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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예수님 얼굴이 우리 얼굴

아빠와 함께 2026. 8. 3. 08:24

사람의 얼굴은 늘 변하기 때문에 자기 얼굴이 고정되지 않습니다. 옛날에 찍은 사진 같은 것을 보면 처음에는 오랜만에 보니까 좋지만 자꾸 보게 되면 꼴 보기 싫어요. 왜냐하면 그 때 그 얼굴만 보이면 괜찮은데 젊을 때 얼굴을 통해서 옛날에 고생했던 게 아울러서 같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때 그 시절이 싫은 거예요. 딱 잊고 싶은 겁니다. 얼굴만 보면 괜찮은데 저 얼굴 때 같이 옆에 있던 친구 얼굴 보게 되면 그 친구가 돈 빌려줬는데 아직도 안 갚았다는 생각이 같이 떠올라서 지금이 괴롭죠.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인간의 얼굴은 본인이 모른다. 왜? 변하기 때문에. 자꾸 변해요. 그래서 인간의 얼굴에는 뭐가 있느냐 하면 과거라는 것이 누적되어 있습니다. 차곡차곡 누적되어 있어요. 인간의 얼굴은 과거의 얼굴이거든요.

그러면 변하지 않는 얼굴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인간의 변화가 골인 지점이 있어요. 인간의 얼굴이 변하는데 어디로 골인하는가? 한 줌의 재로 골인합니다. 오늘 어린이날특집인데 너무 지금 가혹하죠?

어린아이 얼굴에서 어른 얼굴이 정점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정점에 있던 얼굴이 삼십이 지나게 되면, 점점 더 삼십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뭔가 무너진다 할까. 퇴색된다 또는 퇴화된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가장 최절정의 좋은 모습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애써도. 아무리 권투하고 운동하고 북악산에 올라가봤자 점점 더 이 모든 것이 뭉개진다는 말이 옳아요. 점점 늙어지는 겁니다.

화장품 선전 같은 데 보면 종이에다가 촘촘히 그물 같은 거 오려놓고 홈쇼핑하는 사람이 그 그물에 손가락을 넣어서 찢어버려요. 여름의 피부가 이래서 되겠습니까? 촘촘해서 쫄깃쫄깃해야 되는데 딱딱하니까 그 구멍에 손가락 집어넣고 확 벌려버리니까 다 찢어지는 거예요. 여름 피부가 이러니까 바르세요, 이 화장품을. 이런 식으로 선전이 되는데 화장품 효과 떨어지면 마찬가지로 또다시 주저앉죠.

그래서 인간의 본얼굴은 죽음이다. 그냥 한줌의 흙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얼굴입니다. 그럼 왜 인간이 잠시 착각하게 만드는가? 이렇게 이쁘고 머리 길어서 연예인처럼 하고. 머리가 얼굴이 이렇게 예쁜가? 착각하게 하시는 그 이유가 뭐냐? 그 이유는 변화를 보게 하는 거예요. 누가 이 변화의 과정을 주도하고 있는가를 보게 하는 겁니다.

빨리 늙어서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 없잖아요. 자기 몸이 아프고 갱년기 되어서 온몸이 벌겋게 열 일어나고 이걸 누가 좋아합니까? 그러니 갱년기나 신종코로나를 보면서 여러분이 어떤 진리 같은 것을 찾아내야 돼요. 그게 뭐냐면 내가 아프고 늙고 죽는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러면 누구의 잘못이냐?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그러면 질문을 바꿔야 되겠죠? 누구의 잘못이냐는 질문지를 고쳐야 돼요. “누구 때문입니까?” 이렇게 고쳐야 되죠. 누구의 ‘잘못’이라는 말을 집어넣으면 악마가 평생토록 그런 식으로 훈육을 시켜놓은 거예요. 완전히 우리 인간을 정신병자 다 만들어 놨어요.

잘못했다는 생각을 자꾸 집어넣는데 반대로 잘했다는 생각도 잘못됐고 잘하고 잘못하고는 아니에요. 늙어가고 있는 것은 잘잘못의 문제가 아닙니다. 몸이 피곤한 것이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고 누가 끊임없이 손대고 있는 겁니다. 연관되어 있는 거예요.

요한계시록 1장 14절에,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이게 지금 누구의 얼굴이냐 하면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흔해빠진 인간들 얼굴이 아니고 예수님의 얼굴을 본 거예요. 놀라버렸죠. 인간인데 같은 류의 인간이 아닙니다. 아담류의 인간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뭔가 잘못한 거예요. 같은 인간들끼리 봤으니까 저 얼굴이 인간의 전부고 기껏해봐야 저 얼굴에 머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예수님의 얼굴이 같은 인간인데 우리 인간 얼굴과 같지 않은, 다른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이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 들었으니까 다시 한 번 복습합시다. 얼굴은 뭐라고요? 과거의 누적. 과거가 차곡차곡 쌓인 거예요. 자기의 과거가 자기 얼굴을 만든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그 빛나는 얼굴은 예수님의 모든 성과의 결정판이죠, 집대성이죠.

이걸 고린도전서에서는 뭐라고 하냐면 흙에 속한 얼굴이 있는 반면에 -얼굴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형상, 같은 말이에요- 흙에 속한 형상이 있는 반면에 땅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늘에 속한 형상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로서, 실제적으로, 가상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실제적으로 그걸 보여주었다 (고린도전서 15장). 그러니 너희들이 너 자신을 좀 닦달내지 마라. ‘이것은 나 때문이야, 내 책임이야’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아까 분명히 이야기했죠? 우리 책임 없습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내 차를 박았던 그것에 내 책임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인생도 하나의 차인데 우리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왼쪽에서 박을지 앞에서 박을지 뒤에서 박을지 이건 아무도 장담 못합니다. 다만 알아야 될 것은 언젠가는 박혀야 된다는 것, 언젠가는 죽어야 된다는 사실만큼은 우리가 미리 알아야 돼요.

따라서 죽으라는 말은 결국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나를 예쁘게 보겠다는 거예요. 네 얼굴을 어떻게 하라? 포기하라. 네 얼굴에 미련두지 말고 집착하지 마라. 그렇게 집착하게 되면 이렇게 인생 어렵게 사는 것은 다 나 때문이다. 내 탓이다. 내 탓 아니면 남 탓. 눈에 보이는 것은 같은 인간들밖에 안보인다 이 말이죠.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밧모섬에 잡힐 때에 누가 봐도 사도요한은 지금 벌 받고 있고 인생 조졌고 사도 인생 망가졌고 불쌍하고 ‘차라리 저럴 것 같으면 난 인생 안 산다’라고 그렇게 측은한 대상이 되겠죠. 그러나 요한계시록 1장 16절에 보면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차게 비치는 것 같더라” 해가 힘차게 비치는 것 같더라. 해가 하늘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만 예수님 얼굴이 해보다 더 힘차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 얼굴이 우리 얼굴입니다. 그 예수님 얼굴이 우리 얼굴이에요. 요한계시록에서 왜 예수님 얼굴을 보여주는 겁니까? 그냥 죽기를 기다렸다가 나중에 천당 가서 예수님의 영광처럼 하늘의 영광을 입어서 빛나게 하라는, 단순히 그 때, 죽는 날만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에요.

지금 우리 자신의 패가 버릴 패라는 사실을 알라. 내 인생에 대해서 닦달내지 말고 꼬치꼬치 잘했니 못했니 그거 따지지 말고 그러지 마라. 다른 인생 바꿔봐야 그 인생도 마찬가지에요. 그 인생도 삼십 넘어서 계속 주저앉고 있고 하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겁니다. 오죽했으면 ‘서른 즈음에’ 하겠어요? 그 삼십으로부터 점점 더 바이바이하는 거예요. 그저 내리막길로 가는 겁니다. 누구 책임 아니에요.

요한계시록 6장 마지막에 보면 마지막 때에 불신자들에게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해같이 빛나는, 해보다 더 생생한 주의 얼굴이 나타났을 때에 거기에 깔려죽는 사람이 하는 말이 16절,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예수님의 그 태양같이 빛나는 그 광채와 진노에서 ‘산들아 바위들아, 그동안 내 얼굴에 집착했으니까 이 얼굴을 좀 가려서 주님의 그 빛나는 얼굴 앞에 내가 얼마나 초라한지를 안 들키게 해 달라’ 이런 식으로 탄식을 하고 있죠.

우리가 낮에 해를 볼 때, 오늘은 구름이 깔려서 해가 없습니다만 해를 볼 때에 차마 못 보죠. 있지만 못 보잖아요. 그만큼 우리는 아직도 인생을 다 산 게 아니라는 사실. 다 산건 아니지만 우리의 도달지점은 미리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자기 책임을 너무 통감하지 마시고 일찍부터 천국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주께서 이끄신다. 이미 그 고정점을 향하여 가고 있다고 생각해서 남 탓하지 마시고 특히 내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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