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123서

버지니아21강 160914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6. 10. 13. 04:25
2016-10-05 23:03:47조회 : 58         
20160914 요한1서 버지니아강의21-이 근호 목사이름 : 이미아 (IP:122.43.165.245)

20160914 요한1서 버지니아강의21-이 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요한일서 3장에서 본격적으로 사랑이 뭐냐 할 때, “목사님사랑이 뭡니까?” 라고 한다면예수님께 무슨 일이 있어났는가그게 모아지면 그게 사랑입니다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할 때 너무나 모호하잖아요추상적이잖아요.하나님께서 사랑이라고 하면서 나타난 것이 바로 예수님의 구체적인 활동을 가지고 사랑이라고 합니다예수님께서 흔적을 잡고 지나가게 되면 그동안 우리 눈에 몰랐던 것이 거기에 나타나요마귀의 일이 나타나는 겁니다마귀의 일.

 

그럼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는사랑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사랑이 차단된 세계에서 살아왔던 겁니다.그렇게 하나님의 차단된 사랑에서 주님이 오셨는데 그렇다고 사랑 안 하느냐아니죠사랑이 예수님께만 집중해서 조명하게 됩니다예수님께서 하신 행위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되고예수님에 대해서 이해 못하는 모든 영역은그거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이 아닌 정도가 아니고미움이 되죠.

 

하나님께 미움이 되면서미움 받는 원인은 바로 악마요한일서 3장 8절에서는 마귀라고 하는데마귀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마귀가 하나님의 사랑을 차단시키는 방향으로 그동안 세상의 권세를 쥐고 왔던 거죠권세를 부려왔던 겁니다.그럼 여기서 이게 현실이라면말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실제라면우리 주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라는 생각을 우리가 할 수 있어요.

 

성경자체가 옛날 문화 배경이고오늘날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기 때문에이 말씀이 21세기에 적용될 때주의 사랑이 적용될 때우리는 어떤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느냐그런 질문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거기에 대한 답변을 이것으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욥기욥기에 나타났던 현상은 평온했던 거예요전에도 이야기했지만질서 잡혀있고 균형 잡혀있습니다욥은 선한 사람이며부자며자식들이 아름다우며 훌륭했습니다개인적으로 선하고그 다음에 부자고그 다음에 자식들이 잘 되고또 하나 더한다면 본인의 몸이 건강했어요건강했고의롭고부자고자식이 많았고,이 네 가지의 4중 축복을 다 갖고 있던 거예요욥이.

 

이야기가이것이 끝부분의 이야기가 아니고 욥의 시작이 이렇게 되는 겁니다그럴 때바로 여기에 대해서 주위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욥의 세 친구들이 등장합니다등장하면서 욥이 이렇게 된 것은 욥이 의롭고의롭기 때문에 부자 되고 건강하고 자식이 많게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그 당시에 거의 확정된 사상체계였죠확정된 겁니다하나님이 어떤 분이다선한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런 복을 주지 않고 가난하게 만든다그런 내용이 욥기에서 내내 주고받고주고받고 흘러나옵니다.

 

아무 문제없어요아무 문제없는데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원칙이냐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원칙이냐아니다 이 말이죠여기서 뭔가 뒤집어져야 돼요뒤집어지는데여기에 동원된 존재가 있었으니바로 사탄입니다.하나님께서 사탄과 내기하기를 욥은 당대의 의인이고 욥같이 믿음이 좋은 사람을 못 봤다지금 말로 하면 하나님의 자녀다하나님은 욥을 내세웁니다그것은 욥이 훌륭해서가 아니라욥의 자리가 하나님이 마련한 서랍장이기 때문에욥 가지고 뭔가 보여주시려고 하는 거예요.

 

이게 구약에 있다는 말은 장차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동일한 내용이 미리 거기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목사님그럼 사탄이야기 하다가 왜 욥 이야기 합니까?” 사탄의 뜻은 욥의 친구들이 보여줍니다욥의 친구들이 뭐냐 하면 사람은 착한일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짓 하면 벌 받는다이게 바로 사탄의 생각이에요악마의 생각이에요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본성의 생각인데이게 사탄의 생각입니다그럼 어째서 그렇게 되느냐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욥의 친구들이 아니고 욥이에요.

 

욥의 친구들이 정말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면 욥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욥의 친구들이 동의를 해줘야 해요. “욥아!니가 참 의롭지만 참아니가 아무리 자식 열명이 하루아침에 다 죽고 재산 날아가고 니 건강을 잃었다고 할지라도 나는 믿는다니가 의인인 것을.” 이렇게 되면 욥이나 욥의 친구들이나 별 차이가 없는데욥이 이렇게 힘들게 되니까 욥의 친구들이 등 돌려버렸죠등 돌린 이유는 딱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우리가 현재 통용되고 있는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그 원칙에 대해서 니가 낯설다는 거예요낯설다.

 

하나님의 사랑은 낯설어요흔히 통용되는 사랑과는 대조되는 사랑으로 오는 겁니다사랑 같지도 않아요꼭 미움을 닮았어요사랑이란 게우리가 사랑이라는 것은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걸 누가 거부해요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게 잘못되어 있다는 것은 뻔히 아시죠당신이라는 말은 애초부터 없는 말이에요주님은 사랑이시지날 위해서 사랑을 준비한 것이 아니에요.

 

사랑이라는 것은 그렇게 나쁜 의미가 아닌데욥기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은 굉장히 낯섭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결국은 욥이 누굴 위해서 기도하느냐 하면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죠그러면 욥이 받은 사랑이 저쪽에 흘러들어가지 아니하면욥의 친구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똑같은 방법이 독생자 예수님에게 주어집니다아버지는 나를 사랑한다따라서 너희들은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데그 이유는 아버지의 사랑이 너희에게는 있지 아니해서 그렇다.

 

그럼 아버지의 사랑이 있지 아니한다는 것은 누구한테 지배를 받고 있어요사탄한테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이런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면그럼 우리는 어떻게 삽니까낯선 것을 한번 찾아보세요우리의 상식과 안 맞는 것을 살아가면서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분명히 착하면 복을 받고 나쁜 짓을 해서 벌을 받는데착한일 했는데 복이 안 오는 것도 신기하지만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나쁜 짓을 내가 봐도 너무 많이 했어그러면 다리몽둥이가 부러져야 하는데 더 잘살아.

 

뭔가 나쁜 일 한 내가 더 행복하고십일조도 한두 번 안 낼 때는 움찔거리지자주 안내면 복 받아요십일조 하면 갈수록 꼴아 박고십일조 안 하면 더 복을 받게 되어 있다니까요주일성수 처음에 빠질 때는 온 몸이 소름끼칠 정도로 벌벌 떨지만 서너 번 빠져버리면하늘은 쨍쨍 날씨도 좋구나애들아선생님 손잡고 소풍가서 점심도 먹고..그런 유치원 노래가 있어요하늘도 쨍쨍~유치원에서 소풍가는 그런 노래가 있거든요그 가사를 보면 너무 아름다워요하늘은 쨍쨍날씨도 좋고엄마가 김밥 싸들고 가는 그 모습을 볼 때얼마나 행복합니까물론 그 유치원 애가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알리는 없을 거고.

 

사랑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독점했어요. “사랑이 보고 싶어내 가는 길을 봐이게 사랑이다.” 뭔가 가위로 찢어버리는 것세상을 두 토막 내는 그런 양상입니다그래서 사탄과 예수님의 관계이런 것이 요한3서에 쭉 나와 있는데요하면 후딱 지나가는데지나가면 우리가 그만큼 진리를 놓치기 싫기 때문에우선 아브라함을 예로 들겠습니다.

 

여러분 이건 다 알기 때문에 주고받고 하는 식으로 해봅시다아브라함의 인생이 평탄한 인생이었어요아니면 찬란했습니까어떻습니까이름부터가 벌써 두 개죠뭔가 인생이아브라함 인생이 특징이 뭐냐 하면 갈 바를 알지 못했어요갈 바를 알지 못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갈피를 못 잡는 거죠갈피를가라하는데 갈 곳을 잃어버렸어요최백호 같아어디로 갈지를 몰라요물론 하나님의 지시가 떨어져서 움직였는데만약에 지시가 안 오면 어떻게 할까요안 오면? 10년이고, 100년이고 안 오면 어떻게 될까요오도 가도 못하죠감감하죠.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난해한 것은아브라함 존재만 생각하는데아브라함 때문에 사건들이 움직입니다주위 환경들이 움직입니다심지어 애굽에 흉년까지 발생되니까모세 때도 모세 때문에 주변의 배치조직들이 다 달라져요질서가 잡혀가고 하는 그런 현상이 있습니다그러면 아브라함의 이것이 신약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면 모든 다른 것은 사랑과 아닌 것을 위하여 배치가 달라져요.

 

그런 영화가 있었죠자동차인데갑자기 기계소리내면서 갑자기 로봇이 되는 그런 영화트랜스포머죠트랜스포머 같아요모세나 사도바울이나 아브라함과 이사야 이 모든 것이특히 엘리야 엘리사처럼여호수아 같은 경우는 하늘의 태양도 져야 하는데 눌러도 안 져요누르고 싶어요빨리 태양이 지라고 해도 지지도 않아이상하게 돼요(10:12). 그게 뭐냐 하면뭔가 트랜스포머를 그때그때마다 조종하면서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불법과 의를 구분하는 기준점으로 아브라함을 제시하는 겁니다그렇다면 오늘날 아브라함 인생을 통해서그때그때마다 아브라함이 새롭게 불법과 의를 생산한다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이걸 오늘날 적용시키면 성도 한 사람이 여기 버지니아에 살면이 버지니아는 무엇이 불법이고무엇이 의고무엇이 복음이고무엇이 복음이 아닌 것을 증거 하는 기준점을 벌써 하나에 포함시키고 있는 셈이 되죠그 기준점을또 나가서 예수영어로 지저스Jesus외치라고 하는 뜻이 아니고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요있기만 하면.

 

우리가 설치지 않더라도그 성도 중심으로그 사람중심으로예수 안에 있는 사람중심으로 주변배치도가 이게 달라진다 이 말이죠그럼 어떻게 압니까찾아보세요찾아보면 그런 것들이 하루에도 수 번 내지수십 번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그런 것들을제 말에 동의를 안 하시는데세상의 진위를 안다는 말이 아니고 불법과 의의 기준점이 새롭게 보인다 이 말입니다세상이 지금 지진 나고 홍해 갈라진다는 말이 아니고성도가 보기에전에는 저 사람이 좋았던 사람인데아닌 것 같아요. ‘나는 저 사람이 천당 간다면 나는 내가 알아서 지옥 갈 거야.’ 하는데저 사람이 이상하게 천국 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그러니까 이거는 사전에 미리 협상을 보던지뭘 해야 돼요.

 

바로 이 말은 뭐냐 하면 나를 위해서구원하기 위해서 사랑을 준 게 아니고사랑이 트랜스포머를 위해서 우리를 하나의 기계처럼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지금 요한일서 3장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그렇게 보시면 그 다음부터 훅 지나가요. “니가 바로 계명이다사랑이라는 계명을 품고 살아가는하나의 기계처럼 내가 다룰 거야.”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한데왜 중요한가 하면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 짓지 아니하나니” 3장 9절에 나오죠.

 

이걸 바로 구원파들은 본인이 죄 짓지 아니한다는 거고진짜 성경이야기는 죄 안 짓는 방향으로너를 기준으로 해서 모든 것을 재편성해줄게전에 죄였던 것도 니가 쑥 들어가면 죄 아닌 것이 되고전에 죄 아니었던 것이 너로 인하여 죄가 되는 이유는너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나님의 자녀기 때문에하나님의 자녀는 절대로 죄 짓지 않는 자녀로 부각시키기 위해서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고 주변을 바꾸어서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새롭게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활동하고 이렇게 움직인다는 겁니다그 신기함을 찾아보라는 이야기에요.

 

근데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저 사람을 맞춰줘야지.’ 맞춰줄 필요 없어요맞춰주면 누가 변하느냐 하면 우리가 자꾸 달라져요달라지게 되면 3장 9절은 성립이 안 됩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확정적이에요이걸 다른 말로 완전체완전한 존재라고 이야기해요완전한 존재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존재하나님입장에서 모르고 그런 소리하지만저 성질 나빠요성질 나쁜 것은 아는데이게 예수님 옷을 입었다니까요어디너 보고 이야기하나우리 속에 성질 더러운 것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전에는 어떤 교인 보면, ‘정말 성질 더럽다저러다 지옥 가겠다.’ 했는데복음 듣는 태도 보니까 성질 더러워도 저 사람 천국 가겠네.’ 라는 생각이 들면이것은 뭐냐 하면기준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기준은 이게 완전체라는 것내가 새롭게 알던 모르던 간에 처음부터 완전체로 왔는데 내가 오해한 거죠사실은 내가 나에 대해서 오해한 거예요내가 착하게 살아서 영광 돌린다는 자체가 오해입니다주님께서는 이미 자녀이기 때문에완전체에 인식론적으로 결합시키려고 한 거예요.

 

갑자기 제가 어려운 말해서 죄송한데인식론 나왔어요인식론교양에 속한 것이니까여러분알아두시기 바랍니다인식론이라고 하는 것은 칸트철학에 나오는 건데존재론하고 인식론을 구분하면 쉽습니다존재론이라고 하는 것은내가 여기 있다어떻게 있는가무슨 목적으로 있는가존재론입니다인식이라고 하는 것은이렇게 하는 존재를 내가 어떻게 알아채느냐하는 문제에요여기서 칸트는 말합니다이성의 비판또는 이성의 한계를 통해서 인식한다는 겁니다.

 

어떻게인간의 도덕이라는 것은이건 손댈 수 없어무조건 이웃을 사랑해야 돼살인하지 마라는 것으로 움직이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우리의 존재다그 인식에 못 미치는 사람이 있고이미 아는 사람이 있는데어쨌든 인식론은 이성을 분석하고 판단하면 할수록저 진리에 접근하는 인식을 얻기 때문에공부 좀 하라는 그런 이야기를 칸트가 하는 거예요인생 제대로 좀 생각하고 살아라!

 

그러면 너가처음에 무식할 때 생각하는 너와생각하고 공부하고 보는 너가 아마 다르게 보일 걸다르게 보인다는 말과 다른 존재라는 말은 아닙니다이걸 성경에 그대로 적용시키면 딱 맞아요내가 예수 사랑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압니까치매 걸리면 어떻게 압니까존재에서이미 하나님의 자녀에서 인식이 나오는 거예요근데 칸트의 잘못은 뭐냐 하면 내가 너를 분석하기 때문에그 존재나그 인식이나그 주인공은 내가 어떻게 해봐야 하는데하나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예수 안에서 이미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니가 점점 더 인식해야 될 거야어떤 인식으로? ‘죄 못 짓는구나죄를 짓고 싶어도 못 짓는구나.’로 달라진다는 겁니다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여러분이 이해된다는 것은 아예 기대한 적 없고요이 자체가 구체적인 인물이 딱 한 사람이 있어요누구냐 하면 다윗입니다다윗은 자기가 이스라엘 왕이에요.

 

왕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이스라엘 중에서도 최고의 자리기 때문에제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리라고 생각해서그 자리에 올랐다고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사실 그만한 근거가 있었어요골리앗을 누가 죽였어요그것도 어른 다윗이 아니고 소년 다윗이에요소년 다윗은 그 당시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 어린아이 내세운 것과 똑같은 겁니다애들도 이기는 것을꼬라지 좋다어른 주제에어른 되면 믿음이 더 좋다고요애들 믿음보다 못하잖아?이걸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시편 8편에 나오죠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죠어른들은 칼 들고 말 타고 무슨 짓이고하나님의 전쟁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얼마나 전쟁이 미리 확정되었으면나중에 끝나서 진작 이겼다고 이야기해주지?” 이렇게 나왔다고요찬송 부른다는 것이 이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요저쪽은 활과 칼과 병거로 나오지만여기서는 횃불 들고뭐 정월대보름입니까왜 항아리 들고 횃불 들고 나팔 들고 왜 갑니까? (7). 칼이 어디에 있어요칼이 없어요칼이 없는데터지고 난 뒤에는 여호와의 칼이요기드온의 칼이요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무기는 이미 승리한 것에 대한 무기입니다내일 할 것을 미리 다 하는데여리고성은 이미 무너지게 돼있어요(6). 그것을 미리 안다고 나팔 부는 겁니다나팔 부는 것은 뭐냐 하면 승리하고 난 뒤에 부는 축하의 나팔을 이스라엘 백성은 미리 부는 거예요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미리 부른 겁니다모든 것이 미리 앞서서 뒤돌아보는 식으로 평가하는 거예요우리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이미 하늘에 앉히시고 뒤돌아보는 식으로 이런 육신을이런 메커니즘을 통해서,과정을 통해서 우릴 구원했다는 겁니다.

 

그럼 그 구원을 하는데 뭐가 개입되는가바로 계명이 주어지죠계명은 뭐다바로 사랑이고사랑은 예수님의 독생자 일대기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이 여기 있으니 바로 예수님이다그럼 예수님하게 되면 안 나타난 듯이 나타나죠실제로 예수님이 가게 되면 누가 나타납니까귀신들이 소리 지르면서 하는 말이 뭡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죠우리를 멸망케 하러 오셨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조용히 해조용히!” 그리고 병이 낫게 되면, “이 병 낫게 된 것을 남한테 알리지 마라!” 메시아는 비밀이에요알리지 마라왜냐하면 사람들은 병 나은 것만 보기 때문에.

 

너희들이 모르는 귀신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모르고다만 몸이 아픈데 보기 때문에주님을 찾아올 때또 소문 듣고 병 나으려고 오는 거예요마태복음 9장에서 병 나으려고 왔다가 죄 씻음 받은 사람이 등장합니다기분 좋았겠어요기분 나빴겠어요안 좋았습니다왜 안 좋았느냐 하면병을 고치는 것은 그 시대가 용납하지만죄를 사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불경스런 일이기 때문에 죽여 버립니다어디서어디 이단에 빠져서하고 죽여 버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중풍병자에게중풍 병 나으려고 왔는데중풍 병이 아니고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이렇게 되니까그 다음에 그 사람이 중풍 병 걸려도 상관없어요어차피 사람은 죽을 때는 병들어 죽잖아요그러나 중풍 병 걸리든감기 걸리든 이 사람은 죄 사함 받은 상태에서 감기 걸리고죄 사함 받은 상태에서 중풍 병 걸리고죄 사함 받은 상태에서 치매 걸리는 거예요.

 

그것을 바로 사랑이성령이 오면 인식하는 거예요내가 완전한자구나죄를 짓고 싶어도 죄 못 짓는구나그러면 니가 나쁜 짓 하면 죄 짓고착한 일 하면 죄 안 짓고 하는 것은 누구의 일이냐 하면여기 요한일서 3장 8절에 보면 그게 마귀에게 속한 마귀의 일이에요그러니 요한일서가 얼마나 엄청난 이야기를 합니까?

 

과연 이 말을 제가 하면서도 이걸 믿어야할지 말아야 할지이거는 너무 충격적인 발언을 지금 쏟아놓고 있습니다. 36절에 보세요.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지금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 하면니가 있는 소속의 능력과 권세는 너로 하여금 완전자로 만들어내는데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니가 그런 소속을 보지 않고 개인구원으로 봐버리면 우리는 이걸 지키려고 할 거예요자기가 죄 짓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꾸 착한 일만 할 거예요그런데 그게 뭐냐 바로 예수 안이 아니고 예수 밖에 있다는 티를 내고 있는 겁니다사랑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 없다는 뜻이에요사랑을 받으려고 한다면제가 설교 시간에 사랑에 대해 그런 예를 하거든요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상대를 접촉해버리면이거는 성경적으로 맞는 이야기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손으로 만져 버리면이 더러운 때가 사랑하는 대상을 만져버리면 사랑에 흠집이 생겨버립니다.너무 사랑하기에 사랑고백을 못하는 거예요너무 사랑하면다들 그런 경험이 있지요남편 된 사람이 너무 나를 사랑하기에 차마 말을 못하고 부들부들 떠는 거예요그 다이아반지를 그냥 드리지 못하고 케이크 속에 집어넣고돈 없으면 붕어빵 속에 집어넣고돈 있으면 케이크 속에 집어넣고 벌벌 떠는 겁니다먹었는데, ‘아야뭐가 끼이네?’ 보니까 돌이 나오면 깨지는 거고다이아 나오면 성사되는 거고.

 

사랑한다는 것은연애할 때 사랑한다는 것은 뭐냐 하면셋방살이를 하느냐월세가 문제가 아니고그냥 그대 있음에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겁니다언제 적 이야기를제가 옛날이야기를 간만에 하고 있는 겁니다옛날 한 번씩은 다 들어봤죠? “그대 있음에그대가 나에게 어떤 짓을 저지른다 해도군화발로 짓밟는다고 해도 그것을 나는 나의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이 정도로내가 지금 너무 오버하고 있네진정해야 돼!

 

예수님은 아버지를 사랑해요왜냐하면 사랑이라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 관계입니다아버지가 자기를 버려도 아낌없이 수용하겠다는 겁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이니까이게 하나님의 자녀 아닙니까누가 그것을 실행하겠어요안 돼안 돼하지 마세요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게 되게 하시는 거예요내가 시키는 것이 아니고기어이 그게 되게 하시는 겁니다어떻게? “예수님!” “?” “저건 마귀 일이네요?”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딱 보니까 알겠네요.” 그러니까 이건 완전자에요.

 

행함으로 의롭고행함으로 자기 의를 지키려고 하고행함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것저게 딱 내가 보기에는 마귀 일이네요니가 그걸 어떻게 알았니어떻게 알긴그냥 알아지네요그게 바로 완전한 사랑 안에 있기 때문에그렇기 때문에,그런 말 한다는 것은 니가 완전자야다시 말해서 너에게서는 죄가 나올 수가 없다는 거예요죄가 나올 수가 없어요내뱉는 모든 말이 예수님의 사랑을 경유해서 나오기 때문에 죄가 없는 겁니다.

 

거의 비슷한 이야기가 구약 잠언에 나옵니다잠언 19장 1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오죠거기에 보면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이 말은 니가 그 여자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느냐아니다선택당하도록 하나님께서 뒤에 사전조치를 해놓았다그 말은 뭐냐 하면 여자가 하나 투입된 것이 아니고여호와가 투입되는 거죠누구 가정에내 가정에그렇다면 여호와가 투입되면 이게 내 가정이 됩니까여호와 가정 됩니까이게 여호와의 가정이 되는 거예요.

 

주님께서 완전하라고 하는 것은 나보고 완전하라고 한 것이 아니고여호와의 간섭과 통제 안에 있기 때문에완전한 거예요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보고 니가 무슨 완전자야어제 니가 이런 죄 지었고이런 죄 지었는데그렇게 지적하거든그 지적은 사실 예수님의 얼굴을 향하여 지적하는 것하고 똑같은 거예요누가 너를 송사하리요너를 위해서 누가 커버했는데내 목숨 바쳐서내 생명 다하여서 커버했거든요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자기백성을 지킨 그 사랑이 사랑인데이 사랑은 이미 모든 인간들의 비난과 악마의 술책과 악마의 권세를 벗어나는데 이미 성공했던성공한 능력이 그대로 우리에게 투입된 겁니다.

 

따라서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완전히 닫혀이중삼중의 벙커 속에서 주님 혼자 구멍 뚫고 나왔고나온 구멍이 십자가고그 구멍사이로 부활의 능력이이 바깥의 자유로운죄에서 벗어난죄에서 마귀로부터율법으로부터그리고 모든 저주로부터 벗어난 그 자유가다시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져가지고 구멍 속으로 들어와 버리니까여기 속이 내부에 속한 외부가 되는 겁니다내부에 속한 외부.

 

그럼 내부에 속한 외부니까여기 성도가 있고 성도 아닌 사람이 있다면 여기서 뭐가 등장하느냐 하면 단절이 되죠단절성도는 완전자성도 아닌 자는 완전치 못한 자결국 주님은 성도를 구원용이 아니고 기준용으로 사용하는 거예요.기준용으로그럼 내가 착했다못됐다하는 것은 지금 내가 누굴 바라보는 겁니까내가 내 행동을 기준으로 보는 거죠.이게 옛 성품입니다나는 어째서 이렇게 성도가 되었지보는 것은그 순간 타인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기준을 지금 전달하고 증거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삶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의 하신 일을 증거 하기 때문에자신은 어떻게 해야 돼요? “나는 뭘 해도 죄인입니다.” 라는 소리를 해야 되죠사도바울처럼 죄인 중의 괴수라는 말을아주 이제는 미소 띠면서 아주 편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 돼요.

 

어떤 분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마는남편이 괴롭히려고 자꾸 성경구절을 갖다 대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오른뺨을 때렸는데 왼뺨을 내놓아야지니가 왜 안 내놓느냐?” “나는 안 내놓을 거야.” “?” “무조건 니하고 반대로만 하면 되니까.” 이게 완전자이기 때문에저쪽의 주장은 뭐냐 하면사람이 착해야 복을 받는다는 주장이잖아요.

 

그럼 우리는 이 버지니아에서 하나의 기준이 된다면모든 것이 예수님 중심으로 배치가 된다면무조건 반대로만 하면 돼요. “예수 믿어야 구원받아!” “나 예수 안 믿어!” 이러면 되는 거예요그게 완전자에요무조건 반대로만 나가면 돼요.뭐 심술도 아니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제가 시카고강의 6번짼가사랑하지 말라고 했죠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그것은 가짜교회라고 했습니다사랑하는 형제들이여손잡으세요또 남녀 간에 손잡게 만들어가지고미팅을 하는 것도 아니고짜릿짜릿하게 만들어놓고,이것도 음란의 유혹을 참아가면서 이중고삼중고를 집어넣어놓고사랑하는 형제자매노래 부르면서 하는데그건 교회가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서로 사랑하지마세요.” 라고 해야 돼요.

 

완전한데 왜 사랑을 해야 돼요완전한데또 사랑하게 되면 그동안 미흡하다는 티를 내게 되는 거잖아요완전하기 때문에 사랑 안 해도 그게 사랑이 되는 겁니다차라리 그게 사랑이 돼요얼마나 느긋하면 사랑 안 해도 사랑이 될 지경입니까너희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사랑해야만 사랑이지만주님이 주신 사랑은 예수 안에 있는 그 자체가죄인도 사랑하시는 주님의 숨겨진 사랑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께서 이 현장과 함께 만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완전체로 살아가기 때문에이것이 아까 강의할 때 뭐라고 했습니까목적이라고 했죠그러니까 우리의 개인적인 목적은 놔버려야 돼요근데 잘 안 놓아지죠그럼 어떻게 하느냐애를 때릴 때다리를 위로 쳐들고 엉덩이를 때리면서 맴매맴매하잖아요하나님께서 목적을 안 놓으면 우리를 거꾸로 쳐들어요그럼 옷에 들어있던 잔돈들이 어떻게 됩니까우르르 떨어지죠.

 

맴매맴매목적을 갖지 마먹든지 마시든지 뭐든지 다너를 완전자로 보여주기 위해서 주께서 너를 기준으로 세웠는데기준하고 손들어야 할 기준이뭐가 미흡하네아직도 멀었네아직도 배고프네월드컵 4강까지만 하면 되는데히딩크 감독은 아직도 배고프다는 거예요그럼 우승해야 돼요왜 자꾸 목적을 대요목적을.

 

한일전 축구한다고 하면뭐 예수 믿는 사람들 기도하고, “주여주여한 골 넣게 해주세요.” 한 골 넣고 나면, “한 골 지키게 하옵소서.” 무슨 목적이그때그때마다 그렇게 세속적이에요저 같은 경우는 결과만 봐요. 10이구나수고했다.지면은내가 질 줄 알았어까불지 마라이런 식으로한일전 이기는 게 뭐축구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어떤 목적을 잡아버리면이건 백퍼센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착한일이 동원되고이거는 스스로 완전체 아님을 폭로하게 되고폭로하게 해버리면 이 버지니아에서 기준이 날아가 버려요주께서 이 말도 안 되는 기준을우리가 뭐 했다고 기준입니까완전하지 않은 인간을 이미 완전한 자로 확정지어놨다는 것은세상을 마귀의 세상으로 볼 수 있는 눈을인식론을 새롭게 가지라는 뜻입니다.

 

그게 바로 아브라함이에요이삭이고야곱이고이삭야곱 부자 된 것만 생각하지 마시고완전히 인생이 그렇게 꼬여도엉망진창입니다특히 야곱 같은 경우에는 여자 둘이지들끼리 싸워가지고 난리도 아니에요삐져가지고남자와 동침하는데 가위바위보해가지고 하는 동침이 어디에 있어요.

 

요한일서 3장 7절을 한 번 봅시다. “자녀들아” 아까 자녀라고 하는 것은늦게 오신 분을 위해서 다시 설명해드리면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혈통으로 오지 않습니다요한복음 1장 13절에서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죠그럼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면 누구 뜻도 포함이 됩니까내 뜻으로 내가 자녀 된 적이 없습니다만약에 내 뜻으로 자녀가 된다면 우리는 완전 자가 아니에요이케요저케요자꾸 완전을 추구하게 되죠.

 

그러면 그것은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그렇게 되면 마귀가 나타나지 않아요마귀가 오히려 그 사람을 도와주기 때문에,마귀하고 단짝이 되지마귀가 내 앞에적의 영역에 마귀가 나타나지 않아요마귀가 어떻게 나타난다완전치 못하기 때문에완전을 향하여 열심히 매진하는 그런 모습을 해야 마귀가 흐뭇해하면서모든 인간세계를그동안 완전한 세계가 없었기 때문에충분하게넉넉하게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던 거예요.

 

예수님께서 병을 고쳤잖아요어떤 돈을 바랬습니까그 사람이 착하기 때문에 고쳐줬습니까그게 바로 확실한 증거잖아요착하지도 않지헌금하지 않지고침 받고 헌금한다는 보장도 없어그럼 완전 자가 완전한 치료를 했잖아요누가 발작을 일으켰는가마귀가 난리가 났어요대가없이 고쳤느냐대가없이우리는 기도해서 고쳤는데예수님은38년 된 병자를 그냥 말 한마디로 가게 하느냐 이 말이죠.

 

그들은 안식일 날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한테 이쁨 받아서 병자를 고치는 방법을 사용했어요베데스다못가에서.그래서 안식일을 지켜야 행운이라도 온다이런 식이었는데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한테 찾아가서, “!니 아직도 이러고 있나?” 또 병자가 생각하는 것이, “누가 나를 업어서 첫 번째로 베데스다못가에 던져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38년 된 병자가 요구하는 것은 뭡니까예수님이 완전자라는 것을 모르고자기가 생각한 그 생각은일단은 완전한 것으로 보고이 완전에주님에게 자기는 그냥 협조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계획은 내가 세우고 주님께서는 다만 힘만 주시면 된다는 거예요근데 주님은 어떻게 나갔겠습니까들고 낑낑거리면서 물속에 들어가게 했습니까? “완전한 내가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강도여니가 오늘 밤에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여자여내가 용서로 사하노니 너는 죄가 없느니라.” “나사로야나오너라!”

 

이게 뭐예요너나 나나 이제는 예수 안에서내가 완전한 것처럼 너희도 완전해져버린 거예요완전체로 예수님께서 생산해버린 거예요이 믿음은 인간의 힘으로 안 됩니다하나님의 권세가 와야 이게 믿어져요거울 봐도 볼품없습니다갈수록 점점 더 심해질 거예요이게 내려앉고위아래 위위아래가 점점 내려앉을 거예요모든 게 다 흘러내릴 수 있는 문제란 말이죠뭐가 완전해요두 번만 완전했으면 여기 자빠지겠다정말.

 

뭐가 완전합니까하지만세상이 보이는 거예요인간들의 헛수고마귀의 꾐에 빠져서 교회에서 헛수고 하고 있는 거예요헛수고공짜로 주는 자식이고공짜로 주는 선물인데이걸 내가 기도해서 얻겠다는 거예요결재는 내가 만들고 당신은 거기에 필요한 능력만 후원해달라는 거예요그게 뭐가 완전이에요완전을 추구하는 것이지그게 무슨 완전입니까그건 하나님의 자녀 되려고 하는 것이지그게 무슨 하나님의 자녀겠어요?

 

그럼 하나님께서 말씀만 해대시지왜 친히 오셨겠습니까주님이 친히 오셨다는 것은 우리가 해내지 못하는 그 변화를,주께서 완전한 자녀로 이미 확정짓기 위해서 오셨고십자가에 그 근거가 있고성령을 통해서 선물로 줬고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니그 자녀는 누굴 증거 한다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의 모든 관계를 마음껏 증거 한다는 거예요.

 

갈라디아서 4장 봅시다사도바울이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4장 6절에,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지금 제 말이 아닙니다성경말씀입니다하나님의 영을 받았잖아요영을 받았으면 그 티를 낼 거 아니에요그 티가 뭐냐, 8절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마귀에게 종노릇해서 뭘 지켰느냐 하면, 10절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이게 골로새서에 보면 안식일을 지키고율법을 지키는 이 짓거리들을십일조하고이 짓거리하는 것은티를 팍팍 내는 거예요뭐다? “나는 마귀에게 속했습니다.” 그럼 교회는 뭘 생산하는 곳이다마귀자녀를 더욱더 마귀자녀로 확정짓는,낙인을 찍는그런 업무를 하면서 돈을 챙기는 곳이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구원파는 뭐라고 합니까구원파는 교육을 받으라는 거예요교육을우리 단체에 와서개인구원을 받아야 개인구원이 된다는 거예요.

 

성경에는 개인구원은 없습니다개인구원은 오직 누구한테 해당되는가예수님에게만 해당이 되고그 분의 개인구원으로개인의 이름으로주의 이름으로 구원받지나도 주님 앞에서 뭔가 한 수 배웠다고 독자적인 나를 따로존재를 획책할 수 있는 어떤 여지를 없애버려요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이고 예수 이름으로 살아나서살아나보니까 그리스도 안에서우리는 이미 확보했어요하나님의 자녀 되는 모든 구비서류를 확보했기 때문에그때부터 낑낑거리면서 우리 따라오려고하나님의 자녀 되려고 애쓰는 꼬락서니하고는참 가관이다가관가관입니다.

 

가정에 저주가 흘러내리니일천번제를 드려야 대학시험에 붙니안 붙니세상에인간에게도 정성을 드리는 법인데살아계신 하나님께 정성을 안 해놓고 무슨 뻔뻔스럽게 복을 바라느니이거는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계속 쏘아대는 말이 이거에요니가 그런 벌을 받고도 니가 죄 없다고 하면더욱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너를 더 벌주겠는가자기 딴에 하나님 중심주의에요하나님 주권사상입니다예수 안에서 욥은 기가 차요.

 

주께서 이유 없이 고난주니까이거는 나중에는 친구가 아니고 웬수에요하다하다 안 되니까 욥이 욕을 해버려요너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하니까기다렸다는 듯이니가 지금 어긋난 길로잘못된교회 안 다니고 이상한 모임만 가고 있다고 공격을 해대는 거예요아니 기가 차서예수님이 십자가 왜 졌습니까안 그래도 숙제 많은데율법만 해도 숙제 많은데숙제 하나 더 내주려고실제로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모든 계명 지켰지만 모자라다예수님의 계명까지 지켜야 된다는 겁니다새 계명까지.

 

정말로마서 13장에 보면모든 율법은 사랑함에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그 사람들 이런 것은 눈에 안 들어와요.사랑만 하면 모든 율법은 온전히 다 이루었다간음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도적질하지마라...뭐 하지마라사랑하면 그게 다 되는 거예요사랑하면 그게 온전한 거예요이 이야기만 하고 강의를 마치겠습니다마귀이야기까지만 하고 다음 것은 딴 데 가서 할 테니까 들어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아까 제가 분명히 사랑을 뭐라고 했습니까자기소멸이라고 했죠. “그대 있음에 내가 어떻게 되도 상관없이 그대만 모실 수만 있다면제발 당신을 모실 수 있는 그 영광을 저한테 허락하소서.” 이러니까 남자들이 다 프러포즈할 때 신사답게 무릎을 꿇잖아요. “당신에 있음에 내가 이런 굴욕적인 모습도당신 있음에 충분히 용납됩니다.” 초장에 하자마자 일어서지만정리합시다사랑 앞에는 뭐가 없다내가 없죠내가 없으면 나의 목적도 없죠.

 

그러면 일 하지 말라는 말입니까아닙니다무슨 일을 하던 간에하나님의 사랑의 기준을확정된 너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 일을 하도록 궁지에 몰아넣는 거예요제가 자주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촌에 가면 사람들이 농사짓잖아요물어봅시다농사짓는 이유? 1농업이 그렇게 재미가 난다. 2땅이 있기 때문에 지었다. 3할 것 없어 그 짓한다몇 번입니까할 게 없어 그 짓해요농사도 마찬가지고판사도 마찬가지에요. “공부가 제일 쉬워요.” 이러면 결국은 그쪽 길로 갈 수밖에 없어요실력은 대기업인데 일부러 중소기업에 가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왜 대기업 가는가대기업 가는 쪽으로 그렇게 몰아세우니까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 하면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나를 살게 하시는가우리를 위함이구원파처럼 내 개인구원이 아니라,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기 위해서 가장 적합한 환경을딱 맞춤월계수양복점이죠딱 맞춤으로 그렇게 맞춰서이렇게 살게 했단 말이죠그러면 우리는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화낼 거예요다른 사람처럼 재벌 되게 맞추지왜 고생하는 것으로 맞췄느냐그러면 저는 답답합니다어차피 우리는 소멸되잖아요사랑 앞에서.

 

사랑하는 분이 어떤 조치를 해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해야 사랑의 관계다이 말이죠. “이것 왜 저렇게 몰아붙였습니까?” 이렇게 따지는 것은 누구를 의식합니까사랑을 의식 하지 않고사랑을 이용해먹으려는 심보가 돼버려요그대 있음에주 예수 있음에아무래도 괜찮습니다완전자이기 때문에그래서 고린도전서 16장 22절에 보면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뭘 받을 지어다저주를 받을지어다또 이 말 듣고 되지도 않는 사랑을 해본다고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뜻이 아니고우리가 빈 서랍장이에요빈 서랍장에고린도전서 16장 22절이라는 양말이 하나 들어온 거예요여기에 차곡차곡 쌓이는 거예요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대라이게 쌓이는 거예요이 전체가 뭐다새 계명이고 사랑이다이 말이죠십자가 피가 묻어가지고우리는 그냥 빈 서랍장인데날이 갈수록 말씀이 하나하나 쌓여가지고, ‘이래서 우리는 사랑을 받았구나!’ 하는 것을 증거 하시면 되는 겁니다.

 

마지막 이거 보고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아까 53분했기 때문에완전자기 때문에이번에는 2분 까겠습니다요한일서 3장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여러분확 안 와 닿죠요한일서가 어려워요뭐냐 하면자기가 어떤 목적을 지녔는지를주께서 자기에게 어떤 목적을 주었는지를본인이 알아요목적을 이루면 더럽고 이게 아니라이미 깨끗해졌기 때문에 깨끗함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그 쉬운 일을 그냥 하면 돼요.

 

목적은내가 구원받는 것을 목적으로 할 것 같으면 이게 실패로 끝나요어디까지 깨끗해져야 합니까이렇게 되는데우리는 주 안에 있기 때문에깨끗해졌기 때문에주의 깨끗함을 증거 하는 것은 간단해요어떤 악랄한 짓이 내 속 안에 또 있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면 화목제물의 그 가치가 계속 부각되죠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잖아요.

 

그럼 나는 그 사랑하는 사람의 그 광채 앞에그 희한한 영광 앞에 나는 있으나마나가 된다 이 말이죠그럼 남들이 이야기하기를, “니 뭐야?” 할 때자기는 이미 소멸되었기 때문에 자기를 이야기하지 않죠누굴 이야기합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더이다.” 고어 써가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더이다.”

 

그거 증거 하면그게 바로 하나님의 자녀하나님의 자녀는 자기를 증거 하는 것이 아니고누굴 증거 한다아버지의 행하심을 증거 하는아버지의 행하심을 증거 하는 것이 자녀라면딱 자녀에 맞는딱 그 완전한 자가 되는 겁니다아버지 덕분에 이렇게 되었습니다뭐가그 아버지 사랑이 저에게 넘쳤습니다그 아버지의 깨끗함이 오늘날 이렇게 저에게 새로운 목적을 갖게 했습니다이렇게 고백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죄 없다 하면 아버지를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다는 요한일서의 말씀처럼죄 있는 것을 화목제물로 죄 없이 했다는 것이 과연 사실이라면우리는 죄 없음을 믿게 하옵소서그래서 죄 없게 하신 화목제물하나님의 사랑그것만 우리의 자랑이 되게 하옵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