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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를 읽고-심재성

아빠와 함께 2018. 1. 27. 10:25
2009-06-18 04:19:09조회 : 2440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이근호목사-대장간)을 읽고이름 : 심재성 (IP:119.71.214.25)

이 책의 제목은 로마서8장 1절의 말씀인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참 은혜롭기 한량 없는 말씀이다.


저자는 책에서는 예수안에 있는것과 바깥에 있을 것을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는데 예수안에 있으면 절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죄에 대하여 묻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참 듣기에 너무 은혜롭고 좋은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이 그리 만만한 말씀이 아니다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이 말씀을 우리는 너무 귀 따갑도록 들은 상태 이기에 특별히 감동을 받거나 혹은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씀으로 극단적 상황을 연출 해 보았다. 그러면 이 말씀에 무감각 했던 인간 내부의 반응이 튀어 나올 수밖에 없다.


 


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고 시신을 토막 낸 살인범 , 귀하고 예쁜 내 딸을 성폭행하고 죽인 강간 살인범, 젊을 때 함께 고생하였던 병든 아내를 버리고 젊은 여자와 놀아나는 남편, 외국에 나가 죽을 고생하며 돈 벌어 송금했더니 아들은 고아원에 보내고 남편이 보내준 돈으로 바람 피워온 아내 등 인간 말종이 있다고 하자.


만약 이런 사람이 예수 안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원을 얻고 그 피해자가 나라고 했을 때 나는 예수 바깥에 있었다면 그 이유만으로 지옥에 간다고 가정한다면 “예수안에 있는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이 말을 수용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 이건 불공평한 처사이지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조치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면 이런 경우는 있을 수 없습니다. 난 이런 하나님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가 절로 튀어 나올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안에 있다 것의 위대한 능력이 얼마나 큰지 감히 측량할 수 없는 것임을 밝혀 주고 있다. 위의 예를 들은 극단적 죄 뿐만 아니라 더 심한 파렴치한 모든 죄를 다 합해도 예수안에 있으면 결코 하나님은 그 죄인을 지옥으로 보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이 책의 제목이다, 이것이 로마서요, 신구약 성경이다.


반대로 예수 바깥에 있다는 것은 이세상의 모든 선을 다 행하고 죄의 피해를 당한 선량한 사람이라도-그것도 선한 행위를 예수이름으로 한다 하더라도- 심지어 저자가 밝힌 대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였다’ 하더라도 종착점은 지옥이라는 이야기이다.


 


사실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이 충격! 그 자체의 말씀이다. 이 책의 제목이 그리 간단히 받을 말이 아니라는 말이다. 죄를 지은 가해자 입장에서는 복음으로 들리겠지만 죄 짓지 않은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불공평한 악신의 조치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저자가 잘 밝힌 바대로 우상화 된 신관(예수), 잘못된 율법관, 잘못된 십자가, 잘못된 자아상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의 핵심단어중 하나인 ‘율법’을 위시하여 ‘신이라는 우상’, ‘십자가’등으로 책의 제목인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의 말씀의 의미와 하나님의 사랑이 감히 인간이 상상 할 수 없는 조치를 선언하심을 적나라 하게 드러내어 주었다.


 


저자는 ‘신이라는 우상’을 설명하면서 이스마엘과 이삭, 다윗등 인물들과 자연-카오스(혼돈,변화) 코스모스(질서)등으로 설명하였지만 특히 나의 눈길을 사로 잡은 것은 이 책에서는 짧은 분량이었으나 삼위일체로 불려지는 하나님 이었다.


  P88-89에서 ‘사람은 한 사람인데 가면을 계속 쓴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 ‘삼위일체’입니다....고대 연극개념에서 나온 철학을 경유해서 삼위일체가 튀어나온 겁니다.... 실상이라고 생각하고 다가서면 허상으로 바뀌는 거예요‘라는 대목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조작된 하나님, 조작된 예수님, 조작된 성령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충격 정도가 아니라 벌벌 떨릴 만큼의 충격이다. 왜냐하면 기존 신학에서의 삼위일체 교리를 조작된 교리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의 의미는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삼위일체 자체가 조작품 이라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허상이라는 이야기이다. 저자의 주장을 다시 살피자면 삼위일체인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다른 가면을 쓰고 나타났는데 그 가면은 허상일 뿐이지 실상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각각 다른 가면을 썼다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모세가 하나님께 부름 받았을 때 떨기나무에 나타나신 이상한 불길을 보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실상이 아니라 허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이었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그 불길이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현현은 시대마다 각각 다른 모습으로 구약성경에서는 불기둥, 구름기둥, 천사, 사람..... 등 수많은 가면을 갈아 끼며 역사속에 등장했다. 예수그리스도는 육신으로 성령은 비둘기,불의 혀, 방언, 기적등으로 나타나셨지만 이것 모두가 실상이 하니라 허상이라는 것이다.


 이 허상을 잡으면 아무리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 할찌라도 우상에 불과 하다는 말이다. 깍아만든 부처를 섬기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뜻이다. 허상으로서의 하나님, 예수님, 십자가, 피를 믿는것은 결국은 지옥이다.


 삼위일체로 접목시켜 다시 이해 하자면 성부가 따로 존재하고 성자가 따로 존재하고 성령이 따로 존재하여 역사적, 시간적 순서대로 나타나서 구약은 성부시대, 신약은 성자시대, 오순절 사건 이후는 성령시대 등 하나님이 삼위로 분담하여 사역하신 것이 아니라 구약 신약을 막론하고 모두 오직 십자가에서 피흘리고 죽으신 예수님의 사역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삼위일체 교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심 이라는 본질을 희석 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따로 분리하여 해체 해 버린 인간의 술수라는 이야기 이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삼위일체 교리를 잘못 이해하게 되면 ‘삼위일체 교리는모두 사기다’ 라고 이해하는 것이고 올바로 이해하면 ‘삼위일체의 본질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피흘린 죽음이다’ 라고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본질은 이 세상 그 어떤 용어로도 담아 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신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을 하나님을 조작하여 산인간이 믿는 산(죽지않는) 하나님 이었지만 인간의 예상과는 달리 “죽는 하나님”으로 설명하고 있다.


조작된 하나님은 살아서 권위로서 군림하는 하나님이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조작하여 죽지 않는 하나님, 나를 산사람(지배하는)으로 만들어 주는 하나님을 원했다. ‘내가(살아있는 인간) 살아 있기에 교류가 가능한 하나님(죽지않는)을 원했다’ 라는 말로 표현 하고 있다.‘하나님은 살아있는 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죽음의 모습으로 왔을 때 우리가 원하는 신이 아니라고 배척하였다’  인간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조작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 뿐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대하여도 조작하였는데 하나님의 법(율법)을 사람의 법으로 바꾸어 버렸다. 사람의 법은 인간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기위한 질서의 법이라하여 인간이 율법을 스스로 얼마든지 지킬수 있는 법으로 만들어 버렸고 표면적으로 지킨 법은 자기의 의가 되고 법을 어기면 자기 합리화로 변명 하였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을 때는 인간이 하나님으로 도달 할 수 있는 길이 완전히 차단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을 목적으로 주신 것이었다. 따라서 율법도 인간의 조작품으로 전락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께서는 인간에 의해 조작된 율법 대신 우리 속에 한 의가 나타나게 하신 분이 예수님인데 이 예수님이 영으로 계신 분이 성령이 시다. 이 성령은 우리 속에 계셔 날마다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를 우리에게 인화지 에 복사한 것처럼 예수님처럼 죽음을 맛보며 살게 하신다. 이것은 살아있는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내모는 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서 이 글 초반에 극단적 예를 들었을 때 억울한 피해자가 나 이고 가해자가 다른사람 인줄 알았는데 성령께서는 율법(하나님의 법)을 통하여 내가 바로 무죄한 예수를 즉 하나님을 죽인 파렴치한 가해자 였고 죽어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탄식하며 항상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내가 파렴치한 가해자로 더러 났을 때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이 드디어 악신의 법이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의 복음의 소식으로 내게 들려 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 결정적 포인트는 조작된 신은 ‘나’의 존재와 예수그리스도의 존재가 따로 노는 이원론적 관계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와 내가 하나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이제 나를 완전히 감싸고 있어서 내쪽에서 출발하는 의는 묵사발 시키고 오직 그리스도의 의가 내게 충만하게 입혀져서 악마 사탄의 권세가 결단코 침범하지 못하도록 예수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완전히 나를 사로 잡아 천국까지 인도 할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제 성도는 죄로부터 완전한 자유함을 얻은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말해 주는 것이다.


덧 붙혀서  인간에게 궁극적인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인데 이 은혜가 실로 엄청나다. 인간에게 궁극적 자유의지가 없었기에 인간의 자유의지대로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대로 죄인을 예수님의 피로 의인 삼아 주셨다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유의지대로 그냥 두시면 아무 인간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 속으로 나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대로 우리에게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은총속으로 집어 넣으셨다.


할렐루야.

 이근호 (IP:117.♡.145.116)09-06-18 05:43 
'생수' 논쟁하다가 급기야 물동이 마저 집어던진 사마리아 여인은(요 4장) 도대체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알았을까? 선악체제 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해야 되는 줄 알았던 여인이 그 선악체제에서 벗어나야 진리로 하나님을 경배함을 배웠던 것이다. 수고해주신 심목사님의 평글 속에서 다시 복음을 배우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미아 (IP:115.♡.204.167)09-06-18 10:22 
샛별이 우리 마음에 떴으면 뜬 것으로 끝났다는 말씀이 얼마나 큰 은혜로 사로잡히게 하시는지.... 

"오늘 베드로후서는 이겁니다. 눈 뜨게 해줬으면 됐다. 딱 그거 아닙니까. 샛별 떴으면 된 거예요. 아무나 뜨게 해준 게 아니잖아요. 여기 1장에 나오잖아요. 눈 뜨게 해줬으면, 샛별 뜨게 해줬으면 그 앞에서 고생 좀 했니, 그것도 사치라." (20090609a 부산강의 : 조지래드 [신약신학]-베드로후서) 

"또 우리에게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 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1:19)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말씀은 샛별이 뜬 사람에게만 주시는 은혜요, 선물이라는 것을 감사하게 하십니다....주님께서 샛별이 떠오르게 하신 자에게 이 선물 말고 다른 선물을 주실리 만무하시지요....
 구득영 (IP:203.♡.97.234)09-06-19 23:06 
이렇게 진지하게 책을 읽어주는 분들이 있어서, 누구는 참 좋겠습니다. 요즘 저는 교회를 넘는다고 숨이 목에 차올라서 말입니다. ㅋㅋ 저에게도 그 책이 있었지 싶은데, 참 그 책 가지고 간 사람 자수하세요. 녹매교회 안에 범인이 있지 싶은데, 사람이 많다보니 누가 가지고 갔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올 여름 모두들 열공하시기 바랍니다.

 이근호 (IP:61.♡.184.176)09-06-20 18:07 
정 없어신다면 제가 어떤 경로든 전달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