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어떤 인간이든 성경을 볼 때 반드시 성경이 이 인간의 질문, 그리고 그 질문을 뭐로 만드느냐 하면 오류로 만들어요. 이제부터 어렵습니다. 좀 참으세요. 오류된 존재로 드러나게 합니다. 왜? 진리는 오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진리는 진리를 위해서 존재하지 진리가 아닌 나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아요. 자칫하면 신접한 여인을 찾는 사울 왕 같은 그런 작자가 될 수 있으니까.
오류를 드러나게 해서 진리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뭐냐 하면, 이게 진짜 오늘 강의에 나오는 첫 번째 어려운 겁니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다가갈 수가 없고 자꾸 나의 오류만 크게 드러난다. 마치 빛의 속도를 따라잡겠다고 빛의 속도를 막 따라가는 어떤 물체, 또는 인간, 우주선이 있다고 합시다. 가면 갈수록 빛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왜? 따라가면 갈수록 그만큼 질량이 무한대로 커지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주님도 살고 나도 살고 하는 그런 십자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십자가입니다. 그건 마귀가 지어낸 십자가에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란 말은 나는 다시 소환될 내가 없어져야 돼요. 없어져야 될 이유가 뭐냐? 나는 애초부터 오류기 때문에.
성경은 전체가 진리라는 보편성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호수에 빠진 아마샤, 호수에 빠진 요아스에서 죽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아마샤는 왜 죽었지, 요아스는 왜 죽었지? ‘왜 죽었지’가 중요해요. 본인이 죽는 것은 문제 되질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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