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강의

언약의 전달

아빠와 함께 2026. 5. 3. 09:06

20260501a 울산강의-역대기하(21강) 24장 18절 : 언약의 전달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역대하 24장입니다. 24장 이야기는 요아스 왕에 대한 겁니다. 요아스 왕이 제사장 여호야다와 함께 있을 때는 하나님 보시기에 그렇게 정직하게 행했다고 2절에 나와 있어요.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며 여호야다가 왕으로 두 아내에게 장가들게 하였더니 자녀를 낳았더라”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니 요아스 왕은 어떤 영향력이 있는데, 이게 어린 요아스입니다. 여기에 영향력,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을 여호야다라는 제사장이 요아스를 덮고 있어요. 그런데 여호야다는 제사장인데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아달랴라는 권세자를 없애버렸습니다.

이 아달랴는 무엇을 신봉하는 사람이냐 하면, 바알 신을 열심히 섬겼던 사람이 아달랴는 여자거든요. 아달랴라는 여자는 북쪽에 있는 이세벨의 딸인데 엄마도 바알 신에 심취했고, 심취한 정도가 아니고 그걸 전파했고, 여기 그 딸이 이스라엘 남쪽에도 엄마의 종교인 바알 종교를 전국에 전파했습니다.

어떤 국가의 권력자가 특정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그 백성들이 덩달아 그 지도자의 종교를 따를 필요가 있을까요? 종교란 개인 취향이잖아요. 지도자가 바알 섬긴다고 전 백성들이 바알을 섬겼다? 이 점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간은 각자, 각자 자기가 원하는 종교를 자기 결정에 의해서 선택하는 걸로 그렇게 알고 있는데 아달랴가 바알을 섬겼다. 그런데 전 백성들도 같이 섬겼다. 도대체 그 바알이라는 신이 어떤 신인데 그게 가능하냐 말이죠.

바알 신은 여호와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아요. 이게 결정타입니다. 바알 신만 아니고 나머지 우상도 마찬가지지만 우상과 여호와 하나님의 차이가 어디 있느냐 하면, 그 여호와 하나님은 만유에 계시고 모든 것에 다 일하시는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인 걸로 이스라엘 백성은 알고 있어요. 모든 것을 다 하신다, 이거는 어떤 의미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에요. 거기에 비해서 바알은 주특기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 가나안 땅의 주민들이 신을 섬긴다는 것은, 모든 물체에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의 변화에 신들이 고유 주특기, 전문분야가 다 있어요. 전문분야별로 신들이 자기 전문직종들이 있다고요. 신을 섬긴다는 것은. 이쪽 동네에 가면 이쪽 신이 따로 있고, 저쪽 동네에는 따로 있고. 지역 신이 따로 있고요. 심지어 대장장이가 제품 잘 나오게 하는 신 따로 있고, 어부가 고기 잘 잡도록 하는 신 따로 있고, 농사꾼이 농사 잘 짓는 신이 따로 있고. 특히 여자들에 있어서 아기, 아들을 잘 낳게 하는 신이 따로 있단 말이죠.

그래서 고유 자기의 전문직종에 치중돼 있는 신은 자기가 필요에 따라서 마트에서 물건 사듯이, 물건 있다고 다 사는 건 아니잖아요. 기저귀 필요하면 기저귀 구입하면 되고, 파리채 필요하면 파리채 구입하면 되고, 식빵이 필요하면 식빵만 따로 구입하면 되는 거예요. 이 세상 변화에 대해서는 최고의 신이 있어요. 최고의 신은 보이는 신이 아니에요. 가나안 땅의 최고의 신은 ‘엘’이라고 합니다.

엘이라는 신이 있어요. 그리고 엘 밑에 전문직종에 따라 구분돼 있는 각종 신들이 있어요. 그 각종 신들을 우상이라 합니다. 우상의 특징은 각각 자기의 주특기를 품은 채 이게 형상화돼 있어요. 이집트의 ‘이시스’라는 그런 신은 곡물 털 때 작대기를 가슴 앞에 모으고 있다고요. 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신의 자기의 전문직종을 표현해놨습니다. 성형외과 있지요, 내과 있지요, 이비인후과 있지요. 의사마다 다 다르지요. 전문직종이 있잖아요. 신들도 전문직종이 있는 거예요.

이게 로마, 그리스 신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전문으로 제공하는 신으로 ‘큐피트’가 있어요. 아름다운 ‘비너스’가 있고. 폭풍, 천둥, 그리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라는 전문직종도 있어요. 양털 깎는 것, 목축하는 그런 신들이 있어서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 능력은 한계가 있고 그 한계에 대해서 미진한 것을 기도하면 도와주는 신들이 전문분야마다 도처에 깔려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상은 뭐냐? 한 마디로 말해서 이렇게 보면 돼요. 아주 높이 있는 여호와는 총괄 신이라면 우상은 생활 신. 일상생활에 아쉬울 때 빌면 자기 분야에 따라서 주어지는 신, 생활 신이 우상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섬기는 것은 여호와 믿으면서도 바알 섬기는 것은 하등 충돌되지 않았어요. 자연스러운 겁니다.

근데 욕심은 누가 많으냐 하면 여호와가 욕심이 많지요. 천지를 주관하시고 만유를 다 관장하시는 여호와, 신들 중에 우두머리거든요. 그걸 일단 받아들여요. 받아들이지만 여호와만 믿으면 어떤 결과가 주어지느냐 하면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개인적으로 신에게 압력을 가하면 안 돼요. 왜?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합력하여 뭐가 되지요? 선을 이루기 때문에 내 쪽에 아쉬운 게 있더라도 꾹꾹 참아야 돼요. “하나님이 알아서 했겠지, 하나님이 알아서 했겠지.”

여러분, 꾹꾹 참는다는 것은 그게 고맙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그냥 내 쪽에서 양보한다는 말이에요? “뭐 인간성 좋은 내가 양보해야지. 하나님께서 알아서 인도하시겠지. 기분은 더럽다만 그래도 뭐 알아서 하겠지.” 이게 마음에 행복하지가 않아요. 그리고 스트레스 받아요.

인간의 본성은 누구 중심? 나 중심인데,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 중심? “네 중심 되지 마. 모든 건 내 중심이야.” 하니까 거기에 간격이 생긴 거예요. 틈이 생긴 거예요. 틈이 생기니까 늘 내심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불만을 바깥으로 끄집어내면 또 뭐뭐 네가 나한테 대들어? 저주나 받아라. 이렇게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하니까 썩 기분 내키지 않고. 그러면서 내 욕심은 내 속에서 기죽지 않고 있고. 뭐 어쩌란 말입니까? 어떻게 하겠어요? 생활 신 찾아다니는 거죠. 그 전문분야 때문에.

그러니까 건성으로 왕이 여호와 믿읍시다, 할 때 백성은 마지못해 ‘예’합니다. 그렇게 여호와 섬깁시다, 했던 왕이 개인적인 욕심과 탐욕을 부리기 시작한 거예요. 왕이. 이거는 어려운 말 아니에요.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있던 것은 모든 것이 뭐가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혜가 되지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왕이 되었으면 백성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야 돼요.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욕심내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받은 게 있을 거예요. 그 받은 은혜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것인지 아시기 바랍니다.” 왕이 되었으면 하나님의 편에 서서 은혜가 여러분에게 떨어져있다고 알려줄 필요가 있지요.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야기한 게 그거에요. 너희들이 농사 지어 먹는 것 같은 그런 양식은 이 광야에는 없다고. 그런데 아침마다 새벽마다 가면 뭔가 떨어져있는 게 있지요. 그게 뭡니까? 그게 만나지요. 그럼 만나의 출처가 어딥니까? 인간의 노동은 아닙니다. 인간의 열심도 아니에요. 인간의 행함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이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루 종일 배 안 고프고 사는 것은 뭐냐 하면 새벽에 하나님께서 갖다놓은 그 만나 먹고 하루 종일 견디는 거예요. 그걸 저축하면 안 돼요. 왜 저축하면 안 되느냐? 저축을 해버리면 하나님의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어야 되는데 그걸 저축하게 되면 이게 누적이 되지요. 그러면 그거는 그 소유권이 누구한테 있습니까? 나한테 있지요. 나한테 있으면 그다음부터 뭐가 안 되느냐 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거저 주시는 것으로 삽니다, 하는 생각이 점차 옅어지고 날아가 버리는 거예요.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만나의 특징은 모아놓으면 썩는다, 에요. 그리고 아침마다 만나를 가지러가는 그것도 노동이라면 안식일에 만나는 없어요. 금요일에 아예 3일치를 줘요. 안식일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너희에게 만나를 줄 때 받기는 공짜로 받지만 그 만나를 생산하는 하나님 당사자 입장에서는 공짜가 아닙니다.

뭐냐 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게 한 양과 소와 염소의 제물, 그리고 곡물 그런 것을 제단에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죄인, 가치도 없는 인간들에게 만나를 제공하는 그러한 하나님의 취지가 죄인 대신 흠 없는 제물과 상대해서 그 제물이 제대로 하나님 앞에 응답이 될 때 그 효과로, 그 대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값없이 공짜로 만나를 제공한 거예요.

그렇다면 안식일에 만나를 주우러 가는 일도 없다는 말은, 안식일은 어디를 주목해야 돼요? 하나님이 현재 눈에 보이는 인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함께 계시다. 함께 계시다는 증거가, 물론 만나 주어지는 것도 증거가 되지만 보이지 않는 증거가 일주일마다 주어졌으니 그게 뭐냐? 안식일을 준수하는 거예요. 6일 동안 일하되 하루는 노동하지 말아야 되는 이 원칙이 약속의 땅에서도 계속해서 유효하게 있어 줄 때만 ‘여호와를 섬긴다’가 돼요.

적어볼게요. 이 문제는 쉬운 문제니까 여러분 누구든지 맞출 수 있어요. 여호와를 섬긴다. 안식일 되어 여호와를 섬기는 거예요. ①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나(인간)를 섬기는 것인가, 아니면 ②여호와를 섬기는 것인가? 이게 문제에요. 여호와를 섬긴다는 말이 어느 쪽입니까? 나를 섬기는 거예요, 여호와 섬기는 거예요? 이거는 유치원 애들도 알아요.

여호와를 섬긴다는 말은 여호와를 섬긴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여호와를 섬기는데 누구 방해됩니까? 내가 방해되지요. 그래서 안식일에 두 부류의 우리를 대신하는 제물이 태워집니다. 왜? 내가 멀쩡하게 있으면 자꾸 우리는 어느 쪽에 회귀돼요? 모든 의미가 하나님을 섬기면 나한테 어떤 이익이 있느냐고 자꾸 내 쪽으로 회귀되지요.

그럼 뭐가 방해돼요? 여호와 섬기는 게 방해되겠지요. 모두 내 쪽으로, 내 쪽으로 내가 여호와 섬겨서 복 받았다고 내 쪽으로 자꾸 당기는 것은 누가 한 짓이냐 하면 마귀가 인간을 사주해서 마귀가 나를 가지고 계속 그런 식으로 우리를 부추기는 거예요. 그래서 신약에 로마서 5장에 보면 우리를 하나님의 원수 된 자라고 이야기하잖아요(10절).

정확하게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철학이나 과학이나 학문에서 학교에서 안 알려줘요.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의 원수 입에서 구원해달라고 하는 것은 그 구원을 하나님이 들어줄까요, 안 들어줄까요? 안 들어주지요. 하나님의 원수 주제에, 자기가 원수라고 인정하는 주제에 구원해달라는 것은 나 원수 아닐 수도 있습니다, 라는 그런 식으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걸 거부합니다.

이게 방금 이런 질문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질문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모든 인간은 이미 이방인, 하나님이 함께 있는 이스라엘 빼놓고 이방인들은 무슨 신들을 섬겼어요? 여호와 섬겼습니까, 우상을 섬겼습니까? 우상을 섬겼는데 사실은 우상을 섬긴 게 아니고 우상과 협의했지요. 우상과 거래한 거예요. 신은 인간의 거래대상이지요. 왜냐하면 신만큼이나 소중한 것이 나기 때문에 그래요.

신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신을 무시해도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게 누구냐 하면 나라는 존재잖아요. 이게 이방종교의 특징 아닙니까. 그래서 이방종교는 보이지 않는 그냥 있으나마나한 추상적인 존재보다도 실제적인 것, 나한테 도움 되는 신을 그들은 섬겼던 겁니다. 전문직종마다 다 그렇게 섬겼던 거예요.

그러면 이 말은 뭐냐 하면 왕이 우상을 섬긴다는 말은 이스라엘 왕, 또는 유다 왕이 되어 만나처럼, 참고로 약속의 땅에 들어오면 뭐가 끊어져요? 만나가 끊어집니다. 만나가 끊어졌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동해야 된다는 겁니까, 하지 말아야 된다는 이 말입니까? 만나가 광야 때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까진 왔어요. 그때는 노동하지 않더라도 만나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에 가니까 딱 들어서자마자 만나가 끊어졌어요. 무려 사십 년 동안 주어졌던 만나가 없어졌어요. 그러면 그 말은 인간은 노동해야 산다는 말입니까, 노동 안 해도 산다는 말입니까? 어느 쪽입니까? 뚜렷하게 이야기하세요. 노동해서 산다는 말입니까, 안 해도 산다는 말입니까?

셋 중에 하나에요. 만나는 광야에서 주어졌다. 만나 시대 끝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만나 없음. 만나 없는 이유는 셋 중에 하나인데 ①이제 노동으로 산다. ②노동하지 않더라도 산다. ③너희는 죽어 있다. 몇 번입니까? ③번이 정답이에요. 늘 살려주는 거예요. 농사를 지으면 씨 뿌리면 열매 맺는다? 이 권한은 누구한테 있느냐 하면 약속의 땅에서는 하나님한테 있어요.

그래서 엘리야 때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어요. 이때쯤 비가 와야 된다는 것은, 그거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기 때문에 경솔한 태도에요. 3년 6개월이 아니라 36년 동안 안 와도 죽어 있는 인간은 할 말이 없어야 돼요. 한 360년 동안 비 안 와도 인간은 할 말이 없어야 돼요. 노동으로 산다. 이제는 만나 없으니까 밭 갈고 보리 갈고 맥추절 있잖아요. 밀 추수할 때. 유월절은 뭡니까? 보리농사 이삭 맺는 날이잖아요.

그리고 수장절은 뭐예요? 땀 뻘뻘 흘리면서 이렇게 했으니까 ①번이 정답일 것이다. 이제부터는 약속의 땅에서 노동해서 산다, 이렇게 하잖아요. 이게 틀린 이유가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땅 없어도 사는 지파가 있어요. 그게 레위 지파에요. 레위 지파는 땅 없이 사는 지파에요. 그 사람은 뭐 세포가 있고 신체가 있는데 굶고 사느냐? 아니지요. 왜 굶어요. 고기와 곡식 풍성하게 먹고 살지요.

그러면 농사짓지 않는 레위인들은 고기와 곡물은 어디서 주어지는가? ①사람이 준다. ②하나님이 주신다. 몇 번이에요? 하나님이 주신다. 어떻게 주십니까? 십일조로 주시지요. 그것도 제일 좋은 맏물. 이게 시스템이에요. 약속의 땅의 시스템. 이 시스템이 되려면 이제는 광야 지났으니까 우리가 노동한다? 노동이 아니고 죽은 자가 일하지요.

일해도 결과는 누구 손에 달렸다? 열심히 밭 갈고 논 갈고 양을 쳐도 하나님께서 적당한 때에 비나 여러 가지의 환경을 주시거나 안 그러면 외부에서 침입을 하지 않을 조건 하에 생산물이 생기게 마련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만나 때처럼 너희에게 젖과 꿀을 주신다는 것을 루틴, 1년 치 돌아가면서 순회하면서 보여주는 그것을 절기라고 합니다.

그 절기를 관장해야 될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레위 지파에요. 열세 지파 가운데 레위 지파가 그렇게 해요. 나머지 열두 지파는 레위 지파에 종속된 위치에 있습니다. 농사짓고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는 데 중간과정에 레위 지파한테 바치고. 레위 지파는 누구한테 바치고? 제사장한테 바치고. 제사장은 누구한테 바치고? 하나님께 제사로 바치고. 그리고 하나님은 흠향하고. 그 시스템이에요.

자, 그 시스템에서 여러분들이 이상하지요. 그런 시스템이 있을 때에 신명기 12장에 보면, 이런 걸 할 때 약속의 땅 전역에서 하는 게 아니고 딱 한 지점에서 집중해서 그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한 지점이 뭐냐? 바로 신명기 12장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시는 곳.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5절, *11, 18, 21절)

여러분 손바닥에 점이 있다면 여러 군데 여러분의 시선이 가 있지만 손바닥에 커다란 점이 있다면 손바닥을 펼 때마다 눈이 어디로 가요? 점에 가 있지요. 점만 빠지면 멀쩡한데 내가 DNA 잘못 받아서 손에 이런 게 있다, 그게 자꾸 신경 쓰이지요. 이게 진리 포인트에요. 진리의 점이에요. 나는 길이요 나는 진리요 나는 생명이다, 그 진리 포인트에 누구와 누가 만나느냐 하면 인간과 하나님의 이름이 만나는 점이 진리 포인트에요.

그 진리 포인트에 언약궤가 있고, 그 언약궤를 운반하는 기능은 레위 지파가 하고 언약궤를 가까운 데 지키는 것은 제사장이 지켜요. 그 제사장이나 언약궤를 운반하는 사람은 다 같은 레위 지파고. 그 언약궤에 대해서 그동안 제사장과 레위 지파가 제사를 드렸잖아요. 그것이 다윗 시대 오기까지 사사기 시대까지 잘 이어졌습니까, 아니면 그게 파토났습니까? 흐지부지됐어요.

왜 흐지부지됐을까요? 그건 뭐냐 하면 레위 지파한테 사람들이 십일조를 안 냈습니다. 십일조를 안 낸 이유가 약속의 땅에 가고 난 뒤에 그 열두 지파가 여호와를 버렸어요. 바알종교, 아세라 이런 종교를 믿었어요. 아까 했지요. 여호와란 개념은 있다고요.

그러나 실제 여호와를 버린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뭐냐? 개인적인 자기의 야심, 야욕, 탐욕 이것을 인간들은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욕망을 발휘하게 되면 거기서 생기는 것이 나만의 것이라는 소유의식이 발생했어요. 나만의 것. 그게 바로 바알종교 아닙니까.

왕이 되었으면 백성들에게 율법과,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를 가르쳐야 될 임무가 왕이 백성들에게 나눠줬던 하나님의 은혜를 지가 왕이라는 위치를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을 세금 명목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왕의 권력이 점점 더 비대해지겠지요. 힘이 세겠지요. 그러면 자기를 둘러 싼 권력이 강화되겠지요.

그러면 이거는 뭡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백성들에게 골고루 주어지는 것을 누가 중간에 서서 방해해요? 왕이 방해하겠지요. 원래 인간은 누구나 이렇게 권력을 쥐게 되면 이런 속성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잘 아셔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는 애당초 왕이라는 건 필요치 않다. 내가 왕 되어서 골고루 주면 되잖아, 은혜로. 만나 주듯이 주면 되잖아.

그런데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난 뒤에 사람들은 그동안 자기에게 있었던 사적인 욕망을 도저히 절제를 못하는 거예요. 저 집보다 우리 집이 더 살아야 되고, 저쪽 애보다 우리 애가 공부를 더 잘해야 되고. 도저히 남과 경쟁, 비교에서 내가 남보다 앞선 데서 사는 쾌락과 즐거움을 거기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네 집보다 내 집이 더 좋다는 것, 이거는 신명기 8장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누구든지 약속의 땅에서 집을 지을 때 이거는 내 수완으로 지었다 하는 자들은 약속의 땅에서 잘린다. 참 사람들이 성경을 안 보는 이유를 알겠지요. 사람들이 성경을 안 보는 이유가 있어요. 사람들이 언제 성경을 보느냐 하면, 언제 하나님께 기도하느냐 하면 자기 소유에 문제가 있을 때 아쉬울 때 찾아요.

그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뭐를 믿는 식이에요? 우상을 섬기는 식으로 여호와를 믿고 예수를 믿고 하나님 믿고 삼위일체 믿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이런 것을 만약에 문제시하지 않으면 교회가 안 됩니다. 교회 문 닫아야 돼요. 모든 인간이 바알종교거든요. 그럼 교회도 덩달아 뭐해야 돼요? 바알신당이 돼야 그래야 교회가 부흥이 된다는. 그러니까 교인들이 목사 설교할 때 강력하게 요구한 게 있어요. 어떤 교회라도 내가 나 되기 위해서 필요한 그 욕구를 목사님 건드리지 마세요. 그것 건드리면 나 교회 안 나오는 수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교회나 새순교회나 아직도 교인수가 있다는 말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건드려주신 것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해서 또 건드림을 받기 위해서 이 교회 나왔습니다, 하는 경우나

욕심은 욕심대로 있는데 신앙 있는 척을 하기 위해서 내내 꾹꾹 눌러서 내 불신이 안 들키면서 버티고 버티는 식으로 교회 나오는 경우.

여러분, 목회자는 어떻게 해야 돼요? 이래도 계속 교회 나올 거예요, 하면서 더 쑤시고 들어가야 되지요.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장 10절. 사람 좋게 한다는 게 뭐예요? 나를 죄인으로 안 받는 거잖아요. 나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것 아닙니까. ‘신앙생활 너무 착실하게 잘하시네.’ 지금 그걸 보장해주면 그거는 안 되지요.

성경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했지 내 신앙 어떤지 점수 받으려고 교회 나오면 안 돼요. 그건 자기 의라고요. 신앙도 자기 의입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신앙 없어서 구원받아요. 왜? 신앙도 거저 주시는 만나 같은 존재기 때문에 내 신앙 가지면 안 돼요. 주님 신앙이 여기에 걸쳐있어야 돼요.

여자분들 정신없이 설거지하다보면 고무장갑 꼈는데 소매부분이 뭔가 축축한 걸 느꼈을 거예요. 그거는 행주 빨고 너무 가까이 놔둬서 여기 걸쳐서 축축한 거예요. 우리는 열심히 구원받는다 해서 행함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그렇지 나는 행함보다 믿음이야, 열심히 믿음으로 사는데 뭔가 축축해. 보니까 내 믿음을 작살내는 주님의 믿음이 걸쳐있는 거예요. 참 너 쓸데없는 짓했다. 네 믿음 안 받는다니까. 주님이 믿음을 받아서 구원받는 것이지 내 믿음 안 받아요. 그냥 선물로 준다고요.

인간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한 평생 최선의 노력을 다 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누구냐? 왕이에요. 솔로몬이 바로의 공주와 혼인했잖아요. 솔로몬이 그걸 알았어요. 우리 아버지 다윗 궁에 너는 살면 안 돼. 왜? 너는 더러우니까.

그런데 애굽에서 아버지 밑에서 살아왔던 그 딸 입장에서는 자기 친정집에서 살아온 세월이 자기가 추잡하고 더럽게 느껴질까요, 어떻게 될까요? 절대 아니지요. 우리 아버지 얼마나 나를 철저하게 교육시켜서 어디에 내놔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참 교양 있는 사람인데 나는 솔로몬 당신 아버지 궁에는 왜 못 삽니까? 이렇게 반문하고 들어올 때 솔로몬이 뭐라고 이야기하겠어요? 인간은 원래 더러워.

인간은 원래 더럽다고요. 그리고 죄 지었다 울고불고 할 필요도 없어요. 하나만 알면 돼요. 회개 많이 한다고 구원받는 것 아니에요. 한 번 적어볼게요. 이것도 질문이다. ‘이스라엘이 우상 섬겨서 나라 두 조각나고 망했다.’ 맞지요. 맞는 이야기지요. 이제는 답변할 자신도 없나.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겨서 나라가 망했지요. 그렇다면 우상을 철폐하면 나라 됩니까? 안 되지요.

요시아 왕은 우상 철폐했어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아스 왕은 여호야다 제사장의 지시를 받아서 우상들 다 철폐했어요. 그래서 요아스 왕이 말년에 훌륭하게 살았습니까? 여러분 성경에 그렇게 돼 있습니까? 15절에, “여호야다가 나이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일백삼십 세라 무리가 다윗 성 열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아까 다윗 궁 이야기했지요. 솔로몬의 부인 애굽의 공주는 아무리 착실하게 예절교육 받아도 어디는 못 산다? 다윗 궁에는 못 살기 때문에 솔로몬이 궁을 만들어줬어요.

17절에,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의 말을 듣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이렇게 돼 있지요. 여러분, 이 대목이 성경에 반복되는 데요. 반복되면서 여러분의 의문도 같이 반복되는 경우가 있을 거예요.

무슨 의문점이냐 하면 이렇게 선배 왕들이 그렇게 우상을 섬겼더니만 조용했던 나라가 하나님에 의해서 엉망이 되고 외세가 침범하고 나라꼴이 엉망이 되었다. 그걸 후배 왕들이 그 선배 왕들의 역사를 알까요, 모를까요? 뻔히 알잖아요. 아는데 왜 또 자기 대에 와서는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깁니까? 여러분 이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유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애초부터 왕이란 것은 이스라엘에 없어야 됐어요. 이게 시작입니다. 왕은 없어요. 그럼 왕 없으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누가 하나님을 중개하느냐? 레위 지파가 중개해요. 제사장이 중개한다고요. 그걸 제사장 나라라고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무슨 나라? 제사장 나라. 제사장 나라라는 것은 제사 드리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나라가 제사장 나라에요.

그러면 다른 나라, 이방나라 같은 것은 왕은 통치하는 기능이에요. 통치하기 위해서 왕에게 뭐가 주어지느냐? 힘, 권세가 권력이 주어지는 거예요. 왕이 있어서 권세가 한 지점에 모이는 것, 그게 바로 마귀 나라입니다. 악마의 나라에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설 때에 인간 자기를 지워버려야 되고, 그 지워버리는 기능을 누가 하느냐? 일반백성들 대표해서 제사장이 하는 거예요. 그 제사장이 지워버리는 그러한 장소, 그러한 임무, 업무 그러한 사람을 뭐라고 하느냐? 거룩이라고 이야기해요.

자, 여러분 세상 나라에서는 뭐가 있어야 산다? 힘이 있어야 산다. 이스라엘은 뭐가 있어야 하나님과 산다? 거룩이 있어야 되겠지요. 다시 묻습니다. 세상 나라는 힘이 있으면 인간들이 살지요. 이스라엘은 거룩이 있으면 누가 삽니까? 인간들과 그리고 누가 살아요? 하나님이 함께 살아요. 이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찾아온 목적이고 이유입니다. 홀로 사는 게 아니에요. 함께 사는 거예요. 그러나 인간은 태생이 누가 살면 돼요? 자기만 살면 돼요. 자기 욕심대로 자기만 살면 그만이에요. 하나님을 이용할 뿐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도 마찬가지고 그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율법이 나타나니까 ‘나는 하나님 덕분에 나 살고 싶다’를 율법에 비춰보니까 그게 바로 추잡하고 더럽고 그게 죄였던 겁니다. 내 욕망대로 나 혼자 사는 게 죄였던 거예요. 그러면 거룩은 뭐냐? 깨끗하게 사는 게 거룩일까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게 거룩일까요? 함께 사는 게 거룩이지요. 오늘 강의 가운데 질문이 왜 자꾸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그건 조시니까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이어보겠습니다. 질문이 뭐냐 하면 이스라엘에 뭐가 없다? 왕이 없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야 돼요. 왕이 없는 대신 뭐가 있어야 돼요? 제사장이 있어야 되지요. 제사장이 하는 일은 인간을 나를 어떤 특정 현장에서 죽여 버리는 거예요. 어디서 죽이는가? 언약궤가 있는 자리에서 죽어요. 언약궤에 누가 있는가?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는 겁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이름 앞에 가면 어떻게 된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인간을 각종 모든 병을 고치는 치료법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이비인후과, 내과, 산부인과, 피부과 뭘 해도 하나님께선 다 고칩니다. 그 인간은 죽여 버리는 거예요. 지금 안 죽으려고 하니까 병 들린 거예요. 하나님 앞에 서서 내가 죽으면 내가 사는 거예요. 나를 죽여서 나를 살게 하시는 그것이 바로 율법의 진수입니다. 그런데 죽을 때 나 혼자 죽지만 살 때는 나 혼자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살게 해요. 이게 신약의 진수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수요일에 이야기했잖아요. 내가 날마다 주님의 죽으심에 넘기움은 내 안에서 누가 산다? 예수님이 사는 거예요. 저 천국에 내가 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저 천국이 주님과 함께 내가 있다는 이게 놀라운 사실이에요. 그러면 천국 가려면 이 지상에서 홀로 살아야 돼요, 주와 함께 살아야 돼요? 주와 함께 살아야 되지요.

주와 함께 살게 되면 나는 그 앞에서 산 자가 됩니까, 죽은 자가 됩니까? 죽은 자가 되지요. 죽은 자로서 우리는 노동하고, 죽은 자로서 활동하고, 죽은 자로서 놀러 가고, 죽은 자로서 노동절 지키는. 그게 바로 나를 통해서 나타나는 우리 주님의 거룩하심입니다. 이렇게 볼 때 거룩하심은 제사장의 제사 기능이 이어질 때만 가능하다고 했지요.

그런데 다윗은 왕이잖아요. 그런데 왕이 없어야 되는 다윗 왕이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무엇을 지키는 사람이냐 하면 사사기를 지나면서 제사장들, 레위인에 십일조를 안 주니까 그 사람들의 제사 기능이 완전히 마비됐어요. 마비되어서 하나님께서 뭘 세우느냐? 제사장이 하는 일을 특정 개인에게 이전시키는 작업에 나섰습니다. 그게 바로 왕이에요.

원래 제사가 제대로 작동하게 되면 이방민족이 이스라엘을 침범 못하게 돼 있습니다. 그게 뭐냐? 블레셋과 싸울 때 사무엘상 4장에 언약궤가 그렇잖아요. 언약궤가 혼자 다니면서 블레셋을 처리했지요. 사무엘상 5장, 6장 다곤 신상 손모가지 날아갔잖아요. 언약궤가 있는 한 이스라엘은 무너지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이스라엘 자체가 언약궤를 무시해버렸단 말이죠. 각자 자기 토지가 있으니까 토지생산에만 정신이 팔려서 십일조 내는 게 아까운 거예요. 내가 가진 것으로 내 소유로 내가 내 가족 먹어 살리겠다는 이런 쪽으로 나가니까 토지 없는 레위 자손은 떠돌아다닌 거예요. 하나님이 그때부터 이스라엘에 이방민족들이 쳐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방민족이 쳐들어오니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신이 임한 사사들을 동원해서 건져줬거든요. 그 사사의 마지막 사사가 누구냐 하면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블레셋을 이겼습니다. 그 사무엘이 누구한테 인수인계 하느냐 하면 소년 다윗에게 이새의 아들에게 왕이 되기 위해서 기름을 부은 거예요. 왜 사사가 아니고 왕이냐? 그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의 주제 파악을 못하고 왕 달라 해서 백성들이 요청해서 세운 왕이 사울인데 그 사울에게서 하나님께서 왕이라는 직책은 남기고 사울을 죽여 버렸어요.

그 직책에 다윗으로 하여금 가는 곳마다 이기게 했단 말이죠. 역대상 18장 13절.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이스라엘이 누구한테 이긴다는 말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은혜가 계속 유효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했으면 다윗이 성전 지으려 하는데 다윗이 이 성전을 감당을 못해요. 왜냐하면 인구조사를 통해서 자기 백성 칠만 명 죽었잖아요. 사탄이 시켜서.

그때 다윗이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자기가 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 성전 짓는 것부터 해서 이 나라에 대해서 내가 제사장의 위치에 있을 뿐이지 진정한 왕은 자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어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너 말고 네 아들에게 제사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성전을 짓게 하면서 다윗 가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원히 왕이 되는 가문을 새롭게 만들어내겠다고 사무엘하 7장 14절에서 약속을 했어요.

그때부터 왕이라는 것이 다윗 정신에 입각해서 왕이냐, 아니냐의 기준점이 세워집니다. 그 기준점에 의해서 그다음 왕들은 자신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다음부터 사례, 그들의 잘못된 그러한 경우들을 뿜어내기 시작했어요. 후대에 다윗 이후에 남북으로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그 이야기를 10분 쉬고 하겠습니다.

 

 

 

20260501b 울산강의-역대기하(21강) 24장 18절 : 언약의 전달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하면서 이걸 생각해보세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있지요.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회의 각 개인들이 지휘자를 왜 원해요? 지도자를 왜 원합니까? 인간들은 어디 가도 서로 비슷하게 살아가는, 남남끼리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어느 날 보게 되면 뭔가 비슷한 성향을 띠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이 모임에 이 지역에 누군가 오케스트라 지휘하는 것처럼 앞에서 지휘해주면 좋겠다는 요구가 얼추 비슷하게 생겨나기 시작해요.

귀촌해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한 마을하게 되면 한 6개월도 안 되어서 “여기 이장 뽑읍시다. 우리 대표 뽑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대표를 왜 뽑아야 돼요? 이상하게 대표 없으니까 뭔가 허전한 것 같아. 똑똑하고, 그런 건 나중 문제고, 일 잘하고 똑똑하고 열심히 하는, 그거는 나중 조건이고 어쨌든 간에 뭔가 우리를 지도하고 이끌고 인도해야 될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모든 인간에게 왜 그게 공통적으로 올라오느냐 이 말입니다.

그게 왜 올라오는 데요? 그게 우상이에요. 그게 바로 우상입니다. 그 지도자한테 껌뻑 죽고 복종하려고 한 게 아니에요. 뭔가 눈에 보이는, 내가 눈에 보이니까 눈에 보이는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줬으면 내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얻겠다는 이것, 이 마음이 왜 생기는 거예요? 천성적으로 인간은 우상 숭배자기 때문에 그래요.

아무리 왕이 못 나도 지도자는 지도자다. 그러한 의식을 우리 속에서 지울 길이 없습니다. 누가 열왕기하 15장 12절 크게 읽어보세요.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이스라엘 위를 이어 사대까지 이르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니라” 아하 성경 한 번 보세요. 예후 밑에 사대니까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그리고 스가랴 사대거든요. 이 사대가 되어서 결국 망해요. 북이스라엘이 망한다고요.

그런데 거기 사대에 해당되는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 이 왕은 자신들이 망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어요, 몰랐어요? 모르지요. 어떤 인간도 내가 망하기 위해서 열심히 산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엔 이렇게 나와 있어요. 너희들이 이렇게 사대 째 망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누가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알고 있었고 그걸 알고 있는 하나님이 계획대로 너희들은 그냥 그렇게 절차대로 갈 뿐이다, 이런 거예요.

창세기 2장 17절에 그건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따먹을 줄 아셨습니까, 몰랐습니까? 알았지요. 그러니까 ‘정녕 죽으리라’가 포함돼 있지요.

이 말은 앞에 빼버리면, 인간아 너는 어떻게 된다? ‘정녕 죽으리라’ 다시 인간은 죄 짓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난 거예요. 하나님께선 그걸 이미 알고 계셨던 거예요. 네가 몸부림치고 자식들하고 먹고 살려고 백날 애써봤자 너는 어디 간다? 지옥 간다. 이게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확정해놓은 거예요.

역대하 7장 19절에서 22절, 지나간 본문 자꾸 찾는 이유가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역대하 7장 이 이야기는 바로 성전 완공하고 난 뒤에 주어진 말씀이에요. 역대하 7장 19절, 20절, 제가 읽어보면, 성전 다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가 만일 돌이켜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숭배하면 내가 저희에게 준 땅에서 그 뿌리를 뽑아내고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한 이 전을 내 앞에서 버려 모든 민족 중에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리니”라고 돼 있지요. 이 말은 이렇게 되는 거예요. 너희가 성전을 지었는데 하나님이 함께 했잖아요. 성전 짓고 지금 분위기가 업 된 거예요.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는구나. 이렇게 번영을 주시는구나. 감사하다. 성전 줬으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고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히 이거는 확정된 거다.” 이렇게 안심을 했는데 그 안심을 하는 백성들에게 뭐라고 하느냐 하면, 네가 만약에 이렇게, 이렇게 살면 이 성전은 어떻게 된다? 내가 허물어버리겠다,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이거는 무슨 뜻이냐 하면, ‘네가 내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이 말은 너희들은 성전을 지어놓고 하나님께서 복을 줘도 내 율례와 명령을 반드시 버리게 돼 있고, ‘다른 신을 섬기면’ 다른 신을 섬기게 돼 있고, ‘다른 신을 숭배하면’ 다른 신을 숭배하게 돼 있고, 이런 뜻이에요. ‘네가 이 땅에서 지금 여유 있게 산다 하지만 반드시 너희들은 이 땅에서 추방될 것이고 피폐할 것이고 철두철미하게 망하게 될 것이다.’ 내 장담할게, 이 뜻이에요.

그걸 가지고 하나님은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네가 성전 지었다고 안심하지 마라. 내가 준 율법과 계명을 위반하게 되면 성전이고 다 날아간다. 그리고 너희들은 망한다. 이러한 언질을 굳이 뒷부분에 다른 이유가 뭡니까? 너희들의 말로는 이미 정해져있다. 망하도록. 망하도록 정해져 있는데 이유는 알아야 되지 않느냐? 그 이유가 뭐예요? 그들이 뭘 어겼어요? 율례와 법도를 그들은 버리게 될 수밖에 없는 그런 본질을 가지고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마치 창세기 2장 17절, 선악과 심어놓은 취지가 결국 따먹게 돼 있고 망하게 돼 있다는 것을 전제로 심어놓은 것처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가는 것도 망하기 위해서 쫓겨나기 위해서 약속의 땅에 가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몰랐어요. 이게 약속의 땅이다, 이래 생각했지요. “니 맛봤나? 구경했어?” “예.” “나가!” 일본말로 뭐 된다? 나가리. 흐름에 쓸려나가는 거예요. 시마이 되는 거예요. 그럼 성전을 준 이유가 뭡니까? 성전을 주는 것은 시마이 되기 위해서.

다윗에게 이 성전은 자기가 감당을 못하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성전을 허락했는데 성전을 할 때 그 성전이 굉장히 간소화됐다는 사실이에요. 처음에 모세 때 줬던 언약궤 안에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 그리고 깨진 율법의 돌 판이 들어있어요. 깨진 율법을 대신한 돌 판, 그냥 돌 판이 아니고. 이 언약에 대해서 위배한 자의 증거물이 들어있어요.

고라 자손이 하나님께 대들었던 증거가 뭡니까?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민수기 17장. 그리고 먹을 게 없다고 원망했다고 준 증거가 뭡니까? 만나. 그러니까 인간들은 너희들은 나한테 대드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너희들이 숨 쉬고 일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 대한 반항이에요. 반항이고 도전이고 대들고 짜증내고 불만 일으키고 불평하는 것, 그게 너희들의 주특기에요. 전혀 거룩하지 않아요.

전혀 거룩하지 않음을 전제해야 하나님의 거룩에 인간의 어떤 행함이나 생각도 끼어들 수 없다는 것, 그게 바로 구원의 기준입니다. 구원의 기준은 뭐냐 하면 일말의 내 게 들어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걸 잘 보여주는 게 언약궤잖아요. 그래서 솔로몬 성전에 보면 언약궤가 만나 없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없어요. 들어있는 건 뭐냐 하면 돌 판 뿐이에요. 이게 성전의 간소화에요.

언약궤 없으면 성전 없기 때문에 언약궤 안에 뭐가 들어있다고요? 돌 판 들어있지요. 돌 판엔 뭐가 새겨져 있습니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가 새겨져 있지요. 그러면 이 언약궤가 깨뜨려지면 거기서 뭐가 깨어납니까? 하나님의 율법이 깨어나지요. 그 율법이 깨어져서 그 율법이 그때는 이스라엘에 국한되는 게 아니고 전 세계에 퍼지는 겁니다.

그러면 전 세계에 유대인들이 퍼지면서 이스라엘의 파편들이 퍼지면서 덩달아 유대인 따라 하나님의 율법도 다 퍼지겠지요. 왜? 세상에 퍼져나간 유대인들은 무엇의 증거입니까? 이스라엘인데 하나님께 대드는 식으로 우상 섬기다가 하나님께 저주받아서 온 세계로 이제는 흩어지게 되었다는 진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은 율법에 의해서 범죄 했을 때 반드시 필히 끝까지 하나님이 보복하고 복수한다는 증거용으로 이 세상에 누가 퍼져있습니까? 유대인들이 퍼져있겠지요.

언약에 닫혀있던 하나님의 언약궤에 피에 의해서 보호받던 그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언약궤가 깨어지면서 잠자던 하나님의 분노와 저주가 기지개 켜면서 전 세계에 확장되었습니다. 여기에 준해서 바로 이 사실에 준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성립됩니다. ‘언약궤냐, 세계냐? 둘 중에 어느 것 할래?’라는 질문이 성립하죠.

언약궤냐, 아니면 이 세상 전부, 둘 중에 어느 걸 선택할 수 있느냐? 인간들이 어느 걸 원해야 돼요? 저주의 대상인 세상을 원할 겁니까? 아니면 유일한 거룩한 장소 언약궤를 원할 것입니까? 어는 쪽이에요? 답변해보세요. 언약궤죠. 그러면 관절이 안 좋다. 이럴 경우에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까? 애 성적이 안 오른다. 불평할 수 있어요? 성적 올라서 거룩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거룩은 바꿔치기가 되는 거예요.

세상에 어떤 수모와 세상에서 어떠한 비난과 평가를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거룩 만한 게 있다면 그런 것 전혀 탐낼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게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해 같이 얼굴이 빛났잖아요. 얼굴 좋~다고요. 해 같이 빛났으니. 그렇다면 이 기준이 여러분 세워졌지요. 언약궤가 중요하지요.

그 언약궤 중심인 성전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솔로몬이 만들었지요. 그러면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는 이야기 테마의 핵심은, 손바닥의 지혜에 해당되는 핵심은 뭐냐? 언약궤의 가치를 누가 지킬 만한 왕이냐, 하는 그 문제로 이게 통합된 이해가 필요해요.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이제 여러분 이 전체 내용을 이제는 감 잡았습니까?

성경 전체 내용의 중심은 어디에 있다? 언약궤에 있지요. 왜? 언약궤 거기에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잖아요. 우상을 뭐라 했습니까? 나를 위해서 누가 있어야 돼요? 신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럼 언약궤는 뭡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거예요. 기존의 더러운 인간을 하나님께서 언약궤의 제사를 통해서 새롭게 없는 데서 만들어지는 거예요.

지금 이야기한 걸 실제로 역사 중에서 이 일을 하나님께서 진행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쫓겨나고 난 뒤에 이스라엘 역사가 끝나는 게 아니고 에스라-느헤미야란 책이 있어요. 들어는 봤습니까? 에스라-느헤미야 책이 뭐냐 하면 성전이 깨졌잖아요. 언약궤도 없어요. 그렇다면 언약궤가 과연 어디 있느냐? 없지요, 깨졌으니까. 그러면 언약궤에 있던 하나님의 이름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이름은 언약궤가 깨어지면서 위로 올라가지요. 그게 에스겔에 나와요.

주의 성전이 지상에 있어야 될 성전이 천사들에 의해서 만들어져서 위에 있다고요. 만들어지면서 그 스케줄이 하나님이 장차올 영원한 스케줄이 멈춰지질 않았어요. 중지, 중단되질 않았어요. 중단되지 않고 그 취지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에스라-느헤미야라는 게 있는데 이스라엘 망할 때가 바벨론입니다. 그 바벨론을 망하게 한 나라가 뭐냐? 지금의 이란이에요. 페르시아, 성경적 용어로 바사.

바사의 첫 번째 왕 이름이 고레스, 그다음에 다리오, 아닥사스다 이 왕들이 있었어요. 이 고레스가, 이미 모든 게 말씀대로 되니까 여러분들은 그걸 인정하니까 조금도 거기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뭐든지 말씀대로 돼요. 고레스 왕에 대해서 이미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했어요. 일단 망하자. 일단 맞고 보자 이 말입니다. 맞아야 될 이유는 있지요.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인간은 우상을 왜 섬긴다 했습니까? 인간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가 뭡니까? 자기 자신을 포기를 못하거든요.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기 자신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든 예수든 성령이든 간에 전부 다 자기를 위한 신이에요. 하나님은 상대 안 하지요. 너 혼자 우상 많이 섬기세요, 하고 떠나버렸지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떠나면 그만인데 이스라엘은 뭐냐?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일단 이스라엘은 좀 맞자. 맞아서 다른 나라로 흩어졌잖아요.

특히 바벨론에 심하게 추방되어 갔습니다. 가고 난 뒤에 그 바벨론의 역할은 끝났어요. 페르시아, 바사에서 그걸 접수를 했어요. 접수하고 첫 번째 왕 고레스가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약속의 땅에 지으라고 포로 된 사람에게 각종 거기에 필요한 자재들을 같이 뭉쳐서 짓도록 그렇게 편지하고 그걸 실시한 것은 다리오 왕 때 실시했습니다. B.C.516~536, 이십 년 동안 성전을 짓게 돼요.

에스라에 보면 성전부터 짓고 성전 다음에 뭐 하냐? 일꾼들이 와요. 성전과 더불어서 성전에 필요한 일꾼들이 포로 된 중에서 같이 와요. 이 말은 뭐냐? 일꾼들이 하는 일은 성전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 온 거예요. 그 일꾼들에 누가 있겠습니까? 바로 제사장들, 레위인들 오겠지요. 그다음에 봅시다. 성전 있었다. 그다음에 일꾼 있다. 제사장, 레위인들 있다. 그다음에 뭐냐?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거예요. 율법을 가르쳤다. 그다음에 회개했다.

순서가 첫 번째, 성전 없다. ‘성전 없다’에서 성전 짓다가 되고, 성전을 유지해야 될 제사장, 일꾼들 왔다. 그다음에 율법을 그들이 전했다. 그다음에 회개했다. 그다음에 율법대로 사회체제가 율법체제로 바뀌었다. 이렇게 된 거예요. (성전 없다 - 성전 짓다 - 일꾼 - 율법 - 회개 - 율법체제) 자, 누가 이야기해보세요. 여기에서 이스라엘이 포로 잡히기 전과 차이점이 딱 하나 있어요. 뭘까요? 차이점이 있는데 뭐가 없는데 뭐가 없어요? 왕이 없어요. 에스라-느헤미야에 왕이 없습니다.

제가 언젠가 강의할 때 그런 이야기했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란 그림이 잘못된 이유에 대해서 언급했어요. 예수님 빼놓고 열두 제자 있지요. 그 그림이 잘못됐어요. 그 그림에서 누가 빠져야 돼요? 예수님이 빠져야 되지요. 왜? 인간이 보는 예수님은 인간이 죄 가운데 예수님을 이용하겠다는 그 욕심으로 봤던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 이후의 예수님은 인간의 욕심을 지적해주는 보이지 않는 주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함께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인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렇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뭘 거쳐야 되느냐 하면, 우리는 왕이 있어야 됩니다. 보이는 성전이 있어야 됩니다. 제사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제사장 있어야 되고 눈에 다 보이는 것들이 있어야 신앙의 마음에 안정성을 얻겠습니다, 하는 이 모든 것을 구약 때부터 그런 순서를 밟아왔잖아요.

그런데 제사 있고 십일조 있고 뭐 의식 있고 율법 있고 했던 그 모든 것이 다 파토 나고 그게 우리의 죄 때문에 아무것도 소용없이 된 입장에서 예수 이름으로 모인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그건 뭐냐 하면 내가 있고 주님이 계시다가 아니라 순서가 바뀌어야 되는 거예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제가 여기 있습니다, 라는 관계로 모일 때 그게 바로 이미 시작된 천국이고 그게 진정한 교회입니다.

내 힘으로 온 게 아니고 주께서 오게 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시작을 주님부터 시작한 일에 나는 결과로써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분이 원인이 되고 보이는 나는 보이지 않는 분에 연결돼 있는 결과물입니다. 열매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걸 반성이라 하지 않고, 그걸 회개라 하는 거예요.

회개라 하는 것은 반성하는 게 아닙니다. 반성은 여전히 누굴 봐요? 자기를 쳐다보는 거예요. 자기 행동을 쳐다보고 앞으론 이런 일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 이거는 회개가 아니고 반성이고. 회개라 하는 것은 지금 사태가 지금 환경이 내 중심이 아니고 누구 중심이다? 보이지 않는 그분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고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기쁨으로 감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게 뭐예요? 그게 바로 회개에요.

그동안 구약 때 많이 했잖아요. 구제하고 봉사하고 제사 드리고 양 잡고 십일조하고 많이 했잖아요. 그런데 했던 그 결과가 뭐예요? 그게 다 우상인 거예요. 여호와 이름의 우상이고, 메시아 종교란 이름의 그게 우상이었던 바알종교였던 거예요. 이유가 뭡니까? 자기 자신을 제거하지 못했던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를 지도할 인도자를 원했던 거예요. 지휘자를 원했던 거예요.

그 지휘자 왜 원합니까? 자기가 잘되기 위해서. 자기가 죽어서 천국 가기 위해서 인도할 메시아를 유대인들이 원했던 거예요. 그럼 자기 자신은 뭐냐 하면 괜찮은 존재가 돼버려요. 맨날 그들의 하는 것은 뭐냐? 반성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짓을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 이런 짓을 해서 하나님께 누를 끼치는 것을 용서해주시옵소서. 그것 때문에 우리 가정이 파탄 났군요.

그렇다면 앞으로 이런 저를 빨리 반성하고 회개해서 그동안 밀렸던 십일조 한꺼번에 해서 그다음에 원하는 건 뭐냐? 내가 전에 나를 괜찮게 생각했던 나로 빨리 회귀하는 것, 손해 본 걸 빨리 만회해서 남들 보기에 사람 사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자신의 욕망, 이걸 우상 숭배라고 하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 다시 해봅시다. 다윗이 가는 곳마다 어딜 가든지 이기게 하셨다. 역대상 18장 13절 말씀. 질문 나갑니다. ①이때 다윗이 기분 좋았다. ②다윗이 무서웠다. 몇 번입니까? 처음에는 기분 좋았겠지요. 왜? 우쭐댈 수 있기 때문에. 그것 봐.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잖아. 나 건드리면 누굴 건드리는 것이다? 하나님 건드리는 것이다. 나 봐. 이스라엘 왕답지. 나 같은 대단한 왕이 어디 있어.

이렇게 하다가, 맞습니다. 역대상 18장 13절,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매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역대상 18장 6절에도 나와 있어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남들 보기에 다윗 참 기분 째지겠다. 좋겠다, 이래 생각하지요.

다윗은 이 업 된 기분 밀어붙여서 성전 지으려고 했잖아요. 하나님이 어떻게 했습니까? 못 짓게 했어요. 이게 엄청나게 겁나는 일이에요. 왜냐하면 나한테 일어나는 모든 계획이 싹 다 주께서 일으킨 일들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면 나의 계획은 일체 허용이 되질 않습니다. 이것을 바로 이 정신을 성경에서 뭐라고 하느냐? 이걸 ‘다윗언약’이라 합니다. 특수하게 다윗에게만 맺은 언약.

이 다윗언약대로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뭘 발생시키느냐? 참된 이스라엘을 발생시킵니다. 이것을 로마서 1장에서 복음이라 해요.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해요. 다윗의 언약에 의해서 열매가 맺히면 그게 복음이고, 그 복음의 특징은 뭐냐 하면 일체 사람의 의가 섞이지 않은 하나님께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어떤 인간도 이걸 믿는 자에게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왜? 자기 게 아니니까. 자기가 행해서 함께 있는 게 아니고 일방적으로 덮어 씌워서 줬기 때문에 이것은 어디 가도 부끄러울 필요가 없어요. 계엄 일으켜도 부끄러울 필요 없어요. 그걸 안 믿어서 문제지만. 그래서 하나님의 의는 모든 것에 대해서 항상 이기게 해주세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 몸에 암에 걸려도 이기게 하시고, 애 성적이 안 올라도 이기게 하시고, 보이스 피싱에 걸려서 한 이천 만원 날아가도 이기게 하시는 거예요.

그걸 로마서 8장에서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전쟁이나, 손가락으로 꼽은 항목이 뭐예요? 남들 보기엔 인생 망했다 아닙니까. 망했는데 뭐라고 하느냐 하면 주께서 이렇게 해요.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다음에 뭡니까? 끊을 수 없느니라. 끊을 수 없다 했어요.

오늘 이 시간에 역대상하, 열왕기상하 한꺼번에 다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한 10분만 하면 돼요. 기차가 있다. 기차에 객차 10량이 있는데 기차가 이쪽에서 이쪽으로 달립니다. 기차 길이를 1킬로미터라고 봅시다. 이게 이스라엘 역사라고 봅시다. 이 한 칸마다 왕들이 있어요. 한 칸에 왕들이 다 있어요. 한 시대가 죽고 그다음 왕, 그다음 왕, 그다음 왕, 남쪽 왕, 북쪽 왕들이 있단 이 말이죠.

이 왕들은 어떤 제한을 받느냐 하면, 항상 이기게 하시는 다윗언약의 기준에 의해서 제한을 받게 돼 있어요. 근데 이 왕들 가운데서 성경에 보면 잘했다고 칭찬한 왕도 있고, 못했다고 하는 왕도 있지요. 더 어려운 이야기는 오늘 요아스 같이 동일한 인간인데 잘했다 하는 부분이 있고 뒤에 가서 뭡니까? 우상을 섬겼다는 이런 왕도 있지요. 그러면 이거는 카멜레온도 아니고 잘한 거야, 못한 거야.

여러분들이 성경 보면서 열왕기, 역대기 보면서 굉장히 헷갈리는 이유가 우리 같으면 계속 좀 잘하지 왜 도중에 그렇게 처음에는 우상 버려놓고 인생 끝 날에 왜 그걸 또 다시 해가지고 결국 말로가 안 좋게 끝나는지 여러분 궁금하지 않았던가요? 아예 안 보는 것 아닙니까? 성경을. 성경을 그렇게 보면서 가슴을 치면서 답답한 적 없어요? 하나님께서 전임자를 그렇게 때리고 그랬는데 왜 후임자가 그걸 뻔히 알면서도 똑같은 잘못을 반복해서 하는가? 인간성이 못돼서 그래요? 머리가 나빠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여기 이쪽부터 주께서 철로가 있어요. 여러분 기차가 철로 속에 다닙니까, 철로 위를 달려요? 위죠. 죄송합니다. 이 질문이 중요해서 그래요. 기차가 철로 속으로 가는 게 아니고 철로 위로 가지요. 그러니까 기차 이거는 안 보입니다. 뭐가 보이느냐? 이스라엘 왕들이 잘했다, 못했다. 또 한 개인이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다는 이것이 철로 자체로 이게 보입니다.

이걸 역사라 해요. 눈에 안 보이는 것은 역사가 안 보이겠지요. 여기서 우리는 이 역사를 보면서 아이고 답답해. 좀 반성하고 회개하면 되는데 너 때문에 주변 나라에서 쳐들어오고 저주받고 백성들 끌려가고 이게 무슨 짓이냐. 똑바로 하지. 왕 본인도 똑바로 하고 싶어요. 그런데 왕은 여기서 파토 난 것을 그냥 쭉쭉 물려받는 입장에 있어요. 여기서 약간 어려운 것 이야기할 테니까 그 점만 통과하면 됩니다.

철로는 눈에 보이는 역사, 기차라 했지만 기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언약의 흐름이에요.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뭘 먼저 설명해야 하느냐 하면 전기는 어디로 가느냐 하면 전선을 통해서 전달되지요. 전선 안에 전자가 있지요. 전기를 운반하는 이 전자가 속도가 얼마쯤 되겠습니까? ①빠르다. ②늦다. 몇 번이겠습니까? 둘 중에 하난데 아무거나 이야기하세요.

‘빠르다’하는 게 직관에 맞아요. 근데 실제로는 전자는 1초에 1밀리미터 갑니다. 굼벵이보다 더 늦게 가요. 왜냐하면 물이 꽉 차있는 투명한 튜브에 물을 집어넣자마자 꽉 차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앞의 물이 튀어나와요. 전자가 움직이는 게 아니고 뒤에서 압력이 들어오면 그 압력이 전자에 의해서 꽉 차있기 때문에 이게 빠른 속도로 전달되는데 전자가 움직이는 게 아니고 그 전달되는 에너지의 속도가 빛의 속도입니다. 전자 근처에 전기장과 자기장이 있어서 전기장과 자기장이 에너지를 품고 전달하는 거예요.

이 예가 줄다리기. 줄다리기할 때 상대방이 힘이 세서 당겨버리면 순간적으로 제일 끝이 딸려가지요. 왜? 동일한 줄의 마디마디가 같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래서 성경에서 힘든 것은, 시간은 흘러야 생기는 게 아니고 시간은 동시적으로 같이 줄다리기의 끈처럼 동시에 있고, 기차처럼 전량이 같이 있는 거예요. 그 긴 시간 내에. 하나 있고 하나 없고, 하나 있고 하나 없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철로를 그렇게 이해했는데 사실은 기차는 철로 속으로 가는 게 아니고 어디로 달립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철로 위로 달리지요.

철로 위라는 언약은 시작이요 곧 끝이고. 그게 함께 꽉 짜여있어서 하나를 치면 그 순간적 영향력이 다 미치게 돼 있어요. 다 들어있어서 뭘 전달하느냐? 언약을 전달해요. 언약을 전달했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이 이 왕, 각 왕이 일단은 필요 없고요. 왕이 필요 없는데 왕이 생겼어요. 벌써 수상하지요.

그 왕의 기능은 뭡니까? 하나님이 공짜로 백성에게 준 것을 누가 가로챘다? 왕이 이방 왕처럼 권력을 행사해서 그걸 차단해서 자기 몫으로 챙겼다 돼 있지요. 이게 신약에 오면 이게 바로 짐승입니다. 마귀의 하수인들이에요, 이 왕이. 지도자가. 그런데 백성들은 그걸 모르지요. 왜? 오케스트라에 뭐가 필요하니까? 지휘자를 필요로 하니까. 눈에 보이는 지휘자가 필요하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뭐냐? 모든 게 말씀대로 된다 했지요. 말씀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대로 살래, 지휘자 왕이 필요하냐? 이걸 묻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묻는가? 왕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왕이란 작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다는 작자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왕 됨을 가리고 그 권세를 자기 권세로 빼돌리는 데 사기꾼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그냥 사기꾼이죠. 사기꾼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기능을 누가 한다고요? 왕이 해요. 왜? 왕이 율법을 처음으로 봤으니까. 왕이 율법 책을 보면서 하니까. 그 율법이 자기를 옹호하는 게 아니고 도리어 자기를 정죄하고 친다는 사실을 왕부터 받아야 되거든요. 왕이 먼저 본다고요.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러면 왕이 행동할 때 어떤 경우에 왕이 칭찬을 받던가요? 역대하, 열왕기상에서. 뭐 다 안 읽어봤지만 제가 말씀 드릴게요. 어떤 경우냐 하면 교만하면 다 말아먹습니다, 오만하면. 왜 오만하냐? 모였던 권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이 예가 너무 많아서 이것 하면 시간 다 가요. 여러분들은 감으로 생각하세요.

히스기야가 있을 때 십팔만 오천 명 한꺼번에 죽었지요. 그리고 난 뒤에 히스기야 어떻게 됐습니까? 교만했어요. 그 당시에 별 볼일 없는 조그마한 소국에 지나지 않는 바벨론 사자가 왔을 때 자기 창고 문 열어서 다 보여줬어요. 우리나라에 말이야. 이거 벙커 치는 폭탄이고, 이것 핵폭탄이야. 어때? 우리 함부로 못 치겠지. 이렇게 짝다리 하면서 잘난 척할 때 그 장차 바벨론 왕한테 그 창고 있는 것 다 빼앗겼습니다.

아주 지독하게 처음 정치할 때부터 우상을, 여러분 이걸 생각해보세요. 왜 우상을 섬깁니까, 목사님? 백성들이 원하는 거예요. 아까 본문에 봤지요. 여호야다 죽고 난 뒤에 누가 와서 요아스 왕에게 권합니까? 방백들이. 그러니까 방백들이 그동안 어지간히 여호야다 때문에 답답해 한 거예요. 백성들이 우상을 못 섬겨서 지금 들고 일어날 판인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 욕망은 있지, 그 욕망은 뭐로 변한다 했어요? 소유성으로 바뀌지요. 내 재산을 정당하게 소유하기 위해서는 여호와는 허용하지 않으니까 그거는 바알과 아세라에서 허용을 하는 거예요. 아세라 신은 특히 뭐냐 하면 아들 낳는 거예요. 아들 없이 살래요, 하나님 잘 믿을래요? 이걸 아들이 귀한 집안한테 물으면 진짜 이거는 폭력당합니다.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면 우리 집안에 아들 하나 떡하니 점지해줘야지. 점지를 안 해주니까 누구한테 갑니까? 점지하는 보살한테 가잖아요. 권사라는 이름의 신종 보살이 또 있어요. 기도원에 기도하면 아들 낳는다는.

역대하 24장 17, 18절.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고로, 그게 누구냐? 방백들이 요구하게 된 거예요. 지금 백성들이 들고 일어날 판이에요. 숨 좀 쉬자. 여호와만 신 아니잖아요. 여호와 믿지. 전지전능하신 것 인정하는 데 실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사적으로 개인적으로 좀 윤택하고 복 받고 살려면 이건 우상이 짜인 거예요. 왜? 그 우상 섬기는 것은 뭐가 많으냐 하면 간증거리가 많아요.

이렇게 기도했더니만 이렇게 하니까 병 낫고 이렇게 하니까 복 받고 서울대학 가고 이런 간증거리로 가득한 그것을 애써 그걸 폐기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희망이 그건데. 내가 잘되는 게 희망이잖아요. 하나님이 하나님답게 되는 것, 그거 희망사항 아니에요. 그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진짜 좋아하는 것은 내 인생이 잘 풀리고 우리 집안이 잘되는 거예요.

포항에 해 뜰 때 빌잖아요. 비는 내용을 MBC, KBS 기자가 가서 물어보세요. 올해도 자식, 우리 가정, 남편 건강하고. 전부 다 남편들 왜 아픈지 몰라. 애들 공부 잘하고. 우리 결혼한 아들 사업 잘되고. 그걸 위해서 간절히 호미곶 가서 손바닥 그 사이에 해 뜰 때 빌잖아요. 그러면 아이고 그거는 우상이죠.

그러면 교회에서 1월 1일에 뭘 빌었어요? “그저 여호와의 말씀대로 하옵소서. 내가 망하든지 말든지 나는 말씀대로 족합니다.” 그것 빌었어요? 그것 빌려고 새벽에 잠도 안 자고 교회 나옵니까? 헌금하고. 본전 찾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이 뭐냐 하면 처음에 솔로몬 때 망했던 나라가 둘로 쪼개졌던 필히 나는 망해야 된다는 그 압력의 순간, A, B, C, D 순간적으로 그 위반 사례를 이스라엘 멸망할 때까지 계속 이어져나가야 되는 거예요. 나중에 끝에 가면 이판사판 나 몰라. 나는 왕이야. 끝. 처음에는 여호와, 말씀까지 신경 쓰더니만 나중엔 그것 다 신경 안 써요. 아주 노골적이에요, 노골적.

백성들에게 인정받아야 뭐가 된다? 내 정권이 오래가는 거예요. 여론조사가 뭐 때문에 있습니까? 이번 대통령 잘한다, 못한다. 전화 여론조사해서 잘했다 52%, 그렇다 10%, 못했다 30%. 이거 왜 합니까? 백성들한테 인정받을 때 그다음에 대통령은 뭡니까? 대통령 임기를 5년 할 게 아니고 10년으로 하자. 그래서 아프리카에는 30년 하고요, 푸틴은 20년째 하고 있고요. 다 그렇게 하잖아요. 트럼프도 또 하려고 하고요.

그게 마귀의 모습인 걸 알면서도 은근히 내 자식도 이 땅에서 대통령 한 번 시켜봐야 되지 않겠나, 하는 그런 욕망.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런 죄인을 죄인 되게 할 때 그다음에 대통령이 되던 몸이 건강하던 관계없이 이 세상에 온 천하보다 귀한 것은 뭐다? 바로 하나님이 주신 영생이다, 하나님의 의다. 그것에 감격하고 읽어버린 그 감사거리를 계속해서 찾고 찾게 되는 사람, 그게 오늘날 교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가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죄인 아닌 자가 한 명도 없이 다 드러난다는 이 사실을 이제는 도리어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켜서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서 오직 우리의 자랑은 십자가 하나님 의 외에 일체 우리 의를 자랑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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