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123서

캘거리강의22강 160919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6. 10. 13. 04:29
2016-10-13 00:08:55조회 : 4         
20160919 요한1서 캐나다 캘거리강의22-이 근호 목사이름 : 이미아 (IP:122.43.165.245)

20160919 요한1서 캐나다 캘거리강의22-이 근호 목사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이 늘 말씀을 사모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말씀중심으로 다시 모이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같은 하늘에 어느 곳에 있든지 말씀으로만 일하시고말씀으로만 모든 것을 이끄시는 주님의 사랑을 이번 집회에서도 저희들이 잊지 않게 해주시옵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제가 요한일서를 시작했고지금 캘거리에서는 요한일서 3장부터 해서그리고 5장까지 하겠습니다그래서 요한일서 3장부터 하려면 1, 2장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를제가 요약할 필요가 있습니다요한일서라는 것은 사도요한을 통해서 전하신 말씀인데이 요한일서라는 편지를 왜 살기 분주한 인간들에게사도요한이 구태여 이러한 편지를 꼭 전해야 될 그 분만의 이유는 뭐냐이것부터 알아야 돼요.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사도로서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요한일서를 전하겠다는 겁니다이말은 뭐냐 하면 우리가 요청하거나 부탁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이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에요사람이라면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또는 주문할 때또는 음식을 먹을 때자기가 원하는 음식을 지목하고, “이것 먹겠어요.” 또는 이 물건 사겠습니다.” 이게 정상이에요.

 

왜냐하면 자아라 하는 것은자기결정이나 선택을 통해서 바깥으로 표현하게 되어 있습니다내가 절에 가지 않고 나는 교회 가겠다나는 불교를 믿지 않고 예수를 믿겠다그래서 나타난 결과는 뭐냐, “예수 믿는 것을 내가 결정했다는 것,그리고 그만한 결정권은 내가 원초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라는 것을 나타낸 이야기겠죠. “나는 지옥가지 않고 천국 가겠습니다.”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적어볼게요. “나는 지옥 싫어!(나는 천국 좋아!( )” 이 결정을 내가 했다는 말이죠나는 지옥가기 싫어 천국 가겠다고 했을 때에그러한 결정을 할 때에당신이 그러한 결정을 하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죽어서 좋은 데 가겠다그리고 나는 죽어서 내가 원치 않는 곳은 가지 않겠다.” 라고 이렇게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할 때, “당신은 뭘 보고 그렇게 결정을 하고 선택했습니까?” 라고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할 말이 없어요. “그냥 내가 죽어서 좋은 데 가겠다는 그 말입니다.” “당신은 왜 죽어서 좋은 데 가겠다는 그 권리를 행사합니까?” “내가 좋다는데니가 와?” 갑자기 시비가 되죠. “내가 죽어서 천국 가겠다는데 니가 뭔데 시비를 거느냐?” “내가 거기 가고 싶단 말이야!” 그런 뜻이거든요지금까지 제 말 틀린 것 있습니까없습니까제 말 틀린 것,집사님있어요없어요? “내가 천국가고 지옥가기 싫다는데 니가 왜 시비를 걸어?” 이런 뜻이거든요.

 

그럼 그걸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나는 죽어서도 천국(좋은 곳)에 가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이게 성경입니까성경 어느 대목에 나는 죽어서도 꼭 좋은 데 가겠다는 것이창세기에 나옵니까예레미야에 나옵니까?말라기에 나옵니까마태복음에 나옵니까어디에 나오죠안 나오죠성경에 안 나오게 되면 그게 진리일까요진리 아닐까요?

 

지금 어떤 마트에서 세제를 파는데 세제 하나에 2달러근데 특별세일로 2달러에 두 개 드리겠다는 광고가 붙어있습니다그게 성경일까요성경 아닐까요성경 아니죠마트에서 2달러에 한 개 살 것두 개 샀다고 해서그 사람이 죽어서 천국 갑니까아니라는 말이죠그럼 천국 갈 것 아니면그 마트 거래 끊고 가지 말까요? ‘나를 천국 못 보내는 곳이면 안 가!’ 이렇게 되는 겁니까그래도 꾸역꾸역 보다 더 새로운 세일을 찾아서 세제 사잖아요?

 

그 말은 뭐냐 하면 모든 출발을 뭐로부터 시작하느냐 하면나로부터 출발하게 되면이미 인간은 나 위주로내 좋은 쪽으로나름대로의이 나름나름대로의 자기 성경책, “나는 이거는 양보 못해죽어도 이건 양보 못해진리냐 아니냐나한테 묻지도 마나는 그러길 원했었어이건 내가 원하는 바야.” 라는 어떤 문장 같은 것이 ’ 뒤에 붙을까요안 붙을까요반드시 붙게 되어 있습니다.

 

좀 늦게 오신 분이 계셔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제가 강의 처음에 이런 질문을 했죠우리가 사도요한을 초청한 적도 없고이 캘거리에 사도요한 초청한 적 있습니까없죠초청한 적도 없는데 사도요한이 건방지게 요한일서라는 책을 우리에게 왜 줬느냐이 말이죠그 준 의도가 뭐냐? “하나님이여저는 천국가고 싶은데사도요한이 올 때 그냥 빈손으로 오지 말고 요한123서라는 그 편지를 손에 쥐어서 우리에게 보내주시옵소서.” 라고 우리가 사전에 요청한 적 있습니까?요청한 적 없죠.

 

요청한 적이 없는데 우리 앞에 나타났다면마트에서 세일 하냐안 하냐를 우리한테 물아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세일했다면그것을 믿고 안 믿고의 결정권은 누구한테 있습니까바로 나한테 있죠나한테 있다는 말은 어느 게 갑이고 어느 게 을이다성경이 을이고 내가 갑이다그걸 선택 하느냐마냐를 결정하는 내가 갑이 되죠그럼 내가 갑이 된 채계속해서 이번에는 요한일서다음에는 마태복음다음에는 말라기다음에는 창세기를 공부하겠다그가 계속 시도해서그런 식으로 죽을 때까지 시도해서 가는 나라는 무슨 나라냐무슨 나라일까요나의 나라죠나의 나라를 두 글자로 줄이면이게 바로 지옥입니다.

 

모든 인간은 교회 다니면서 지옥가고 있습니다모든 인간이교회 간 사람도 지옥가고교회 안 간 사람도 지옥가고모든 인간은 다 지옥 갑니다그 이야기를 어디서 하고 있느냐요한일서에서 하고 있는 거예요요한일서에서. “목사님요한일서를 믿고 싶습니다요한일서를 믿겠습니다.” 요한일서는 이야기합니다. “누구 선택이냐누구 결정이지?” “제가 그렇게 했습니다.” “아이고자기나라 만들 사람이 또 있구나.” 자기나라 만들 사람이 또 있어요.

 

이 나라는 것은또는 나라는 존재는이미 있습니다저는 거짓말 안 해요나라는 것이 있죠누가 있으라고 했습니까?이걸 우리가 몰라요누가 있으라고 한 것도 모르겠고어쨌든 내가 태어나서 내가 있는 거예요태어나서 교회 갔더니만,하나님이 당신을 있게 했다는 소리를 들어요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있게 했다는 말이정답일까요정답이 아닐까요?제가 물을 때 굉장히 수상하게 묻기 때문에 답변하기가 굉장히 난처하죠?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다는 것이 정답일까요정답이 아닐까요둘 중의 하나인데아무거나 한 번 찍어보세요정답 아닙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다는 결정을 누가 내렸습니까내가 내렸죠내가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기 이전에 먼저 갑질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이기 때문에요한일서는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요한일서는 나의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복음을 주니까 이게 나의 구원과 관련 있다고 일방적으로 그렇게 우기고 또 우기는 것은 뭐냐 하면타고난 나의 존재성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존재성이 담겨 있는 그 성질을 마음껏 발휘하는 겁니다. “기다렸습니다요한일서!반갑습니다사도요한나를 천당보내기 위해서 이렇게 귀한 성경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이래 나오는 거예요그렇게 되면 이 나는 무슨 나가 되게 되면 개인적인 나가 돼요.

 

성경은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했죠자꾸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복음에 대해서 필요한 나는개인적인 나가 아니고 보편적인 나에요보편적 나너라고 하는 나와나라고 하는 나와차이가 없는 나이것이 바로 복음 안에서 요청되는 나입니다복음에서 새로 규정하는 나에요근데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어떻게 하느냐 하면개인적인 나에요개인적 나.모든 것이 나로부터 스타트하는 거예요나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천국가고 지옥가고 내가 결정하기 나름이다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사도요한아무리 예수라 할지라도내가 예수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그것은 단지 하나의 예수였다그러나 내가 예수를 부를 때그것은 나에게 와서 하나의 꽃이 되었다어떤 시 패러디하는 느낌이 들죠예수라는 것이 예수 본인의 의미는 탈락해버리고이미 나한테 끌려오면서 이 예수는 나에게 구미가 맞는탈색되고 변질된 예수로 나에게 가까이 와서 나에게 이용당하는 겁니다활용당하는 거예요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괴물이 되고나는 더욱더 예수마저 알게 된하나의 굳건한강화된 존재성을 갖게 되는 겁니다.

 

이런 인간들이 교회에 모였습니다그래서 교회는 괴물단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를 건드리면 누구라도 나는 가만 못 있어.’ 그런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식으로그렇게 서로가 모여 있습니다그래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뭐냐, 1, 2장 요약한 겁니다? 1장 2장은 몰랐으니까. 3장부터 진도나간다고 했으니까. 1장은 시카고강의에서 여덟 강의, 2장은 뉴저지강의에서 다섯 강의버지니아에서 여덟 강의지금 그걸 집약적으로 요약하는 겁니다.

 

이걸 하면서 지금 어디서 틀렸느냐를 보는 겁니다방금 제가 이야기한 것을 간단한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어요.구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차이구원이란 무엇인가할 때는무엇과 관련이 있느냐 하면내 개인적인 구원욕구와 욕망과 관련되어서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거예요근데 복음이란 무엇인가성경에서는 복음이란 무엇인가라고 하지 않고성경대로 하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복음이 나타났느니라.” “복음이 나타났네.”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이런 뜻이라는 말이죠. “복음이 나타났으매.” 이런 뜻이다이 말이죠.

 

그럼 우리는 내 허락도 없이 왜 나타납니까?” 이래 되겠죠. “내 허락도 없이누구 마음대로내가 요청한 적도 없는데?” 자장면 시켰는데 짬뽕 왔다나는 자장면 먹기를 원하는데 왜 짬뽕이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구원받느냐는 그 문제인데하나님께서는 뭐냐마지막 때에 뭐가 나타났으니복음이 나타났으니그러니까 인간이 미치지 않고서는, ‘,날 구원하기 위해서 복음이 나타났구나!’ 라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접목을 시켜버려요미치지 않고서야왜냐하면 항상 나는 무슨 나냐 하면 개인적인 나거든요개인적인 나.

 

우리가 언제 봤다고 하나님하고 나하고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입니까언제 봤다고복음이 나타났으니그 복음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내 이야기 아니에요내구원이야기 아니에요누구이야기냐예수님이야기입니다예수님이야기.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야기를 받으면서 무슨 멍석을 먼저 깔았어요뭐냐 하면나는 어떻게 구원받지나는 어떻게 구원받지라는 멍석을 깔고 예수님이 오니까예수님이 본래 해야 될 일을 일방적으로 내 이익과 내 소원달성을 위해서,어서 오세요이럇샤이마세어서 오라고 반기는 거예요.

 

복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담겨있습니다예수 그리스도가 담겨있다는 말은여기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기능이 나옵니다숨겨진 기능기능이 나오는데우리는 뭐부터 출발했느냐 하면존재가 이미 닦여져 있어요그러면 복음은 창세전부터 예정된 것이고창세전부터 성부와 성자사이에서 의논된 것이고이건 상식적으로 아시죠몰라요맞아요복음은 창세전부터 예정된 것입니다창세전부터 예정 되었으니까근데 나라는 존재는 창세전을 몰라요.

 

내가 여기 있음에그리고 생로병사살기에 너무 힘들기에뭔가 인생역전인생만회를 죽고 난 뒤에 천국에서 해보겠다는 심보로써어떻게 나를 이 고통에서 해탈할 방법이 없을까이 땅에서는 고생했지만저 세상에서는 아픈 곳도 없이,눈물 닦고 그렇게 살아볼까이미 존재부터 출발하는 거예요그렇다면 기능이 우선이겠습니까존재가 우선이겠습니까기능이 우선인 겁니다그럼 어떻게 됩니까복음을 받아들이려면 존재에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복음 안에 있는 어떤 기능과 현재 나의 존재가 그 후에그 나중에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존재케 되었는가이렇게 연결시켜야 되겠죠제 이야기에 이의 있습니까없죠.

 

그럼 뭐를 잠시 유보해야 되겠습니까나의 구원을 유보를 해야 되겠죠나의 구원을만약에 내일 캘거리에 비가 온다면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사람들에게, “이보게내일 비가 온대근데 그 비가 나를 위해서 온대.” 이렇게 하면 미친 사람이에요비가 오는 것이보편적으로 비가 내리는데개인이 거기에 끼어들어요개인이 왜 끼어듭니까? ‘,비가 와내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비가 와그렇다면 내가 대처해야 되겠지.’ 비 온다는 기능이 우선이고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대처해서 그 기능에 부합되게 살아남을까그걸 생각 하잖아요.

 

그렇다면 내가 여기 있고, “복음은 이렇습니다.” 라는 것이 귀에 들리더라도우리는 순서를 바꿔야 됩니다내가 알지 못하는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나 있기 전에 프로젝트가 먼저 설정되고 확정된 사실이 나한테 밀려온다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쉽죠쉬운데지금 제가 더 어렵게 이야기해버렸죠간단한 문제를 가지고이제부터 어렵습니다그럼 그 기능 앞에서내가 말소돼야 돼요아니면 또렷이 버텨야 되는 거예요어떻습니까내가 말소돼야없어져야 되죠.

 

왜냐하면 처음으로 돌아가려면 나중에 있는 것은 주목대상이 되지 말아야 되거든요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이 어디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건방지게 복음이야기에 나를 집어넣어야 돼요말아야 돼요나를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 이 말입니다집어넣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그게 바로 요한일서에서 이야기하는 거예요요한일서에서는 뭐냐 하면존재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기능부터 먼저 이야기하는데그 기능을 요한일서 1장 3절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사귐이 나와요사귐.

 

사귐은 적어도 둘 이상입니다그럼 2내지 3이 나오겠죠사귐이 되려면 둘이 되어야 하는데우리 존재라 하는 것은 내가 여기 존재한다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이야기하겠습니다나는 고기 잡는다이게 어려운 말이 아니고 흔한 말이죠그럼 내가 고기 잡으면 영생 얻습니까저녁에 회나 쳐 먹지 영생하고 관계없죠그러나 요한일서에 보면니가 고기 잡는다는 그 기능은 너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바로 성부와 성자사이에 사귐에서 나왔다는 거예요이게 복음입니다.

 

그러니까 사도요한의 말을쉽게 말해서 나는 고기 잡는 어부죠내가 고기 잡는다는 것과 매치를 시킨다는 것은우리로서는평소에 우리 일상적인 생활습관으로써는 이게 가능합니까불가능합니까이거 불가능하죠이거 불가능하잖아요.불가능한데복음이 내용으로써는 니가 결부돼야 된다고 복음은 우기고나는 존재로 버티고 있기에 결합이 안 되고에이모르겠다요한일서 무슨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그냥 넘어가고읽는 것으로 주님께 때웠다고 하면서 넘어가는 거예요내용도 모르고.

 

모든 현실은 바로 사귐의 현실화구체화로써 이 세상에 펼쳐졌다는 겁니다창세전에 성부와 성자의 사귐으로 펼쳐졌는데그 목적은 뭐냐아버지와 나와의 사귐 속에 너희들도 같이 집어넣어서 같이 사귀자는 것이창세전에 하나님의 예정된 뜻이고목적이고프로젝트가 되는 겁니다이 요한일서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의 내용이기도 해요요한복음 17장에 보면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의 내용이 나오는데그 기도의 내용이 뭐냐 하면내가 아버지 안에아버지가 내 안에 있는 것처럼 사로 사귀기 위함이라요한복음 15장에 보면성령 안에서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너희들이 내 안에.

 

자꾸 아버지와 아들에 누굴 자꾸 끼어들게 하느냐 하면성도를 자꾸 끼어들게 해요끼어 넣으려고 하니까예수님의 기능이 결국 하나의 현실로써 작동을 하고실제적으로현실적으로 이게 작용을 하고 작동을 해야 되는 거예요그런데 나는 고기 잡는 어부다여기에서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나만 드러내는 기능일 뿐이에요아침에 일어나서 바다에 나가서 고기 잡고오늘도 내 할 일했다퇴근하자또 내일 아침에도 그렇게 하고여기 기능은 나로 회수되는나로 다시 돌아가는, ‘내가 내 할 일 다 했다역시 내 할 일은 이것뿐이야.’ 라고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의 기능이우리의 기능에 손톱만큼도 안 들어가요들어갈 자리가 없는 거예요그러면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간단하게 공식으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나는 고기 잡는 어부다나는 ~하는 ~의사다판사다하면 결국 이것은 뭐냐모든 기능은 무엇을 증명 하느냐나의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거예요이 일이라는 것은. “당신이 하는 일이 뭐요?” “판사요.” “당신은?” “몰라.” 이거 말이 안 되잖아요. “이 피고인을 위해서 내가 변호합니다.”옛날에는 외지부드라마 옥중화에 나오는데나는 변호사다그러면 변호사는 누굽니까그건 나지결국 나로 돌아가요.나라는 일은 나를 증명하고나를 확인하는 겁니다.

 

나는 예수를 믿는다.’ 결국 무엇의 증명이에요? ‘내가 믿는단 말이야.’ 이걸 증명하죠신이시여하나님이여내가 예수 믿습니다그러니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이래 나오더란 말이죠아까 이야기한 것에 의하면 그거는 주님의 나라가 아니고 자기나라자기가 중심이 되는 나라다른 말로 하면 지옥이 되죠지옥가기 위해서 열심히 예수 믿으세요성령 믿고,삼위일체 믿고 그렇게 믿으세요백날 믿어봐야, ‘나 이정도야!’ 그런 결론밖에 도달되지 않는그건 아무것도 없어요. “나 이정도 믿음이니까 건드리면 니가 이단이야.” 이런 식으로 나온단 말이죠.

 

그러면 요한일서를 왜 줬는가요한일서에서는 사귐이라고 했고우리는 사귐이 없어요결국 나한테 돌아오는 나는 독재자입니다나는 나한테 독재자에요최정점에 내가 서있습니다이 세상에 모든비가 오든눈이 오든내 예상 밖의 비가 오더라도 그것에 적응을 잘 하는 나는내가 보기에 대견스럽고 훌륭하고역시 내가 나한테 칭송하고 박수치고 싶은 겁니다아무리 어렵고 힘든 하루를 보냈어도, ‘참 오늘 아름다운 밤이야!’ 자기에게 격려하는 거예요.

 

심지어 우리가 지옥 갈 때라도지옥 가는 그 처절한 발걸음 속에서도 위로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어요. ‘힘내지옥에도 사람들 있어거기에도 너같이 똑같은 사람이 있어걱정하지 마당구장도 있고 탁구장도 있고 골프장도 있어니가 못 다한 것을 거기서 해염려하지 마주께서 니를 예정 안 해서 지옥 보내니까주님의 심술이 그렇다 치고니가 니를 기죽여야 되겠어니라도 니에게 용기를 부여해줘야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중에 있어요이걸 못 고칩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사귐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뭘 나타내느냐 하면우리의 존재를 어떻게 하느냐존재에서 존재로 나아가는 것에서의 분열해체를 시키는 작업이 바로 요한일서에 말하는 사귐의이 현실화의 작업이 바로 해체입니다해체분열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파괴나를 파괴시키는 겁니다존재를 파괴시킵니다.

 

내 존재를 파괴시키면 거기서 두 가지의 기능이 나와요하나는 뭐냐 하면, ‘누가 나를 건드렸어?’ 라고나한테 잠복되어 있는, ‘나는 오직 나만 사랑해.’ 라는자기에 대한 강력한 집착과 집념. ‘만약에 내 뜻대로 안 되면 나는 스스로 자결할거야자살할거야.’ 그 정도로 자기에게 집착된 자기 기능강력한 반발이게 나오면서또 하나는 뭐냐 하면누군가 나를 건드렸다는 사실두 가지의 상반된 기능이자아가 깨어지면서 두 개가 나오는 겁니다그 내부가 두 개의 요소로 나오는 거예요두 개의 요소로 나오면서요한일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인간의 존재를 깨는 작업은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깨었다고 하고거기에 대한 강력한 저항과 반발을 하는 것은이 세상으로부터 온 적그리스도사탄의 앞잡이또는 사탄이 하는 짓기능이다이렇게 이야기합니다그러니까 요한일서는 결국 뭐냐 하면모든 존재를 다 묵살하고기능과 색다른 기능적대적 기능두 개의 상반된 대적적인 기능가지고 현실을 전부 다 설명하겠다는 것이 요한일서의 취지입니다취지에요.

 

분열이 없고해체가 없고파괴가 없는 것은그것은 주님의 성령이 와 닿지 않아서 생긴 현상입니다왜냐하면결국은 나 좋아라고 한내 존재어릴 때부터 그렇게 귀하게 컸던 나를, 20, 30, 40... 80대가 되도록끝까지 내가 나를 포기하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여러분여러분이 위로해주는 것이 아니고 윤복희가 위로해주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결국은 내가 나에게 관심두지 않으면 누구도 나에게 관심두지 않고최종적인 관심사는누구도 나를 사랑해줄 자가 없다는강력한 나에게서 나온 이 기능나를 스스로 지키려는 이 기능이 기능에 대해서이게 바로 니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폭로시켜주는 또 다른 기능그 기능 나오면 여러분 성령 받은 겁니다성령 받은 거예요축하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해요정말 여러분들은 오늘 죽어도 오늘 밤 낙원에 갑니다낙원에 갑니다.

 

왜냐하면요한일서 1장 10절에 그게 나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다른 말로 하겠습니다하나님의 살아있음은 기능으로 작용하고그 기능이 우리 현실에 와 닿으면 우리는 무슨 존재로 발각된다죄 있는 자로 발각된다그 죄가 뭐냐하나님의 사귐에 대해서 극렬하게악랄하게 반발하기 때문에사귐은 숫자로 하면 2가 되기 때문에그러나 우리는 뭐를 고집하죠? 1을 고집하죠많은 친구를 사귀고많은 레슨을 해도결국은 누구 좋아라고나좋으라고.

 

우리가 예수를 믿고삼위일체 믿어도결국은 누구 좋아라고나좋으라고이게 강의 첫 번째에서 이야기한 거예요예수여십자가 지세요그 다음 선택은 내가 알아서 선택하겠습니다골라골라골라잡아십자가 이게 괜찮네내가 행함으로 구원 못 받는 것을대신 십자가로 죄 용서했다고이거 아이디어 괜찮네이 아이디어 내가 선택하겠습니다이 사람 지옥 갑니다왜냐하면 예수 믿는 것이 뭐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에중요한 질문입니다예수 믿는 것이 뭐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습니까이 중요한 타이밍에 답변이 안 나오면 어떻게 돼요지금까지 강의했는데?

 

예수 믿는 것이 뭐다예수 믿는 것이 뭐였다는 말입니까예수 믿는 것이이게 바로 죄였다는 겁니다예수 믿는 게누구 좋아라고나 좋아라고내가 평소에 하는 행세 그대로 예수님을 선택해서 내가 믿은 거예요저 아이디어 괜찮네!나는 행함으로 율법 못 지켰는데주께서 그 모든 죄를 대속했기 때문에나는 저걸 선택하겠어저건 내 미래를내 운명을 보장해줄 것 같은 괜찮은 보험이라고 본 거예요보험상조보험상조보험 위험해요새 다 부도나요최고의 상조보험은 바로 예수 믿는 거다나는 결심했어따땃따~따땃~따따나는 결정했어드디어 나는 얻었어!

 

이게 바로 죄라는 겁니다왜냐하면 사귐을 어디서 찾아요사귐을 찾을 데가 없네자기 결정에 자기가 스스로 위로받고자기 결정에 자기가 쾌락을 느끼고쾌감을 느끼고희열을 느끼는 존재그 존재에게 무슨 사귐이 있습니까그런 존재에 자기가 극대적인 신이 되어있는 입장에서누가 나한테 뭐라고 하면, “니는 나의 극단적인절대적인 존재로 전락한 나에 대해서니는 흠집을 내기 위해서 나한테 접근했다.” 라고 하면서 그렇게 우리를 수상히 여기고관찰하고그리고 경계하기 마련이죠경계거리를 두고 보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뭐가 되는가나는 주체가 되고 상대방은 뭐가 되느냐객체가 되죠그럼 그 객체의 결정은저게 누구다?저게 뭡니까독수리입니까저 독수리를 판단하는 기능은 어디서 나왔어요나에게서 나왔잖아요예수님은 나의 죄를 속했다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그 결정은 어디서 나왔죠나에게서 나왔어요그러니까 이거는 가짜에요성령이 한 것이 아니고바로 인간의 육신에서마귀의 앞잡이로서 예수를 믿은 거예요.

 

그 예수가 진짜 예수일 리가 있겠습니까없겠습니까없어요진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와 사귀는 것같이하나님과 사귀는 그런 존재가 나올 때그게 바로 예수님의성령의 결과물이지결국 나 구원받았다고나 좋아라고 믿는 예수는,그건 예수가 아니죠그건 우상이 되는 겁니다일방적으로 나 좋아라고 믿는 예수기 때문에이거는 개인적인 예수에요.

 

개인적인 예수다보니까교회에 두 사람만 모여도두 사람이 믿는 예수 이미지가 다 달라요교회 교인이 백 명 같으면,몇 가지의 예수가 나옵니까백가지 나와요백가지가족이 다섯 식구라면그 가족이 다 예수 믿는다면몇 가지의 예수가 나옵니까다섯 가지의 예수가 나오니까이건 예수님인지 귀신인지 분간이 안 돼요주님께서는 존재를 이야기할 때,니 존재에다 내 존재를 협상하자타협하자가 아닙니다내가 너한테 제안을 할 테니까 선택하라그게 아니고너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이유가 개인적인 자아로 존재하기 때문에그걸 뭐로 바꾸느냐 하면 보편적 자아로 바꾸는 거예요보편적 자아.

 

보편적 자아의 특징이 뭐냐 하면열 명이 모여도 동일한 예수님이 나올 때그게 보편적이라는 용어가 합당한 거예요.보편적인 용어가 합당한 거예요개인적인 자아에서 보편적인 자아로 바꾸어줘야그 보편적 자아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의 결과물이 아닙니다보편적 자아는 어디에 있느냐어디서 생기느냐아버지와 아들이 사귐에서그것이 잠재되어 있다가성령을 통해서 구체화되면모든 하나님의 택한 성도는 개인적 자아에서 뭐로 바뀌느냐 하면보편적 자아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요한일서 2장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소속.’ 성경의 단어로 이야기하면, ‘거하심.’ 사도바울의 편지에 의하면 ‘~.’ 예수 안성령 안십자가 안. ~할 때, in 그리스도어디 안에 있다안에 있다를 한 번 그림으로 그려볼까요그림으로 그리면 여러분들이 다 알 텐데⃝ 안에 있다안에 있으니까 여러분이 보기에는 갇혀있죠그러면 갇혀있는 힘이 세요갇혀있는 내가 힘이 셉니까갇힌 힘이 더 세죠그럼 여기 있는 것은 뭐냐 하면결과물이에요그런데 내 곁에 어떤 사람이 있어요이 사람도 갇히게 한 결과물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귐의 결과물에 있다 보니까⃝ 안에 갇힌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의 예수님이 같을까요다를까요?같습니다같죠그 같다는 용어를 요한일서에서는 뭐냐 하면우리는 어떤 존재라도 뭐가 있다죄 있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어디 안에서 십자가 안에서십자가 앞에서화목제물 앞에서하나님의 기능 앞에서예수님의 기능 앞에서 우리는예수님의 기능을 기능답게 하기 위해서우리는 뭐로 드러나야 한다어떤 기능도 죄가 되어야 하고그 죄가 되는 근거는 뭐냐나는 전에는 개인적절대적특수적절대적인 자아로부터 나의 인식이 나를 존재하게 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생각되는 겁니다.

 

나는 주님의 성령이 올 때에비로소 나는 알았다뭐냐내가 개인적절대적 존재로 오늘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을 폭로당하는 이 기쁨과 즐거움이 성령의 기쁨이고 주님의 사랑의 기쁨입니다내가 하는 예수 믿는 것내가 하는 헌금,전도봉사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는 죄로 드러내기 위해서 한 기능인데전에는 내가 헌금했다가 아니라주께서 나로 하여금 헌금케 한 거예요나로 하여금 헌금하는 죄를 짓게 하기 위해서.

 

전에 아프리카파키스탄에 선교사로 갔다. “주여은혜 받은 티를 냈습니다은혜를 공짜로 받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가지고제 한 목숨 바쳤습니다.” 라고 해서 자기 개인적 기능으로 봤는데나중에 알고 보니까 개인적 기능이 아니고선교사로 왜 가냐고내가 선교사로 가는 것을 비난했던고국에 있던 어떤 권사님의 그 존재와 내 존재와 둘 다 죄인으로 드러나게 하는 하나님의 사귐의 기능이라는 것을 밝히시는 겁니다이번에 문장이 너무 길었죠설명이 필요합니다.

 

선교사로 가지 마!” 라고 했던 권사님의 권면도 뭐가 된다죄가 되고. “아닙니다나는 성령에 이끌려서성령에 응답받아서 파키스탄에 갑니다.” 라고 우겼던 나도 죄가 되고그리고 둘 다 그 사실을 안다면둘 다 그 사실을 인식한다면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입니다따라서 형제는 어떻게 된다싸우는 것이 사랑이에요그래서 서로 싸우세요그게 서로 사랑입니다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사람들이 못 알아듣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고이상한 소리한다고 하는데,서로 싸우는 것이 서로 사랑하는 거예요서로 싸우는 것이지 성질개인적으로 살아가는 지 성질을 유감없이 터트리는 그것이결국 주님 주신 사귐에서 나온 사랑으로 실현되기 위한하나의 전부 다 주님의 전략이고하나의 주님의 활발한 실제적 활동입니다.

 

아까 캘거리에 일부 모인다고 했죠그 모임을 파괴시켜야 해요그거 파괴시켜야 합니다. “우리 모임에 참석하세요.” 라는 것도 죄고요. “참석하겠습니다.” 라는 것도 죄에요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모일 때는 각각 지 팔 흔들어야 돼요그게 우리의 성깔에 가장 부합되는 겁니다. ‘아이고가기 싫은데 참고 가야지.’ 이거는 자기 성격과 전혀 상반되는지금 연출을 하고 있는 거예요제발 고집을 부리세요. “니가 뭔데 오라마라 하느냐니가 뭔데니가 교주야아이고까딱했으면 새로운 조직 만들겠네이게뭐 조직 만들어서 교회하고니가 좀 희생 좀 했다고희생하면 지도자야그래 희생 많이 해희생한 그것을 우리는 이용할 거야.”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그러니까 지 팔 지가 흔드는 식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가더라도 제발 부탁합니다.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요한일서 2장 27절에 나옵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지금 아직 설명 시작도 안 했어요이 거하심에 대해서이 거하심에이 거하심을 설명하는 거예요뭐 안에기름부음 안에.성령 안에 거하심입니다따라서 성령 안에 거하심은 어떻게 한다고요아무도아무도에브리바디everybody. 내가 아는 단어 몇 개 안 돼요지금 몇 개 안 되는데아무도그 다음에 뭡니까?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가르칠 필요가 없고그 다음에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뭐라고? “니는 죄인이야죄인으로 니를 반드시 증명하고 확인하고 말거야.”

 

그렇게 가르친 결과가 뭡니까주님의 기능이 나의 기능보다 우세하구나나보다 누가 강하다주님이 강하고나는 주님보다 적구나주님의 강함에 밀렸다는 그 결과물이 뭐냐주님을 알게 되었다주님이 나보다 세다는 것을 알게 될 때그 사람이 오늘 밤에 가는 나라가 어디입니까나의 나라가 아니고 누구 나라입니까구원받은 주님의 나라하늘나라그게 성령 안이고그게 바로 천국이잖아요오늘 밤에 죽어도 천국이잖아요나는 죄인 되고천국 가니까 어린양의 보좌 있고.

 

죄인아소꿉놀이 많이 했지니 죄인 된 거 니 뜻 아니었어사탄의 뜻이라고그 사탄 누가 불렀는지 알아내가 너한테 사탄 보내가지고 마음대로 농락당하도록 했어실은 사탄 배후에 내가 있었어너로 하여금 요한일서 이 계시대로죄 있는 자 만들어서 화목제물의 의미와 가치와 효과를 통해서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사라지고뭐다복음이 이것이다.나는 어떻게 구원받습니까가 아니라 복음이 무엇입니까이게 바로 복음이군요복음을 위해서 나는 죄인 되어야만 하는군요.

 

자기 존재를 결과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이것을 가지고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새로운 피조물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고저 결정은 따로 있고그 결정은 나와 주님 사이에 요한일서가 깔려있으며그 요한일서의 내용대로 나한테 주어지게 되면나는 더 이상 나의 어떤 행위를 보는 것이 아니고주님과 나 사이는 요한일서에서 무슨 글이 적혀있고,무슨 내용이 적혀있고그 의미가 적혀있고그 의미가 적혀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그게 리얼리티reality, 현실로 덮쳤던 사실을왜 나는 뒤늦게 이걸 알게 되었는고기름부음성령이 있을 때는 뒤늦게 알게 되는 겁니다.

 

목사님이 가르쳤구나이목사님이 먼데서 와서 가르쳤구나.’ 아닙니다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제 고백일 뿐이고어떤 의미에서 개인적 자아개인적인 나에게서의 고백이고그냥 참고사항저는 이렇게 이해했다고 제시 할 뿐이고여러분의 판단은 여러분도 아니고여러분 속에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판단하실 겁니다그래서 사도바울은 단 한명도 남에게 전도한 적이 없습니다다 주님께서 전도했죠사도바울은 그냥 다루어지는 도구에 불과합니다심는 자도 아무것도 아니요,물주는 자도 아무것도 아니요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진도 좀 나가겠습니다여러분지금까지는 믿든안 믿든 이해는 한다고 하고요그건 제 소관이 아니고요이해는 한다 치고그러면 그 다음에 나오는 문제가 뭐냐 하면창세전에 아버지와 아들의 사귐을이것을 뭐라고 하느냐이것을 두 글자로 이렇게 합니다언약이라고 하고그 언약의 완성태를 요한일서에서는 네 글자로 표현합니다. ‘화목제물이라고 이야기하고이것을 요한일서는 스스로 이렇게 해석합니다두 글자로 사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위하여선지자를 통해서 뭘 줬느냐 하면 율법을 줬거든요율법율법을 줬는데율법을 줬다는 것은마치 사람에게 지키라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율법을 지키는 그 지킴이 결국 어디로 돌아가느냐 하면화목제물의 완성으로 돌아오는 거예요그러니까 법을 준 것은 우리보고 지키라고 한 것 같지만중간에 인터셉트intercept, 가로채기 한 분이 있습니다율법을 줌으로써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유발시키기 위해서 율법을 줬고율법을 줬는데 죄가 나왔다는 말은어디에 문제가 생겼느냐 하면율법을 주신 분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율법은 선하기 때문에로마서 7장에그럼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율법대로 못하는 것은 인간에게 문제가 있죠그럼 인간에게 문제가 있다는 그 사실은율법을 조금씩조금씩 줘버리면, “이것은 못 지켰지만 이거는 지키지요이거는 나중에 지킬게요.” 자꾸 미루는 식입니다. “내가 바쁘다 보니까 교회 못 나왔습니다.” 이렇게 자꾸 핑계대면서 점점 자기를 지연시켜요.

 

근데 율법이 완성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율법의 완성이 화목제물이 된다면어떤 누구도 이미 율법을 완성되게 지킨 분이있어요없어요완성되게한두 개 지킨 것 말고모든 주어진 율법을몽땅 다 일관되게 지킨 분은인간에게 있다없다없으면 결국 인간들은 뭡니까인간들은 못 지키기 때문에어떻게 돼요죄인이 되고그 다음에 죄의 값은 뭐다그냥 목숨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목숨 끊어지는 것이 벌이라면 자살하겠다율법이 심판이 되니까 이게 저주가 돼요저주가 주어지는 겁니다저주가.

 

율법 주어서 화목제물로 완성한다는 말은사랑이 나온다는 말은뭐냐 하면 인간은 어디에 속하느냐 하면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게 한율법을 완성하게 한 경로로써 주어지는 거예요경로로써필수절차로 들어가야 된다는 거죠그러면 이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위에서 반드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뭐가 성립돼요저주가 현실화 될 때만저주 안에서만 주님의 완성이 꽃처럼 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저주가 있을 때만 피어나는 거예요.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이여저 저주받아도 마땅합니다.” 라는 그 자체가 이미 그 속에서 어떤 기능이 작용한다하나님의 사랑의 기능이 작용하는 거예요따라서 마귀가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 “어이열심히 성경보고 기도해야지?” “아니야나 저주받을 거야.” 이러면 마귀가 주는 그 협박과 공갈이 통하겠어요통하지 않겠어요본인이 저주받겠다는데.예를 들어서 어떤 마귀가 저한테 찾아와가지고 뭘 주느냐 하면곱창주고개고기 내놓고그 다음에 순대 내놓고그 다음에 오리고기 내놓고 하면서맛있게 먹으면 하나님의 복을 주실 겁니다이렇게 할 때 먹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그러면 어떻게 됩니까입 맛 없어서 가죠입맛이 없어서. ‘뭐 이런 게 다 있냐?’ 하면서.

 

그러니까 사랑 안에는 뭐가 없다고 했어요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죠그 말은 본인이 화목제물 십자가 앞에서 무슨 자다저주받도록 하나님께서 이 캘거리에 살게 했다는 거예요내가 저주받아 마땅한 것을우리가 인식하도록캘거리면 캘거리한국이면 한국대구면 대구살게 하신 거예요목사 되게 하신 것은, “저주받는 것을 니가 모르지?” 이제부터 니가 저주받아 합당한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목사 되게 하고장로 되게 하고집사 되게 하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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