일이라는 것인데,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이죠.
그러니 역주행을 하다가 세상에 다시 합세할 이유가 없는데, 아내가 만든 음식이 맛이 없으면 먹지 않으면 된다는 겁니다. 밖에 나가서 사먹으면 되는데, 돈이 떨어지면 굶으면 되고, 굶기 싫으면 맛이 없어도 먹으면 된다는 말이죠(ㅋㅋ). 그야말로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겁니다.
천국의 환경이라는 것은 주님과 함께 하는 환경인데, 그러니 이 세상에서 살다가는 주님과 결코 함께 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 사고방식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주님께서 친히 생산한 자, 즉 잉태치 못한 자만이 주님을 이해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인데, 즉 "주님이 그냥 주셨어요"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자기 노력이 아니라는 것인데, 모든 것이 주님의 공로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셔라" 라고 하신 것인데, 우리는 시작부터 그렇게 하자는 말이죠.
그 시작이 교재 118페이지에 나오는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
** 언약사건을 어떻게 전할까 싶어서 제가 생각한 것이 곧 '사운드 오즈 뮤직' 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도레미 송'인데, 그것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도레미 송에 나오는 장면을 보면, 마리아 선생님이 커튼을 찢어서 아이들에게 옷으로 만들어 입히고 짤스부르그 뒷동산에서 노래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애들이 노래를 배운 적이 없어서 노래를 가르치는데 뭐라고 하는고 하니, 하나의 음표만 알아도 모든 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When you know the notes to sing. You can sing most anything."
-----------------------------------------
* 도레미 송 !!
아이들에는 아버지가 있는데, 이 아버지는 해군출신의 대령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아이들에게 음악과 같은 것을 가르쳐본 적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가 슈냐이더 백작부인과 재혼을 하려고 하는데, 그 백작부인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서 견습 수녀이자 가정교사인 마리아가 아이들에게 노래를 짤스부르그 들판에서 가르치게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부르는 노래가 바로 도레미 송인데, "노래의 기본은 무엇입니까? - 도레미", 그렇게 시작을 한다는 겁니다. 모든 것을 '도레미'로 새로 시작하는데, "도는 암 사슴, 레는 태양에서 내리쬐는 한줄기 볕, 미는 내가 나 자신을 부를 때, 파는 뛰기에도 오래 걸리는 길, 솔은 바느질하는 것, 라는 솔 다음에 치는 건반, 시(티)는 빵에다 쨈을 발라먹을 때 곁들여 마시는 것"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 십자가가 곧 'ABC' !!
무슨 말인고 하니, 여기서 기본적인 것은 '십자가' 라는 겁니다. 십자가가 곧 'ABC' 라는 말이죠. 십자가가 모든 역사를 끝내버렸는데, 그렇게 끝내었으니 완성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이전은 미완성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창세기부터 줄줄이 십자가에서 무엇을 던져 넣었는고 하니까, 도레미에 해당하는 음계들을 집어넣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창조 언약, 노아 언약", 이 노아 언약은 창조 언약의 시작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 다음이 "아브라함 언약, 이삭 언약, 야곱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 그렇게 해서 끝이 난다는 겁니다. 이것들이 십자가에서 나왔기 때문에 다시 십자가로 회수가 된다는 말이죠.
* 그것이 곧 '이스라엘 역사' !!
바로 그 과정 속에서 "왜 인간의 육은 되지 않는가? 왜 언약에 의해서 새로 생산된, 즉 잉태치 못한 자들만 천국에 가는가?" 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는 겁니다. 바로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육으로 난 것과 영으로 난 것, 즉 언약의 자식간의 내부적이고 또한 외부적인 투쟁을 '이스라엘 역사' 라는 이름으로 전개를 시킨다는 말이죠.
그 이스라엘 역사가 오늘날 우리의 인생인데, 부모가 만들어준 육이라는 인생, 그리고 찾아오신 성령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악마가 뭐라고 합니까? "그냥 우리 여기서 살자. 대다수가 아는 것이 진리야. 교회에 가서 무슨 소리를 들은 모양인데, 너 혼자 아는 것은 진리가 아니야"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것을 외부에서 이야기할 수 있고, 또한 자기가 자기를 설득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내가 교회를 50년을 다녔는데, 지금까지 달라진 것도 없고 결국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죽고 나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그것 외에 무엇이 있겠어?" 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 수밖에는 없다는 말이죠.
* 과연 무엇이 창피한가?
물론 여러분은 여기에 해당사항이 없지 싶은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교회에 다니고 복음을 아는 것이 나에게 부수적인 것이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제 낮 시간에 "돈이 없는 것이 창피합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창피합니까?" 라고 했는데, 어느 경우입니까?
우리가 언제 얼굴을 들지 못합니까? 사기를 당했을 때입니까? 예수를 믿지 않을 때입니까? 우리 육의 본성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시고,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은 제발 건성으로 흘려들어라. 결코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계속 속삭이고 있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네가 남들이 보기에 근사해야지? 남들이 욕을 해도 좋아?" 라고, 그렇게 우리가 자기 자신을 설득하고 있다는 겁니다. 성경말씀을 멀리 하면 그렇게 되는데, 그러면 이 세상의 분위기가 확 몰려와서 자기도 어쩔 수 없이 거기에 휩쓸리게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듣게 되고, 성령께서 그렇게 하실 때는, 이것은 미쳐야 할 문제이지, 제 정신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겁니다. "아, 바로 이것 때문에 악마가 그렇게 부추겼구나" 라고 하게 되는데, 그러니 '역주행' 이라는 말이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그냥 안다고 하면서 건성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날마다 죽고 날마다 천국에 가는 자로서 새로 태어나서, 주님의 신생아로서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21,6,26 오후 6시에 마침.
목사님, 재미는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이 너무 빠릅니다.
그러면 재미가 있는 것인가요?
------------------------------------------------
[ My Way ]
Frank Sinatra
And now the end is here
벌써 끝이 다 됐구려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삶의 마지막 장에 다다른 것 같소
My friend I`ll say it clear
친구여, 내 확실히 말해 둠세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나는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겠네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나는 충만한 삶을 살았네
I traveled each and ev`ry highway
나는 모든 고속도로들을 다녀와봤고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I did it my way
그리고 이보다 더한 것들도 내 뜻대로 해 봤네
Regrets I`ve had a few
후회는 좀 있었네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그래도 다시 입에 올릴 만한 건 별로 없었지
I did what I had to do
나는 내 할 일을 하였고
and saw it through without exemption
그것을 가감없이 끝까지 지켜보았네
I planned each charted course
나는 나의 길을 착실히 계획했네
each careful step along the byway
샛길을 따라 착실히 걸었지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I did it my way
그리고 이보다 더한 것들도 내 뜻대로 해 봤소
Yes there were times I`m sure you knew
그렇소, 내가 확신했을 때가 몇 번 있었소
When I bit off more than I could chew
그대도 알다시피 나는 내가 씹을 수 있는 그 이상을 물어뜯지 않았소
But through it all when there was doubt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뚫고 마음에 의심이 들더라도
I ate it up and spit it out
그냥 그런 것들은 뱉어버렸소
I faced it all and I stood tall and did it my way
나는 마주하여 굳건히 서고 내 식대로 그것을 해 냈소
I`ve loved I`ve laughed and cried
사랑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소
I`ve had my fill my share of losing
나는 실컷 잃어보기도 했소
And now as tears subside I find it all so amusing
그리고 이제 놀라울 만큼 눈물이 차오르오
To think I did all that
내가 그 모든 것을 했다니 말이오
And may I say not in a shy way
부끄럽지 않은 태도로 말해도 되겠소?
Oh no oh no not me I did it my way
하하, 이런, 난 아니오 나는 내 식대로 했을 뿐이오
For what is a man what has he got
무엇을 위해 한 남자가 살았고 무엇을 그가 얻었는지
If not himself then he has naught
그 스스로가 아니라면 그는 아무런 존재도 아닐 것이오
To say the things he truly feels
한 남자가 진실로 느낀 것을 말하는 것이고
and not the words of one who kneels
또한 세상에 무릎 꿇은 이가 하는 말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오
The record shows
나중에 기록이 말할 것이오
I took the blows and did it my way
나는 온몸으로 받아내어 그것을 내 식대로 해냈소
Yes it was my way
그렇소 그게 나의 길이었소
------------------------------------------------
[도레미 송]
Do-re-mi, do-re-mi
The first three notes just happen to be
Do-re-mi, do-re-mi
"도-레-미", "도-레-미"
맨 처음 세 건반은 바로 "도-레-미", "도-레-미"랍니다.
Do-re-mi-fa-so-la-ti
Let's see if I can make it easy
도-레-미-파-솔-라-시
어디 보자, 쉽게 해 보자꾸나~
Do, a deer a female deer
도는 암 사슴이구요
Ray, a drop of golden sun
레는 태양에서 내리쬐는 한줄기 볕이구요
Me, a name I call myself
미는 내가 나자신을 부를 때,
Fa, a long long way to run
파는 뛰기에도 오래 걸리는 길이에요
Sew, a needle pulling thread
솔은 바느질하는 것이고
Ra, a note to follow so
라는 솔 다음에 치는 건반이구요
Tea, a drink with jam and bread
시는 빵에다 쨈을 발라 먹을 때 곁들여 마시는 것이랍니다.
And that will bring us back to Do (oh! oh! oh!)
그리곤 다시 도로 되돌아 가요~♪
Do-re-mi-fa-so-la-ti
도-레-미-파-솔-라-시
Do, a deer a female deer
도는 암 사슴이구요
Ray, a drop of golden sun
레는 태양에서 내리쬐는 한줄기 볕이구요
Me, a name I call myself
미는 내가 나 자신을 부를 때,
Fa, a long long way to run
파는 뛰기에도 오래 걸리는 길이에요
Sew, a needle pulling thread
솔은 바느질 하는 것이고
Ra, a note to follow so
라는 솔 다음에 치는 건반이구요
Tea, a drink with jam and bread
시는 빵에다 쨈을 발라 먹을 때 곁들여 마시는 것이랍니다.
Do-re-mi-fa-so-la-ti
도-레-미-파-솔-라-시
Do, a deer a female deer
도는 암 사슴이구요
Ray, a drop of golden sun
레는 태양에서 내리쬐는 한줄기 볕이구요
Me, a name I call myself
미는 내가 나자신을 부를 때,
Fa, a long long way to run
파는 뛰기에도 오래 걸리는 길이에요
Sew, a needle pulling thread
솔은 바느질 하는 것이고
Ra, a note to follow so
라는 솔 다음에 치는 건반이구요
Tea, a drink with jam and bread
시는 빵에다 쨈을 발라 먹을 때 곁들여 마시는 것이랍니다.
Do Ray Me Fa Sew Ra Tea Do Sew Do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솔! 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