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20200416a슥1:3(신기함)-이 근호 목사
오늘부터 스가랴라는 선지서에 대해서 시작하겠습니다. 이 선지자라 하는 것은 메시아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 메시아의 영이 이미 들어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인간 속에 장차 올 예수님의 영이 들어있다는 것. 그렇게 될 때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한다. 그렇게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성령, 예수님의 영이 들어있다. 라고 했을 때, 예수님의 영이. 이 사람과 예수님의 영이 없는 사람과의 차이점이 뭐냐 하면 예수님의 영이 들어있는 사람은 이 우주, 그리고 우주밖에 있는 하나님나라와 다 이것이 연관성이 있어요.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예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이 사람의 행동과 말씨, 태도, 이 모든 것이 우주의 질서와 하나님 나라의 구성에 있어서 영향을 주고받게 되어있어요.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이 우주가. 프로야구 한다고 우주가 변화고 그런 거 아니잖아요. 성령이 없는 사람한테는 이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그리스도한테는 변화가 일어나요. 그러면 이 선지자에게 예수님의 영이 계시고, 그 말은 곧 예수님이 그 안에 있다 하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어떤 근거에 의해서 주장할 수 있느냐, 라고 이야기하실 텐데요.
베드로전서1장10절에 보면,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리 되어있어요. 모든 선지자 속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었으며 그 그리스도 영이 고난과 영광에 부응하기 위해서,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선지자는 예언을 했고 거기에 맞추어서 대자연도 그렇게 질서 잡혔고 구성이 된 근거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 했으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여기 베드로전서12절에서는 그것을 성령의 힘입어, 성령이라고 이야기했고, 그러니까 성령이라 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란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 인간의 영은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에 의해서 하나님이 영향을 받는다든지 자연재해가 바뀌고 그런 것은 없다 이렇게 보시면 되는 겁니다. 영광은 아니고, 우리 속에 있는 성령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데 성령이 들어있는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그렇다면 이 스가랴 해석은 어떻게 됩니까, 라는 질문의 답은 딱 나왔지요. 스가랴 선지자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면 선지자가 외치고 있는 모든 예언의 말씀은 어디에 다 집중이 되고 응집이 될까요? 어디에 다 거기에 한 곳에 모일까요? 모든 예언은 그리스도의 영이니까. 예를 들어 스가랴 선지자의 모든 예언은 결국은 예수님에게 모인다. 그럼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이 다 이루었다 하는 지점은 어느 지점입니까? 십자가지요.
예수님이 하는 모든 것은 십자가. 이걸 다시 이야기하면 십자가의 사건 중심으로 온 우주는 그렇게 변화되고 움직였고 나름대로의 십자가를 쳐다보고 살았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집중이라고 해요. 집중. 십자가를 향한 집중력. 집중. 그래서 이 성경해석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에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그 때 그 당시에 자연세계나 인간 세계 속에서 보여준 자가 누구다? 스가랴가 되는 겁니다.
스가랴는 역시 물론 이스라엘 사람이에요. 그 당시에는 북이스라엘 나라가 없기 때문에 유다사람이다. 유대인이다. 유대인입니다. 일반 유대인과 선지자 유대인 스가랴하고는 차이가 나지요. 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이 말이에요. 그럼 여기서 지금껏 요렇게 된 이야기 가운데서 이 존재를 제가 한 번 거론해 보겠습니다.
가브리엘. 자, 가브리엘이라 하는 이름은 이건 사람이 아닙니다. 천사지요. 제가 갑자기 천사를 거론한 이유는 뭐냐 하면 흔히 성경에서 선지자가 성령 받았고 오늘날 성도들이 성령을 받아야 성도가 된다, 라는 그것을 제가 언급을 할 때에 그 이야기를 듣고 누구나 ‘나도 성령 받아 성도되고 싶어.’ 또는 ‘성도 일거야.’ 라고 생각하겠지요. 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에요. 나는 성령 받았으니까 성도다. 라고 한다 말이죠.
그럼 성도다. 인지 제가 한 번 시험을 해보겠습니다. 가브리엘 천사. 천사의 존재를 인정하십니까? 이게 지금 스가랴에 보면 왜 갑자기 천사를 거론하느냐 하면 스가랴의 내용이 천사 내용이에요. 천사 내용이 등장한다는 말은 인간은 빠져라 이 말이거든요. 인간은 그동안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 말씀을 지키고 해봐야 전부 다 헛방이었다는 겁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특징은 천사들이 자주 등장해요. 천사들이. 천사의 존재를 인정한다 했습니다. 천사의 존재를 인정한다. 하나님이 저기 계신 거 인정한다. 같은 뜻이겠지요. 천사의 활동을 인정하십니까? 천사의 존재를 인정하십니까? O, X에서 O 했습니다. 그럼 천사의 활동은 인정하십니까? 왜 조용하지요. 천사의 활동은 인정하십니까? 인정하지요.
그러면 적금은 누가 부었습니까? 사람이 자기를 의식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냐 하면, 자기가 뭔가 행했을 때. 행한 것이 어떤 결과가 있을 때, 결과물이 나타날 때, 여기에 집중하게 되어있어요. 아까 내가 집중이란 말을 쓰지 않았습니까. 인간은 어떤 일에 집중하느냐 하면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성경에서 하나님, 천사이야기해도 그 사람의 하루 일과가운데 주로 관심 두는 것은 본인의 행한 것입니다. 본인의 행함. 본인의 존재와 본인의 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들이 공부는 안하고 맨날 노래만 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그 아들한테 전화 와가지고 “엄마, 저녁8시에 TV 한 번 틀어보세요.” “왜?” “내가 거기에 노래 가수가 되어서 거기에 가요 톱10에 나옵니다.” 이렇게 하면 그 엄마는 그 날 하루 종일 어디만 집중하느냐 하면, 어디만 관심 두느냐 하면, 내 아들이 TV에 나와서 자랑스럽게 아들로 부각되는 거기에 집중하겠습니까? 아니면 가브리엘 천사의 활동에 대해서 집중하겠습니까? 자동적으로 자기 아들이 스타 되는 거, 자기 아들이 영웅 되는 거에 거기에 집중하겠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존재하고, 그 천사가 부지런히 활동한다고 아무리 언급을 해도 인간은 자기가 집중하는데 그거 신경 쓰기에 바빠요. 천사가 바쁘게 활동하던 말든 신경 뚝, 관심 없습니다. 그래서 망한 거예요. 그래서 유다나라가 망한 겁니다.
인간이 자기 하는 일에 집중한다는 거, 이걸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이걸 가지고 역사라고 이야기 해요. 역사. 인간은 역사를 자기가 만들어내고 또 미래라는 것은 곧 내 지금에 있는 역사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그 어떤 시점. 그걸 미래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지금 역사적인 내 중심의 역사적인 내 인생이지요. 그냥. 내 중심의 역사적인 것에 집중해서 활동하는 게 그것이 그동안 역사를 만드는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라고 의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그 역사 때문에 망했다. 다른 말로 하면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서 관심 두고 그거 신경 쓰다 보니까 망했다.
그러면 이 역사라는 것은 뭔가 가리는 역할을 하게 되지요. 뭘 가리느냐, 역사라 하는 것은 무엇과 반대가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일. 스가랴 쪽으로 이야기하면 천사의 일. 천사의 일을 누가 방해한다? 역사라는 명목으로 인간이 천사의 일을 방해하고, 그 인간이 천사의 일을 방해했다는 그 증거가 뭐가 되느냐 하면 역사가 됩니다.
그러면 스가랴 예언서에서 역사를 만약에 뭉개버린다면 역사를 부정한다면 이것은 곧 인간의 관심사, 인간의 의도를 뭉개버리는 것이고 반대로 그것은 무엇을 부추기고 내세우느냐 하면 천사의 활동과 천사의 업적과 천사의 결과 그것을 부각시킴으로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에 의해서 진행 된다 이리 되겠지요.
그러면 인간이 고만 고만한 인간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자기 일에 집중하고 열중하고 거기에 몰두하고 열심을 낼 때에 제가 만약에 천사의 이야기를 한다면 사람들은 뭐로 이해하느냐 하면 이렇게 이해해요. “참, 신기하다!” 이렇게 할 겁니다.
그래서 스가랴의 내용은 이게 신기함에서부터 시작해서 신기함을 통해서 신기함으로 끝나는 거. 이게 스가랴 내용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인간의 뭘 부정한다고 했습니까? 인간의 모든 역사, 인간의 활동을 부정하는 겁니다. 참, 신기하다! 다른 말로 하면 참, 기이하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참, 이상하다! 이런 신기하다는 것은 이건 인간의 측면에서는 뭐냐, 예상 못함이에요. 예상 못함.
선지자가 예상 못한 내용을 스가랴의 선지지가 예상 못한 내용을 계속 언급하는 것은 이게 뭐냐 하면, 믿으라는 거죠. 믿으라. 신기함을 믿으라. 천사의 활동을 믿으라. 이 말은 같은 말로 너의 활동은 믿지 마라. 니는 너 자신의 하는 일에 거기에다가 몰두하거나, 거기에다가 애달아하거나, 미련을 두거나, 집착하지 말라. 그런 뜻이에요.
인간이 활동하게 되면 그냥 활동합니까? 기대를 하게 되지요. 그게 아까 역사라 했잖습니까. 니가 하는 일에 니가 기대하지 말라. 니가 기대를 하나 안 하나 일은 누가한다? 하나님이 가브리엘로 해서 천사한테 지시해서 세상의 모든 운명과 세상의 모든 진척은 인간의 손이 아니라 천사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서 모든 걸 마감 처리한다. 이게 스가랴입니다. 이게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굉장히 신기해하는데 들어보면 되게 기분 더럽지요. 완전히 인간을 개무시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이 스가랴 선지자도 환영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언제부터 활동하느냐, 그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스가랴 선지자가 활동하는 것을 왜 말씀드려야 하느냐 하면, 스가랴 선지자가 이러한 신기함과 천사를 언급하는 것은 그 바탕이 역사라는 바탕에서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식으로 인간을 공격적으로 언급을 해버려요. 공격적으로. 공격적입니다.
역사에 미련을 갖고 있는 인간들에게 의도적으로 공격하고 부정하는 쪽으로 스가랴 선지자가 언급을 하지요. 그럼 역사를 제가 이렇게 네모로 그렸는데요. 보통 시간의 흐름은 네모로 그리지 않지요. 뭐로 그리겠어요? 네모겠습니까? 아니면 선이겠습니까? 선으로 그리지요. 선으로. 선으로 이렇게 그어요. 위에서부터 이렇게 아래로. 위에는 과거고 아래로 점차로 갑니다.
그러면 스가랴 선지자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BC 그러니까 예수님 오시기 전에 BC520년 그때에 스가랴 선지자가 활동을 시작합니다. 역사는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간다. BC520년. 520년 해서 30년 동안 활동해요. BC490년. 자, 위쪽이 과거입니다. 이게 미래에요. BC니까. 숫자를 거꾸로 헤아려 나가니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숫자가 적어져요. BC제로가 되면 예수님시대로 BC제로가 돼요.
여기에 천사를 거론하는 스가랴 선지자가 등장한 거예요. 초친다 이 말이에요. 역사에 대해서 공격하고 부정하고. 역사는 가봤자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거대한 강물인데 나이아가라 폭포 되면 완전히 떨어지지요. 끝이 나지요. 역사도 마찬가지다.
요 이야기가 스가랴가 520년인지 어떻게 아느냐, 스가랴 1장에 보면 다리오왕 2년 8월에(8월하는 것은 지금의 11월 달에서 12월쯤 돼요.) 8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라고 되어있어요. 여기에 스가랴1장1절에 다리오 왕이 나와요.
다리오 왕인데 뒤에 또 다리오 왕이 나왔어요. 이 사람을 다리오 왕1세라고 합니다. 다리오 왕은 BC522년부터 BC490년까지니까, 성경에 보면 2년 후에 스가랴가 드디어 예언을 계시하니까 이게 BC520년부터 시작 한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다리오 왕이라 하는 것은 이 사람은 천사이야기를 못해요. 천사라 하는 것은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선지자나 천사를 언급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문학 작가들이 천사를 언급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사람들은 천사의 실제성을 인간의 실제성보다 천사의 실제성에 관심을 두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요. 이 세상은 천사가 일하지, 인간은 일해 봤자 소용없다. 오히려 천사한테 구박만 받는다. 그런 관점이 아니고, 인간 세계가 있고 천사는 뭐 부록으로 넣어주자. 귀신도 있고 천사도 있고 악마도 있고, 그냥 있지만, 별 허락도 없이 뭐 세상 역사는 인간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천사는 그냥 왔다, 갔다하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천사를 언급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선지자는 그게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해봤자 소용없고 모든 일은 천사가 다 알아서 한다. 그리고 천사의 배후자는 누구냐, 하나님이 천사에게 지시를 한다. 그 하나님이 지시할 때, 지시하는 내용은 뭐냐 하면 기존에 있던 하나님의 언약을 하나님이 스스로 철회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명백성이지요.
너희들이 언약을 위반하고 너희들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방 민족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이스라엘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기로 되어있는 내 백성이 언약을 어겨버릴 때, 언약은 과연 실패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 거기에 대해서 선지자 스가랴가 하는 말이 “인간이 실패한 거 천사가 다 마무리 짓는다. 오히려 인간들은 우리는 실패했네. 우리는 못했네. 우리는 하나님께 멸망해도 마땅하네.” 라는 그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 이제 그런 용도로 자기 이스라엘 유대 나라는 쓰임 받는 거예요.
천사에 의해서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가브리엘 천사하면 얼근 생각나는 게 있을 건데. 어떤 천사지요? 누가복음1장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는데. 요새 같으면 우체부 집배원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어떤 편지나 서신 소식 같은 것을 알려주는 메신지 역할 하는 게 가브리엘 천사에요.
누구한테 오느냐 하면, 바로 세례요한 어머니와 마리아에게 나타나지요. 가브리엘 천사가 엘리사벳에게 등장하고 마리아에게 등장해서 이 복된 여인이여, 니가 하나님의 구세주를 임신했다. 그런 이야기죠. 그리고 사도행전에 천사들이 그 옥문을 연 사람이 누굽니까? 맥가이버입니까? 누가 열어요? 천사가 옥문을 열지요. 요한계시록에는 천사 범벅이로 나오고요. 눈에 안 보인다고 눈에 보이는 인간이 일 다 했다고 하면 안돼요. 주께서는 발걸음도 세시고, 머리카락도 세시거든요.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께서 일을 할 때, 천사를 통해서 사도요한에게 언급을 합니다. 해놓고 막상 요한계시록에서 내려 보면 모든 일은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천사들이 등장해가지고 다하지요. 그래서 우리 인간들 입장에서는 천사의 존재도 신기하지만 하는 일도 신기함으로 해서 신기함을 통해서 신기함으로 마감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라 하는 것은 성도는 무엇이 나와야 되느냐 하면 본인이 한 게 아니고 천사 또는 성령, 하나님이 하신 일이 나오기 때문에 성도의 일상이나 성도의 생활이란, 무엇을 찾는 생활이 되겠습니까?
내가 예상 못하고 하지도 않았는데 어떤 일? 신기한 일이 나오는 것을 보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 이게 성도의 삶이라 하지요. 신기한 일이 나오는 것. 요즘 같은 경우에는 우한에서 얼마나 신기한 일이 나타났습니까. 우한에서 실험실에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와 가지고 얼마나 신기해요. 지금 미국에서 하루에 몇천명 죽어가고 있잖아요. 죽어가는 사람들 얼마나 살려고 애를 쓰겠습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나도 그렇게 걸려버리면 죽어가고 있는데, 그걸 성도는 죽어간다고 하지 말고 뭐로 봐야 된다고 했습니까? 예상 못했으니까 무슨 일이 되겠어요? 신기한 일이 되는 겁니다.
돌아보면 봄이 되어서 꽃이 피는 것도 신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사람들은 그걸 대자연이라고 하는데 그 대자연, 대자연하지만 인간들이 주로 관심 두는 것은 뭐냐 하면 바로 이 역사지요. 역사. 한진그룹이 주주총회 할 때, 벚꽃구경하는 겁니까. 아니면 다음 차기 총수가 누가 되느냐, 어느 것에 관심 두겠어요? 다음 차기 총수가 뭐가 되겠어요? 그게 역사에 속하는 거예요.
다리오 왕. 다리오 왕 앞에 캄비세스2세라는 왕이 있어요. 그 다음에 나온 왕이 뭐냐 하면 바로 고레스 왕이에요. 고레스 왕. 캄비세스2세 그 위에 고레스 왕입니다. 고레스 왕이 시작된 것이 기원전559년부터거든요. 559년부터 530년까지 통치를 합니다. 29년 동안 통치를 합니다. 559년부터 530까지 하는 이 역사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천사 앞에서는 이런 역사, 연대하는 게 의미 없어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천사 쪽을 어려운 말로 역사의 반대말을 뭐로 보느냐 하면, 묵시라 하거든요. 묵시. 묵시라 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 의미가 없는 게 묵시에요. 어떤 지역에 소낙비가 온다면 고 지역 안에서 어느 곳에 있던지 소낙비를 다 맞게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이 묵시라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예언이라 할 수 있는데 예언은 시대를 초월해서 어떤 시대든 간에 뿌리고자 하는 그 예언의 말씀은 한결같이 한결 같은 내용으로 뿌려진다는 뜻이 묵시라는 겁니다.
역사의 반대는 비 역사, 반역사이래야 맞는데, 묵시라고 하는 것은 내용을 더 깊이 있게 한 거예요. 역사 반대말은 역사를 반대한다. 가 아니라 다른 식으로 다른 관점으로 봐요. 역사적 지상의 시간흐름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시간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묵시, 예언이지요. 예언 말씀 중심으로서 세상을 보자 할 때는 묵시라서, 역사의 반대를 묵시라 할 수 있다 말이죠.
“지금 몇 시입니까?” 가 아니라 “지금 무슨 말씀을 주셨습니까? 그리고 그 말씀대로 천사가 어떻게 활동을 합니까?” 에 관점을 두는 것이 묵시다 이 말입니다. “몇 살입니까?” 이게 문제가 아니고 “그동안 어떤 은혜를 받았습니까?” 이게 묵시적 관점이에요. “실례지만 지금 외손녀가 몇 개월 됐어요?” 이거 그렇게 물을 수도 있지만, 그건 관점이 역사적 중점이고 “그 외손녀가 크면서 어떤 은혜를 누렸습니까?” “처음에는 눕지도 못하고 기지도 못하고 이젠 지가 눕기도 하고요.” 앉아가지고 TV보고 손 흔드는 그런 활동.
그런 활동이 노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속적인 계획에 의해서 하나님의 묵시적 계획, 예언된, 약속된, 예정된, 계획에 의해서 할 때, 우리는 그걸 보고 뭐냐 하면 신기함. 아이고~ 참, 신기하다. 아이고, 잘한다. 당연하다고 보면 안돼요. 그럼 예상되니까. 신기하다. 참, 놀라워라. 할 때, 그 존재를 하나님의 품으로 넘겨주는 존재로 인식하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성경을 안 보느냐 하면, 역사에 내가 하는 일에 어떤 결과나 목적에 거기에 목을 매달다 보니까 그동안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다 까먹지요. 까먹어버리면 신기함에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거예요. 신종 코로나 언제 끝나노. 언제 끝나노, 하면 무심코 말한 것이 역사적 관점이에요. 지금도 신종코로나를 통해서 주께서는 은혜를 주시잖아요. 죽을 인간 죽으라고.
이 성경에서 스가랴를 하면서 다리오 왕 2년에 딱 나왔다면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와 묵시 또는 인간의 일과 천사의 일이 어떤 차이점을 갖고 성경을 봐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다리오 왕 2년에 BC520년에. 이제 BC빼겠습니다. 520년 그냥.
520년에 스가랴를 통해서 세상은 어떻게 흘러간다는 것이 나타난다. 뭘 통해서 나타난다? 천사의 뭐라고 했습니까? 천사의 활동 활약에 의해서. 자, 천사의 활동, 활약은 무엇을 부정한다고 했습니까? 모든 인간의 노력은 다 헛방이었다. 죄였다. 거짓이었다. 를 고발용입니다. 고발용으로.
인간의 활동을 고발하면서 스가랴 예언이 시작되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이 다리오 왕의 존재는 또 의미가 뭐냐, 그 다리오 왕은 캄비세스2세하고는 별 영향이 없고요. 고레스 왕에게 줬던 게 있어요. 캄비세스2세는 성경에 안 나오지만 고레스 왕은 이사야에 나오잖아요. 이사야에 하나님이 지시한 게 있습니다. 뭘 지시했느냐 하면, 필히 이 백성은 바벨론에 잡혀 간다 에요. 잡혀간다.
잡혀갈 때 이유가 있지요.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지 못했으니까 하나님의 묵시적 조치에 의해서 그들은 포로 잡혀가야 되는 거예요. 바벨론에 포로 잡혀가는 거예요. 바벨론에 포로 잡혀가면서 그러면 그것이 끝이냐. 아니야! 아니야! 다시 내 백성을 불러 들일거야. 라고 한 거예요.
그 불러들인 것이 바로 BC536년에 불러들여요. 536년에 1차 귀환이 돼요. 1차 귀환. 돌아온다 말이죠. 그런데 포로 잡힐 때는 바벨론의 통치하에 잡혀갔다가 돌아올 때는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고 그 다음 제국에 의해서 돌아오는 거예요. 유대인들이. 일단 그 다음 제국을 하나님의 지시에 있었지만, 뜻에 있었지만, 그냥 유대인들을 다시 본국으로 약속의 땅으로 돌려보낸다 해서 일단은 착하다고 봅시다.
그러면 이 바벨론은 이건 나쁜 제국이라고 보고. 바벨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잡아 죽이고 포로 잡혀가고 이스라엘 나라를 뭉개버렸으니까 나쁜 제국이라고 본다면 요 다음의 제국은 착한 제국. 잡혔는데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돌아가! 라고 하게 하셨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거예요. 요 제국이 뭐냐, 바사제국이에요. 바사제국. 제국이라 하는 것은 왕들이 계속 이어지니까.
바벨론제국은 이스라엘을 포로 잡아가는 그러한 역할 나쁜 역할이지요. 그 다음에 바사제국은 그걸 다시 풀어주는 착한 역할. 요 간격이 몇 년이냐 하면, 70년이에요. 70년. 그런데 바벨론이 그 이스라엘이 둘로 쪼개지고 남쪽나라가 BC586년에 포로 잡혀가거든요. 그런데 뭐라고 하느냐 하면 포로 잡혀가면서 예레미야나 에스겔에게 약속하기를 70년 뒤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어요. 70년. 역사적으로 70년.
그러니까 BC586년이 70년 흘러가게 되면 몇 년입니까? BC516년이 되겠지요. 그런데 1차 귀환해서 성전 지으라 하는 것은 516년이 아니고 536년이에요. 20년 차이가 나네요. 586년에 쫓겨 났고 요 틈이 70년이라고 했거든요. 예레미야, 역대하 마지막에 보면 나와요. 예레미야에 약속하기를 70년 후에 다시 돌아온다 했다 이 말이죠. 하나님의 약속에.
그러면 70년 후에 돌아오게 되면 돌아올 때, 바사 나라 제국에 의해서 착한 제국에 의해서, 사실은 착하지도 않아요. 바벨론은 나쁜 제국도 아니에요. 그냥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다 이 말이죠. 그런데 제가 이미지 상 착하다, 나쁘다 했다 말이죠. 이 착한 제국에서 70년 만에 돌아오는 겁니다. 요 70년이 중요해요. 70년. 여기 간격이 중요해요. 간격이.
뭐냐 하면 역사를 중간에 끊어놓고 역사에다가 묵시를 집어넣는 대목이 70년이에요. 이걸 저는 뭘로 보느냐 하면 이걸 ‘기억상실증’이라 해요. 기억상실증. 어떤 남자가 결혼해놓고 갑자기 회사일하다가 차사고 나가지고 쓰러졌다. 쓰러져가지고 10년 뒤에 치료받고 어떤 오지에 가서 치료받고 다시 10년 후에 나타났습니다. 기억나는 것도 있고, 기억 안 나는 것도 있는데. 자기 집에 가보니까 어떤 여자가 있는데 자기 아내인 줄 몰라요. 아내는 자기 남편이라 하고. 애들은 자기 아버지라 부르는데, 자기는 아버지를 자기 자신으로 보지 않고 몰라요. 기억상실증 되어버린 겁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그 사람 남자에 있어서의 역사가 중간에 끊어졌어요. 역사가 끊어졌다는 말은 역사가 결국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겁니다. 신약에서 역사가 끊어지는 지점이 있는데 그 지점이 세자입니다. 앞에 첫 자가 십. 그 다음에 두 번째 자가 자. 뭐겠어요? 십자가잖아요.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나의 육의 역사가 기억상실증에 끊어졌고 깨어보니까 육에서 영이 되어버렸어요. 그게 십자가에요. 그게 성령에 의해서 알게 되는 십자가입니다. 성령이 오지 않고 지식으로 아는 십자가는 기억상실증에 안 걸렸어요. 내 역사가 그대로 가버려요. 그런 자기 역사를 계속 고집하는 단체가 있었으니 그게 뭐냐, 구원 파에요.
구원 파는 뭐냐, 당신은 언제 구원받았습니까? 물으면서 접근하면서 꼬시는게 구원 파에요. 당신 144,000됩니까? 그건 신천지에서 하는 거고. 교회 다녀야 구원받습니다. 하는 것은 기존교회에서 하는 거고. 전부 다 묵시가 아니고 전부다 그냥 당신의 역사를 지금 과거역사가 이리 되는데 미래도 이 역사 그대로 갈 건데, 좋은 역사 만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걸로 꼬시는데. 이건 성경적 방법이 아니에요.
성경적 방법은 그동안 나를 붙들고 내가 나를 구원하려고 내가 나를 천국 보내려고 그렇게 애썼던 모든 것이 다 헛수고로 끝나는 순간이 와야 돼요. 나라는 인생은 애초부터 끝장나야 될 인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그 시점. 그게 바로 나의 죽음이고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죽는 거예요.
혼자 자살해서 죽는 죽음이 아니라 진정한 죽음은 예수님과 더불어서 같이 죽어버리면 나의 옛사람은 죽어버리는 겁니다. 나의 육은 죽어버리고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죠. 그걸 지금 구약에서 보여주는 겁니다.
아까 이야기해봅시다. 586년에 쫓겨나가지고 70년 후에 돌아오면 516년이 되어야 되는데 돌아오기는 이 착한 제국의 시작이 고레스부터 시작이 돼요. 그럼 이쪽에 그 바벨론은 뭐냐, 마지막 바벨론 제국의 느브갓네살 때 잡혀갔거든요. 느브갓네살 이후에 여러 가지 제국이 있는데 마지막 왕이 뭐냐, 벨사살 왕이에요. 벨사살이 언제 망했느냐 539년에 망해요. 539년에 망한다고요.
그러면 고레스는 559년부터 시작해서 530년까지 끝난다 했는데 그러면 559년에도 바사나라 착한나라 고레스 왕이 있을 때에도 바벨론 제국은 아직 안 망했다는 말인가, 안 망했어요. 끝부분에 레임덕인가, 안 망했다니까요. 안 망한 이유가 두 제국이 싸우고 있는 중이니까 망할 뻔하지만, 아직 다는 안 망했어요.
그래서 고레스 왕이 이 제국을 마지막 무너뜨린 것이 539년에 망해버리고 그리고 온전한 주도권이 나쁜 나라 바벨론 제국에서 착한 나라 바사 제국으로 바뀝니다. 그게 고레스 왕이에요. 이 고레스 왕이 하자마자 뭐했느냐 하면, “가라! 너희 집에 가라!” 진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야! 유대인들! 너희 집에 가! 너희 고향으로 가라.”해서 536년에 드디어 거기에 누가 오느냐, 스룹바벨이라는 사람의 총독인데 이 사람의 인도 하에서 포로1차 귀환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536년에 귀환하는데 그것보다 약간 3년 앞에 539년에 에스라가 먼저 3년 앞당겨서 자기 고향으로 와요. 에스라는 선지자가 그렇게 하는데. 그건 딴 문제니까. 여기서는 스룹바벨이 옵니다. 그러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586년에 와서 536년 같으면 이게 몇 년 차이에요? 50년 만에 와서 성전이 파괴되었으니까 성전 짓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예언에 70년 만에 온다고 했는데, 이거 뭐 잘못되지 않았는가, 그리 생각하는데. 이게 성전을 잘 짓다가 에스라, 느헤미야에 보면 성전을 방해 공작, 그 가나안 땅에 있던 사람들이 질투심에 의해서 방해 공작을 해가지고 20년 가까이 성전을 못 지어요. 그리고 성전을 언제 짓느냐, 516년에 지었습니다. 그 말이 맞아요. 586년 이후에 70년 만에 516년 그 때는 뭐냐 하면 바로 다리오 왕 때에요. 다리오 왕 때에 드디어 성전이 완공이 됩니다. 완공이 되는데 나중에 또 성전 또 방해해가지고 또 그 뒤에는 느헤미야 시대 때가 와요.
그 다음에 왕이 아하수에로왕이 그 때는 전에 우리가 공부했잖아요. 에스더. 에스더 시대에는 아하수에로왕이에요. 그 뒤에는 483년 에스더가 있고, 그 뒤에는 예레미야가 나오는데. 그건 나중 문제고.
지금 여기서 봐야 될 것은 성전을 짓는데 방해공작으로 성전을 못 짓는다 말이죠. 성전을 지으라 했잖아요. 자, 다시 봅시다. 처음부터 다시 봅시다. 스가랴가 언제부터 했지요? 520년이지요. 520년이니까 이건 성전 짓기 시작했는데 성전이 다 지었을 때에요? 중단되었을 때에요? 중단 되었을 때 성전을 재건해야 될 촉구하게 되는데 촉구할 그 시점에 선지자가 두 명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학개 선지자. 스가랴 선지자. 학개 선지자도 520년부터 505년까지 15년 동안 활동하는데. 학개 선지자는 노골적으로 성전 지으라고 이야기하고. 스가랴는 성전을 지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성전을 너희들이 안 짓고 있는 그 마음자세가 너희들이 옛날 포로 잡힐 때 마음 자세하고 똑같다. 틀려먹었다 이 말입니다.
너희들이 성전이 중단되어서 빨리 지어야 될 텐데 그들은 하나님의 옛날에 포로 잡혀가기 전에도 말씀을 신경 안 쓰고 말씀도 관심 없는 거 마찬가지로 성전 지으라고 다 깔아줘도 안 짓고 있는 거예요. 저 사람들이 막 방해 놓는다고. 성전을 안 지으니까 학개는 성전 지으라고 촉구하고. 노골적으로. 적극적으로.
스가랴는 뭐냐 하면, 그래, 너희들 마음가짐이 그것밖에 안되니까 장차 올 성전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의 성신에 의해서 된 성전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해 버려요. 자, 이렇게 보니까 어떤 점이 중요하냐 하면 이 간격이라는 것. 아까 16년 동안 못 짓게 된 이 간격. 뭔가 틈. 여기에 이스라엘 역사가 죽 되다가 70년이란 간격. 이 간격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제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기억상실증. 역사라 하는 것은 연속적이에요. 끊어짐이 없어야 돼요. 역사란 항상 촘촘히 이어져요. 촘촘히 이어지는데 그게 촘촘히 이어졌다고 해서 그게 영원하지가 않습니다. 진짜 촘촘히 이어지다가 중간에 누가 개입해야 돼요. 이게 카이로스라 하는데. 급작스러운 사건. 다른 어떤 이 역사를 두 동각 끊어버리는 잘라 내버리는 이런 일이 벌어져야 돼요.
자, 역사가 있다는 것은 곧 내가 살아있다는 거예요. 역사의 주인공이 나니까. 내가 살아있다는 뜻이고, 역사가 끊어졌다는 말은 누가 죽었다는 말입니까? 내가 죽었다는 말이에요. 십자가는 모든 역사의 마감이 십자가에요. 십자가 앞에 죽으라는 말은 니가 살아온 모든 인생은 여기서 끝! 아무리 훌륭하고 착하고 거룩하고 성화되고 신앙생활 잘해도 다 끝! 다 소용없어요. 다 끝이에요.
끝이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하는 게 아니고요. 누가 한다 했습니까? 아까 배웠지요. 스가랴에서 누가 합니까? 인간이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천사가 하고 스가랴는 천사가 하고 신약에 오면 성령이 일을 하시고.
그러면 우리의 몸은 뭐가 되겠어요? 하나님의 성령이 일하시는 지은 집을 뭐라고 하지요? 두 자로. 성전, 템플이라고 해요. 성전.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된다는 겁니다. 성전이 된다는 것은 고린도후서에도 나오고, 고린도전서에도 나오지요. 성령이 임한 몸이 성전이라고 합니다.
신약에서 사도바울이 성전이 너희 몸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니까 너무 생뚱맞지요. 너무 논리적인 비약 같은 걸 느끼지 않습니까. 성전이 거기서 왜 나와. 성전 용어가 갑자기 거기서 툭 튀어나왔다 말이죠. 고린도전서3장 같은 경우에.
고린도전서3장 16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고린도전서는 간단히 되어있지만, 고린도후서6장에 보면 길게 되어있어요.
고린도후서6장15절,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이리 되어있다 말이죠. 사람을 가지고 코나 눈 해부해가지고 심장, 콩팥 따지는 것은 역사적인 거예요. 인간이 하는 일은 인간이 집중하니까.
보자, 인간은 어디서 병이 났지? 내가 한번 해부해볼까. 아, 여기 십이지장이고, 창자고, 대 창자, 소 창자, 요건 간이고 쓸개고, 이렇게 눈으로 목격하는 거 그걸 통해서 인간을 알 수 있습니까? 두뇌를 보자. 두뇌를 쪼개가지고 요것은 신의 영역이고, 요거는 운동의 영역이고, 이거는 냄새 맡는 영역이고. 이거는 숫자를 계산하는 수학적인 영역이고, 이것은 문학하는 영역이고, 음악 하는 듣는 영역이고, 이건 걷는 영역이고, 현재 뇌 과학자들은 뇌를 쪼개가지고 전부 다 그런 식으로 각 파트별로 국지적으로 그렇게 분류를 하거든요. 그러면 그게 인간입니까?
그게 바로 사도바울이 말하는 육이라는 거예요. 육. 그러니까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성경은 신기함으로 시작해서 신기함으로 말미암아 신기함으로 끝나야 된다고요. 내가 내 자신을 볼 때 신기한 것이 나와야 된다 말입니다. 그걸 느껴야 되고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신기함은 어떻게 나온다 했던가요. 아까 이야기했는데. 인간이 예상하지 못한, 내가 기대하지 못한 그런 것들을 우리가 찾아가고 늘 그걸 발견하는 기쁨이 성도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같이 살면서 또 애들과 살면서 왜 애들이 갓난아기 일 때는 귀엽잖아요. 4살5살 되면 까불어도 이쁘지도 않는데 왜 자꾸 애들을 보고 귀엽냐하면 애들은 하루, 하루가 신기한 게 나와요. 그래서 동영상 사진 찌고 흔들고 좀 있으면 기게 되고. 아이고~ 기는 거 봐! 또는 아이고~ 서는 거 봐! 모든 게 그 변화 조짐이 굉장히 강렬하잖아요. 그래서 애 낳고 또 애 낳고. 계속해서 애 키우는 재미가 있다는 거예요. 애 키우는 재미가 났겠습니까? 치매 걸린 어른 모시는 게 낫겠어요? 어른들은 갈수록 냄새나고 신기한 게 없어요. 진짜 빨리 치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요.
사람도 살아가면서 사는 보람의 행복이 신기하고 짜릿하게 새로운 것을 찾는 것처럼 그런 새로움은 바로 스가랴 천사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우리 자신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심이 드러나는 거. 그걸 선지자가 그 내용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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