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괌에서 귀한 분이 오셨습니다. 이민가신지는 한 이십여년(?) 되셨지만 이번 한국 방문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부모님 팔순 잔치가 계기가 되어 부모님께 복음을 전하고자 오신 것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은 오직 복음을 전해드리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침례교 목사이셨고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신 분..그 환경은 그를 바리새인중에 바리새인이요 행위로는 그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자로 만들었습니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어떤 환경 속에서 성장하셨는지 그 내막은 자세히 모르나 괌으로 이민을 떠나신 후에도 그 곳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믿음의 순장이란 직책까지 받으면서 존경받는 분으로 살아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 그 분에게 어느 날 주님은 아주 낯설게 찾아 오셨습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예수님의 십자가, 십자가 했지만 정작 자신에게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가슴을 치는 허무한 물음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나에게 십자가가 뭔데???" "내가 전하는 십자가가 정말 무엇이지..."
"십자가가 무슨 나무(?)로 만들어졌는지, 십자가라는 것이 뭔지 알아 봐야 겠다"
아이러니하죠...그렇다면 말입니다.
과연 그 분이 믿었던 십자가는 무엇이었을까요?
과연 그 분이 전했던 십자가의 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 마을이 떴습니다. 그 분이 처음 접한 십자가 마을은 피 튀기는 현장이었습니다. 막말로 한창 손무성파와 이근호파가 십자가를 가지고 싸우고 있었으니까요...그 현장에서 그 분은 제대로 십자가를 만났습니다. 행위와 믿음이 치솟는 불길 속에서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발견케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라디아서2:16-21)
"지금에와서 이야기인데 그 때 십자가 마을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 누구께 감사하다니까요 하하"
아! 그 분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방네 떠들었던 사마리아 여인처럼...일 끝나고 오면 이근호 목사님 강의를 듣다가 밤을 새곤 했습니다. 낮에 힘든 일을 했지만 시간 날 때마다 듣는 복음 때문에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함께 동거동락하는 아내는 그동안 쌓아왔던 신앙의 공든 탑을 일순간에 무너뜨릴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복음에 미치면 미칠수록 아내는 더했습니다. 함께 걸어왔던 길이었습니다. 원치않았던 분리, 생각지도 못한 균열, 곧 검을 가지고 찾아오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아내에게 복음을 전하고 또 전하고 전했습니다. 그 지독한 외로움...아내가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믿었던 것들이 와르르 다 깨지는 것 같아서 남편이 신뢰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이기 싫어도 불도저처럼 싹쓸이 밀고 들어오시는 주님!!!주여 어디계십니까?"괌이라는 낯선 땅에 정착해서 가졌던 외로움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교회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위로받고 살며 좋은 것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
아!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헛수고로 돌리시고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들을 헛탕질로 순식간에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은 내가 한 수고만 진짜 수고야!!"
다 떠나갔습니다. 미쳤다고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했던 만큼 상처는 컸습니다. 주님이 갈라놓기 전까지는 함께했던 자들이 원수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내가 있는 괌에서 복음을 나눌 수 있는 한 가정만이라도 있었으면...복음을 아는 사람이 그립다"
예배 시작 전에 문자를 보았는데 의존 교회를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나요? 라는 문자였습니다. 시작하기 1-2분 전에 확인하였기에 답장 할 겨를도 없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 생각에는 분위기 살피고 또 왔다 가는 분이겠지...정처없이 떠도는, 복음을 알았다고 하면서 방황하는 그리스도인들이다....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는데 맨 끝자리에 낯선 네 분(유상준님 사모님 조카들)이 계셨습니다. 그 분들인가??
"문자 주신 분이시죠? 죄송합니다. 문자를 늦게 보고 답장을 못했습니다."
"실례지만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요?
"저 유상준입니다."
"아!!!!에!!!!"
그 순간 정말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말 만나뵙고 싶은 분이었으니까요. 말씀 중간 중간에 흐르는 외로움의 눈물과 복음에 대한 기쁨의 눈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눈에 선합니다. 괌에 보내져 피를 알게 하시고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신 주님은 준비된 자로 12년만에 잠시 귀환케 하셨습니다. 지금쯤은 괌에 도착해서 예수님의 피 때문에 당하는 외로움과 즐거움을 품은 채 지내시고 계시겠지요...서울에 있는 부모님, 친지들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뒤로한 채로 말입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
마지막으로 이 감동을 끝으로 글을 맺고자 합니다.
"제가(김명현목사)이렇게 이야기 해서 그렇습니다만, 정말 오늘 저는 성령 받은 분을 만났습니다. 십자가 마을에서 왔다갔다 하는 분들은 많이 만나 봤습니다만요....고맙습니다."
돈에 미쳐 일한다고 정신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번 유상준 성도님과 가족들과의 만남속에서 예수님의 피에 미쳐 사는 기쁨을 전해 주시므로 잠시나마 행복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피에 미친 짓을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차피 오늘 또 돈에 미쳐서 살겠지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2-3초 예수님의 피에 미친 년이 되는 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닭 울음 소리는 누구나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닭 울음 소리를 듣고 심히 통곡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26:7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