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사함 받은 중풍병자 260426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중풍병자와 친구들. 중풍병자는 스스로 걷지를 못하죠. 걷지도 못해서 이렇게 이 친구들이 이렇게 데려다 줘야 돼요. 근데 이 아픈 병 친구를 위해서 같이 데려다 주려면 이들이 평소에 얼마나 우정이 깊고 서로 평소에 친하게 지낸다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요. 우리 너무 친하게 친하면요, 누가 아프면 차라리 내가 니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이 정도로 친한 친구들 다들 있지요? 너무 그 친구를 좋아하면 아프면 자기 아픈 것처럼 생각돼 가지고 뭐든지 이렇게 해주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그 친구가 하나 중풍병자 했으니까 그 어떻게,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보려고 애를 쓰는데 소문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이 배 타고, 이 배가 보이죠. 배 타고 가버나움으로 이제 오셨어요. 배 타고 이제 어느 동네에 갈릴리 바다 동네에 와가지고 사람들에게 병도 고치고 복음도 전하고 말씀도 전하고 이랬어요.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이렇게 했다 이 말이죠.
그 소문을 누가 듣는가? 친구가 들었어요. 친구가 듣고 “야. 이참에 우리 다 같이 힘을 모아 가지고 우리 친구 병 한번 낫게 해 보자. 그래서 옛날처럼 우리가 서로들 건강해 가지고 재미나게 이야기하면서 한번 살아보자.”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겁니다. 이렇게 했는데 가보니까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신다는 소문 들은 것이 자기만 들은 게 아니거든요. 자기만 답답한 게 아니고 전부 다 답답한 사람도 많고 아픈 사람도 많고 귀신 들리는 사람 많고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사람들 가가지고 예수님 좀 고치려고 들이대니까 “서시오. 번호표 뽑으세요.” 해가지고 보니까 이거 줄 기다리다가 자기 친구가 죽는 수도 있겠다 이 말이죠.
그래서 우정이 강한 이 친구들이 의논했어요. “야. 이거 새치기 하자. 이거 반칙이지만 뭐 답답한 사람이 먼저 설친다고 이거 우리가 새치기해서라도 이거 들어가자.” 그래 가지고 이제 의논한 것이 입구는 좁고 하니까 어떻게 하냐 하면 수직적으로 공중에서 직하 바로 바로 이렇게 내리는 방식을 생각했어요. 내리는 방식을 하는데 이게 입구는 막혀 있으니까 입구가 막혀 있으니까 못 들어가잖아요. 그러면 직접 예수님의 몸에 가장 가까이 가는 방법은 예수님이 계시는 그 방에 구멍을 내는 거죠.
구멍을 내는 거예요. 구멍을 통과할 이렇게 들고 통과할 구멍만 구멍을 뚫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항상 설교하시고 뭐 다른 사람 병 고치는데 위에서 천장에서는 쿵쾅 퉁탕퉁탕 하고 공사가 한창 중이에요. 구멍을 뚫었어요. 예수님도 지금 얼마나 답답했으며 저러겠는가 기다려줬어요. 구멍을 내어가지고 구멍이 사람 내려갈 만큼 구멍을 뚫었어요. 이제는 뭐 하늘이 보입니다. 훤하게 보입니다. 줄 서는 것보다도 바로 위에서 내릴 수 있게 되었어요. 줄로 내렸습니다. 친구는 따라 내리지 않았어요.
그냥 아픈 사람만 딱 내리고 저희는 지붕에서 이렇게 쳐다봤어요. 옛날 집은 이렇게 높지를 않으니까 쳐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는 제자들도 놀랬지요. 어떻게 해서 이런 새치기가?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을? 이렇게 욕하는 게 아니고 얼마나 이 친구들의 우정이 돈독하고 얼마나 급했으면 이렇게 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해하시고 중풍병을 낫게 해줬어요.
근데 낫게 해줄 때 후시딘 연고를 바른다든지 그런 걸 그런 치료를 이렇게 해주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이 중풍병자를 딱 보시고 내려다보시고 나은 거 말고 여기 딱 보시고 “니가 중풍병 걸린 만큼 니가 죄인인 걸 니가 인정하느냐?” 그런 눈치를 보냈어요. 눈치를. 이게 약물 주고 3일간 식사 후 30분 후 한 봉지 드세요. 그런 것도 없어요. 그냥 보고 “이 죄인아. 니는 니 죄로 죽기 위해서 태어난 인간아. 이게 지금 중풍병자가 문제가 아니야. 니 그거 니 중풍병 낫겠다고 해서 낫는다고 해서 니가 하나님 앞에서 니가 받아줄 수 있는 그런 인간 되는 게 아니다.” 그런 것을 다 주께서 다 전제로 해 가지고 “니가 죄가 많구나. 그 많은 죄 내가 다 없애줄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니가 참 죄가 많구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살아온 만큼 죄를 많이 지었겠죠. 니도 만만치 않거든. 옆에 있는 니도 만만치 않아. 니도 죄가 많구나. 자 이 죄 많은 것에 대해서 중풍병자를 병을 못 고치는 것이 아니고 죄를 인간이 스스로 어떤 노력해도 죄가 없어지지 않아요. 이거 인간의 고질병이에요. 고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병을 인간이 못 고치니까 인간을 만드신 분이 친히 새롭게 만들어내면 되겠죠. “니 죄를 내가 없애줄게. 내가 없애줄게.”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를 없애기 위해서 죄를 대신 가져가고 그 죄에 대한 처벌을 하나님 앞에 처벌을 마지막 처벌을 예수님이 대신 다 받는 그 과정을 예수님이 딱 알고 계시니까 자신이 하는 일이 딱 있으니까 그 앞서서 니 결과를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니 죄는 나로 인하여 니 죄는 없애줄게.” 그 이야기를 했어요.
그 이야기를 했더니만 이 중풍병자가 이래 됐어요. 맞았어요. 중병이 나았어요. 남들 보기에. 그러나 본인은 중풍병이 나았을까요? 본인은 자기 죄가 없어지는 가뿐함이 있겠어요? 가벼움이 있겠어요? 어느 쪽이었습니까? 자기 죄가 없어진 것에 대한 가벼움이 이렇게 기쁨으로, 기쁨으로 이렇게 아까 그 침대 상에서 이렇게 일어서게 되었어요. “이제는 죄 없는 인간아. 한번 걸어볼래?” “뭐 걷지요.” 걷는 거예요. 남들 보기에는 걷네. 걷네. 이렇게 하지만 주님도 아시고 이 중풍병자도 알아요. 이게 걷는 게 문제가 아니고 이제는 죄가 없네. 죄가 없어졌네. 무거운 죄가 날아갔네. 난 누구 앞에서도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도 죄 없다 하는 사람이 되었네. 그게 기뻐서 두 손을 들고 환호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고 있어요. 하나님께.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여기에 대해서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걸 쳐다보면서 예수님 병 낫나, 안 낫나? 진짜 가짜로 낫게 하는가? 진짜 병을 낫게 하는지 그거 조사하러 온 조사관이 있었어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 당시에 소위 성경에 대해서 잘 안다는 그 사람들이 딱 지켜보면서 어떻게 병 낫는가 그걸 보러 왔는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냐 하면 “나는 내가 니 죄를 사한다.” 이렇게 하니까 그들이 화가 난 거예요. 왜 화가 나냐 하면은 “죄 사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는 일인데 니는 하나님도 아닌데 왜 니가 건방지게 죄를 사하느냐?” 이것 때문에 이게 바리새인들이 시비 걸어서 결국은 바리새인들이 누구를 죽이느냐 하면은 중풍병자에게 죄 없다고 이야기했던 그 예수님을 잡아가지고 십자가에 사형시켜서 이 지상에서 없애버렸어요.
그러면 인간은 예수님이 없는 상태에서 무슨 수로 죄 씻음 받습니까? 죄 씻은 분이 없어졌는데 사라졌는데. 이 바리새인들은 자기가 죄 안 졌다는 그거 자랑하려고 그게 급선무라 내가 니보다 더 착하고 훌륭하다. 그걸 내세우기 위해서 직접 죄 씻으러 오신 분을 제거하고 말았어요. 이게 오늘날 이 바리새인이 하는 짓을 오늘날 인간들이 반복하는 사회가 이 세상 이 사회입니다.
진짜 교회 와서 죄 씻음 받았으면 그다음부터는 누구 생각해야 되느냐 하면은 예수님 고맙습니다. 예수님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종으로 살고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 될 건데 죄 씻음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뭐 그러려니 하면서 나는 그것보다 더 나한테 내가 원하는 일이 따로 있는데 그건 내가 출세하고 성공하고 남 앞에 내 자랑질 하는 기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니 그게 바로 예수님이 있거나 없거나 나는 상관없고 나만 잘 나면 된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여러분들이 앞으로 커서 만나게 되는 이 인간 사회예요. 여러분이 앞으로 늙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인간 사회. 그만큼 이 세상이 정말 위험합니다. 위험하다, 어느 정도 위험하다는 것을 우리가 감을 잡아야 되죠. 감을.
이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등장해서 이 바리새인들이 시기하는 바리새인과 홀로 기뻐하는 이 중풍병자. 우리는 이 둘 중에 어느 쪽입니까? 어느 쪽입니까?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죄가 없어지는 일을 하게 되는 그것. 이 사실 정말 전에 알던 그 고마움 정도가 아니고 제대로 우리가 주님께 감사하고 고마워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병 고치러 왔다가 있는 죄까지 용서를 받은 사람이 있었어요. 저희도 그런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