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강-YouTube강의(무능력 출애굽기 3:12)20200922-이 근호 목사
제325강, 제목은 ‘무능력’. 출애굽기 7장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없었던 나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새로 만드는 이유가 나옵니다. 3장에도 나오고 몇군데 나오는데 7장 6절에 보면 이렇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대로 곧 그대로 행하였더라”
‘행하였더라’ 라고 되어있을 때 여러분 보기에는 모세와 아론이 참 능력이 많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이 자체가 모세는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 물론 자기가 숟가락 들고 밥 먹는 능력은 있지만. 자기 일에는 능력이 있어요. 그런데 어디에는 능력이 없느냐 하면 주의 일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능력을 인간에게 인수인계한 적이 없습니다, 주의 일에는.
출애굽기 3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 말씀을 보게 되면 간단하게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준 목적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무능력하게도 그걸 몰라요.
마치 오늘날 우리가 태어나서 돌잔치 받고 유치원 다니고 초등학교 다니면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본인이 존재하는 목적에 대해서 본인이 알 수 있습니까? 나이 90이 되고 100살이 되도 본인이 존재하는 이유를 압니까? 나이 90넘은 송해가 본인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아요? 모르죠. 몰라요.
성경을 이야기하면 알 게 아니냐. 하지만 성경을 이야기해도 몰라요. 왜냐하면 성경 이야기가 내 속에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성경 말씀에 대해서 내 속에서 밀어내는 힘이 작용해요, 밀어내는 힘이.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얼마나 이야기했겠습니까. 내가 이 땅, 애굽에 내려온 것은 여러분들 나라를 만들어서 그 나라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약속한 바가 있어 하나님이 지시한 산에 가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내가 보내졌단다. 알았지? 알아듣지? 그러면 그들이 아, 그것 때문에 그랬구나. 라고 알아듣는다고 이야기를 해요. 이구동성으로. 뭐 그거 어려운 말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모세, 아론 보내서 우리로 하여금 그냥 집단으로 만들어서 애굽에서 탈출해서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 섬기게 되어 있구나. 이거 뭐 하나님이 그럴만한 하나님이다 라고 되겠지만 자기 마음속까지는 들어올 수가 없어요. 그 이야기 자체를 그들이 듣게 되면 그들은 하나도 다치지 않고 곱게 곱게 일이 추진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자, 신약에 와서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내가 이 땅에 온 메시아다. 나의 이름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0장 나오죠. 또 사도행전에 나오죠. 누구든지 나의 이름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 문장을 들으면 우리 인생은 굉장히 곱게 가는 것처럼 느껴져요. 몰랐던 건데 평소에 살던 대로 살고 뭘 하나 추가하면 되느냐면 예수 몰랐는데 예수 믿으면 이제 죽어서 천국 간다. 그거 하나 추가하는 게 뭐 힘듭니까? 어렵습니까? 갑자기 인생이 뭐 바뀌어지는 그런 게 있겠어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김밥 먹다가 목 매여가지고 “아주머니, 여기 혹시 우동국물 없습니까?” 추가를 했다 이 말이죠. “아이고 빠뜨렸구나. 그래 우동국물 떠먹어가면서 김밥 잡수세요, 총각.” 했을 때 그 우동국물 하나 추가한다고 해서 갑자기 내 인생이 막 아프고 속 쓰리고 토하고 어지럽고 그러겠어요, 우동국물 추가한다고? 갑자기 내 아파트가 무너지고 그런 일이 생기겠습니까? 우동국물인데. 그게 독약이 아니고 그냥 흔히 먹는 국물이에요.
뭘 하나 추가한다고 해서 든든하고 확고한 내 인생이 망가진다는 것을 사람들이 예상하겠느냐 이 말이죠. 예상 안하죠. 만약에 마약을 먹으라고 한다면 이건 예상하죠. 마약하면 나는 이제 끝났다 이게 되겠는데 우동국물이라니까. 그거 뭐 부담 없어요. 우동국물 말고 짬뽕국물로 할까. 뭐 괜찮아요. 아무 일 없거든요.
내가 만약에 골목식당을 하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예수 믿으세요.”, “예, 믿겠습니다.”하는 순간 골목식당이 와르르 무너지고 그래요? 아니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이 와서 자기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에 대해서 자기 인생에 그다지 큰 우환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광야가 기다릴 거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어요. 왜? 그 정도는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섬긴다고 한 그 순간, 또는 오늘날 신약 식으로 네가 나를 믿는다고 한 그 순간 우리는 믿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출애굽기 같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이고 뭐고 모든 본질 자체가 섬기는 대상이 안된다는 사실을 본인들은 몰랐어요, 안된다는 사실을.
주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보내서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겁니다. 안되는 걸 되게 하는 거예요. 그야말로 씨름판에서 상대방 선수 샅바 붙들고 넘어뜨리거나 뭐 이정도 할 줄 알았지 세상에 그 씨름선수가 나를 통째로 들어서 머리는 아래로 다리는 위로 해서 꽂아버리듯이 한판을 따낼 줄은 샅바 붙들 때까진 몰랐죠.
우리가 거꾸로 산다는 것은 피가 거꾸로 쏟아질 정도로, 현기증 날 정도로... 내가 추구하고 내가 원하는 인생 목표가 있잖아요, 나는 이렇게 되고 싶다, 이렇게 살고 싶다 이런 거 있잖아요, 그걸 내가 기피하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그 인생을 거꾸로 완전히 모래시계 뒤집듯이 뒤집을 줄이야 상상을 못했습니다. 누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마 그렇게 광야생활을 미리 보여주고 하나님 믿으라 하면 그들은 아예 하나님 포기했을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 환난이 기다리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을 선택하거나 결심하거나 나설 위인들이 아닙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예수 믿게 해요. 지금 협박, 공갈 하는 것 아닙니다. 예수 믿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섬기게 합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 아셔야 돼요. 예수 믿는데 전혀 믿을 마음도 없고 예수 믿고 싶은 자발적인 의지가 없고 그 가는 길이 너무나 험하고 어렵고 불가능하고 좁은 길이라서 나설 수 없는 인간을 기어이 그 좁은 길 가게 하셔서 예수 믿게 하십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이 문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니라 주님이 그 문장을 본인이 가져가서 그 문장대로 기어이 예수 믿게 해주시는 겁니다.
우리는 완전히 사단났고요, 그 와중에서. 우리는 박살났고요. 우리는 내 고집, 내 의지 찾을 수 없고요. 내가 꿈꾸던 세계 날라가버렸고요, 초장에. 내가 바라는 근사한 나, 멋진 나, 인생 괜찮게 살았다 자랑질 하고 싶은 나, ‘나 어때? 이만하면 인간답지’라고 남한테 으스대고 싶은 모든 것, 그것은 기대하지 마세요. 그것은 넓은 길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넓은 길쪽이에요. 가만히 놔두면 절대로 우린 천국 가는 길로 갈 위인들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에요. 신약 성도 우리 자신 보기 전에 이스라엘부터 먼저 보세요. 이스라엘이 얼마나 혼났고 박살났고 깨졌고 죽었고 망했고.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린 양의 가치를 기어이 붙들고 어린 양의 가치를 위해서 어린 양의 피의 의미를 계속해서 발산시켜 가면서 그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가면서 죄인의 죄됨을 문제삼지 아니하시고 오직 어린 양의 십자가 피, 어린 양의 피의 효능만 자꾸 드러내면서 기어이 우리를 천국 들어가는데 주의 이름으로 능력있게 성사시킵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무능한 자라는 고백을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저 무능합니다.” 라고 고백하면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