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123서

캘거리강의24강 160920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6. 10. 13. 04:32
2016-10-13 00:10:20조회 : 5         
20160920 요한1서 캐나다 캘거리강의24-이 근호 목사이름 : 이미아 (IP:122.43.165.245)

20160920 요한1서 캐나다 캘거리강의24-이 근호 목사

 

오늘은 요한일서 3장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그렇게 되어 있죠원래 기독교이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기독교 성경의 내용에 보게 되면 유대교하고 달라요유대교는 어디서 끝이 나느냐 하면 그들은 메시아가 오면 모든 것이 끝이 납니다유대교는 쭉 창세기부터 가서 메시아만 오면 끝나는 것이 이게 바로 유대교입니다유대교구약성경에 근거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기독교또는 복음예수님의 교회는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이미 메시아가 왔다는 겁니다메시아가 오고그 이후,그 이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메시아가 오고 더 나아가는 거예요유대인들은 아직도 메시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기다리면 되는데기독교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오셨다는 종교에요이미 오셨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미국의 만화영화에 <톰과 제리라는 것이 있거든요톰과 제리저도 본 기억이 나는데쥐를 고양이가 잡으러 갑니다절벽이 있는데쥐가 고양한테 쫓기다보니까 너무 급해가지고 절벽이 있는데도, 3단 넓이 뛰기 한 것처럼 공중으로 막 달려요어딜 바라보느냐 하면 고양이 오는 것만 바라보고 막 달리다가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공중에 떠 있어요고양이만 의식한다면 공중으로 떠서 계속 가는데고양이 의식하지 않고 갑자기 밑을 바라보는 순간 이게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만화라지만 희한하죠.

 

기독교라 하는 것이 메시아가 오게 되면 좋은 날이 온다낙원이 온다천국이 온다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톰과 제리 이야기처럼이미 메시아오고와도 더 와버렸어요더 와버리니까 이 시대는 뭐지뭐 이런 시대가 다 있어이런 시대가 다 있어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면 좋은데이거는 더 나가버렸으니까 이거는 왜 생긴 거지이렇게 새로 메시아가 오셨고 세상 종말이 되었다는데메시아 오면 세상종말이 됩니다종말이 오고 난 뒤에 왜 덤으로 오는 시대가 왜 필요한지그리고 이렇게 더 추가적인 시대로 말미암아 오늘날 현재 이 시대를 우리가 어떤 안목에서어떤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되고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기독교는 그렇게 해서 신약성경이 해석이 되어 집니다.

 

그렇게 해석이 되어 지게 되면 우리가 평소에 자기생활 하다가 예수님 오시면 구원받는다고 하는 그런 생각하고는 너무너무 터무니없는전혀 어울리지 않는말해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어처구니없는 인식에삶에 관한 관점에큰 변혁이 일어나요기존의 사람으로서는 도저히이야기하는 사람조차 내가 미쳤지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만약에 메시아가 여기 온다면만약에 기다리고 있으면, ‘착실하게 살자바르게 살자훌륭하게 살자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 날이 온다.’ 이렇게 해서 살면 되는데이미 심판 날이 지나가버렸다니까요심판 날이 이미 지나가버렸어요톰과 제리와 마찬가지로 이미 지나가버렸어요.

 

그러면 이 시대하고지나간 이 시대를 A라고 하면그 전에 우리가 예수님 오기를메시아 오기를 기다렸던기다림에 대한 시대 B이미 기다린 이후의 A와 세상을 보는현실을 보는 관점이 달라도 이게 너무 다른 겁니다그렇다면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메시아 이후에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에요한일서라는 성경을 해석할 때도본문을 해석할 때도그냥 유대인처럼 오신다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이미 왔다고 했을 때메시아가 왔을 때우리는 이 성경과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거기에 대해서 지금부터 제가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이렇게 되면 참 어처구니가 없어요이렇게 되면 나라는 것세상이라는 것현실이라는 것이웃이라는 것그리고 형제라는 것구원이라는 것이전부 다 새롭게 정립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유대인들은 바르게 살면 구원 받는다이렇게 하죠유대인들이 바르게 사는 것은 하나님을 잘 믿고 말씀을 지키는 거죠바르게 살면 언젠가는바르게 산 사람한테는 구원의 혜택이 주어진다이렇게 되지만이미 메시아고 오시고 난 뒤에 구원이라는 것의 문제가 뭐냐 하면이미 구원문제에 대해서는 우리의 행위와 우리의 성격과 성질과 우리의 태도하고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이걸 받아들여야 해요.

 

우리가 어떤 짓을 하든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든 상관없이 구원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다.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은 아직까지 심판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죠이런 경우를 실제로 유사한 예로 들게 되면 여러분들 학교 다닐 때 시험 전날까지 열심히 공부하잖아요그럼 시험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스스로 자기가 고생했다고 위로한답시고 공부를 안 하잖아요그러면 종교라는 것이 뭡니까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뭐예요시험 잘 치려고 하는 겁니까이미 시험이 끝나고 난 뒤에 나는 누구냐와 관련되어 있을까요?

 

유대교 같으면 잘해서 천당 가려고 하는데나와는 상관없이 예상 밖에 미리 와버리면시험 준비하려고 하는데한국의 수능이 며칠입니까? 11월 달인데지금은 9월 달이고근데 이야기하기를 “8월 달에 이미 수능 끝났어.” 라고 통보를 받게 되면, ‘뭐지그럼 나는 뭐 한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느냐 하면이미 메시아가 모든 판정을 내려버렸어요구원될 자와 구원되지 않을 자를 이미 결정해버렸죠그걸 방금 읽었던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이미 나타났으니이미 결정되었으니합격과 불합격이 이미 너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되었으니이래 되는 거예요.

 

결정되고 난 뒤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뭘 주느냐 하면일방적으로 우리가 요청하지 않은 사실을 통보해주는 겁니다사실을 통보해요시험 치지도 않았는데 합격증이 날아오고시험 치려고 열심히 준비 할라고 하는데, ‘앞으로 열심히 착하게 바르게 살아서 목사님 말씀 잘 듣고 해서 천국가야지.’ 했는데 뭐가 날아왔느냐 하면 이미 불합격입니다여러분 이걸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불합격 되려고 교회 갑니까그런데 교회 다니는 것과 상관없이 불합격이 날아와요. “마귀에 속한 자라는 그것이 날아오는 겁니다.

 

확정된주님이 확정시킨 사실을 통보해드리겠습니다어느 집은 합격어느 집은 불합격입니다왜냐하면 메시아가 이미 왔으면이미 인간들의 자기 자신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자기의 의견과 기대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상태에서구원될 자와 구원 안 될 자를 확정지었기 때문에시험 준비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이제 시험 준비 할 필요가 없어요캐나다에서 이걸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캘거리 여러분 밖에 없습니다이 사실을캘거리에 교회가 그렇게 많아도 이 사실을 누가 믿어요? “교회 열심히 다녀야지.” “뭐할라고뭐 할라고 교회 다니는데?” “천국 갈라고.” “끝났어니 시험날짜 벌써 지난 것 몰라?”

 

메시아가 왔다는 것은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아버지와 아들이 이미 결정지은 거예요그래서 합격한 사람 특징이 있어요주의 이름으로 합격했다는 이야기를내가 노력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저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이미 내 대신 시험을 다 치러가지고내 대신 이름 쓰고 내 대신 1번에 , 2번에 내 대신 시험 쳐서결과 통보만그냥 합격통보만 날라 올 때이것을 사랑이라고 하고 자비라고 하죠.

 

사랑은 복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복종할 필요가 없어요복종한다고 사랑을 곱빼기로 더 주는 것이 아니에요이미 합격했으면 복종이 필요치 않습니다그러면 합격된 사람은 뭘 빼야 돼요복종과 순종을 오히려 빼기를 해야 돼요복종해야지를 빼야 돼요순종해야지를 빼야 됩니다그럼 순종하고 복종 빼면 뭐냐 하면주께서 합격시킨합격 그대로 나의 현재 모습으로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간단하게 하게 되면내가 여기 있고 예수님의 심판 날을 기다린다면나의 모습은 심판이 오기까지 유보되어 있어요심판 날 돼봐야 진짜 내 모습을 안다열심히 해보기는 해보는데아직까지마지막 때가메시아가 오기 전이라고 여기는 유대인처럼 그러는 거예요이만큼 유보된 상태기 때문에내가 아직 모르는 유보된 내 상태로 인하여메시아가 나를 볼 때 어떻게 볼지는 아직까지 알지 못한 상태가 남아있는 겁니다과거현재미래라면 과거는 아는데 미래는 모르잖아요현재에서 미래를 모르는요 폭만큼 내가 나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그런데 메시아께서 이미 앞서서이미 우리 모습을 확정지어놓고 다시 오게 된다면우리에게는 미흡함이 있습니까없습니까미흡함이 없죠다만 뭐만 남아 있느냐 하면지금 현재상태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주님은 내가 현재 나를 보는 그런 모습이 아니고, “이미 너는 어떻게 하든 의인이야합격이야너는 죄 짓지 않는 자야.” 라고 통보가 왔기 때문에그 통보가 현재 내 생각 가운데서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채택하고어느 것을 포기해야 합니까예수님 생각을 채택해야 되겠죠주님이 옳으니까나는 오해를 하니까.

 

이것을 이렇게 보면 됩니다현실의 감상자또는 현실에 대한 감상자는 없다이게 뭔 뜻이냐 하면현실에 대해서내가 현실을 하나의 대상으로 봐가지고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없을까요없어요왜냐하면 내 자체가 어디 속에 일부로 포함되어 있습니까현실 속에 일부로 포함되어 있죠그렇잖아요그러면 내가 보는 현실은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현실만큼은 남아있지만내가 이걸 더 안다고 해서더 순종한다고 해서더 복종한다고 해서내게 속한 현실이 달라질까요안 달라질까요전혀 달라지는 게 없어요.

 

이미 합격통지서가 온 이상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짓을 해도너는 죄가 없어라는 그 상황이 달라질까요안 달라질까요안 달라지는 거예요안 달라지니까 우리에게 남은 것은 뭐냐 하면이미 우리의 신분은 확정적이고 이미 죄 없고이미 구원받았다는 이 사실과그리고 지금 내가 어리석고 모자라서 나는 구원받아야 돼그 사이만큼은 인식론에서아직까지 알지 못하는 미진한 것은 남아있죠그렇다고 신분이 달라지지는 않는 거예요이쪽 유대인들은 내가 모르면 내 신분은 위태롭게 돼요내 미래가 지옥 갈 정도로까지 아슬아슬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미 확정된 상태에서 단지 우리가 모르는 것은어떤 점에서 내가 이미하나님이 어떤 것을 보고 내가 이미 구원의 합격통지서를 받았지아주 기쁜 마음으로 느긋한 마음으로그것을 이제그 빈칸은 미흡한데그 미흡한대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더 알게 되는 겁니다3의 예를 들게 되면3애들이 수능을 치는데 우리는 이미 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그때 수능참고서들을수학정석이라든지정철종합영어를 본다 이 말이죠.

 

보는데보면 뭐 모르는 것이 많이 나오죠분명히 모르는데도 지금 주님께서는 백점이라고 했거든요분명히 나는 이걸 해석을 못하는데, “아이구니 해석을 왜 그리 잘해?” 이렇게 나왔으니까우리로서는 이미 합격은 받아놓았고도대체 뭐가 내 쪽에서하나님과 결정한 사항과 내가 생각한 것과 뭐가 틀어졌고뭐가 잘못되었기에주님께서는 내가 하는 행동을 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합격통지서를 보냈는가그 문제만 남아있죠.

 

그러면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예를 들어서 요한일서 3장 16절을 봅시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도다” 마땅하죠그럼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려야 뭐가 되느냐 하면우리는 옛날에 우리 쪽에서유대인이라면 옛날에 이 문제지가 왔다면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뭐가 됩니까불합격이 되고목숨을 버리는 자는 뭐가 되느냐 하면합격이 되는 거예요맞죠?

 

그런데 이미 메시아가 온 상태에서 우리가 규정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형제를 사랑한 사람이 돼버린 거예요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막 눈만 흘기고 형제에게 못되게 했는데. “이게 어데후배가 나한테 인사도 안 하고?” 막 째려보고 있는데뒤에 주의 천사가 와서 툭툭 치면서 자식방금 재한테 뭐라고 했어?” “째려봤어요.” “ 잘했어니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거야니 수고했어잘했어!” 뭐야 이거막 눈으로 째려보고 이랬는데. ‘저거 죽어야 돼!’ 이랬는데이게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랑이라고 통지서가 오네요이걸 한국에서는 젊은 애들이 한 글자로 이렇게 이야기해요~!!!

 

마태복음 25장에 나옵니다마태복음 25장을 한 번 봅시다오늘은 어제처럼 그렇게 흥분하지 않죠? 37절을 누가 한 번 읽어보세요.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제가 언제 이웃을 사랑했습니까제가 언제 주님을 사랑했습니까도무지 사랑한 적 없습니다아니 제가 솔직하게 주님을 위했다면 제가 주님을 위했다고 합니다하지만 나는 평생 동안 내 이익과 우리 가족밥 먹고 사는 것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것나는 나 자신이 남한테 꿇리기 싫어하는 이 본성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그렇게 살아왔었습니다제가 언제 주님 앞에 헌신하고 순종하고 봉사했습니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거 봐이거 봐말하는 것 좀 봐세상에 이렇게 겸손할 데가!” “제가 겸손이 아니라 언제 겸손했습니까?” “자식합격된 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 좀 봐!” 이게 무슨 이야기에요도대체 주고받는 대화가 안 돼주고받는 대화가. “아니어딜 봐서 저를 구원하십니까?” “아이구이거 봐온유와 화평과 자비 봐어떻게 자기를 부인하지?” “물론 다 성령의 솜씨죠성령의 솜씨고 뭐고 간에 정말입니다진짭니데이~경상도 말로진짭니데이제가 주님한테 한 게 없어요.” “세상에나는 너 같은 인간 세상에 자랑하고 싶어보아라이 구원받은 자를 보아라!” 이래 나와요.

 

저는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착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메시아가 와가지고, “주여메시아 언제 옵니까?” “벌써왔다.” “그러면 저는 합격입니까불합격입니까?” “합격!” “별로 수능준비를 못 했는데?” “괜찮아내가 대신 수능 다 치렀어합격!” 왜 그렇게 하시는지그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지금까지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뭐라고요~!!! 이 기이함~!!!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시고 재림이 있어요재림에는 모든 것이 온전함입니다온전함온전함인데예수님의 재림 때 온전함인데메시아로 오고 난 뒤에 이 사실은이 현실 세계에 뭘 주느냐 하면 깨어짐또는 분열파괴해체를 제공합니다그러면 어떤 것을 해체하고 파괴하느냐 하면, ‘열심히 순종해야지열심히 복종해야지.’ 라는 나의 과거에서 현재로 가는 그 인식을 주께서는 깨버립니다박살내버려요. ‘지금 내가 착실하고 있지내일은 더 내가 착실하게 순종해야지다음에는 착실하게 성경공부 해야지.’ 라는 그것이 우리의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을깨어버리죠.

 

그러면 이거는 한 마디로 뭐냐 하면충돌입니다서로과거에서 현재로 가는 차와 이미 미래에 도착해놓고 거꾸로 다시 현재를 향하여 꽂아놓는 차와 정면으로 충돌될 때충돌될 때뭐가 일어나느냐 하면충돌을 통해서 여기서 깨어짐이 일어나고그거는 우리의 주체에 분열이 일어나는 겁니다이 분열또는 갈등이 갈등의 틈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깨어질 때 거기서 사랑이 나옵니다사랑이.

 

그래서 열심히 사랑하는 것은 사랑일까요사랑이 아닐까요사랑이 아니에요깨어짐의 기회가 없었고깨어지는 체험이 없었기 때문에 사랑이 아닙니다사랑은 전부가 비-동질성을 갖춥니다깨어졌으니까 앞뒤가 다른 성질을 갖게 돼요다른 성질을-동질성입니다나는 전에는과거에서 현재로 잘해보고자 했는데주님께서 이미 구원을 합격 지어놓고 우리에게 찾아온 주님께서는, “잘 할 것 없다.” 내가 이미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는 예수님의 이름의 결정을나의 잘함보다나의 착실함보다 주님의 결정을 우선시한다면, ‘내가 잘 해야지와 주님 잘했습니다.” 라는 사이가 동질이 아니라 비-동질이 되죠.

 

그러면 여기서 균열이 일어나는 겁니다왜 균열이 일어나는지를 딱 깨보니까여러분 제약회사 선전하는 것 보면콘택600선전캡슐이 반으로 벌어지면서 여기서 뭐가 나옵니까콘택600 365가지의 알맹이가 나오는 것을 아시죠옛날에 나왔는데지금도 있는가 모르지만콘택600선전 있잖아요쏟아지죠이게 뭐냐 하면바로 인간의 육신의 종교성과 주님의 구원의 확정성 사이에부딪치면서 나오는 이게 뭐냐 하면이게 사랑이라는 겁니다이게 사랑입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우리에게는 사랑이 있었다없었다사랑이 없었죠우리는 지옥 갈 사랑만 열심히 했을 뿐이죠. “형제여 사랑합니다사랑하는 주님 앞에~” 이걸 가사를 바꿔야 돼요. “지옥 가는 사랑으로~” 이런 뜻이에요열심히 사랑해서 열심히 지옥가게 하는 그 현장이 바로 오늘날 교회입니다. “나만 배부르면 되느냐필리핀 애를 안다. 3만원만 내시면 50명의 애들이 하루를 굶지 않습니다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지옥 갈 사랑입니다.

 

왜 그러느냐어제는 어제의 내가 오늘의 사랑을 알고나는 오늘도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애들을 알고내가 한국 땅에서 잘 먹고 사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일부의 돈을 저축해서 유니세프 같은데 기부했다그러면 어제의 와 오늘의 가 동일한 나일까요동일하지 않은 나일까요동일한 그럼 뭐가 없어요깨어짐이 없죠분열이 없죠.해체가 없죠파괴가 없죠그거는 지금 수능시험치고 있는 지옥 갈 사람이에요불합격이에요지옥 갈 사람이에요이게 얼마나 중요한 사실이에요.

 

이 모든 것을 몰랐던 것은 뭐냐유대교적 사고방식으로 교회 다녔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나중에 심판 날에 나에게 어떤 이익이 올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인간의 발상을인간의 발상 자체가 이거는 현실을 모르는 것으로 묵살하시고유일하게 현실을 아는 것은 말씀의 현실밖에 없어요그 말씀은 이미 창세전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이미 확정된 사실을 지상에 구체화해서 깔아놓은 거예요그러니 예수님 외에는 현실을 아는 사람이 없고그 현실을 유일하게 아시는 예수님께서 먼저우리가 행하기 전에 먼저 합격통지서를 가지고메시아를 이미 지나서 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재림도 온전한 것이 아니고이미 온전했음을 드러내고그전에 재림할 때까지는 이제는 이 온전한 것이 왔는데,왜 온전하지 않는 것이 온전한 것을 시도하느냐그걸 죽어라 깨는 작업을바로 예수님 초림과 재림사이에 하시는 거예요그게 요한계시록이에요요한계시록의 세계는 전부 다 파괴의 현장이고이 세상을 전부 다 불바다 만드는 그 순차적 작업의 기록이 뭐냐요한계시록입니다이제 요한계시록 이해되십니까이미 온전한데그 온전함을 주께서 자기백성에게 믿게 하기 위해서는그 온전함을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세상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해보자는 식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주께서는 다 깨어버리는 거예요.

 

환난 받으라깨어져라니 동질성오늘도 동질성내일도 동질성그 똑같은 동질성을그런 동질성의 연속을 중간에 마중 나가서 깨버립니다깨버리면 다리가 끊어지고아까 톰과 제리 봤죠쭉 가다가 절벽을 넘어가 버리니까이게 공중인지 땅인지 구분도 못했다가아는 순간 으아악하고 빠지잖아요성령을 받는 순간 우리는 으아악하고 빠져야 돼요.질문: “저기서 성령이나 사랑이 우리 스스로 어떤 식으로든 자각이 되거나 인식이 되는 형태로 포착이 되나요아니충돌되게 되면 자연적으로 자각이 됩니다이러한 충돌을 언급할 때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데그 질문에 여러분 답변해보세요보통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은 사랑을 해야 된다고 알고 있죠여러분 다 알고 있죠?

 

그럼 제가 질문 해볼게요. 10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이렇게 되어 있죠이제 메시아 온 후에 이렇게 나타나요그럼 질문입니다우리는 마귀의 자녀들을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뭡니까누가 한 번 답변해보세요우리는 가룟 유다를 동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뭡니까?대답: “소속이 다르니까.” 그러면 사랑 안함이 우리의 구원받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곤란해요. ‘내가 저 사람은 사랑해서는 안 돼저 사람은 내가 사랑해야 돼.’ 라고 결정하는 그것이 착함으로 이어져서착함으로 간주되어나의 착함으로 인하여 구원되는수능에 합격하는대학에 합격하는그런 방식이 되니까그거는 주님의 방식찾아오는마중 나오는 방식은 아니에요.

 

마귀의 자녀들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까이걸 이천년 동안 신학자들이 풀어내지를 못했어요대답: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불교신자는 뭡니까대승적 지지를 갖고 있죠대자대비 하죠대자대비는죽었던 성철스님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4월초파일에 법어를 발표 하는데, “사탄마저 사랑하자악마마저 사랑하자.” 그게 1980년대에 법어를 냈어요난리 났습니다성철스님의 그 진위는 바로 전두환을 사랑하자.” 이 말이잖아요성철은, “불교를 지키기 위해서 뭐권력과 손잡아야지.” 이런 식이에요불교는 사탄마저 사랑하자고 이래 나와요.

 

가룟 유다가예수님의 십자가 지는데 공로자인 가룟 유다를 왜 우리는 사랑하지 않아야 되는 이유에 대해서 어느 신학자도 답변한 사람이 없습니다지금까지그 답변하지 않은 질문을 제가 여러분에게 드린 거예요정답이 궁금해요?궁금하면 오백 원에이언제적 개그인지 모르겠다그렇게 이웃을 사랑한다면자기가 일방적으로 마귀에 속한 사람은 사랑 않는다고자기가 일방적으로 선택할 수 없잖아요나중에 자기가 선택했는데형제일 수가 있고결국 취미가 같으면 하고심지어 못생긴 여자는 무조건 미워하고잘생긴 사람은 이유를 막론하고 사랑하고선교단체에 이쁜 여자만 찾아가서 전도하고 못생긴 여자는 전도하지도 않고그런 짝이 나는 거예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마귀와 가룟 유다그리고 하나님의 속하지 않은 자의 특징이 있어요그건 뭐냐 하면동질성을 고집하기 때문에 그래요깨지기 싫다는 거예요나는 이대로 그냥 하나님을 만날래그러면 성도가 깨진다는 것은 뭐냐성도는 동질성이 아니고 뭐가 되느냐 하면성도는 존재에서 존재로또는 기능에서 기능으로 가면서 여기 뭐가 삽입되느냐 하면 바로 십자가가 삽입됩니다십자가가예수님의 초림에서 이미 메시아가 왔을 때는 메시아는 어떤 모습으로 왔습니까깨어지는 모습으로 왔어요이 깨어지는 모습이 현실을 보는 핵심이 됩니다.

 

그 핵심에 대해서 마귀의 속한 자들은하나님의 속하지 않는 자들가룟 유다는 강력하게 그것을 거부해요그냥 살던 대로 살래메시아고 십자가고 싫어그냥 내 몸이 하던 대로 그냥 내버려둬다 귀찮아니나 잘 믿어라노쇠하신 부모님한테 오랜만에 전도한다고 하게 되면그 노쇠하신 부모님이 뭐라고 합니까? “니나 잘 믿어니나 잘 믿으면 혹시 니 빽으로 천당이나 가자.” 뭐 이런 식으로. “그래나 이제 늙어서 눈에 글자도 잘 안 들어와니나 교회 잘 다녀나는 하던 대로 절에 갈래귀찮아.” 이런 이야기 하죠그리고 또기존교회는 복음이 아니고 십자가가 복음이라고 하면, “그냥 나 하던 대로 할래옛날에 하던 대로 목사님 섬기고그냥 아침 일찍 은혜 받는 앞자리에 가서 앉아 묵상하면서너희들을 위해서 기도하고새벽제단이나 쌓으면서 그렇게 살래.”

 

그럼 결국 동질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게 쌓이고 쌓이면 뭐가 돼요자기 의가 되겠죠. “나는 내가 하는 행세대로내 의를마일리지 쌓으면서날마다 마일리지나 쌓으면서 그렇게 살래.” 이게 바로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입니다오늘날 교회는 교인들을 다 그렇게 만들었어요. “조심하세요여러분 자칫하면 그동안 쌓았던 실적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가는 수가 있습니다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인생을 조심조심하게 살아야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여러분조심스럽게 살면 구원받습니까조심스럽게 산다는 것이 뭐냐 하면 자기 관리거든요자기 관리자기 절제그 범위를 넓히면 자기 경영자기 인격 도야의 관한 서적들처세술에 관한 책들서적들인생이 행복하려면이런 책들.대인관계에서 설득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하느냐이런 것들대화의 친화력을 도모하려면 어떤 식으로 하느냐이런 것들이런 것들이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예요인격도야의 관한 그런 내용들이 설교에 섞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자기 인격을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이걸 흔히 하는 말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여자는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 그런 말들을 하죠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지도대체 얼마나 견적을 내야 책임을 질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납득이 되고그것이 하나님의 원하는 바라고 인식되는 것은결국에는 그 내면에 뭐가 있습니까? ‘깨어지기 싫어누가 나를 깨면 싫어나는 이대로 갈 거야얼마나 귀한 것인데얼마나 내가 보존하려고 애를 쓴 건데?’ 그런 거잖아요여러분들이 화초나난초에 물 줄 때 심정이 뭡니까? ‘고이고이 자라라애들아 내가 너희를 얼마나 공들여 키우는데새벽서리 맞아서 죽으면 안 돼!’ 얼마나 물주면서 속으로 대화 나눕니까하물며 자기가 키우는 화초한테도 그렇게 공을 들이는데우리 자신에 대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죠항상 자기 자신에 대해 조심하죠그게 바로 왕만두 종류에 있는 왕바리새인 이라니까요왕만두뭐 왕갈비 종류.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에 대해서 미리사전에자기가 철저하게 수험생으로 준비하고 있는 그런 태도라는 말이죠한마디로 말해선 나는 중도에 파괴되기 싫어깨어지기 싫어그러니까 거기서 뭐가 날아가 버립니까십자가라는 것이 빠지는 거예요십자가는 다른 말로 하면 거침돌이에요자빠져서 깨어지라고 준 것이 바로 그게 십자가입니다근데 일반교회에서 십자가라는 것은 자빠져가는 것이 아니고니가 십자가 잘 살펴서 괜찮다고 하거든 니가 받아들여라그런 십자가에요받아들이고죄 용서받고그리고 깨버리고그리고 본격적으로다이렉트로직접 하나님 아버지하고 맞상대해라그런 십자가거든요.

 

누구나 넘어지는 십자가가 안 넘어지려고 버티니까이거는 십자가가 아니고십자가 있으면 이거는 피해가는 거예요.결국 십자가 없는예수님이 훌륭하시다는 것은그건 받아들이지만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그 사실은 이야기 안 해주는 교회그건 바로 절이죠불교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아서 열심히 자기 관리하세요.” 그건 불교에요.

 

그것은 성경을 뭐로 보느냐자기계발성자기를 더욱더 향상하고 발전하도록계발정도로 성경을 보는 겁니다그럼 자기계발성에다 십자가 집어넣어버리면어떻게 오해를 하겠습니까? ‘그래십자가는 자기를 비우는 거다나도 나를 비워야지내려놓고더 내려놓고더더더 내려놓고(3더더더더 내려놓고(4). 이거 억지 쓰자는 것도 아니고더 내려놓아야 해더 겸손해야지겸손 같은 소리하고 있네이빨 아파보세요겸손한지인간이 어떻게 겸손해져요?

 

인간에게는 환경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조용할 때와 부산떨 때와두 종류 환경밖에 없죠조용하면 겸손해지고 시끄러우면 교만해지고그겁니다모든 동물은 다 그래요난처한 환경은 적응하려고 애쓰고포근한 환경은 누리고그게 짐승이고 인간입니다그건 생물학적 자연적인 본능이에요그 외에는 없어요성경 보면서 자기 계발서로 환호하고계발서로 활용하는 겁니다목사들이 그런 식으로 잘 해주니까. ‘오늘도 기도해서 겸손해져야지.’ 기도해서 겸손해서 천당 갔으면 제가...한 명도 없어요.

 

사도바울 같은 모든 사람은 깨어진 사람입니다와장창 다 깨어진 사람입니다엘리야도 마찬가지에요. “주님이여저만 남았습니다.” “니만 남았어칠천 명 남았다행함이 아닌 은혜로 칠천 명 남았다니만 남았다고 하지 마니가 현실에 대한 감상자가 아니야니가 현실을 보는 것은니는 현실을 몰라그 안에 담겨있기 때문에 몰라.” 현실이라는 것은 내가 속해 있는 그것을 다 품으면서그 전체가 현실이기 때문에그 현실에서 인간은 아무리 두리번거려봐야 몰라요.

 

따라서 현실 바깥에서 미리 쳐들어와야 됩니다우리가 가보지도 않은 세계미래의 세계에서 거꾸로 현실 속으로 방문하시고 찾아오신 그 분이 올 때우리는 참으로 무식했구나어떤 점이 무식했다열심히 자기 관리하고 열심히 자기 계발하면 구원받겠지하는 이것이결국은 나의 동질마귀적인 동질성을 붙잡고 사는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인간들의 본성인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되죠.

 

그러면 좀 더 진도 나가보겠습니다이 깨짐 속에서 사랑이 나온다는 것이깨어짐 속에서 사랑이 나온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방금 제가 이야기했습니다우리 존재가 깨어지면 거기서 뭐가 나온다고 했습니까그 틈에서 뭐가 나오죠?십자가 나온다고 했죠십자가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하나님의 속성이고본질이고본성입니다맞지요다 이루었다고 했으니까. “아버지여나 다 이루었습니다창세전에 약속한 대로 다 이루었습니다.” 이게 바로 속성과 본질입니다.

 

그럼 이 본질을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사랑이라고 했죠그럼 사랑이라는 것은 뭐냐동질성은 깨트리는 힘으로 사랑이 들어온 겁니다그 예가 뭐냐, 12절에 나옵니다요한일서 3장 12절을 누가 한 번 읽어볼까요성질 급한 제가 할게요.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었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라고 되어 있죠.

 

가인과 아벨의 배치는 가인을 본받자아벨을 본받자가 아니라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의도적으로 유발시켰습니다그러면 우리는 뭐만 보면 돼요사랑을 어디서 찾습니까아벨에서 찾으면 안돼요가인에게서 찾으면 안 됩니다사랑을 어디서 찾는가가인과 아벨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발견해야 돼요사랑은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어디에서?하나님의 숨겨진 본성과 본질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그럴 때이게 뭐가 되느냐 하면 바로 십자가의 사랑과 합치된 사랑이 되겠죠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

 

그렇다면 그게 사랑이라면 요한일서 3장 16절이 비로소 해석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말은 결국 무슨 뜻입니까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것이 아니고형제로 인하여 누구 목숨이 날아가요내 목숨이 깨지고파괴될 때이게 주의 뜻이라고 수긍될 때이것이 이미 합격된 자의 면면입니다합격된 자가 보여줄 하나님의 십자가의우리의 구원을 확정시킨 그 사랑의 진면목이그 사람으로 부터 당할 때그것이 우리 속에서 발산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3장 16절이 이게 정답이라면그럼 이걸 실제로 해봅시다이사를 왔는데이웃집에서 어떤 사람이 떠들었어요잠을 못자요애가 드럼을 친다나 해가지고두두두두두 팍밤 열시에하여튼 열시부터 열두시까지 하는 모양이에요두두두두 두두두두 막 치는 거예요이쪽은 잠 못들죠그럼 우리는 이웃사랑을 하고 있어요안 하고 있어요드럼 소리에 우리 목숨 날아갔죠그게 바로 이웃사랑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경찰신고 해야 되겠죠그게 이웃사랑입니다그럼 경찰서에 그 사람들이 밤 열두시에 한다고 잡혀가겠죠그럼 우리는 박수를 쳐야 합니다이게 이웃사랑입니다따라서 이웃사랑이란 이미 구원받은 자가 하는 모든 행동이 이웃사랑입니다내가 느낀 아픔이 곧 주님이 이 땅에서 느낀 아픔과 같은 성질의 아픔주님의 속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반대 경우를 봅시다이쪽에서 두구두구두구 팡쳤다성질 같으면 가서 이거 뭐야하고 싶더라도예수님이 아직 오지를 안했어요메시아가 아직 오지를 않았으니까 어떻게 됩니까이건 주께서 주신 테스트이번 수능 25번 문제에요.이쪽 집에서 드럼을 칠 때, 1참는다. 2신고한다어느 쪽이 주의 말씀을 닮느냐정답은 1참는다그거 참아서 그 사람 지옥 갑니다그게 바로 지옥 가는 일이에요그걸 참으면 나의 마일리지가 쌓이겠죠그러면 주의 사랑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누구 사랑으로 구원받습니까?

 

그전부터 내가 참고참고더 쉽게 말해서 내려놓고내려놓고은장도 하나 들고 참아야 하느니라참아야 하느니라두구두구두구해도 참아야 하느니라참아야 하느니라누가 점점 더 거룩해져요내가 거룩해지죠그런 식으로 수년간 계속하게 되면 뭐가 깨지기 싫어요콘택600처럼 중간이 깨지기 싫은 거예요나의 이 고귀한 동질성수년 동안 교회 다니면서 그 업불교용어입니다쌓고 쌓은 그 업을난데없이 드럼 치는 청년 하나로 인해서한꺼번에 내 고귀한 내 경건성을 거기다가 다 깨트리는 바보 같은 인간이 어디에 있습니까주여저게 마귀의 시험이군요이때 정답은 참아야 하느니라참자참자참자!

 

이게 바로 마귀에 속한 자고 하나님한테 속하지 않은 자입니다주의 본질에 속하지 않은 사람십자가에 속하지 않은 사람자기 행동으로 자기가 스스로 구원의 합격 시도하는 사람그 사람이 바로 마귀의 자식이에요마귀의 자식입니다아까 뭐 궁금해요오백 원 했는데해답 보니까 어떻습니까오백 원 가치가 되죠이거 알면 여러분의 오백 원은 아끼게 된 겁니다오백 원 아낀 거예요.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뭐냐나는 진즉에 박살나고 깨어져야 할 인간이 그동안 내가 착하게 살면 혹시 나를 잘 봐줄까 하는이미 시험이 끝났는데메시아는 이미 지나갔어합격된 자에게 이미 통지서를 줬음에도 불구하고옛날 그 행세, ‘착하게 살면 구원받겠지.’ 라는 그 행세에 대해서 정면으로 찾아와서, “그게 아니야이것들아!” 해가지고 박아버렸을 때,그게 깨어졌을 때, ‘아하내가 주님의 사랑을 내 쪽에서 야금야금 갉아먹었구나내가 앞장서서 나의 착함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피를 모독했구나.’ 이게 바로 마귀가 나를 가지고 놀던 전형적인 수작이었던 겁니다수작못된 짓이에요.

 

아벨은 순순히 죽었습니다하나님께서 아벨을 죽일 때, “형 온다피해라!” 그런 이야기 했습니까안 했습니까? “아벨아주의해라형 성질나서 지금 더럽데이아벨 피해피해뭐해?” 하고 알려줬습니까안 알려줬습니까하나님은 가만히 있었어요뒤에서 짱돌가지고 동생을 죽였습니다죽이고 난 뒤에 뒤늦게 와가지고, “가인아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호소한다.” 이미 상황 끝났는데이미 상황 끝났잖아요.

 

요한복음 11장하고 어쩌면 똑같습니까시름시름 오빠가 아플 때마리아가 미리 전갈을 보냈습니다. “예수님 빨리 오세요남의 병이나 고치지 말고 사랑하는 우리 오빠 병을 고쳐주세요.” 맨날 한식집에 가서 밥 먹여주고 스테이크 집에서 다 구워주고이렇게 한 집이니까우리부터 우선순위, 0순위해서 고쳐달라고 했는데 안 와요죽고 난 뒤에 왜 오십니까죽고 난 뒤에?

 

그래서 이번 주일 설교에 오용익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마리아는 예수님과 자기 관계를 자기 신앙을 북돋아 주는 분으로 오해했다는 거예요근데 실제로 오신 예수님은 돋아주기는커녕충동이에요박살내려 온 겁니다그것도 신앙이라고?? 그것도 신앙이야니 신앙 깨부수는 것이이게 진짜 앞으로 내가 십자가 질그 신앙이라는 이름의 죄를 위해서 내가 대신 죽겠다내가 신앙했습니다내가 믿습니다하는 그 죄를 위해서 내가 대신 죽을 거야오빠는 너를 위해서 죽었다.

 

그리고 오빠를 다시 한 번 불러내죠이 세상에서 고생하다가 이미 제대했는데이미 예비군 제대했는데이쪽 세계메시아 이후에 왔는데이제는 여동생 잘 만나가지고 군대에 또 오게 됐어요다시 이 세상에 오는 거예요오니까세상은 다시 예수님만 죽이는 것이 아니고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다시 살아난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합니다세상에두 번 타는 것은 귀뚜라미 보일러가 두 번 타지귀뚜라미 보일러가 두 번 타는 것을 아십니까귀뚜라미 보일러 선전 보면 위로 한 번 타고 거꾸로 한 번 타고 두 번 탄다는 거예요나사로가 두 번 죽었습니다이런 팔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