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성취력에 대해서 인간의 인식이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서만 담당됩니다.
그 언약 진척이 우리 인간에게 나타날 때는 '죽음'으로서 전면에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죽음과 생명을 동시에 소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죽음을 모르게 되어 있고,
그 죽음 안에 있지 아니하면 부활에 대해서 알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할하셔서 자기 사람에게는 나타났을 때,
성령을 받지 않는 상태의 제자들의 의문은 왜 살아났느냐가 아니라 이왕 여전히 살아날 분이 왜 죽기는 꼭 죽어야 하느냐가 의문이었습니다.
즉 죽기 전이나 죽은 후 부활 때나 예수님이 동일한 예수님이라면 구태여 죽을 이유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이후에, 그들은 십자가와 부활 사이에는 불연속성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인간이 생각하는 '죽음 이후의 삶' 혹은 '영생' 혹은 '부활의 세계' 혹은 '천국' 혹은 '지옥'이라는 것이 다
죽을 인간들이 자신들이 품은 죄성에서 발휘된 상상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즉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죽음조차도 모르는채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살려고 애쓰는 가운데 죽어가고 있고 구원받기 위해 온갖 좋은 것들을 총동원하면서 지옥으로 미끌려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몫입니다.
죽음, 그 이후는 우리 인간의 몫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리요 예수님의 세계입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사람들은 낯선 꿈과 환상을 갖게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내용입니다.(행 2장)
즉 그 정도는 인간 자신의 것과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믿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성도에게 찾아오시면서 들이대시는 것은 부활이 아니라 십자가 죽음입니다.
그 안에서는 성령게서는 자기 사람을 날마다 죽이므로서 인간의 고유 행위의 가치가 모조리 박탈됩니다.
십자가 이후 부활까지 믿고 자랑하겠다는 그 의지마저도 십자가 안에서는 박탈됩니다.
십자가 안에서 부활의 세계란 바로 그 '십자가 안'의 세계가 예수님께서 자기 사람과 더불어 살게 하기 위해 만드신 새 세상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십자가만을 자랑하면서 몸의 부활의 세계를 고대하게 됩니다.
자신을 십자가로 가두는 그 능력이 부활에서 나온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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