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

중지와 정지

아빠와 함께 2020. 10. 7. 08:42

326강-YouTube강의(중지와 정지 출애굽기 16:3)20201006-이 근호 목사


제326강, 제목은 ‘중지와 정지’. ‘중지’라 하는 것은 일을 그만~하고 지난 것 다 후회스럽다 해서 그걸로 종결하는 것을 중지. ‘정지’라 하는 것은 멈춰있는 것. 멈춰있는 것이 정지죠. 중지와 정지가 비슷한 말이지만 광야에서 출애굽해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나올 때 사람들은 자꾸 중지를 원하는 거예요.

출애굽기 16장 2절에 보면,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온 회중입니다. 이거는 뭐 당회정도가 아니고 온 회중이, ‘세례 교인 전부가’ 이렇게 보면 되죠.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자,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고 주모자가 몇 명 있는 게 아니고 온 회중이. 100프로입니다. 모세와 아론 빼놓고는 100프로 전부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것은 실패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한 방향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럴려고 애굽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모세와 아론에게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하고 지금 형편을 한번 당신이 눈이 있거든 똑똑히 한번 비교해봐라. 지금 우리 꼴이 정상인지 한번 비교해보라고. 따라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애굽으로 돌아갑시다, 종결짓고. 당신의 그 구원 프로젝트, 쉽게 말해서 목회 그만두고 옛날 애굽에서 했던, 기존 교회에서 하던 대로 그냥 설교하고 그 내용으로 십자가 빼고 기도하면 복 받습니다. 쪽으로 갑시다. 100프로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죠.

여기서 하나님께서 그런 경우를 모세와 아론으로 하여금 겪게 했다는 겁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이 십자가라 하는 것은 현재 십자가 가는 길이 추가적으로 하나 더 챙기는 게 십자가 가는 길이 아니고 주님이 망했던 그 망함의 상태가, 즉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떤 실제적인 체험으로 공유하게 되는가’ 그게 살아있는 십자가입니다.

글자 속에 있는, 성경 속에 있는 십자가가 아니고 십자가가 바깥에 튀어나와서 나를 덮쳐버린 거예요. 덮쳐버리면 우리가 예수 믿고 생각했던 그 형편보다도 상상외로 훨씬 더 우리를 좌절시키고 실망시키고 절망케 하는 상황으로 몰아넣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에 대한 희망자체가 없게 만들어요, 구원되는 희망이. 구원에 대한 여망이 전혀 없게 만듭니다. 그것은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 자체가 십자가의 원리하고 대치가 돼요. 반대가 됩니다. 구원 받을 수 있다는 희망 자체가 실제로 십자가하고는 서로 반대 힘으로, 반작용으로서 부딪치고 있는 거예요. 전혀 희망이 없어야 십자가만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괜찮고 여기다가 추가해서 십자가 은혜까지 보태버리면 얼마나 괜찮은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제가 전에 썼던 책에 보면 목사는 목회에 실패해야 구원이 보인다고. 왜냐하면 모든 것을 목회에 다 걸었거든요. 내 교회 있다, 나 무시하지 마라, 내 교회 있다. 교인 수 몇 명 된다. 헌금 얼마 나온다. 그걸 쳐다보고 있으니까 그건 애굽이죠.

주님께서 그런 생각 가졌습니까. 아버지 앞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잠언서 16장 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맡길 때는 자기의 뜻과 희망 같은 건 다 맡겨야 되겠지요. 그게 바로 인간의 입장에서는 중지입니다.

그러면 정지는 어디 있느냐. 바로 그걸 내려다보고 있는 위에서는 정지가 돼요. 모세와 아론아, 한 텀 쉬었다 가자. 지상에서 어떠한 성질의 인간들을 주께서 천국에 보냈는지 네가 한번 목격해봐라. 전~혀 약속의 땅, 전~혀 천국, 전~혀 하나님과 합세할 수 없는 그런 성질들을 가득 안은 자들의 집합체, 그게 바로 내가 구원하려는 이스라엘이다. 그걸 모세와 아론이 경험케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들로부터 온갖 욕설이란 욕설, 퍼부어대는 욕설을 네가 다 받아라. 그들은 성질나서 퍼붓고 너는 그 성깔, 성질을 다 받아내고. 그것이 바로 장차 오실 메시아, 하나님이 이 땅에 당할 수모를 모세와 아론이 미리 같이 체험하고 있는 겁니다.

그 환경 자체가 좋은 게 좋다면 모세와 아론보고 그렇게 욕할 것까지는 없잖아요. 원망까지는 안합니다. 수고하십니다. 대단합니다. 우리를 구원하려고 기도까지 해주시고 설교해주시고 얼마나 수고가 많습니까. 이렇게 되지. 예의상이라도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참다 참다 노골적으로 터트리는 그런 것은 다 감내해야 돼요. 주님이 당했던 그 억울함이에요, 억울함. 억울함입니다.

사람이 나쁜 짓하고 욕 얻어먹으면 그래도 보람은 있어요, 보람까지는 아니지만. 뭐, 미안합니다. 하면 끝나는데. 내가 그들의 영혼을 생각해서 걱정해서 힘들여서 그렇게 수고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그리고 곡해, 오해밖에 없을 때 그것은 의도적으로 주님께서 유발시킨 겁니다, 의도적으로. 모세와 아론은 그것을 다 겪어야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러분들이 꼭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은 뭐냐 하면 그렇게 원망을 받았을 때 모세와 아론은 되레 백성들을 나무라기 시작하는 거죠.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너희들이 내 공로와 희생을 모르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나에게 원망하는구나. 너희들이 당해도 난 모르겠다. 나는 거기서 발 뺄란다. 이렇게 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여러분 아시다시피 광야에서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까? 못 들어갔죠. 욕 듣다 듣다 같이 성질나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가 나한테 욕을 할 때 그 욕하는 사람이나 욕 들어먹는 내가 욕 들어먹는다고 그 사람보다 더 의롭고 주님보시기에 더 합당하다. 이런 것은 없어요. 주님만이 억울하지.

사실 우리는 억울한 게 아니고 매사에 평소에 설교하거나 뭐할 때 살아가면서 고맙고 감사한 것이 빠져버린 겁니다. 고맙고 감사한 것이. 내가 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 할 때만 고마워하겠다는 그 조건을 내가 임의로 만들어버렸어요. 이렇게 희생하는데 이래도 감사 안 해? 그럼 너희들 나빠. 이런 식으로.

내가 하는 일의 정당성을 내가 포기를 못했습니다. 아이고, 아무것도 아닌데 이렇게 교회 나와주니 고맙습니다. 하는 고마운 마음이 없는 거예요. 감사한 마음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내 복음 듣고 다른 데 가서 지옥가라. 이런 식으로. 그러한 울화가 막 불쑥 튀어나온다 이 말이죠.

바로 그러한 타인을 통해서, 주님 편에 서있다는 내가, 복음을 안다는 내가 오히려 주님의 복음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환경을 통해서 까발리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잘해주면 고맙고 못해줘도 고맙고. 왜? 우리 자신은 천국갈 수 없는, 지옥 가야될 마땅한 존재인 것을 주님께서 이 광야 같은 세상을 통해서 늘 되새겨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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