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뜻

인간과 성도에 관한 성경적 바른 이해(손무성)2006.11.4

아빠와 함께 2013. 1. 28. 10:55

'인간과 성도'에 관한 성경적 바른 이해 
손무성  (Homepage)  2006-11-04 13:33:22, 조회 : 324, 추천 : 21

‘인간과 성도’에 관한 성경적 바른 이해
(부재: 성도가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해야 하는 이유?)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담의 안에 있으면 살다 지옥가야 하는 존재다.
그러나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아닌 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성령이 없다. 그러나 성도는 성령이 내주한다.

그러면 무슨 차이가 나는가?

인간은 죄만 나오게 된다. 그러나 성도는 성령이 거하는 전이기에 성령 안에서 성령의 열매와 부르심의 목적에 따라 주의 이름을 높이며 살아가게 하신다. 또한 어떨 때는 그 부르심의 목적과 전혀 다르게 성령을 좇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육체의 일을 토해놓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죄만 짓는다는 말은 맞지만, 성도 역시 죄만 짓는다는 말은 맞지 않는 말이다.

성도는 부르심의 부름에 합당하게 성령 안에서 행하게 하여 주의 이름만을 높이게 세상에서 불러냈기 때문이다. 즉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주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기 위한 존재가 성도이다.

그런데 혹자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도 육을 가진 인간이다. 고로 모든 인간의 범주 안에 성도까지 넣어 인간은 죄만 짓는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도를 보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성도를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스바냐 3장17절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왜 성도를 바라보시는 시각이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가?’ 만약 혹자가 말하듯이 ‘성도는 인간이다. 고로 인간은 죄만 짓는다’라는 논리로만 본다면 성도는 여전히 아담 안에 있기만 할 뿐이다.

성도가 십자가 사건 이후에도 아담 안에 있는 상태라면 하나님께서는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정도로 좋아하실 리가 없다. 타락한 죄의 종인 상태와 같은 인간이라면 오직 마귀에게 사로잡혀 자신을 위해 살다 죄만 짓다 지옥 간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을 좇아 주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성도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너(성도)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것’이다.

바울에 의할 것 같으면 성도는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아담 안에서 -> 예수 안으로 이사한 사람들이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데살로니가후서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권속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로마서16:11)

주 안에 있는 성도는 갈라디아4장8-9a절에 보면 이런 상태다.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이 상태를 쉽게 설명하자면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예수님께서 눈뜨게 해 주셔서 뜬 상태와 같다.

이전에는 색깔개념이 없었다. ‘빨간색 이다’라고 할 때 누군가가 빨간색은 ‘타오르는 불 색과 같다’라고 설명했을 때 붉은 색은 불과 같이 뜨거움을 연상하며 그 개념을 정립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빨간색을 본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개념이 정립된 것은 아니다. 소경된 자가 빨간색을 알게 된 것은 눈이 떴을 때 비로소 정립되는 것이다.

성도는 역시 날 때부터 소경되었다 은혜로 눈 뜬 자와 같다. 그러기 때문에 이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 하였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된 자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을 입어 하나님의 것이 된 자이다. 인간의 지각으로 알 수 없었던 숨어계시던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도 성도를 아신바 되었다. 이런 상태로 주 안에 있는 자들이 성도다.

앞에서 인용된 갈라디아서4:9a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이라는 말씀을 분석하면 이해 할 수 있다.

이 부분을 헬라어로 보자.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라고 하는 부분에서
1) ‘알뿐더러’ - ?ν?ντε?(그논테스)의 시제 - 분사, 제2과거, 능동 
2) ‘아신바 되었거늘’ - ?νωσθ?ντε?(그노스덴테스)의 시제 - 분사, 제1과거, 수동

먼저 헬라어 시제를 알아야 이해가 빠르다. 제 1,2과거라는 것은 헬라어에서 1회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용되는 시제다. 분사는 계속적인, 지속적인 사건이 반복됨을 내포 할 때 사용하는 시제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성도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상태에서 다시 주께서 살리심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1회적으로 알게 된 이후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자들이다. 또한 하나님 역시 성도를 1회적으로 알게 된 이후 계속적으로 성도를 알고 있는 분이 되셨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성도는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ανακαινουμενον 아나카이누메논: 분사)을 입은 자니라”(골3:10) 라고 하고 있다.

새 사람이 된 성도는 그냥 아담 안에 있는 인간으로 있지 않다. 성도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1회적으로만 알고 그치지 않고 계속적으로 알고 또한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도 계속적으로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가 된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새 사람 입은 성도의 근거를 어디에 두는가? 십자가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개역개정 갈라디아서 6:14-15)

바울이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는 이유가 무엇인가?

혹자는 이를 바울이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는 이유를 ‘인간은 내세울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십자가에서 죽었으니’ 라는 입장에서 ‘인간은 죽었다’에 강조점을 두기 위해 바울이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그렇지 않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바울이 말하고 있는 바를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 다음 문맥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갈라디아서 6:15)

새로 지으심을 받게 된 것이 할례냐 그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 강조점이다.

즉, 바울이 십자가 외에 자랑하지 않는 그 이유는 할례라는 육체의 흔적이 나를 성도로 새롭게 지으심을 받게 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 때문이다. 새 사람으로 새롭게 지으심을 받게 한 것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께 흘리신 피만이 그렇게 했다는 것 때문에 십자가 외에 자랑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십자가로 말미암아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성도는 어떤 목적을 위해 지음 받았나?

매일 같이 ‘너 십자가에서 죽었잖아’ ‘인간이라는 것이 뭘 해도 저주 받을 짓을 하게 되어 있어’ ‘살아봐! 네가 죄인 맞지’ ‘또 십자가 앞에 와서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나는 죄인인 것을 알게 된 의인입니다.’ 라고 하며 살라고 새 사람 되게 한 것일까?

아니다. 성도를 새롭게 지으심을 받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육체로 죽으신 이유는 따로 있다.

위와 같은 태도를 갖게 한 것 자체가 성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어 있는 인간’이라는 범주 안에 넣고 보려고 하니까 나온 발상이다.

성도는 예수 안에 있는 산 자다. 산자로서 타락하여 죽은 인간과 달리 부르심의 목적이 있는 자이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로새서 1:22)

그러므로 인간은 죄만 짓는다는 말은 맞지만 성도는 죄 지을 수밖에 없는 자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새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다 죄를 짓기도 하지만) 성령을 좇아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하나님 아버지) 앞에 세우고자하는 것.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게 된 존재로서의 목적’으로 성도 만드신 것이다.

불신자인 인간 속에서는 죄만 나온다. 그러나 천사도 깜짝 놀라고, 세상도 깜짝 놀라고, 마귀마저도 시기하여 넘어뜨리고 싶은 존재, 하나님마저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존재를 만들어 놓았으니 이것이 바로 성도이다.

그 누가 이 세상에 이런 존재를 만들었단 말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이런 차원에서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에서 ->새 사람을 입은 자로  만드신 목적을 따라 주 안에서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로서, 부활의 삶을 살아갈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성도를 십자가에 또 반복적으로 죽여야 되는 자로(죽는다, 죽었고) 취급하려하는 것에 대해 다시 검토되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전15:31)라는 표현과 골로새서3:3절의 말씀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라는 말씀에서 ‘나는 날마다 죽는다. 너희가 죽었고’를 다시 문맥상 바르게 읽고 바르게 정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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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과 성도' 
이근호   2006-11-04 14:40:32, 조회 : 216, 추천 : 1

무엇을 증거하겠다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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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과 성도' 
이준   2006-11-04 18:32:55, 조회 : 169, 추천 : 1

제가 읽어 본 바로는...

선물(은혜)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선물(은혜) 받은 인간의 가치도 무시하지 말라는 점을
증거하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글쓰신 분의 생각을 좀더 직접 듣고 싶습니다.
과연 제가 바로 본 것인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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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과 성도' 
손무성  (Homepage)  2006-11-04 19:44:30, 조회 : 175, 추천 : 1

잘못 보셨네요 다시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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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인간과 성도' 
이준   2006-11-04 20:24:28, 조회 : 166, 추천 : 1

"하지만, 저 역시 글쓰신 분의 생각을 좀더 직접 듣고 싶습니다.
과연 제가 바로 본 것인 지..."라고 분명히 말씀 드렸을텐데요.

다시 읽어봐도 그렇게 밖에 느껴지질 않습니다.

글쓰신 분의 생각을 좀더 듣고 싶습니다.

수고스러우시더라도 답글을 통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스가랴 3장 17절이 아니라 스바냐 3장 17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