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한마디

두개의 원천

아빠와 함께 2020. 6. 5. 11:28

세상을 볼 때 복음의 눈으로 볼 줄 알아야 돼요. 복음의 눈으로. 자꾸 정의로울 생각하지 마세요. 인간은 정의로운 게 없어요. 인간이 죽는 이유가 뭡니까? 아까 이야기 했죠. 뭐라고 했습니까? 죽는 이유가 죄죠. 죄가 생각하는 정의는 뭡니까? 불의죠. 그게. 성경이 그걸 이야기한다고요.

사울의 지옥, 천국이 어디서 결정되느냐 하면은 신약에서 결정되는 거예요. 십자가로 결정되는 것이지, 지금 잠시 악신 받았다고 지옥 간다고 그렇게 단정 지으면 안 됩니다. 지옥이나 천국은 최종적인 의미이기 때문에 중간적 의미가 아니에요. 다만 구약에 있는 이 등장인물들은 쓰여 지는 거예요. 하나의 연기자, 배우들이에요. 배우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원망했음을 분명히 밝혀내시고, 그러니까 뭐가 있음이에요? 하나님의 있음을 위해서 우리가 있는 것이지 내 있음을 위해서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교회 가는 목적이 나 좋아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주님이 부재하지만 현존하고 있어요. 부재로 보이지만 현존하고 있음을, 여기 계심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주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듣게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해놓고 뭘 주느냐, 실컷 원망하게 해놓고 27절에,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그럼 엘림은 어떤 곳이다? 치료가 된 곳이다.  엘림이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거예요. 이미 치료 후에요. 치료 후에. 따라서 이미 치료받은 우리는 그 다음부터 뭘 끄집어냅니까? 왜 혈육적인 관계가 다가 아닌지, 왜 일가친척이 다가 아닌지, 왜 주께서는 새로운 패밀리, 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가족을 맺도록 해야 하는지, 그것을 증거 하는 거예요. 우리가. 우리를 기계로 사용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