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호

대전시민대학 강의1-2

아빠와 함께 2026. 8. 1. 21:04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면서 기원전 4천년 경에, 교재 지금 1페이지 위에서 네 번째 줄입니다. 신석기 혁명이 일어났고, 영국에 가면 거석 기념관이 있는데, 돌을 낯선 곳에 허허벌판에 세워 놨어요. 도대체 무슨 용도로 돌을 저렇게 세워놨는가? 스톤헤지라고 말하는데, 저게 뭐냐? 아! 하지(夏至)에 맞춘건가? 일종의 경주에 있는 천문대 역할인가? 아! 저것이 바로, 이 코스모스. 대자연의 질서를 알아차려서 거기에 맞추어서 살아가게 되면, 자기에게 액운이나 미래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것과 동시에, 그게 종교적인 힘을 수용하는 거예요. 종교적인 힘을.

그래서 첫째시간에 이야기했듯이, 신은 질서가 있고, 자신들은 제사장이 있는데, 고상하게 얘기하면 무당입니다. 이 무당이 있고 무당 옆에는 왕이 있죠. 왕이 있어서, 제사장은 전문적으로 신의 계시를 받아야 되는데, 이게 헬라 종교에서는 뭐라고 하냐면 이걸 신탁이라고 해요. 신탁. 올림픽 할 때 봉화 주자 때, 드레스 입고 머리 올리고 봉화하지요. 그 여신들. 헬라의 여신들요. 쫙쫙 뻗은 여신들이 있는데, 그 여신들이 사실은 옛날에 상주 했어요. 상주해서 신탁을 받아요. 신탁할 때 마약을 해야 돼요. 지금 무슨 수로 신탁을 받습니까? 자기들끼리는 알아요. 마약을 해가지고 헬렐레 하면서 나올 때는, 신탁과 대비되는 것이 뭐냐? 합리적인 로고스. 나중에 로고스가 합리적인 사고로 이성적인 사고가 바뀌면서, “야! 이것은 못 들어봤던 말이다. 야! 이것은 마치 점궤 같아 점궤! 이거는 내가 모르는 신의 신탁. 앞에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을 저렇게 알려주니까 말이 어눌하지. 저거는 말이 앞뒤가 안 맞지. 그래 저걸 믿어야 돼. 우리는 아는 거고, 저거는 믿는 거고, 믿는 파트와 아는 파트를 구분해야 돼!”라고 거기에 종교적인 속성이 발휘되는 겁니다.

식당에 들어가게 되면 벌겋게 뭐가 있죠? 이래 가지고 노란 종이에 벌건 게 있죠. 이 글자를 알아봅니까? 못 알아보죠. 왜냐하면 이게 신탁이니까. 그런데 나중에 오르페우스 또는 디오니소스 종교. 이렇게 나가게 되면요. 너만 알지 말고, 나도 알자고 해서 이게 대중적으로 신탁이 파급이 되는 겁니다. 그것을 가지고 여기 1페이지 밑에 보면, 이걸 뭐라고 하냐 하면 이걸 신들림이다. 앞에 하나 붙으면 어떤 신들림이냐 하면, 집단 신들림이에요. 집단 신들림. 집단 신들림에 대해서 지금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사례가 있어요. 뭐냐 하면 바로, 북한 평양에서 이루어지는 김일성 생일 때 벌이는 대축제. 집단 신들림입니다. 북한은 정치 집단이 아니에요. 북한은 종교 집단입니다. 그리고 그 교주의 자리는 항상 비워 놔야 돼요. 항상 괄호로 비워놔야 됩니다.

왜냐하면 뭐든지 비워 놓는다는 것은, 계속해서 추상적인 카리스마를 계속 생산해 낼 수가 있어요. 항상 어떤 비어 있는 자리는, 뭔가 거룩해 보이고 범접하기 힘든 신비적인 아우라가 거기에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항상 이렇게, 꼭 지성소 같이. 인간이 잠재되어 있는 신기. 그 신기를 현대의 정신 분석에서는 이제 파헤치기 시작했어요. 프로이드 이후에 라캉, 지젝. 이런 학자들은 인간들의 신기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걸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 파헤친 사람들이 뭐냐 하면 문학한 사람들이 그 신기를 파헤쳤어요. 김동인 또는 김동리 이런 사람들의 소설을 보게 되면 제주도 무녀 이야기가 나와요. 신기. 황제를 위해서 라는 책. 책 읽어보세요. 소설. 황제를 위해서.

풍기에 가면 소백산 있죠. 그 소백산에는 정감록을 믿는, 정감록에 의해서 세상이 이미 개벽 사상이 온다는 집단이 있었어요. 6.25때. 지금은 그것이 발달해서 대순진리회가 되었지만. 그 정감록 들고 오시는 그분은, 정씨성을 가진 황제가 나타날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심리가 이래요. 처음에는 누군가 올 것이다 했는데, “혹시 내가? 내가 황제가 아닐까? 그래! 내가 황제인 것을 왜 그리 몰랐지? 그래 이제부터 나는 황제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학교 때 배웠던 그 유명한 단편 소설 ‘큰 바위의 얼굴’ 있잖아요. 큰 바위의 얼굴을 닮은 위인이 오게 되면 그 마을은 살아요. 근데 큰 바위의 얼굴이 세월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요. 그런데 저 큰 바의 얼굴이 누구였습니까? 큰 바의 얼굴을 기다리는 그 사람이 -바로 동네 사람들에 황운의 석양 노을이 얼굴에 비치니까-당신이 큰 바의 얼굴이 되는 거예요. 신기입니다. 신들림이에요.

이것이 현대 20세기 초반에 문학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옛날 초반부터 모든 사회에 그런 것들이 다 있었는데요. 그런 것들이 있다로 끝날 문제가 아니고, 그런 것들이 어떻게 이것이 정형화 된다. 말도 어려워요. 정영화. 틀이 잡혔느냐? 틀 잡히면, 집단으로 신들리면서 그대로 집단 법이 있는, 규율이 있는, 집단 정통 종교가 돼버려요. 이게 종교가 된다고요. 하여튼 이번 강의에 한번 뿌리를 한번 뽑아봅시다. 도대체 이게 안에 뿌리가, 칡뿌리가 어디까지 뻗어져 있는지 캐내보자 이말이죠. 다 케내봐요. 신들림에서 이렇게 정형화되면 국가 종교가 됩니다. 근데 어떤 스타가 나타나 가지고 “야 종교 만들자” 이렇게 될 문제는 아니고.

BC 3000년경에. 현재 여기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이죠. 여기 위에 텔라비브. 이스라엘 지역이고. 여기 예루살렘이 있는데요. 예루살렘은 네 가지 구역으로 나누어졌어요. 이게 4등분 돼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여기 등기 떼어보면, 4등분 돼 있어요. 등기 등본 떼어보면. 부동산 등기 떼어 보면. 왜 네등분이냐? 첫째는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가 왜 있느냐 하면은, 395년인가? 동서 로마가 분열돼요. 분열되면서 저 현재 그리스 터키 지역을 로마의 정신을 잇겠다고 나선 나라가 있어요. 그걸 지금은 터키 수도 ‘앙카르’지만, 코스탄티니노플이라고 해가지고 옛날 이름입니다. 그쪽에서 그 지역 이름이 비잔틴이에요. 그 근처인데. 비잔틴 제국이 되는 겁니다.

비잔틴 제국을 하면서 로마 정신을 잇겠다 했잖아요. 아까 로마 정신이 여러분 뭐라고 했지요? 예. 제일 먼저 나온 게 지혜 절제 용기 정의죠. 그 네가지. 원래는 세개예요. 원래는 이 로마는 그리스의 체제가 로마에게로 간 거예요. 사실은 기원전 146년에 로마가 커져서 코린도를 점령함으로서 거의 실질적으로 로마가 점령했고. 기원후 70년 경에는 그동안 그리스가 쥐고 있던 예루살렘까지, 이미 티투스가 와서 점령해 버렸어요. 그때 유대인들 작살 났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은 마태 누가복음에서 미리 예언을 했잖아요. 그날이 올 때, 너는 집으로 가지 마라. 그만큼 혹독하다. 이거는 상상 초월. 일어날 때. 그것이 너희들이 내 말 듣지 않아서 일어난 일로 간주해라. 뭐 신의 뜻이고 뭐 하지 말고. 그냥 예수 말 안 들어서 일어난 걸로 간주해라. 그렇게 성경에 나와 있는데. 이미 승리는 로마가 했지만, 그 모든 법적 체제는 이 그리스 체제로 오는 거예요.

세가지인데 ,마지막 붙는 게 뭐냐 하면 정의죠. 이게 중요한데. 사상만 정의되면 이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정의를 뭐로 바꿔야 돼요? 법으로 바꿔야 됩니다. 그래서 로마는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법치 국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에요. 로마가 법치 국가가 되면서 그 뒤의 모든 국가가 법으로 되는 겁니다. 감정으로 조지면 안 돼요. 우리나라는 감정 국가가 아니고 법으로 하기 때문에, 법원이 법원에게 맡겨야 되겠죠. 이게 법치 국가예요. 법원은 약속입니다. 법은 약속이에요. 그런데 처음에 법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건 제가 말한 것은 로마고. 이 정의라는 것은 법이 있어야 실효성이 있다는 거죠. 사람 때려도 법에 의하면 이게 보상을 받을 수 있어요. 약속인데. 처음에는 로마에서는 국가로 체계가 되고 처음에는 그렇게 되지 않았고.

BC 3천년경, 현재의 이라크 지역에는 두 개의 강(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흐른다고 하여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메소포타미아 지방이 있었어요. 이곳에서 수메르라는 세계 최초의 도시 국가들이 등장합니다. 기원전 3천년경에 문명을 일으킨 수메르에 이어 아카드 제국이 들어섰고, 이후 구바벨론으로 주도권이 넘어갑니다. 그리고 기원전 1700년대부터 앗수르가 나와서, BC612년 망할 때까지 1100년동안, 앗수르 국가가 돼요.

이 수메르 국가에서 뭐가 나오냐 하면 법이 나오고, 그걸 이어받은 것이 옛날 바벨론 함무라비 법전이라는 것. 함무라비의 법전을 보게 되면, 출애굽기에 나오고, 레위기에 나오는, 민수기에 나오는, 율법 내용과 어찌 그리 유사한지! 그래서 현대 신학자들과 구약 학자들은, 이스라엘이 신에게 계시 받은 게 아니고, 모세가 시내산에서 독대해서 받은 게 아니고, 기존의 문화에 대해서 각색했다고 보는 겁니다. 각색.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애굽에서 탈출한 게 아니고 원래 그 사람들이 산 위에서 살던 사람인데 산 밑에 있는 합비로. 이름도 좀 촌스럽죠. 흐리부리한 사람. 합비로. 천민들이 기존의 무역해서 돈버는 귀족과의 계급 투쟁에 의해서 견디다 견디다 못해서, 이기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하나 되기 위해서 모세가 아톤신을, 아톤신을 수입해 가지고 애굽에서 건너오니까. 그 아톤신 유일신. 다신론이 아니라 유일신을 갖고 온 그것과 결합해서 산 위에로 가가지고 한바탕 붙어서 약간의 일시적으로 평등했을 때 나타난 그 종교가 바로 이스라엘이고. 그래서 한족속도 아니고 12지파인데. 12지파의 정통성을 갖추기 위해서, 구색 갖추기 위해서, 모세가 만났던 여호와, 그 여호와, 또 야훼. 여호와에 대한 전설 -전설의 고향 아시죠?- 그 전설들 가운데서 하나 될 수 있는 것을, 나중에 BC 600년 700년경에 들어와서 편집하는 사람들이 그 당시의 과거의 영화를 회고하고자 편집하는 과정에서 jbe 문서, b 문서까지 그걸 합쳐서 옛날 전승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갖추다 보니까, 이렇게 상황이 조금 어설펐어. 어설퍼 가지고 문법적으로 잘 어울리지 않지만 집어넣어서, 통일된 국가 체제를 만들었다는거에요. 망하고 난 뒤에 정신적으로 하나 되기 위해서, 통일된 케논. 경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모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어떤 카리스마 전통적인 권위를 유지하라는 것이 성경이다. 라고 외국에서 박사학위 받은 사람들은 쪽쪽 다 이야기하는 거예요. 박사학위 받을라고. 박사학위 받을라고. 그게 신학입니다.

강도가 그거 알아서 구원받았어요? 창녀가 그거 알아서 간통하다 현장 잡힌 여인이 그거 알아가지고, 그런 문서를 알아서 구원받았습니까? 아니죠. 일종의 신학이 밥벌이가 되어 가는 거예요. 그걸 소피스트라고 합니다. 지식 팔아먹는, 소피스트. 잠깐 소피스트 이야기 해 볼게요. 소피스트라는 것은 뭐냐? 이게 소크라테스가 제일 싫어한 사람들인데. 이게 뭐냐 하면은 그리스 당시에 귀족들이 횡포를 부리니까 민중들이 너무 세금 부담이 많으니까 이게 일종의 시위를 했어요. 그래서 타협해서 나온 것이 아테네의 민주주의 제도입니다. 타협을 하는데, 다수의 원리를 채택했어요. 뭐냐 하면 “당신이 말을 잘했어. 당신이 표가 많으면 정책으로 채택 해줄게요”라는 지금의 의회 제도 비슷한 게 있었거든요. 그러면 필요한 게 뭐예요? 뭘 잘해야 된다? 말을 잘해야 설득력이 있어야 되죠. 논리가 명확해야 되고 앞뒤가 맞아야 되죠. 그걸 가르치는 학원 원장들을 가지고 소피스트라고 합니다. 이제 거기서 논리학이 나오고 수사학이 나오는데, 그걸 잘해야 나중에 중세 때 수도 원장 자리, 주교 자리 한 자리에 얻어 걸리는 거예요. 상당히 실용적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권력과 돈이 생기지 아니하면,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또 마찬가지입니다. 돈 되는 실용적인, 돈 되는 공부. 일종의 기술입니다. 말하는 기술, 정신적인 기술. 과학이 발달하면 또 다른 거 하지만. 나중에 물리학 이야기할 때. 물리학도 하나의 주술이라는 것을 제가 언급할게요. 물리학도 하나의 주술이에요. 주술.

이 무당 굿하는 거 하고, 현대 물리학이 동일해요. 현대 과학에서는, 과학 빼놓고 다 미신이잖아요. 그거는 그 사람들이 자기 뿌리를 몰라서 그래요. 과학의 뿌리는 주술입니다. 되면 되고 아니면 말고 이 식이에요. 약 하나 만드는 거, 임상 실험하는 거. 전부 다, 되면 되고 말면 말고. 그 확률이 아프리카 부시맨이 콜라 맞는 확률보다 떨어져요. 실험실에서 수천 번 수만 번 해야 그게 아다리 될지 안 될지 몰라요. 제약회사에서 신제품 하나 만드는 게. 과학 카이스트에 있는 사람들이 그냥 뭐 이거 다 하고 나오는 게 아니에요. 실패와 실패 속에서 나오는 겁니다. 이 세상은 아무리 껍데기가 달라져도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욕망은 달라질 게 없습니다. 방법이 달라서 그래요. 어떤 교회에 가서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과학 기술, 카이스트 가서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농사 지어서 행복하지만 목적은 하나 같아요. 행복. 욕심을 줄여서 행복하겠다는 것은 스토아학파. 죽음에 대해서 미리 공포심을 해소해서 행복하겠다는 것은 에피쿠로스 학파. 쾌락주의.

그러나 목적하는 바는 뭡니까? 다 무엇을 위하여? 행복을 위하여! 그 다음 질문이 나오는 거에요. 그 다음.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행복해서 뭐할건데?” 행복해서 뭐 할 건데의 해답은 이래요. 지금 내가 행복하고 싶지만 늙어 죽어요. 아프면 행복하고 싶어도 몸이, 세포가 내 말을 안 들으니까 아파요. 행복 안해요. 짜증 납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하면 이 행복을 담보로 해가지고 행복을 누구한테 넘기면 되겠죠? 그게 초월의 세계. 신의 세계입니다. “이 땅에서 고생했지만 천국 가서 보상해 줘야 됩니다”라고 넘기는 거예요. 하늘나라 처소가 있을테니까 지금은 이 땅에서 고생했지만, 죽어서는 부활의 나라에 내 영혼이 거기에 당도할 것이라는 그러한 보험적인 담보가 제공되게 되면, 그 종교는 지금 못다 이룬 행복을 죽어서 이루는 거에요.

드라마의 주제 아닙니까? 사랑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배다른 남매라. 어떡해요? 그때는 우리 같이 약 먹고 죽어서 이 생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하늘의 별이 되어서 같이 이루어 보겠다는 거예요. 세상에 어떤 학자가 세상의 모든 드라마와 소설과 주기를 조사를 해봤어요. 그 성향을 조사를 해보니까, 딱 하나라. 고난 받고 죽으면 영광 얻으리라. 그걸로 끝났어요. 심청전, 춘향전 모든 게. 그걸 영웅 담화라고 합니다. 그걸 문학에서 영웅 담화. 영웅. 모든 것이 신데렐라, 백설공주. 사과 잘못 먹고 농약 쳐놓은 사과 먹고 죽지만, 옆나라 옆에 있는 왕자가 와서, 말 타고 와가지고 뽀뽀 한 번 해주면, 다시 큰 나라. 다시 큰 나라로 보상 해주는 것.

영웅 담화인데, 이거 영웅 담화의 주제가 뭡니까?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거. 언젠가는 보상해 줄 거니까. 지치고 힘들더라도 참으세요. 언젠가는 보상이 올 겁니다. 고린도전서 13장 5절에 사랑은 견디는 거. 그런데 고린도전서 13장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사랑은 견디는 거 맞아요. 사랑은 참고 견디는 거 맞는데, 그 견디는 내용이 뭐냐 하면, 나의 행복이 아니고 진리입니다. 진리를 위하여 참는 게 이것은 인간의 육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선물로 나온다는 성령에서 나온다 그런 뜻이거든요. 견디고 참는 것은, 사도 바울이 견디고 참았고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은 것은 자기 행복이 아니에요. 복음이라는 진리가 있기 때문에, 그걸 위해서 아낌없이 바친 것이지, 자신이 이런 철학에서 말하는 이 종교에서 말하는 내 행복을 위해서 교회에 나가고 행복을 위해서 신을 찾고 이것은 하나의 흥정입니다. 거래예요. 거래. 협상이고 거래입니다.

계속해 봅시다. 이 정의에서 법이 나오는데요. 이 법에서 동조한 사람이 누구냐? 처음에 신탁을 했던 제사장들이 이 법을 제정했습니다. 최고의 엘리트입니다. 그래서 어느 사회든 간에 엘리트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인간 공동체의 속성이에요. 중세 예술이 끝나고 난 뒤에 바로크 예술이 됩니다. 바로크 예술이 끝나면서, 로코코가 되고 로코코가 되면 신고전주의가 돼요. 자, 바로크가 뭐고 로코코가 뭐냐? 간단하게 말해서 이거 뭐냐 하면. 귀족들만 놀던 문화거든요. 이것이 시대가 상공업이 발달해서, 무역이 발달하면서, 이제 네덜란드 같은 경우에 라이벌인데, 이태리 북쪽하고 네덜란드하고 최초로 무역이 발달했습니다. 발달하면서 이게 잉여가치. 그러니까 이게 이윤이 떨어지는 장사를 하게 되었어요. 시간에 따라서 이윤이 발생하는거에요. 이쪽의 물건에서 500원짜리 하는 것을, 약간의 수고만 하면 저쪽에서 천원 받을 수 있으니까. 가는 시간이 걸리죠. 시간이 돈이 됐다는 것을 유대인들이 처음 발견했습니다. 시간간 존재. 그래서 고리 대금업자가 유대인이 나오잖아요. 셰익스피어에 보면 베니스 상인이 그래서 재판할 때 웃으라고 하잖아요. 피 없이 살점 뜯으라고.

시간이 돈이 되니까, 여기서 나온 자본주의가 뭐냐 하면, 상업 자본주의가 나와요. 상업 자본주의는, 산업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산업 자본주의는 19세기고. 상업 자본주의에서 나오는 게 뭐냐하면 금융 자본이 나오는 거에요. 상업 자본주의라는 것은, 지리적으로, 지리적인 시차에 의해서 이윤을 챙기는 거예요. 상인들이죠. 그러면 그전에는 왜 이게 없었는가. 그전에는 없었지요. 왜? 영주가 영주에게 이사하라 말하는 그런 권한이 있어요. 영주한테는. 옛날 영주에는, 믿거나 말거나 초야권이 있답니다. 초야권. “너희 집 아들은 저쪽 딸하고 결혼해!” 이래돼요. 그 딸이 진짜 처녀인지 아닌지 결정을 영주가 결정해야 되고. 근데 학자에 따라 달라요. 이게 진짜 있었다 없었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만큼 봉건 사회에서는, 하나의 영주가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 영주 밑에 누가 있는가? 주교가 있어요. 교회가 있어요.

그걸 역사학자는 교회를 무슨 교회라고 하는가? 그걸 사슬 교회라고해요. 사슬 교회. 이는 돈 있는 유지가 자기 밑에 있는 직원들의 정신을 하나로 모아서,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들에게 심어주는 그런 기능을 담당하고 봉투를 받아 챙기는 성직자 이것이 주교입니다. 주교 밑에 뭐가 있냐 부재가 있어요. 부재. 요새 말하면 요새 집사예요. 그 이야기하려 하면 좀 더 기다려요. 지금 초대 신학자들 나올 때, 크레메스 나올 때 그 이야기들. 크레메스 나오니까. 뒤에 터툴리안 나올 때. 이 교회사 할 때는 신학 할 때는 스타죠. 하여튼 뿌리까지 한번 뽑아봅시다.

그렇게 되거든요. 그러면 그렇게 되면 뭐냐 하면은 결국 교회 성직이 돈 돼요. 성직자가 나오면 집안의 가문의 영광입니다. 촌에 플랜카드 하나 붙입니다. “우리 촌에 사법고시. 둘째 셋째 딸 됐습니다“하는 것처럼. 우리 교회에서 목사 나왔습니다. 뭐 이런 시대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목사 하나 나왔습니다. 이러면 그거는 돈 되는 좋은 직업 하나. 좋은 직업자리 얻었다. 이래 되는 거예요. 옛날에는 상공 시대 산업 시대가 아니고, 경농 농업 시대이기 때문에, 농사에서 돈 안 나오면 나올 구석이 없어요. 따라서 영주는 ”장사하겠습니다“하면 ”가지마“ ”저 사람한테 시집 가겠습니다“하면 ”시집 가지 마“ 폐쇠적으로 가두어 놓는 시대입니다. 그걸 농민이라 하지 않고, 그걸 아주 농노라고 해요. 이게 노예인지 농민인지 모호한 상태예요. 그래서 우리나라 같으면 머슴. 그렇게 보시면 되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이 생각하기를, ”아이고 그래도 참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 그 당시 사람들은 왜 그걸 참았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대안이 없었어요. 대안이. 다른 제도에 대안이 없어요. 왜요? 땅이 없는 사람들은 죽어요. 성경에서 땅없는 사람이 뭐냐?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의 특징이 뭐냐? 땅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끄집어낼 때 이스라엘의 특징이 뭐냐? 전혀 일체 땅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음은 있어요. 어음은! 땅 줄게! 땅 줄게라는 어음을 끊어 놨는데. 이게 부도 수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해요. 왜냐하면은 광야에는 농사 지을 수 없거든요. 모세 말만 듣고 갑니다. 모세에게는 카리스마였어요. 하나님과 독대. 청와대에서 독대했다는 거예요. 자기한테 지팡이 있고. 약속이 뭐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는 변할 생각하지 않고, 자기 심성은 애굽 심성인데, 애굽 심성을 가지고 –낼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잘 먹고 잘 살 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드디어 그 DMZ 경계선까지 왔습니다. 좋다고 정탐꾼 보냈거든요. 보내고 난 뒤에 사람들은 나자빠졌습니다. ”땅이 좋다“ ”그럼 땅 좋으면 되지“ 그런데 ”그 지키는 원주민들은 우리하고 게임이 안 되더라“ LA 다저스하고 동네 야구하고 시합이 될 수가 없죠. 이거는 게임이 안 돼요. 이거는 완전히 우리를 기만했다. ”모세 나와! 죽여버린다“ ”모세 나와!“ ”모세 그 집안 나와! 죽여버린다“ 모세도 독이 올랐어요. 그동안 ”너 하늘에서 만나 먹었잖아 이거 먹었잖아. 이게 어디서 성질 부려!“ 하면서 지가 성격 부려. 지가. 지가 성질 부리고, 자기도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갔어요. 땅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달라져야 되는데 사람 본인이 달라질 생각 안 하고, 넙쭉 천국만 내다보고 있으니까 천국 자체가 넣어주지 않습니다. 들어간다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들어간다는 사람은 많은데. 많이 용서받아야 사랑을 느끼는데. 잘난 사람밖에 없으니까. 용서받은 사람이 없으니까, 천국에 들어갈 사람도 없어요.

이스라엘 역사가 아까도 언급했지만, 그 다곤신에서 여호와 누가 이깁니까? 다곤신이 이기죠. 여호와는 패배했어요. 그 다음에. 바벨론의 마르둑신이 이겼습니까? 여호와 이겼습니까? 마르둑신이 이겼어요. 여호와는 패배했습니다. 지는 하나님이에요. 지는 하나님. 사람은 승리를 원하지만, 백성은 승리를 원하지만, 사람들의 그 호응에 부응하지 않는 하나님. 승리를 기도했건만, 주시는 것은 패배밖에 주지 않아요. 저주받지 않으면 구원도 없다는 겁니다. 니가 저주받을 인간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는 겁니다. 이거는 우리 쪽에서 나가는 그 모든 것을 차단시켜 버려요.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를 신학에서는 담을 수가 없어요. 왜? 신학 배경에는 뭐가 있다 했습니까?

지금 한 이야기를 다시 계속 반복합니다. 신학 배경에는 뭐가 있다? 교회가 있는 거예요. 교회를 유지하려면, 권력과 유탁해야 되고, 권력자. 국가라는 권력자의 마음에도 들어야 되지만, 그 내용을 채워놓는 교인들. 소비자들이죠. 교인들의 욕망도 채워 줘야 돼요.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 교회가, 아까 이 사슬 교회지만. 사실은 이게 뭐냐 하면 국가 교회입니다. 로마 때 국가 교회에서 뭐로 바뀌었냐하면 교회 국가로 바뀌어요. 국가 교회는 국가 자체가 전체가 교회고, 교회 국가라고 하는 것은, 국가가 따로 나라를 만드는 걸 교회 국가라고 합니다. 국가 교회를 유지하다가 425년쯤 되니까, 게르만족이 로마를 공격하면서 땅이라는 땅은 다 빼앗기고, 진짜 로마까지 반달족이 쳐들어와 가지고, 훈족에게 밀린 쪽들이 반달 쪽에 카르타고 -현재 카르타 시대 티니지인데- 거기서부터 로마를 쳐가지고, 로마 제국이 멸망합니다.

멸망하면서 종교는 기독교를 가지되, 땅은 황제가 갖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했습니다. 국가가 생기려면 자동차 페달을 밟아야 된다. 국가가 유지되려면 뭘 해야 된다 전쟁을 해야 된다. 그러면 옛날 국가의 황제는 반드시 싸우는 자여야 되죠. 그래서 군인 황제 시대입니다. 로마의 황제 옥타비아누스 이런 사람들 전성기 때는 군인들이 황제거든요. 둘 다 역시 칼싸움. 군대를 가져야 돼요. 전두환 노태우. 전부 다 전부 다 군인이잖아요. 이집트도 마찬가지고. 군대가 황제가 됐다. 땅은 누가 가졌다? 땅은 이민족이 가졌지만 막상 교회는 땅이 없잖아요. 땅이 없으니까 버티는 것은 뭐로 버티냐 하면은. 버틸 때 나오는 것이 바로 교리입니다. 교리.

왜 삼위일체가 강력해야 되는가? 버틸 구석은 그거 하나밖에 없어요. 그것이 알고 싶다! 제가 알려드릴게요. 그 삼위일체가 교회가 살기 위한 자구책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황제가요. 자기는 무식하잖아요. 군인이니까. 자기 밑에 학자를 둡니다. 아타나시우스 그런 사람들 해가지고. 자기 대신 ”어이~ 아다나시우스! 저 아리우스가 지금 까부는데 저쪽 땅이 탐난다. 니가 알아서 팍 꺾어버려“ 성자와 성부는 같은 분이냐, 동일한 분이냐, 다른 분이냐 따져서 조져버려요. 니카이 회의 때. 325년 니카이 회의 때. 결정 나버렸습니다. 이제는 정신적으로. ”꿇어!“ 이 신성한 신의 대리자한테 뿌려버려요. 그것을 나중에 동로마가 배웠어요. 황제 이콜 교황이 돼버려요. 황제가 교황이고 교황이 황제가 되는 겁니다. 그 아이디어를 누가 채택했냐 하면은 러시아에서 채택해서 러시아의 산데스부르크 옛날 수도거든요. 거기서 러시아가 처음 독립국가 될 때에, 황제 이콜 교황. 교황 이콜 황제. 백성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동시에, 행정적인 그 오야붕. 왕이 되는 거예요. 차르. 황제가 되는 겁니다.

토스토예프스키는 참을 수가 없죠. 토스토예프스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라는 책에 보게 되면, 러시아의 종교에 대해서 이렇게 비난합니다. ”니가 종교를 알아“ 요새 니가 게맛을 알아 하는 것처럼. ”니가 그 성경을 알아?“ 하고 그 안에 보면 그 조시마 장로가 있어요. 그 밑에 똘마니 장로가 있어요. 알로사라는 이런 선한 사람이 한 말이, ”당신이 기독교에 대해서 알아? 예수님께서 재림하십니다“ 종교 지도자가 하는 말이, ”주님이요 이러고 오시면 안 되죠. 우리한테 연락 주고 오셔야죠.“ 꼭 예수님 죽일 때 바리새인이 하는 짓을 똑같이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보시면 돼요. 하나의 교회도 마찬가지고, 국가도 마찬가지고. 어떤 도그마 교리. 경전. 이거 없으면, 이거 반대하면 이단.

이런 것을 챙기는 그 의도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 의도가. 그 의도가 뭐냐? 그 의도는 폐쇄적인 자기만의 결집을, 정치적으로 도모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돼요. 서울 대학 들어갔는데, ‘대성학원’ 출신이냐 아니면 ‘일신학원’ 출신인가? 그게 서울대학에 무슨 영향을 입힙니까? 니 재수생인데 어느 학원 출신이냐 그게 서울대학에서 고려해 줍니까? 안 해주죠? 침례교냐 감리교냐 장로교냐 천주교냐 이런 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민감하게 거기에 대해서 ”니 감리교냐? 장로교에서 왜 바꿨어?“ 이렇게 하십니까? 성경에 감리교 나오고 성경에 침례교 나옵니까? 심지어 성경에는 삼위일체가 안 나와요. 놀라운 사실은. 마태복음 28장 마지막에 뭐가 돼 있습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세례를 주라 했죠. 그게 삼위일체예요? 아니에요. 기능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기능을. 하나님은 하나님 나름대로 이미 일을 추진을 -너 신학과 상관없이 관계없이- 계속 해 나갈 테니까. 너는 그냥 결과물이 될 뿐이다. 그 이야기다 이말이죠. 세례를 받으라는 말은, 세례 주라는 그 자체가 그냥 결과로 주어진다는 겁니다.

고백하는 게 아니에요. 일은 우리가 고백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고백을 하나 안 하나. 말씀은 말씀대로 실시되게 돼 있어요. 교회에서 티 내냐 안 내나 관계없이, 주님을 고백하나 안하나. 그 일을 적용하게 돼 있습니다. 이게 데살로니가전서에 보니까, 말씀이 내 안에서 그냥 살아서 역사한다고. 히브리서 4장에 보면 말씀이 오게 되면 니 모든 걸 벌거벗겨서 다 벗긴다고요.

(데살로니가전서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히브리서 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내가 알아서 이제 옷 벗는 거 아니잖아요. 그게 말씀이 살아있다면 그것은 무엇과 경쟁하느냐 하면 우리가 진짜 노리는 어떤 힘이라는 거. 나의 정체성. 내 자아성. 이런 것과 대결 상태로서 지금도 말씀은 작용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성경 이야기가. 그것이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이미 과거부터 그것이 어떤 형식으로 국가 단위로, 교회 단위로 나타났는가를 우리는 이걸 살펴 볼 수밖에 없어요.

제가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게 뭐냐 하면, 이 수메르 국가에서 그 신탁이, 무당한테 빌렸던 그 신탁이, 뭐로 고정화되어 있습니까? 법 체제로 고정화되었어요. 법 체제가 고정화 되면, 이 하나 하나가 다 중요하지만 중요한 말을 못하겠어요 다 중요하지만.

법이 있으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뭐냐 하면은 이게 계급이 나와요. 계급이 나오면서 자리가 정해집니다. 자리 정해지는 것이 세습화되면서 이 사회를 무슨 사회라고 하는가? 이 사회를. 지금은 아닌데 이걸 신분 사회라고 합니다. 쌍놈. 양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신분 사회입니다. 신분 사회. 이 시대를 뭐라고 하느냐 앞에 하나 더 붙어요. 신 신분 사회. 가진 자는 계속 가져야 되고, 없는 인간은 안 되고. 가진 사람 재벌은 재벌끼리 결혼하고 못난 인간은 못난이들끼리 결혼하고. 그들은 점점 더 신신분 사회가 되겠죠.

해결책은 뭐죠? 이 신분 사회에서 벗어나서 민주 사회가 되면 다시 신신분사회, 경제적인 자본주의 때문에 딱 왔을 때, 이걸 해소하는 방법은 뭐냐 이 말이죠. 해소하는 방법이 뭐냐? 그것이 바로 하버드에서 나온 노직이라는 사람. 경제학자. 그 뒤에 자유주의 경제학자가 한 게 뭐냐 하면. 기회는 주자. 기회는 주자. 어차피 돈 100만원 나눠봐야 일주일 뒤에 한 사람은 마이너스 통장. 한사람은 천만 원, 1억 되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기회는 주되. 결과는 보장 못한다. 자유주의 경제 이론입니다. 기회는 주되. 결과까지는 책임 못 진다. 이게 자유주의 경제 이론이고. 결과도 메꾸어주자. 사회주의. 사회주의고. 그 둘 사이를 가진 자의 명예를 위해서 후원하는 제도를 넓히자. 그래서 자정적인 노력을 하자라는 것을 복지 사회라고 이야기해요. 복지 사회. 그 세가지가 추구하는 바는 결국 뭡니까?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 거기에 뛰어드는 것이 신학자요. 교회가 같이 뛰어들었어요.

한번 정리해 봅시다. 교회가 뭐냐? 신학자가 주장하는 게 뭐냐? 내막을 살펴보니까, 인간은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에 봉사하고 기여하기 위해서 교회가 있고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죠. 그게 진리입니까? 그러면 그게 진리냐 이 말이죠. 그게 진리고 복음이냐? 하면 거기서 사람들이 “그런 건 묻는 게 아니다. 왜 그거는 항상 미지이니까. 그거는 확정된 바가 없기 때문에” 신이 있고 없고는 누가 나서서 말을, 입을 뗄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행복을 내놓으면 좋은 신이고 나를 불행하게 만들면 나쁜 신으로 대체적으로 분위기가 그런 쪽으로 현재 형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척교회 목회하는 저로서는 교인들의 행복을 위해서 기도를 해줘야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소리를 할 것이고, 그러면 약간의 부스러기라도 교회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가져오게 되면 나도 살고 그들도 사는 그런 방법이 생길 수가 있겠죠. 이게 성령 받은 거냐 이 말입니다. 이게. 성경에서 그렇게 성령 받은 거냐 이말입니다. 아니에요. 이건 육신입니다. 그러나 육신이고 성령이고 따지는 것도 배에 뭐가 밥이라도 뭐가 들어가야 그걸 논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거 아니냐. 이게 바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던 이유입니다.

한번 정리하면 사람에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신을 언급하든 뭘 언급하든 인간에게는 나오는 것이 이것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면서, 이런 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 자신도 거기에다가 포함시켜서 인정하자는 거에요.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따로 떼놓지 마시고, “나는 너무나 믿음 좋아서 그런건 아니야”라고 나는 떼놓지 마시고. 같이 포함시켜버리자 이말입니다.

제가 어느 글에 그렇게 썼거든요. 테레사 수녀가 지하철 타면 덜컹거릴까요? 안 들컹거릴까요? 테레사 수녀인데. 막 버팁니까? 덜컹거리죠. 지하철 덜렁거리는 것은 상관없어요. 경제가 덜컹거린다. 테레사 수녀가 했던 그 복지 시설이 흔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흔들리죠. 그러니까 테레사 수녀가 그렇게 싫어하던 정부에다가 보조금을 요구한 거예요. 그것 때문에 테레사 수녀는 성자가 아니라고, 이거는 하나의 사업가이지 성자가 아니라고. 취소하라는 그러한 주장도 많이 나타나는 겁니다. 복지 시설 취지. 참 좋은 취지예요. 복음을 위해서. 얼마나 고상합니까? 하지만 나를 알아야 돼. 왜?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고상적인 이상만 따라갈 수 있는 그런 여력은, 어떤 의미에서는 위선의 또 다른 면면이에요. 위선의 다른 면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늙어 죽을 때까지 결국 남는 것은 돈 있는 놈이 품위고, 돈 있는 놈이 대우받고. 돈 이꼴 축복. 이라는 그런 공식만 이 세상에서는 실용적으로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거 아까 저기압하고 고기압하고 설명하면서 이쪽에 나눈 겁니다. 양쪽 다 알아해요. 양쪽 다를, 욥도 마찬가지고 예레미야도 마찬가지고 엘리야도 마찬가지고, 사실은 저도 이쪽에 있는 사람인데. 모세도 아까 그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갔다고 했죠. 맞죠? 제 말 맞죠? 못 들어간 그 양반이 마태복음 17장에서 변화산에서 주님과 함께 천국에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천국이라고 하는 건 이쪽인데. 예수님 별세와 연관돼 있으면, 십자가와 연관돼 있으면, 죄인이면서도 –창녀처럼 강도처럼- 용서받는 식으로 이것이 복음이라고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쓰는 겁니다. 착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같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그런 육신에 속한 자라. 그래서 예수님도 육신의 죄를 정하기 위해서 이 땅에 왔다고 이야기해요. 로마서 8장 3절에.

(로마서 8장 3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그래서 이거는 종교를 떠나야 돼요. 종교를 떠나고. 교회를 없다고 생각하세요. 왜 주님만 있으면 이미 그 자체가 교회예요. 충분해요. 뭔가 하나 특정 것을 노리게 되게 되면, 그것 자체에 마음 빼앗기면, 그때부터는 복음이고 뭐고 전부 다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이 약한 영혼들이 바로 우리의 영혼들입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강의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신탁이, 신들림이, 국가 체제에서는 법으로 규정이 되면서, 그건 국가의 정당성을 보장하게 되는 신의 계시로, 국가 교회. 국가 종교가 되면서, 여기서 만약에 딴 소리 하게 되면 군대가 동원되죠. 군대가. 참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경찰이 잡아가지는 않잖아요. 경찰 출동 안 하죠. 중국에서는요. 중국에서 기존 인정한 교회 말고 다른 소리 해버리면 공안부가 와서 잡아갑니다. 잡아가서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위장을 해야 돼요. 위장 취업을 해야 됩니다. 물론 이 좋은 나라 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죠. 할 소리 다 하고 있으니까, 참 감사할 일인데.

항상 매일 앞에 눈만 뜨면, 나는 아무것도 없다. 일회용만 부여받을 뿐이다. 그냥 일용할 양식만 받을 뿐이고, 내일까지 보장될 건 아무것도 없다. 교회도 없다. 다만 있는 것은 진짜 복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만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있게 했다는 사실. 매일 연명시켜 준다는 거예요. 그 사실을 알았죠. 사도 바울이 로마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도 바울은 자기는 로마에서 평안히 모실 줄 알았죠. 왜 주께서 “너는 로마 로마 로마 로마 가야 돼“. 로마 가라 하니까 로마라 하면서 편안하게 아무 사고 없이 어떤 황금마차가 모셔 가가지고 주의 종 대접할 줄 알았죠. 자기가 죽을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죽어야 산다는 거. 죽는 척해야 안 살고, 진짜 내가 자살하면 안 되고. 하나님이 죽여주는 그 상황 속에서 비로소 미처 내가 눈치 채지 못하던 낯선 생명이. ”아! 거기 있었네!“ 하고 발견하는 그 기쁨. 그 기쁨이 바로 복음을 아는 사도의 기쁨이었습니다.

오늘 강의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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