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이근호목사 - 대장간)를 읽고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이 주는 느낌을 떠올려 보았다. 성경에 관한 지식을 최대한 배제 한 상태로 떠올려 보니 그리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몸에 상처가 났을 때 흐르는 피, 교통사고 등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흐르는 피, 도살장등에서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흘리는 동물들의피, 전쟁에서 군인들이나 민간인들이 흘리는 안타까운 피.... 한결 같이 섬뜩하고 징그러운 느낌을 갖게 한다.
저자의 복음에 대한 열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터 이기에 나로서는 거부감이나 자극적인 호기심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책이 어려울것 이라는 조언이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어려운 이야기도 쉬운 글 로 써야 좋은 책인데...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책 뚜껑을 여니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모든 인간이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는것이 존재 문제다. 세상의 모든 문화, 학문, 종교 등등 인간에 관한 모든 분야가 따지고 보면 존재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나’ 라는 존재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서 무관심한 반응으로 살아간다. 관심을 가진다 하더라도 과거에 존재 했던 존경할만한 인물, 더나아가 하나님 아들로서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는 먼 존재, 내지는 나와 함께 있긴 하겠지만 도무지 인식하기 어려운 존재로 여길 수 밖에 없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것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현실적 문제이다.
이 책에서는 인간에서 발상된 모든 존재에 관한 모든 가시적 사실인 눈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모든 현상이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외에는 속임수 였다는 것을 말 하고 있다. 여기에는 조금의 타협도, 빈틈도 없이 지금까지 악마로 부터 현상세계에 보여지는 것모두가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사기에 ‘속았다’는 표현으로 서술하고 있다.
'나'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기본으로 알고 살아온 인간의 당연한 본질 마저 부정하고 예수십자가의 피만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간 이성 으로는 정말 수용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하나님이 한 남자를 죽인 사건은 인간편에서 보면 지금 존재하고 있는 ‘나’라는 의지와는 무관한 사건이었다. ‘나’는 그 남자를 죽일 의사가 전혀 없었고 그 남자에 대해 관심 밖의 일이었고 도무지 미칠수 없는 세계의 사건이므로 나는 무죄하다고 여기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나’와 무관한 존재로 인식되어져 왔던 한남자의 ‘그 죽음’ 그것 만이 사실이고 모든 것이 속임수라는 이야기는 다른 말로 ‘나’ 는 허구이고 가짜이며 부정이라는 이야기 이며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착한 행동을 해도 그 한남자를 죽인 살인자가 되어있는 ‘나’ 일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 주고 있는 말이다.
더욱 황당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인간이 죄인이었음을 나타내 주는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한다. ‘나’는 한남자를 죽인 일이 분명히 없는데 하나님은 그 방식으로 인간이 무엇을 해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예수가 흘린 피가 인간이 태어남과 동시에 습득된 모든 지식, 경험, 관계, 역사, 학문, 모든 종교(기독교포함), 종교단체로서의 교회 마저,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 마저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진실된 존재인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최소한의 희망 까지도 예수님의 피 앞에서 인정 받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것이 허무와 절망을 나타내 주는 말이기에 세상으로부터 뿐아니라 예수를 믿고있는 교회조직으로 부터도 충돌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인간이 다소 이기적인 존재 이긴 하나 가치 있는 최소한의 선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요 바램이다. 아무리 인간이 타락했다 하더라도 예수믿는 ‘나’라는 존재가 행하는 종교적 선은 인정해 주어야하지 않느냐는 소망마저 꺽어버리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로 들리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깡패나, 도둑, 강도, 살인범, 창녀, 구두쇠, 욕심 많은 부자등 천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의 죄도 예수의 죽음과는 무관하게 보이며 인간자신이 타인에게 저지른 죄로 인식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그 범주를 넘어서서 선량하게 살아온 사람들 마저 몽땅 포함함은 물론 예수의 이름으로 종교적 선을 행한 모든 사람까지 예수의 피를 흘리게한 살인자로 몰아 붙이는 것은 매우 억지며 독단적 조치로 보여 지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기본양심- 성실히 가족을 돌보고, 부모를 섬기며, 사회질서에 부합하여 살고, 가난한자를 돕기도 하고, 교회에 나가서 신앙생활도 하고, 성경읽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성경과 신학공부도 하고, 교회개혁도 부르짖고, 목회도 하고 설교,찬송, 기도 선교.....세속적인 일 아닌 하나님에 대한 선한 종교적 행동 조차도 십자가의 피 앞에서 지옥갈 죄라니 이것은 도무지 수용 할수 없는 인간의 진짜 마지막 존재의 의미 마저 무너뜨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대단한 능력이라는 것은 알지만 지금 예수를 위해 행동하고 있는 ‘나’ 까지 범죄 행위로 몰아 넣는 것은 이건 매우 혼란스럽고 심하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책은 바로 그것 마저도 예수의 피를 흘리게한 살인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성화, 하나님의 예정- 기독교 진리의 핵심적 사항도 포함하여 허구로 비켜 갔음을 지적한다. 구원 얻은 백성이 남은 삶은 거룩한 삶을 만들어 감에 있다는데 누가 감히 아니오! 라고 외칠수 있는가? 구원이 창세전 하나님의 예정으로 말미암았다는데 누가 아니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책에서는 성화는 물론 하나님의 예정도 인간이 허구로 만들어 버림으로 구원받은 인간에게 행동하는 주체자로서의 선을 행할수 있는 여지를 남겨둠 으로 이미 구원 받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예수님의 피를 불필요 한 것으로 간주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말은 하나님의 예정 자체를 불인정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이 예수님께 일임되어 모든 권한이 예수십자가의 피로만이 하나님의 예정 되심의 원천이었음을 상기 시킨다. 이것은 성부하나님의 우월적 지위는 물론 성령하나님의 단독적 사역을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에 모든 권한이 집결된 하나님의 예정으로 나타내고 있는것이라고 한다.
다시말해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는 창조세계 뿐 아니라 묵시세계로 불려지는 천상의 세계에서 마저 그 중심축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주는 내용이라 할 수있다.
이것은 인간의 세계는 물론 모든 피조세계와 천상(묵시)세계인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서 세워진다는 사실만이 진리이며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제거 시키려는 모든 성화론이나 예정론이 허구임을 말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세계인 피조세계에 유일한 진실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뿌려진 사건은 온 우주적인 것이고 역사적인 것이고 천상계와 천하계의 중심이며 실체이다. 이것이 역사 속에 나타난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이다.
이 은혜아래 있는자는 악마의 속임수에 속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피의 사랑 안에서 순교자의 삶을 따라 살고, 따라 죽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의 철학적 지식을 매개로 썼기에 어려움은 느낀 부분도 있었으나 필자의 의중을 나름대로 이해 했다고는 생각 하지만 미흡하거나 오해한 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러한 점이 있다면 조언해 주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필자의 문체가 저돌적인 점이 일반 독자들로 하여금 오해나 반발이 있을수 있고 잘 팔릴 내용이 아니기도 해서 책 쓰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텐데 진리를 드러 내려는 의지에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다만 어렵겠지만 신학에 대한 우월감으로 인한 또 하나의 오류나 믿음이 약한자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