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교회-다니엘 7장1(짐승에서 인간으로)121220-10강b -이 근호 목사
제 10강b
첫 번째 시간에 네 번째 짐승은 과정에 집중해서 한다는데 여기 열 뿔이 나오고 여기 8절에 보니까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열중에서 세 개 뽑혔으니까 결국 남는 것은 몇 개 남는가요? 10-3=7, 일곱 개 남죠.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이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그러니 이건 자꾸 짐승이 ‘분명히 너는 짐승이야’ 짐승인데 자꾸 무슨 행세를 하는겁니까? 사람 행세를 하는데 그 와중에서 엮여지면서 세 개가 빠짐으로서 ‘아, 진정 당신은 진정한 사람 중에 사람이로소이다.’라고 추앙받는 식으로 이 역사는 흘러가는 거예요. 결국 이 짐승들이 바다에서 올라온 것은 이 역사라는 그 도배를 그전까지는 누구중심이었다? 유대나라 중심이었고 이스라엘 중심으로 하나님이 일하다가 이제는 유대나라가 뭔가 바벨론에 삼켰거든요. 삼켰는데 ‘아, 우리 유대나라는 바벨론에게 삼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안목에서 봐야 하는데, 다니엘의 에이전트(agent), 하나님의 다니엘의 에이전트의 눈으로 보면 이건 진짜 인간인 이스라엘이 짐승한테 사로잡힌 게 되고 그 짐승이 새끼를 까고 짐승이 마치 우리를 대신한 이 유대나라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사람 흉내 내면서 사람 행세를 하는 그러한 역사가 전개되는 것, 이것이 역사의 마지막에 전개될 청사진이다 이 말입니다. 굉장히 이해하기 쉽죠?
다시 할까요? 그전까지는 하나님이 누구한테만 이야기했다? 유다, 이스라엘에만 이야기했다. 뭐로 이야기한 거냐 하면 바로 언약으로 이야기하는 거죠. 그런데 이스라엘이 망하면서 언약이 깨졌잖아요? 언약이 깨지면 진정 언약이 깨졌겠는가? 과연 하나님의 언약께서 ‘아이쿠, 언약 깨졌구나. 나 더 이상 손도 못 대겠다. 나 졌다.’ 라고 물러설 것이냐,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이냐, 언약이 깨졌으면 이제는 남은 것은 심판이다 말이죠.
그런데 심판이라 하는 것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사람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것이 심판의 전부거든요. 그런데 심판 앞에 ( )가 있어서 무슨 심판입니까? 이게 짐승에 대한 심판이다 말이죠. 이상하다? 왜 짐승을 심판하지? 짐승을 심판하는데 바다에서 올라 온 짐승을 심판했다는 말은 이건 그동안 이스라엘이 땅의 중심이었는데, 이 땅의 중심이 뭐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까? 바다에서 올라 온 짐승이 땅의 어른 행세하는 식으로 바뀌는 거예요. 그러면 그들이 바뀌면서 구원을 하시는 하나님이 심판을 함으로 말미암아 구원 중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라가 아니라 이제는 오히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심판하는 걸 통해서 하나님이 아, 이런 분이구나. 라는 걸 알 수 있는 기회를 너희들이 가졌다 이 말입니다.
‘이스라엘 유다 나라야, 언약의 백성들아, 세상을 심판 받는 중이라고 보게 되면 비로소 너는 하나님을 제대로 볼 것이다.’는 거예요. 세상을 심판하는데 이것이 분명이 짐승인데 이것이 마치 사람행세를 해서 하나님이 만든 그 사람이 아닌데 이건 마치 사람으로 행세해서 진짜 사람, 사람한테 우대받는 사람, 사람한테 존경받는 사람, 사람한테 추앙받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그런 육의 세계가 전개되는 겁니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편성되는지 그 열 개의 뿔부터 먼저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날라 간 3개의 뿔을 언급을 하겠습니다. 열 개의 뿔을 제가 알기 쉽게 독일, 포르투칼, 스페인, 이태리, 이태리, 이태리, 스위스, 영국, 프랑스, 북 아프리카, 이들은 근대국가에서 이런 이름으로 있지만, 그 뿌리를 캐보면 이건 전부 다 네 번째 짐승, 한 짐승에서 나온 거예요. 이게 뭐냐 로마에서 나온 겁니다. 이 뿌리를 캐보는 거예요. 전부 다 로마의 파생아입니다. 로마의 오징어 다리다. 그러니 로마는 죽었다? 안 죽었다? 로마는 영원하다. 마지막 멸망할 때까지 로마는 계속 가는 거예요. 로마의 속성, 로마의 성격 그대로 가는 겁니다.
로마가 결국 다니엘 당시, 유대 당시, 예수님 당시에, 이게 참 어려워요.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모델로 삼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 최고의 나라는 뭐냐, 로마입니다. 로마가 예수님한테 끝 이예요. 그 로마의 속성과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죠. 유대인의 왕 예수님과 이 세상의 왕 로마와 최후의 전쟁, 충돌로서 모든 시나리오가 짜여 지게 되는 겁니다. 그 뒤의 나라 백날 해봐야 로마에 한 통속이니까.
예수님이 참된 인간이냐, 로마가 참된 인간이냐, 이 말입니다. 그러나 로마는 그 배후에 짐승이 조정 하고 있고, 예수님도 본디오 빌라도에게 살해당했잖아요. 빌라도가 재판할 때 예수님한테 뭐라 했습니까? ‘니가 왕이라면서? 그런데 니가 왕인데 니 백성은 어디 있느냐?’ 그러니까 예수님이 답변하기를 ‘하늘에 있다. 너는 땅의 왕이고, 나는 하늘의 왕이다. 한번 붙어볼까? 지금도 허락하면 천군 천사가 와서 나를 구원할 수 있다. 그런데 진정 너를,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너희들에게 심판당해야 된다. 심판 당했던 것을 근거로 해서 너희들을 심판할 거야. 조금만 기다려줘. 너희들이 나를 1차 심판하고, 심판했다는 그걸 근거로 해서 너희들을 내가 심판해 줄게.’
그러니까 유대나라는 의도적으로 누구에 복속돼야 되고 누구에 종속돼야 됩니까? 로마라는 최후의 바벨론에 항상 종속되어서 유대 나라는 어떤 의미에서 빠지고 진짜 배후에 있는 짐승의 나라와 마지막 일전을 벌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로마가 짐승이라고 이렇게 이야기해도 우리가 실감나지 않죠. 그걸 이제부터 설명해서 실감나게 해드리겠습니다.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로마에서 파생된 나라를, 이걸 꼭 알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독일은 Alamanni라는 족속이고, 포르투칼은 Suevi, 영국은 Anglo-Saxons, 스페인은 서고트, 프랑스는 Franks, 프랑크 왕족, 나중에 로마 이후에 신성 로마의 후예들이예요. 스위스 Burguridoar, 북 아프리카 반달족 Vandals, 그 다음에 이태리 3개 있죠. 그 다음에 이태리 3개가 있는데 또 하나는 롬 바르트 Lombards, 동고트, 또 마지막으로 헤롤라이 Herali,
여기서 3가지 족속이 망합니다. 뭐가 망하느냐 하면 동고트(538), 헤롤라이(493), 반달(534)이 망합니다. 이 나라가 없어져요. 지금 제가 한 이것은 중요한 게 아닌데 뭐가 중요하냐 하면 3개의 뿔이 드디어 멸망을 할 때 어떻게 멸망 하는가 중요합니다. 여기 8절에 봅시다. “내가 그 뿔을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뿌리까지 뽑혔다는 것은 종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지, 뿌리까지 뽑으니까, 콩나물을 몽땅 뽑듯이 뽑히는 거예요. “그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이게 뭐냐 하는 겁니다. 어떻게 열 가지 종족 가운데서 어떻게 3개가 이렇게 뽑히는 것이 다니엘의 계시 가운데 이렇게 미리 예언이 돼 있느냐 하는 겁니다. 375년에 훈족이라 해서 헝가리 쪽에서 온 와서 게르만족이 놀래서 겨울에 라인강인가 물이 얼은 것을 틈타서 밑으로 내려와서 이쪽이 치니까 아래쪽을 치게 된 거예요.
훈족이 375년에 내려와서 395년에 드디어 동서로 게르만족이 분리됩니다. 그 게르만족의 한 족이 뭐냐 프랑크 족 이예요. 복잡해요. 그래서 395년부터 1453년 나중에 아랍의 투르크족한테 멸망하기 까지 동로마 제국이 되고 395년-476년까지 서로마 제국이 완전히 망하는데, 서로마 제국이 망하는 게 아니고 이게 뭐로 바뀌느냐 하면 프랑크 왕국으로 전환됩니다. 전환되면서 여기에 중요한 이 세 민족이 뽑히는데 그 민족이 뽑힐 때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교황입니다. 교황!
이런 것을 이렇게 표현하겠죠. 종교가 국가의 형태를 띠고 국가처럼 그렇게 행세한 거예요. 그냥 국가 중에 하나가 아니고 여러 국가 중에 하나, 종교가 아니고 국가 위에 국가, 국가의 정신적인 지주, 그것이 바로 천주교예요. 천주교가 민족의 10개 가운데 3개를 없애버렸습니다. 전부 다 흩어버렸어요. 조건이 있어요. 종교를 카톨릭으로 바꾸는 조건하에 민족 3개를 없애서 각 민족 중에 흩어버렸어요. 이제는 민족이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면 나머지 7개는 뭡니까? 자기 민족성을 갖고 있어요. 서고트 같은 경우에 얼마 안 가서 아라비아한테 망합니다.
종교라는 것이 교황이 어떻게 그렇게 하겠는가,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피핀라는 프랑크의 왕이 있는데 여기 독일 Alamanni라는 독일 종족이 로마 이태리를 공격 했을 때 교황이 프랑크 왕(피핀)한테 ‘살려주세요’ 했어요. 그 피피 왕이 계산을 해보더니만 교황을 살려주고 독일 Alamanni의 점령지를 영원히 교황 땅으로 만들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지금의 바티칸 이예요. 그렇게 해주고 조건이 앞으로 유럽 전체 제국의 왕은 한 사람을 딱 줬어요. 두 사람도 안 되고 한 사람, 그게 뭐냐, 피핀의 자식들만 왕이 되는 조건하에 그렇게 된 겁니다. 물론 그 왕이 되면 왕이 황제가 왕을 임명하게 되면 왕은 정치적으로 장악했고 정신적으로는 전체를 카톨릭으로 장악하는 협상체계로서 그렇게 장악된 거예요. 정신이든 육체든 전부 다 하나의 거대한 제국을 이룬 겁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제국을 이뤘다는 말은 거기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태어난 출생 자체가 그 나라의 종교며 출생 자체가 그 나라에 복종하는 그러한 것을 양육 받으면서 살아오고 있는 겁니다.
나중에 프랑크 왕국이 이렇게 갈라지고 죽죽 나눠지고 하지만 어쨌든 간에 처음의 취지는 그런 취지로서 된 겁니다. 자, 여기서 그 교황 이름이 자카리아스라는 교황인데 그것까지는 알 필요 없지만 그 교황이 처음으로 롬바르디아 공격에 대해서 해방자로서 세속의 왕이 등장했고 교황은 정신적인 왕으로서 이렇게 마중을 나온 거죠. 그러니까 바티칸 나라가 구체적으로 된 것은 최근 현대에 들어와서 그랬지만 이미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이때 741년 쯤 돼요. 바티칸은 최근에는 이태리 독립 전쟁에서 그때 규격 됐지만 그전에는 그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영토권이 있었던 거죠.
이렇게 되게 되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성경에서 이렇게 어렵게 이야기하지 말고 그냥 몇 년도에 이태리가 멸망하고 이렇게 하면 우리가 참 쉬울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게 복음이 아니에요. 로마의 열 뿔이 이런 나라고, 헬라 나라의 4명의 장군이 누구누구입니다. 라고 해버리면 이건 지식으로 알면 천당 가는 수가 돼 버려요. 이건 복음이 아니라. 이것을 알려줘서 사람들 꼬시는 그런 단체들이 이단 단체들이 등장하는 거예요. ‘세상 역사의 비밀을 모르지? 내가 풀어줄게.’ 이래서 사람들을 꼬셔서 그거 안다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왜 이렇게 우리가 납득이 되고 쉽게 되는 이것을 왜 다니엘에게 어렵게 짐승이란 표현을 해서 우리가 집에서 키우는 가축과 구분도 안 되게 만드느냐 이 말이죠. 이것은 이것을 해석하고자 하는 인간 자체가 이미 짐승이 되었다 이 말 이예요. 짐승은 짐승을 해석할 수 있다? 없다? 없는 거예요. 아무리 이것이 어떤 의미라 할지라도 그 해석으로서 그 사람이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거기에 어떤 의미가 담겨야 돼요. 복음적 의미, 다니엘적인 안목이 담겨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짐승 이야기한 것은 축구의 전반전이고, 후반전이 있어요. 그게 바로 9절에 나옵니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가 좌정하셨는데” 이게 인자입니다. 영원히 함께 계심이라. 그러니까 이 땅은 마지막 때에 땅의 주도권을 두고 2개의 실체가 결국은 충돌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현재 이 세상에 유엔에 가입한 나라가 2백 개가 넘는다 하는데 2백 개 나라의 왕이 누굽니까 물으면 각 나라마다 화를 내요. 왜, 각 나라마다 대통령이 있고 왕이 있지만 2백 개를 통활 해서 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라는 것이 납득이 되고 이해가 되는 오늘날의 현대적인 현대 역사 주체가 그겁니다. 그럼 이렇게 물어야 돼요.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이렇게 물으면 예수님 빼놓고 다 반대하죠.
다니엘 자체가 호칭이 뭡니까? 인자 아닙니까? 이미 인자의 에이전트, 인자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왔다는 말은 이건 이렇게 짐승을 보는 안목은 누구만 볼 수 있는 안목이냐 하면 이들을 심판하기 위한 바다에서 올라왔다고 이야기하고, 짐승이라고 이야기하고 짐승이 인간행세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그것은 오직 장차 오실 예수님의 안목을 미리 앞당겨서 보여준 겁니다.
이걸 저는 이렇게 하거든요. 깜깜한 집구석에 문이 있다 이 말 이예요. 지금 깜깜해요. 온 천지가 다 깜깜한데 갑자기 출입구에 틈에서 갑자기 전등 불빛이 보이더라 말이죠. 그럼 바깥에서 누가 전등 불빛을 물을 열려고 비추고 있다는 증거잖아요. 이게 바로 다니엘이에요. 바깥에 누가 비추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전등을 비추고 있는 거예요. 문을 열면 등장하는 거예요. 깜깜한 어두운데서 밑바닥에서 빛이 나오듯이, 지금 요 부분을 보면서 이 전등불이 있음으로서 이 바깥은 짐승이 지배하는 세계로서 전환된다 이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전등 불빛을 안 갖고 있다 보니까 짐승과 같이 어둠에 있어요. 어둠에 있으니까 뭔가 불빛이 ‘이쪽은 짐승이니라’ 할 때 우리는 납득이 안 돼요. 납득이. 왜 우리나라 임금님이 짐승이냐 이 말이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 말이죠. 그럼 우리는 짐승 찍으려고 투표했느냐 이 말이죠. 박ㅇㅇ는 짐승이냐, 문ㅇㅇ은 짐승이냐, 안ㅇㅇ는 도망간 짐승이냐, 그거 하려고 찍었어요? 이 그림자가 비칠 때 이 바깥은 묵시세계고 이 안은 역사세계거든요. 역사세계에서 이쪽에서는 1,2,3,4,5,6,7,8,9.10이라는 1년, 2년, 3년, 1년으로 끊는 그런 식의 시간개념이나, 여기서는 70이레라는 이레가 등장해요.
이 이레라는 것은 아까 처음에 집사님이 질문했는데 이레라는 것은 7을 하나의 묶음으로 간주하는 계산법 이예요. 왜 6으로 묶지 않고 9로 묶지 않고 7로 묶습니까? 그것은 이 논문에 나와요. 그것은 최초의 창조 규칙을 나는 포기 안했다는 뜻 이예요. 자, 창조된 대로 인간이 맞는가 보자, 심판해봐, 하고 소매를 걷어붙이는 그 모습이 이쪽의 인간들은 올해는 2012, 내년에는 2013년, 이러는데 그 딴 식의 계산법은 너희들에게나 통하지, 그런 계산법은 짐승한테나 배워라, 나는 그런 계산법 안 한다. 나는 지금이 어느 이레에 속하느냐, 그 계산법이다.
이 문 틈으로 예수님이 손전등으로 비췄던 이 그림자, 70이레라는 그림자를 이것을 분석을 해보니 이게 우리처럼 시간이 끊어지는 시간이 아니고 이게 하나의 질적으로 다른 시간이 같이 흘러요. 1이레 층이 있고, 62이레 층이 있고 7이레 층이 나란히 같이 가고 있습니다. 층이 같이 가서 이게 그냥 7년 묶음도 되지만 층의 묶음도 나란히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이 모든 것이 나란히 가게 되면 마지막은 뭐냐 이게 시간이니까 끝에도 시간이겠지 생각하는 거예요. 이건 잘못이고, 시간이 아닙니다. 이건 하나의 인물(人物)이예요. 시간이 인물에 흡수돼요. 모든 시간은 하나의 인물에서 쏟아져 나온 거예요. 제가 말하는 게 진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시간이 인물에서 쏟아져 나오는데 시간이 인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거나, 임금들이 하나의 짐승에서 나오는 그거나 둘 다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돼 버렸어요.
숨어있는 인물을 위해서 역사나 묵시가 서로의 시간을 계속 보여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다니엘을 덮어버리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세상에는 이런 관점이 없고 지나 개나 2012, 며칠 지나면 2013년, 그리고 이게 질서정연한 조금도 이음새가 끊어지지 않는 이렇게 시간의 도약이 없는 그저 어제 태양이나 오늘 태양이나 마찬가지죠. 갑자기 해가 조그맣다가 크게 되지는 않잖아요. 오늘 그 해가 내일되면 그 해가 뜨잖아요. 변함이 없는 거예요. 동일한 하나의 역사 속에 전부 다 이거는 흠 없이 매끈한 CD같이 깨끗하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깨끗한 벽지에다 점을 어떻게 찍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죠. 2012년 12월 19일 대선, 점찍는 거예요. 하지만 그 점을 찍는 순간 그거는 과거입니다. 과거기 때문에 지금 중요한 것은 오지 않은 미래도 중요하지 않고, 지나간 과거도 중요하지 않고, 지금 중요한 것은 오늘 박ㅇㅇ짐승은 또 뭐하고 있나가 중요한 거예요. 작년에는 내가 나이 50이고 올해는 51이고, 내년에는 52가 되겠지. 50이나 52이나 중요하지 않고 지금 내가 몇 살이냐가 중요하다. 항상 결국은 시간에 보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인물, 그 인물은 바로 이 시간은 내가 쏟아내는 시간의식에 불과한 것이 역사 속에 지나는 시간의식 이예요.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사람마다 다르듯이 사람마다 역사가 다르지만 공통된 점은 전부 다 각자, 각자 시간을 쏟아내고 있다는 겁니다.
광주사태라는 것이 전라도 사람과 강원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이 의미가 다 달라요. 거기서 희생된 사람과 거기서 방관하는 사람과 지금도 전ㅇㅇ대통령 된 그 사람, 26년 된 그 사람, 전ㅇㅇ대통령의 조카가 생각하는 광주사태는 달라요. 지금 전ㅇㅇ대통령이 생각하는 광주사태라 하는 그것은 폭도들이고 빨갱이 사상 비슷한 사람들이고 김대중이 똘마니들이고. 그런 정치꾼들이 그런 사람 이예요.
사람마다 왜 그럼 다른가, 그건 자기 인물로부터 쏟아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역사도 할배요, 하고 엎드리는 분이 와요. 그는 누구냐, 모든 대중의 역사를 추월하는 더 위대한 역사, 그는 바로 대통령의 역사, 또는 왕의 역사, 바로 짐승의 역사, 그 짐승의 역사에 우리는 새끼 역사는 역사 취급도 안 됩니다.
하나 예를 들면 지금 안양의 인덕원에서 지금 병든 어떤 할머니가 있다. 박ㅇㅇ대통령이 됐으니까 내년에는 최저 생계비를 얼마나 더 쳐줄 것인가, 이게 문제거든요. 그걸 왜 본인의 생계비 같으면 84세 살 때까지 본인이 생각 안하고 왜 자꾸 얻어먹을 생각을 하느냐, 왕이거든요. 박ㅇㅇ는 여왕이잖아요.
인간의 모든 행동은 스스로 결정 것이 아니고 핼프미, 살려주세요. 누굴 향하여? 자기보다 더 센 역사를 갖고 있는 더 안정된 역사를 갖고 있는 자에게 살려주세요,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느 짐승의 통치에는 허점이 없고 빠진 점이 없어요. 전부 다 꽉꽉 짐승으로 차 있습니다. 영국이면 영국, 독일이면 독일, 이태리면 이태리, 그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교황 이예요. 교황이 빈틈없이 모든 면에서 꽉꽉 채워주는 거예요. 성당 와서 영세 받으시면 오늘 죽어도 어디 간다? 천국 간다. 얼~마나 이것이 율법적이고 확실한 겁니까? 눈에 신부가 보이잖아요. 신부한테 고해성사 받으면 어떤 죄를 지어도 삐딱하게 앉아서 ‘뭐 때문에 오셨습니까?’ 해서 몇 마디 처방전 때려주면 죄가 용서되거든요. 성경에 어디 있느냐, 너희들의 죄를 사하면 하늘에서도 사할 것이요, 너희가 풀면 풀리리라. 그 본문 가지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앞으로 개신교도 할 거예요. 손님도 오지도 않는데 뭐.
뭔가 내 죄는 나보다 우월한 짐승에게 부탁하는 거예요. 왜 나는 새끼 짐승이니까. 짐승은 짐승을 원하는 거예요. 육은 육을 원하듯이, 내가 납득이 되고 내가 눈에 볼 수 있고 실적이 있도록 하는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은 뭐라 했습니까?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 제가 아까 했죠? 묵시적인 안목, 이건 의도적으로 보는 것을 미리 일부러 치워버리는 거예요.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보는 것을 의도적으로 믿음이 아니라고 치워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라 이 말입니다.
기도해서 병 낫다. ‘미쳤어, 내가 왜 병이 나, 이건 말이 안 돼, 분명히 마귀 역사야.‘ 이렇게 치워버리라 말이죠. 내가 기도했더니 애가 성적이 올랐다. ’미쳤어, 미쳤어, 그럴 리가 없는데 마귀의 조작이야. 애 그 성적 가지고는 완전히 따라지 가야해.‘ 이렇게 돼야 돼요.
어떤 실적과 복을 주의 축복이라고 간주하고자 하는 그 품성을 누구한테 받았다? 이미 그걸 누가 노리고 있다? 악마가 그걸 노리고 있는 거예요. 세상 적으로서는 세상 왕이 그걸 갖고 있고, 영적인 적그리스도는 우리 맘까지 그걸 장악하고 있다고요. 네가 하는 모든 기도는 너를 위해서 찬란한 너의 역사를 악마 너희 고유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너의 역사에서 누가 영광을 받습니까? 나란 인물이 영광을 받죠. 왜, 내 역사니까. 내 역사 잘해서 남에게 죽 쒀서 개줄 일 있습니까? 내가 잘해서 내 역사 이루는 거예요. 그래서 손주들 불러놓고 ‘이봐라, 할아버지가 옛날에 이렇게 잘 나갔다.’ 그렇게 자랑할 수가 있는 거예요. 신ㅇㅇ 한번 보세요. 나이 70넘어서 뭐라 합니까? ‘내가 옛날에 사랑한 여자가 있었다.’ 얼마나 자랑스러워요. 맨발의 청춘, 영원한 청춘.
아무리 내가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해도 내 역사를 내가 안 끌어안아주면 누가 사랑해주느냐, 못난 과거라도 내가 다독거려주고 내가 아름답게 치장 안 하면 누가 내 역사를 누가 사랑해 줄 수 있느냐, 긴 개코 원숭이 꼬리처럼. 긴~ 꼬리처럼 못난 꼬리라고 질질 끌고 가는 거예요. 잘 나고 못 나고 전부 다 나의 역사의 재료들이니까.
그러니까 다시 해봅시다. 시간이라 하는 것은 뭐 한다고요? 인물에서 나오죠. 그럼 묵시는 어디서 나옵니까? 역시 한 인물에서 나오죠. 그러니까 여기서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뭐냐 하면 주님 인물 앞에 ‘나는 짐승이었습니다. 어둠에 속한 짐승이었습니다.’ 고백하는 거예요. ‘나는 원래 하나님이 만든 그 인간이 아닙니다. 뱀에 묶인 인간입니다. 뱀이 시키는대로 할 뿐이고 우리는 우리 힘으로 그 먹구름을 훅 분다고 먹구름이 뚫리고 그런 것 없습니다. 뭔가 주님께서 오셔서 눈에다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 물에 뭘 하든 간에 주께서 하시는 그 작업만이 우리로 하여금 먹구름을 뚫고 주의 묵시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겁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사도바울이 율법을 지켰잖아요. 흠이 없죠. 잘 나갔습니다. 그런데 언제 사울이란 사람이 묵시의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까? 누가 찾아왔습니까? 주님이 찾아오니까 된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찾아오는 그 체험의 말씀이 될 때 그때 비로소 말씀이 체험 있는 말씀이 되는 거예요. ‘아! 짐승 맞구나.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이 따지고 보니까 여기는 짐승, 짐승으로 돼 있지만 사실 세상에서는 뭐냐, 종교, 교회, 역사적 관점, 경제적 관점, 종교적 관점, 예술적 관점, 주로 그런 관점이다 말이죠. 그런 관점을 우리 힘으로 끌어 모을 수가 없어요. 왜 우리는 인자가 아니니까. ’아, 저 사람은 예술가네. 예술가라 밥 먹고 살고, 나는 목사라 먹고 살고, 각자 먹고 살면 아무 일 없네. 너도 음악 한다. 아이쿠, 훌륭한 음악 하는 사람. 백 ㅇㅇ처럼 피아노 친다. 대단한 사람, 차 범근이 처럼 축구한다. 이 대호처럼 야구한다. 그 나름대로 훌륭한 사람. 이 모든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돼요. 여기 짐승이 어디 있습니까? 짐승은 성폭행하는 그놈만 짐승이지 나머지는 짐승이 아닌 게 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딱 떴습니다. 드디어 9절에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여기에 계셨던 그분이 지상에 내려오게 되면 그것은 무슨 분위기를 안고 오느냐 하면 바로 보좌에 앉으신 그 분위기, 그 무게감을 가지고 그대로 이 땅에 오잖아요. 오게 되면 비로소 짐승이 드디어 발작을 시작합니다. 마귀가 먼저 알아봐요. ‘예수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주님께서 전도하니까 귀신이 나와서 하는 말이 ‘나는 당신 알지요. 당신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입 다물라.’ ‘나 입 안 다물지, 다 광고할 거야.’ ‘그 입 다물라. 쉿, 함부로 말하지 마. 입 놀리지 마. 내가 허락할 때까지.’ 제자들이 저게 둘 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요.
사울이란 사람이 보통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 이예요. 성질 똑같고 하루 세 끼 먹고 안질이 안 좋다는 것이고 나머지는 똑같은 사람인데 그 사람이 예수님 만났으면 우리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인간도 예수님 만났으면 우리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 만나고 난 뒤에 아는 것은 뭐냐 나는 죄인 중에 괴수고 십자가를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이 진짜 감춰 놓은 것은 성령이 아니면 그걸 알 수가 없게 돼 있어요.
그게 뭐냐, 진짜 감춰놓은 게 뭘까요. 십자가! 그게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가 공개되고 천기가 누설되는 순간 우리는 짐승에게 예속된 존재라는 것이 밝혀지고, 십자가가 안 밝혀지면 우리는 당당한 인간이며 사람이며 우리는 정상이며 세상 모든 역사는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걸로 돼 있어요. 심판도 없을뿐더러 종말도 없을뿐더러 예수의 이야기는 과거의 한때의 에피소드로 끝나버리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예수 믿는다는 것은 그런 안목에서 보면 우리 인간이 정상적인 인간이라 보면 예수 믿는 것은 그건 하나의 취미고 오락인데 너무 빠지지는 말아라. 이렇게 되죠. 교회에서 놀고 설악산 놀러가고 노는 건 좋은데 낚시 하는 것도 좋은데 그래서 정수기 팔고 보험 판매하는 것은 좋은데, 그 예수라는 거, 하나님이라는 거, 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그것한테는 제발 빠지지 마라.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지, 예수님하고는 무관한 것이다. 그걸 잘 실천해 가는 교회가 오늘날 교회입니다. 아주 말은 안하지만 서로 통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교회에서는 예수님 복음 이야기 안 하기, 짐승 이야기 안 하기.
다시 해봅시다. 시간이라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시간이 있지만 내가 측정하는 내 중심으로 보는 시간 이예요.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 그건 내 중심으로 보는 사건 이예요. 저 사건도 내가 좋아서 끝나버렸다. 항상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시간. 이 시간을 코로노스, 부산강의 할 때 했어요. 나한테 연대기. 나한테 중요한 사건, 남들은 관계없어요. 그리고 거기서 어떤 시간의 의미를 주는 것은 카이로스, 이걸 우리말로 하면 때, 이것은 신약성경에 이렇게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시간이 온 게 아니고 때가 왔다. 내 때가 되었느니라. 내 때가 되지 않았다.
이 주님의 시간이 인간의 자기중심의 시간을 완전히 묵사발 만들어 버립니다. 묵사발 만들면서 인자가 주는 시간은 무슨 스케줄이냐 70이레에 맞추어서 시간이 드디어 개시가 됩니다. 70이레는 9장에 나오죠? 9장에 나오는데 그때는 자세히 하고 어쨌든 간에 예수님의 이레는 70이레에 맞춰서 하는 겁니다.
그럼 70이레라 하는 것은 아까 언급했지만 또 잊어버렸을 테니까 다시 하면 70이레라 하는 것은 어디에 집중된다? 70이레라 하는 것은 어떤 시간이라고 말 못하고 70이레라 하는 것은 뭘 보여준다? 예수라는 인물, 예수님의 행하심이예요. 예수님이 태어났다가 어디서 행했다가 어떻게 십자가 죽었다가 부활한 그것이 모여지면 그것이 뭐가 된다? 70이레의 3가지 단절된 층이 그 안에 하나의 단절된 것이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서 스펙트럼처럼 구분해서 보여 지는 겁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시간이 그런 식으로 흡수한다는 말은 평소의 우리의 시간도 바로 나의 역사를 찬란히 빛내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역사들을 그런 식으로 보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들의 그런 시간보다 우리가 양보할 수밖에 없는 더 센 역사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더 센 역사 앞에 우리는 살기 위해서 때로는 우리 가족을 살리고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또는 내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 내 역사를 아낌없이 큰 역사 속에 집어넣어 버려요. 대표적인 사람이 안 중 근, 그리고 조선시대 때나 이런 때는 하나의 가문의 역사를 위해서 청상과부가 결혼도 안 하고 행여나 가문을 더럽히면 단도, 하얀 은장도 가지고 자기의 허벅지를 찌르면서 이겨야 하느니라, 이겨야 하느니라, 이러면 열녀문 하나 세워주고, 그렇게 해서 가문의 역사에서 자기의 역사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겁니다. 또 교회를 보면 주 기 철, 이런 사람들, 기록된 역사를 위해서 자기 한 몸 논개처럼 바치리라. 몸 바쳐서 몸 바쳐서. 손 양원, 주 기철, 이런 사람들. 그게 전부 다 짐승들이 그런 짓으로 대중들을 속박했고 지배한 겁니다.
이제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더 중요한 사실을 먼저 당겨서 이야기합니다. 그 짐승들의 습성을 고스란히 다 받은 나라가 있어요. 그게 뭐냐 짐승이 배태한 진짜 유사나라가 있어요. 짐승이 아닌 것 같지만 극단의 최고의 짐승의 나라, 그게 예수님을 죽였던 유대나라예요. 로마 안에 유대나라에서 메시아는 탄생했습니다. 별의 호위를 받아 가면서 동방박사가 쫓아와서 선물을 주면서 유대나라에 별이 떴어요. 드디어 그 가까이 있는 유대나라에서 헤롯은 악마의 지시를 받고 누굴 죽여야 돼요? 베들레헴에 태어났던 2살 아래의 애들을 죽이는 작업을 하고 동방박사도 살려둬서는 안 되겠죠. 그러니까 여기 동방박사가 살게 된 것은 누가 개입했습니까? 예수님의 가족과 아기예수와 동방박사도 다 죽여야 되는데, 여기에 누가 개입했습니까? 천사가 개입했죠. 드디어 역사에서 인간은 그냥 손을 다 떼고, 악마냐, 주님의 지시를 받는 천사냐, 이 두 개의 싸움이 요한계시록의 주제로서 흘러온 겁니다.
요한계시록 모든 주체가 인간은 손을 떼야 돼요. 왜 인간은 손을 뗄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 해석하게 되면 누구의 역사가 가미됩니까? 바로 나의 역사가 가미가 되고, 나의 공동체 역사가 가미되고, 나의 교회 역사, 우리나라 역사, 박ㅇㅇ 역사가 가미돼서 해석이 전혀 안 돼요. 요한계시록은 우리 인간의 역사를 개입하면 안 되는데 ‘내가 어떻게 해서 구원받아 볼까?’ 자기 역사를 살리기 위해서 개입해버리면 요한계시록 전부가 안 돼요.
예수님이 이미 이뤘던 그 역사에 대해서 악바리처럼 인간들이 거기서 어떻게 대항하는가, 그 대항하는 몸짓들이 계시적이고 묵시적인 다니엘의 꿈적인 용어들을 사용해서 그렇게 했고, 다니엘, 에스겔, 스가랴에 나오는 그걸 가지고 죽 쓴 거예요. 그런 용어들을 우리가 했기 때문에 아시지만 묵시와 역사의 충돌 속에서 예수님의 피의 가치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겁니다.
11절에 보면 방금 이야기가 나오죠. “그 때에 내가 그 큰 말하는 작은 뿔의 목소리로 인하여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바 되어 붙는 불에 던진바 되었으며” 과거죠? 야, 오늘 첫 번째 강의 한 거 다시 한 번 해보겠습니다. 투표를 내가 하고 난 뒤에 누가 된 걸 보고 그 사람 위해서 내가 확인하고 난 뒤에 내가 투표하겠습니다. 말이 안 되죠. 그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다니엘 7장에 나온다니까요.
이미 그 짐승들은 이미 유황불에, 지옥 불에 이미 들어간 걸로 나와 있잖아요? 이미 박ㅇㅇ는 당첨된 걸로 나와 있다고요. 그런데 개표 전까지는 내 투표가 박ㅇㅇ가 될지, 문ㅇㅇ가 될지, 모른 상태에서 투표하는데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합니까? 이번에 박ㅇㅇ 될 줄 알고 문ㅇㅇ 떨어질 줄 알고 우리로 하여금 문ㅇㅇ한테 찍게 만들었고, 또 누구는 박ㅇㅇ한테 찍게 만들었잖아요. 우리가 투표하기 전에 먼저 박ㅇㅇ 당첨, 이 이야기를 먼저 해버리는 거예요. 그러니 사람들이 이걸 믿겠어요? 안 믿겠어요? 안 믿죠. 왜 안 믿느냐, 나의 역사는 아직 미래니까. 사람의 모든 것은 자기의 선택이 자존심과 나의 권위를 해치는 것은 어떤 것도 믿지 않습니다. 왜, 내가 행동한 결과만 믿으니까.
그런데 성경은 뭡니까? 내 행동이 개입하지 못한 주님의 행동이 개입해서 얻어진 결과만 턱 내미니까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선택이 의미가 없는 게 돼 버려요. 사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도 주님의 하신 일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어떤 나쁜 짓을 해도 우리는 지옥 갈 수 없습니다.
제가 지난주일 날 오후에 설교하면서 제가 은혜 받은 게 뭐냐, 사람을 죽여도 우리는 지옥 갈 수 없다고 했어요. 사람 죽인 거 가지고 지옥 못 갑니다. 사람 두 명 죽였다고, 인디언 1, 인디언 2, 투 리틀, 인디언 100명 죽여도 지옥을 못 가요. 지옥은 우리가 가는 곳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뽑혀서 지옥 가고 가만히 있으면 뽑혀서 천당 가는 거예요. 우리가 행동 때문에, 행동이 나를, 행동이 나의 위치를 옮겨주는 수준이 우리는 그런 입장이 못 돼요. 왜, 역사적 존재고, 우리를 구원하는 힘은 예수님의 피, 묵시적 차원에서 노시는 분의 피가 역사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결과에 예속돼 있는 존재를 그 결과의 예속에 매달리게 연결시키는, 이렇게 기관차, 열차가 연결하듯이 연결시키는 예수님한테 연결되면 천당이고, 연결 안 되면 지옥이고 그런 겁니다.
복음!! 아~주 간단해요. 굉장히 간단한 거예요. 하나님이 미리 아시는 그거로 우리의 선택이나 결심이전에 먼저 연결시켜 놓고 그 다음에 우리의 행동의 어설픔과 주님의 완벽성을 비교해가면서 ‘네 행동은 결국 네 운명을 결정하는 바가 아니었다.’는 것을 통보하는 식으로 우리로 하여금 주님만 쳐다보게 만드는 거예요. 이게 복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투표하고 있습니다. 혹시 나의 투표가 나로 하여금 나의 시간, 나의 역사를 좋게 만들까 싶어서 좀 그러고 싶어서 그게 아직도 그래서 우리는 나보다 더 힘센 사람을 기대고 싶고, 나는 예수보다 돈 많은 사람이 더 좋고, 나는 예수보다 나 사랑해주는 사람이 좋고 심지어 나 못 난 것까지 다 용서해 줄 그런 가족이 그립고, 가족 역사, 나의 역사, 그리고 남의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좋고, 우리 역사의 나라, 일본한테 축구지면 기분 나쁘고, 이기면 기분 좋고, 내가 문ㅇㅇ 찍었는데 문ㅇㅇ 떨어지면 기분 나쁘고 내가 문ㅇㅇ 찍었는데 당첨되면 내가 왠지 기분 좋고, 뭔가 우리가 편성하고 우리가 짜는 내 자존심, 내 선택의 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우리는 이미 우리 육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X한테 다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우리를 그냥 놔두면 우리는 구원 못 받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개입해서 질~질~질 끌고 가면서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는 것을 통보해주는 그러한 혜택, 축복이 바로 이것이 축복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매일같이 주의 개입을 우리는 놓치고 있습니다. 내가 내 행동을 내가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고 하는 식으로 지금까지 나의 역사가 아름답다고 자부했는데, 그것이 바로 짐승을 쳐다보는 일들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바라보게 해서 개입하셔서 개입된 십자가가 이미 다 이루었다.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셨다는 그 결정이 저희들의 행복과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