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뜻

손 목사님에 대한 제 생각(신직수)2006.11.9

아빠와 함께 2013. 1. 28. 11:09

손 목사님에 대한 제 생각..ㅋ 
신직수   2006-11-09 23:34:12, 조회 : 164, 추천 : 3

손 목사님의 "인간과 성도"에 대한 이 목사님의 장황한 글에 대해서

06 여름수련회 둘째 날 저녁 10시쯤 손 목사님과 오 목사님의 충돌^^시

제가 옆에서 구경했는데, 그 때도 손 목사님은 성경연구의 칼럼방에 있는 "인간과 성도"에 대한 내용을

한참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저는

느낌상으로만 이 목사님의 글처럼 느꼈습니다. 그냥 느낌상으로만요..ㅋㅋ

그런데, 말씀을 듣다 보니 그냥 성도의 적극적인 의미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당시 제 결론은 오 목사님의 말씀과 손 목사님의 말씀이

말씀의 느낌상 자신의 주관적인 강조점만이 다를 뿐 똑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ㅋ

 

그러니까 손 목사님의 말씀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경적 생각들을 이미 다 깔고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은 성도로서의 적극적인면인데,

주님의 강력한 피의 효과로 인해 성도의 삶에 나타나는 사건은

성도에게 주님께서 "그 건은 너의 믿음에서 나온 결과다." 라고 칭찬해주시는 것이고(설명할 수 없게ㅋㅋ)

또한 이런 것이 아닐지라도 성도가 이런 은혜를 바탕삼아

의도적이라도 주님을 위해 "주의 이름을 증거하는 삶을 살자" 는 의미로 저는 들립니다.

글 쓰기 전에도 한 번 다시 읽어봤는데, 저는 손 목사님의 글에 한 표 던집니다.

 

쬐끔만 오해하고 읽으면 이 목사님의 장황한 글처럼^,

또한 몇몇 분들이 그렇게 보시는 것 같은데요, 저는 그렇게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말씀드렸듯이 저도 그렇게 느낌상으로만 그렇게 느꼈습니다.

 

또한 이 목사님의 글, 즉 손목사님의 글의 고유 의미는

주님과 손 목사님의 문제라는 글에 한 표 던집니다.

그 글은 주님과 손 목사님과의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손 목사님께서 제대로 말씀하시기 전까지는요

즉 손 목사님께서 글을 지우시지 않는 이유가 충분히

손 목사님의 마음에 그 글에 대한 고유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손 목사님하고 한 번 같은 방에서 몇몇 목사님들과 함께 잔적이 있고 ㅋㅋ

대화도 몇 번 안해봐서 손 목사님에 대해 암것두 모릅니다.

그냥 손 목사님에 대한 제 느낌이지

손 목사님을 변호해주고 싶은 마음도 적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도 없는

상태서 저 또한 대전에서 대강 아픈 맘으로 이 글을 써 보았습니다.

 

암튼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에 대해 제가 순진한 맘으로 글을 썼다면...걍 맘 아플뿐이죠..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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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손 목사님에 대한 제 생각..ㅋ 
이근호   2006-11-10 07:11:02, 조회 : 167, 추천 : 1

저는 손목사님을 접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을 어떤 근거에 의해서 고백하는지를 느껴봅니다. 

과연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는지

아니면 자신은 이제 자력으로 전혀 방종을 못하는 의인이 되었음을 증거하는 '자기 긍정자'인지를 말입니다

만약 나오는 것이 '자기 긍정'이 나온다면 두고두고 어린 아이에게도 책망 받아야 마땅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라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 본인도 말하기를, 설사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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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손 목사님에 대한 제 생각..ㅋ 
신직수   2006-11-10 07:29:17, 조회 : 140, 추천 : 0

맞습니다..목사님,
진정 자기긍정이라면 어린아이에게도 책망받아야 합니다.

저도 진정 십자가 피 앞에서 자기부정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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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따구 
방정희   2006-11-10 11:08:35, 조회 : 155, 추천 : 0

뿔따구
마태복음 20장
천국은 포도원 품군을 찾는 집 주인과 같으니.
주인은 하루 한 데나리온씩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일한 시간은 다 다릅니다.
하루 종일 일 했든지, 1시간을 일했든지, 그들에게  주어진 돈은 모두 한 데나리온.
그런데 누가 뿔따구가 났는가?

하루 종일 일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아침부터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받고 포도원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할 일 없어 빈둥 빈둥 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일한 시간도 자신과 비교하면 억굴하고, 열받고, 뿔따구가 날 정도입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따지지요.

“내가 선함으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주인의 선함을 오히려 자기 입장에서 보니 주인은 악한 주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뿔따구가 났습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 말씀을 스스로 피해 갈 자가 있을까요?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으졌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되니, 또 다르게 뿔따구 난 사람이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24장입니다.
흔히 말하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 하나에게는 금 두 달란트, 하나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을 너무너무 잘 압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주를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왜 뿔따구가 났는가? 주인이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분인데, 굳이 내가 무엇을 행할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주신데로 잘 두었다가 그대로 내어 놓으면 되지요.
그러면 그동안 그는 무슨 일을 했을까요?
주인의 일을 했을까요? 자신의 일을 했을까요?
우리는 뿔따구가 납니다.
자신이 아침 일찍부터 일했다고 뿔따구가 나고, 그래서 그 뿔따구로 어차피 주인이 다 알아서 할테니 나는 나의 탐욕을 따라 살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기존의 목사들은 무엇에 대해서만 뿔따구를 낼까요?
전자에 대해서입니다.
마태복음20장같이 해 버리면 인간이 할 일이 없네요. 뼈빠지게 봉사한 바울이나 죽을 때 예수님을 믿은 강도가 차이가 없는데...교인들이 봉사하지 않겠지요.

그래서 땅의 원리를 끌어당깁니다. 일한 만큼 받는다는 논리지요.

그러면 십자가 마을을 즐거 찾는 목사들은 무엇 때문에 뿔따구 날 까요?
바로 후자입니다.
주인이 다 알아서 할테니 나는 나의 탐욕대로 살겠다는 것에 대해서 뿔따구가 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해 뿔따구가 날까요?

그래서 이들은 다시 율법을 끌어 당깁니다.
명령법을 끌어당깁니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자신이 주의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뿔따구가 나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신 분이 주님이심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찬찬히 살펴보니 모든 것은 목사하기 나름이라는 것입니다.
이근호목사처럼 하면 이근호 목사 신학을 닮고, 다른 목사 처럼 설교하면 그 목사를 닮고..
사실은 겉모습만 비슷비슷할 뿐인데... 속고 있지요.

죄인의 본성과 십자가는 너무 아득히 멀리 떨어져 ...

정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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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된다.” 
곽진계   2006-11-10 17:26:39, 조회 : 169, 추천 : 0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된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입니다. 철학적 문제는 문법의 혼동에서 오는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비트겐슈타인의 이 말은 신학적인 문제에도 적용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또한 진중권은 “미학 오딧세이”에서 바벨의 언어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인간의 교만(타락)과 함께 언어가 타락하여서 혼잡해졌다는 것이지요.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여깁니다. 최초의 언어인 아담의 언어는 해석이 필요 없었죠. 그러나 인간의 타락과 함께 언어도 타락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언어의 조건하에서 상대방의 말은 해석이 필요한데 우리는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귀를 기울여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오해하곤 합니다. 성경의 해석도 자신만의 방식-이미 조건 지워진-대로 해석을 해버립니다.

우리의 언어상황이 이렇다면, 솔직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조금은 겸손한 마음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십자가마을’에서의 현재 주고받는 글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가 있어,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글들을 보지 못하는 ‘누’가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봅니다. 이 또한 주님의 계획이면 할 수 없지만요.

주님의 인도하심을 우리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논의들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지혜가 필요하리라고 생각해봅니다.

비복음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여야 하지만(그저 신발의 먼지를 털면 됩니다.) 그 사람 또한 긍휼이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말씀을 통하여 오직 주님의 은혜의 우발성(?)에 감사하는 자들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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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침묵보다 앞서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이준   2006-11-10 23:29:49, 조회 : 144, 추천 : 0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삶의 형식의 일치"라는 것을 언급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을 '언어의 작동가능조건'으로 삼기 때문인데, '언어의 작동가능조건'이란 쉽게 말해 다른 이와의 대화의 가능성, 즉 일상 대화뿐만 아니라 토론과 논쟁, 합리적 논증 등을 가능케 하는 보편성을 담지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바로 앞 문장의 "-해야 함"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것은 철학자들에게 있어서도 당위성 내지는 지향적인 것이지, 필연성의 차원은 아니라 보여집니다.

말씀하신대로, 위와 같은 철학적 사유의 성격 또한 신학의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논지는 다르지만, "보편성"이라는 말을 따로 떼어내어 달리 적용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된다"는 명제와 "삶의 형식의 일치"가 의미하는 바, 문법적 성격을 띠고 있는 철학적 사유의 보편성(과 그러한 보편성을 전제로 오고 가는 토론과 논쟁이 지닌 의사소통 가능성) 중에 어느 쪽이 더 보편적일까 라는 의문을 던져 봅니다. 제가 보기엔, 아무래도 후자 쪽 같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타락한' 언어가 특수성(보다 엄밀히 말하면 문법적 한계성, 표현의 한계성이라는 의미에서)을 띤다하더라도 보편성(보다 엄밀히 말하면 앞서 언급한 "대화의 가능성")이 우선적으로 적용됨은 아담 세계의 엄연한 현실이라 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는 아담의 타락성이 보편적 속성이듯 타락한 아담의 언어 표현의 한계성이나 문법적 문제성 또한 보편적인 게 아니냐고 반문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경우, 즉 특수성에만 눈길이 가 있다면, 아담 사회의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적 질서조차 성립될 수 없을 터이며, 게시판을 통해 오고가는 대화나 논의 자체도 애당초 성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칼럼게시판과 자유게시판에 게재되는 글들은,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태생적으로 문법적 한계를 띤 언어를 구사하는 인간들에 의해 작성된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런 한계를 충분히 염두에 두면서도 의사소통 가능성이 기본적으로 담지하고 있는 형식적 보편성에 비춰볼 때 그 특정한 글들이 의도하고 있는 바는 충분히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 점입니다.

만약, 특정한 글에 대한 진의를 독자(해석자)가 글쓴이의 원래 취지와는 다르게 이해하고, 그러한 어긋난 이해(혹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창작 비평")를 자신의 글을 통하여 일삼았다면, 원저작자로서는 본연의 책임을 통감하면서 자신의 원저작에 대한 타인의 몰이해(내지는 '왜곡'이라는 의미로서의 '창작 비평')에 대한 별도의 이해 교정 내지는 원래 취지를 재언급하는 반응이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한동안 지루하게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대화에 분명히 예수님께서 개입하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대화를 근본적으로 이끌어가시는 분이 예수님이 맞으시다면, 문법적 한계성을 띤 글들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글들의 오고감을 통하여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들을 해나가실 것이라 사료됩니다.

참고로, 어떤 이들에게 있어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또는 '모른다'를 의미할 수 있음입니다. "말할 수 없는" 모든 사례들을 어디까지나 '언어적 표현의 한계의 문제'로 처리해버릴 경우, 정작 '모르고 있는' 이들의 '모름' 내지는 '바르게 알지 못함'까지도 진위의 문제가 아니라 문법적 한계, 표현상의 한계, 나아가 독자의 해석 오류 등으로 취급될 소지가 있습니다. 방금 저의 이러한 언급은 특정인을 겨냥한 발언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든 내면적으로든 진리를 중심에 두고 이루어지는 보편적인 현상으로서의 토론이나 논의와 관련된 중대한 사안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독자 제위께 드리는 참고 글******

세상 사는 지혜 
박기삼  (Homepage)  2006-11-01 10:45:26, 조회 : 109, 추천 : 1

...(생략)...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누구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아무리 그 뜻을 찾아보려고 애를 써도
사람으로서는 그 뜻을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그 뜻을 아는 지혜가 있다고
나팔을 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사람 역시 정말로 그 뜻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re] '모르는 것'과 '자랑하며 증거해야 될 것'의 차이 
이근호   2006-11-01 11:30:15, 조회 : 98, 추천 : 5

그렇다고 해서 성도가 되어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를 증거하며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성도가 일반인들처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이냐"하고 도를 점차 닦아 나가는 처지라면,
"그래, 어느 인간이 어찌 모든 것을 알겠어"라는 말로 나즉히 낮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조용히 인생을 마감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렇게되면 사도 바울이나 스데반 집사처럼 그렇게 뭔가 안다고 설칠 하등의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중략)...
왜냐하면 '주님으로부터 개시된 피조물'이기에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다가(행 1:8) 주께로 되돌아야 될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모른다는 것'과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증거해야 될 것 사이에는 이렇듯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한 차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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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습니까? 이근호목사님께 
손무성  (Homepage)  2006-11-12 01:48:06, 조회 : 187, 추천 : 24

지난 11월 7일 부산 강의 후 답변을 듣지 못했던 질문을 다시 드립니다.

공개적인 답변 부탁드립니다.

"이근호목사님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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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습니까? 이근호목사님께 
이근호   2006-11-12 08:28:59, 조회 : 176, 추천 : 0

예수님은 주시요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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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좀 더 시원한 답변을 기대합니다. 
김영길   2006-11-12 08:34:50, 조회 : 166, 추천 : 7

정말 충격적인 질문입니다.

설마 이근호 목사님께서  썩어빠진 나무십자가는 믿지만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큰 문제입니다.

11월 7일 부산 강의후 지금까지 손무성 목사님의 이 물음에 대하여

이근호 목사님께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무슨 이유가 있지나 않을까?

그렇게 묻는 질문자체가 너무나 유치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답변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만약 이근호 목사님께서 이물음에 답변을 하지 않으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이근호 목사님을 달리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근호 목사님 시원한 답변을 해주세요

손무성 목사님께서 유치한, 혹은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어떠한 뜻과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답변을 하실때 이근호 목사님의 특유의 단답형 형식을 가지고

짧게 "예수님은 주시요 그리스도 이십니다"라는  소극적이고 성의 없는 답변 보다는

좀더 소상하고 모든 지체들이 이해 할 수 있는 글을 올려 주시면

모든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손무성 목사님께서 납득하실 만한 답변, 즉 그 이면의 상황적 설명 같은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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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습니까? 이근호목사님께 
정수정   2006-11-12 09:55:51, 조회 : 157, 추천 : 0

>예수님은 주시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근호 목사님께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습니까의 질문에 "예 저는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습니다"라는 고백과 "예수님은 주시요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답변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쉽게 이야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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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이근호   2006-11-12 08:38:53, 조회 : 179, 추천 : 5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답변해 주는 자도 역시 정신이상자일 것입니다.)

1. 어제 내가 어떤 꿈을 꾼 것인지 누가 좀 나에게 알려주세요, 제발요
  (내 꿈을 맞쳐봐 )

2. 당신이 꾼 꿈을 나에게 이야기해 주면 그 꿈이 진짜 당신이 꾼 꿈인지 내가 말해드릴 수 있을텐데....

3. 제발 나도 당신도 똑같은 꿈을 꾸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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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김영길   2006-11-12 08:46:07, 조회 : 169, 추천 : 4


이근호 목사님!

20여년 동안 한 솥 밥을 먹은 손무성 목사님을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쯤으로

몰아 붙이시는 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손무성 목사님이 뻔한 질문을 하기 까지는 많은 고뇌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근호 목사님 특유의 단답형 답변 보다는

손무성 목사님께서 그러한 질문을 하기 까지의 어떠한 상황적 근거를 가지고

답변을 해주셔야 옳다고 봅니다.

이근호 목사님 자신의 의도만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소극적인 답변은

오히려 불씨만 남겨두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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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김형희   2006-11-12 13:01:37, 조회 : 147, 추천 : 1

어느 집에 손님이 찾아 왔습니다. 처음으로 방문한 사람입니다.
집주인과 여러가지 담론이 시작되었습니다.

몇마디 시작하자 마자, 집주인이 손님에게 질문을 합니다.

" 당신은 나쁜 사람입니까? 착한 사람입니까?..

이 집주인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는 것인 올바른 답변이 될까요?..


오랜동안 한집에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훤히  잘알고 있습니다.

이 두사람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갑자기 질문을 하였습니다.

" 당신은 나쁜 사람입니까? 착한 사람입니까?...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는 것이 올바른 답일까요?.

님이라면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 당신은 거듭났습니까?"...당신은 구원받았다는 것을 믿습니까?..당신은 성경을 믿습니까?..
당신은 주님이 구세주인 것을 믿습니까?.. 당신은 사도신경을 믿습니까?..

이와 같은 질문은... 세상 교회가 자신들과 한편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하는 질문들이 아닙니까?..

과연 이런 질문을 한 의도가 무엇일까요?..

이근호 목사가 거짓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내가 쓴 글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장받기 위해..

나는 당신과 한 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십자가 마을 사람들은 누구보다 잘 알텐데요.. 그와 같은 질문을 십자가 마을 사람들이
한다는 것은 안타 까운 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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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이근호   2006-11-12 13:16:05, 조회 : 148, 추천 : 1

결국 제가 손목사님으로부터 복수를 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자라는 말이 되는군요.

손목사님의 목숨을 건 보복과 보상과 복수의 칼날을 꽂을 상대자로서 제가 겨냥되어 있다는 말이군요.

즉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복수 코스'로 접어 들겠다는 것인데.  

글쎄요...

손목사님께서 저는 복수와 보복의 대상으로 보실까요?

저를 통해서 20년 동안 많이 배웠다는데....

혹시 이런게 아닐까요?

"이근호 목사 당신은 남들에게 오직 주님만 증거하라고 해놓고서는 왜 자기 자신의 신학과 잘남으로 예수님 십자가를 빙자해서 남을 정죄하는게 활용합니까? 그것은 결국 십자가 증거를 빙자해서 자기 빼놓고 남들을 다 육으로 규정짓는 심판자 행세하는게 아니고 뭐에요?"

뭐 이런게 아닐까요?

만약에 이런 취지하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사도 바울이 십자가 복음이 무슨 취지와 맥락에서 증거했는지 말입니다.

손무성 목사님 생각에

"이근호, 너 입다물라!" 라는 그런 취지가 아니라면

결국 '십자가+ 그 무엇', 이것이 사도 바울의 십자가라고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십자가라면 저는 추호도 양보할 생각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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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김영길   2006-11-12 08:46:07, 조회 : 170, 추천 : 4

[re] [re]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이근호   2006-11-12 09:06:42, 조회 : 160, 추천 : 2

숱하게 언급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무슨 말씀을 주셨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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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김영길   2006-11-12 09:21:17, 조회 : 165, 추천 : 4

숱하게 언급을 해 주었는데도

납득하지 못하는 손무성 목사님, 그래서 정신이상자의 질문이라고 받아 들이시는 군요.

그렇다면

숱하게 언급을 해주어도 납득시키지 못하는 이근호 목사님의

노력의 한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요지는 손무성 목사님의 질문을 정신 이상자의 질문이라고

몰아 붙이는 것은 조금 심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서로의 똑 같은 입장에서 보면

이근호 목사님도 정신이상자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독자들이 함께 납득할 수 있는 상황적 근거를 통한

답변을 하셔야 독자들이 이해할 것이고

결론적으로 십자가 마을의 독자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손무성 목사님께서 올리신 질문에 대한

독자들의 많은 추천수를 보더라도 거기에는 많은 관심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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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서경수   2006-11-12 09:41:31, 조회 : 169, 추천 : 2

손무성 목사님의 질문은 전혀 불필요한 질문입니다.

그동안 이근호 목사님이 올리신 글을 통해 이미 해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굳이 이런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저는 손무성 목사님께 "목사님은 예수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 이유는, 손 목사님이 최근에 올린 글을 보면서, '이분이 믿는 예수와 내가 믿는 예수가 다르구나' 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김영길 님께서 자꾸 '손무성 목사님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말씀이 응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손무성 목사님에 대해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이 분명한 의사 표명을 왜 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시는데,

개인적으로는 전화로 메일로 너무도 분명한 의사 표명을 했습니다.

단,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던 것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란 기대와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희망마저도 접어야 할 상황이 온 것 같네요. 안타깝지만 이것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주님이 일입니다.

인간의 소망을 외면하시고 자기 뜻만 펼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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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이근호   2006-11-12 10:23:17, 조회 : 153, 추천 : 1


손무성 목사님께서

"나는 옛적부터 오로지 십자가 복음 뿐입니다"라는 말을 하시면 아무 문제없지 않습니까?

혹시 공개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홀로 주님 앞에 했을 수도 있고요...

저는 희망을 멈추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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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이성민   2006-11-12 13:31:27, 조회 : 153, 추천 : 1

저희가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


이 말씀에서 정작 세례요한도 자기 자신이 바로 앞 세례를 주고 비둘기같은 성령의 임함의 역사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음에도
시간이 지나 예수님이 정말 그 메시야인가 의심할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확인차 다시 여쭈어본듯 한데 저렇게 물었다고 요한이 잘못되었다고 말할자 누가 있겠습니까?

그와 같은 맥락으로 손무성목사님도 그런 심정으로 이근호목사님께 질문드린듯 싶습니다.
이목사님께 부탁드리고 싶은것은 그냥 사랑하는 심정으로 직접 답해드렸으면 하는 생각이 있는데 그게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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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이근호   2006-11-12 14:56:20, 조회 : 162, 추천 : 0

도와줄 때, 마치 '나는 당신을 도와줄 위치에 있습니다'라는 입장에서 시도하는 것  또한 마귀에게 시험든  태도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사람에 대해서 도와 줄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하나님께서 직접 관리하시는 분입니다.(그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이 어떠한 일을 하시는 것으로 언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구도부터 도움받는 것이 도움받는 자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마치 도움받는 자가 도움 주는 자보다 질적으로 뒤떨어지기에 '나를 따라오고 나를 본받아라'하는 것처럼 오해를 살 소지가 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것은 십자가를 거론하면서 그 십자가를 가로막는 짓이 됩니다.

따라서 성도가 누구에게 권면할 때도, 바른 복음만을 증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주님을 증거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도움이란, 나타난 결과를 가지고 그 시도한 가치를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쉽더라도 그 아쉬움을 접어야 합니다.

결과는 주님이 하실 일로서 나타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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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김영길   2006-11-12 09:21:17, 조회 : 166, 추천 : 4

[re] [re] 주의를 요합니다. 
이근호   2006-11-12 09:56:41, 조회 : 161, 추천 : 2

제가 손 목사님을 정신이상자로 간주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손 목사님께서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했는지 모릅니다.

단지 다음 두 가지 점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1. 이근호 목사가 예수님에 대해서 다른 예수님을 주장하는지 여부 

2. 과연 '믿는 것 맞는지' 여부

1의 경우, 이근호 목사가 주님께 받은 것이 틀렸다고 손 목사님은 주장할 입장에 놓여 있기에 그런 질문은 형제로서 마땅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쭉 해온 모든 것이 이런 입장에서 해 온 일들입니다.  

2.의 경우라면 정신병자나 할 질문입니다.

2의 경우라면 정신이상자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믿음'을 증거하거나 증명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증인' 밖에 안됩니다.

즉 '나는 믿는 자 맞으니 제발 날 구원받은 형제라고 간주해 달라'는 것 밖에 안됩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 사람을 의식하는 모습입니다.

진정한 성도라면, 사람들이 인정하나 아니하나 주님께서 본인에게 준 것을 증거하면 그만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예수님께서 오직 택한 자만 건져가실 뿐이기 때문에 (노아 때는 자기 식구만 구원받았음)

남들에게 "내 믿음이 진짜 믿음을 알아줘"라고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지금 주님이 엄연히 살아계신데 왜 사람들이 나에게 내린 판단이나 심판이나 평가를 의식할 필요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만약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면 결국 '인간의 힘을 기대하는 정치적 집단'이 되고 맙니다.

'이 십자가 마음은 참 신자들만 있기에 진짜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모임이다. 함부로 얕보지 말라'라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곧 "십자가 마을'은 곧 이단 집단 맞습니다"라는 것을 스스로 광고하는 것 밖에 안됩니다.

십자가 마을 그동안 특징은, "이상스럽데도 저는 십자가 복음만이 구원의 능력임이 알게 되었습니다" 믿든지 말든지요"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 너무 좋아서 교제를 나누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어떤 자가 등장해서 "십자가 복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야, 방종이 없어야 돼. 방종이 없도록 가르쳐야 돼. 그것은 방종이 전혀 없는 사람이 나서야 돼"라고 나선다면 이것은 제가 보기에  '주님이 알려준 바 하고 다르다'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살아계시기에 , 그런 십자가 복음에 위배되게 하신 발언도 주님께서도 허락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망해야 될 사람(인간을 의식하는)은 망하는 것도 주님의 뜻인데

감히 어느 인간이 나서서 결집을 다지고 나선단 말입니까?

성도는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십자가만 자랑하는 사람의 자질이나 능력에서 그런 고백이 나왔다고 보지 않고,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나온 고백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20년 후에, "십자가만 다가 아니더라"라고 나선다면, 우리는 "당신은 이단이었군요"라고 하다가, 다시 20년 후에 "정말이지 이제사 알았습니다. 십자가 피만이 중요하다는 것을"라고 나온다면 우리는 "당신은 참으로 주님의 종이군요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아닌것은 아닌것이라고 언급해야 마땅한데, 귀하께서는 주님이 엄연히 눈부릎뜨고 살아계신데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습니까!  

귀하께서 주님께 직접 받은 뜻은, 십자가 였습니까 아니면 믿은 사람들을 결집하라고 한 것입니까?

귀하께서도 도대체 무엇을 증거하고 무엇을 내놓을 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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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김영길   2006-11-12 09:21:17, 조회 : 166, 추천 : 4

[re] [re] 정신이상자가 하는 질문 
James J Lee   2006-11-12 14:22:30, 조회 : 146, 추천 : 3

김영길씨 안녕하세요?
올리신 글들을 잘 보았습니다.
많이 공감하고 그 마음 또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마을의 글들이나 강의들은 거의 이근호 목사님의 십자가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몇년동안 저는 거의 다 읽어보았습니다. 직접 올리신 손무성 목사님께서도 읽어보지 않으셨겠습니까?
처음으로 이곳을 들린 분이 아니고 이곳을 만드시고 운영하시던 동료라서 저 역시 충격이 크군요.
처음 갈라디아서 2:20과 '인간과 성도'에 관한 성경적 바른 이해'를 읽을 때는 뭔가 오해를 하셨겟지 생각하고
곧 수습하실줄 알고 기다렸습니다. 그 런데 그게 아니군요.

이 곳에 들르는 많은 분들이 십자가의 복음 때문에, 복음이 그립고, 복음을 아는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의 피가 고마워서 매일 오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전해도 듣고자 하는 사람들도 없고, 전할 곳도 없고, 복음을 전하려고해도 갈 곳조차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다시 대하면서 왜 이 세상이 망해야하는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실이 주님의 저주가 아니고 성도의 가는 길이라고  주님의 약속을 다시 기억하는 장소로 생각합니다.
결코 십자가라는 이름하에 취향이 맞는 사람들의 모임은 아닌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해하고 한발씩 물러서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마을은 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복음만이 증거되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닌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와 다른 것을 들어내기 위해서 나타난 것을 주님의 다스림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곳을 오래 들르신 분들은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 러나 처음 들리거나 이제 복음을 처음 대하는 분들은 좀 혼돈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빠른 수습을 바라는 마음에 이렇게 글을 올렸습니다. 결코 님의 말씀에 반박하고자 하는 뜻은 아닌 것을 이해하실줄 압니다.

이런 상황을 만드신 주님의 뜻을 기다려야겠지요.
주도 한분이시고 성령도 한분이시고 하나님도 한분이시니까요

 

2013.3.3.글을 읽고 나서:

자신의 정체를 교묘하게 숨기고 한편을 옹호하면서 남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가장 좋은 말들만 모아서 한다고 그렇게 인정받을까

주님의 알곡과 가라지를 갈라내시는 솜씨라고 놀라다가도

내가 바로 양쪽을 오락가락 하는 자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칠때면 입이 다물어진다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는 이목사님의 말씀이 의연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