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집사님 어머니 장례예배
여호수아 2장 12,13절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 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여기 여호수아 2장은 기생 라합 이야기입니다. 기생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그냥 세상을 평범하게 살던 주민이었습니다. 자신의 직업이 있었는데 그것은 기생이라는 천한 직업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천한 직업을 갖고 있는 기생에게 어떤 소식이 들렸냐 하면은, 우리가 사는 여리고성 바깥에서 누가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쳐들어오고 있다는 그 민족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 이스라엘 민족이 쳐들어오면서 만나는 모든 이방 족속에 대해서 사정없이 진멸하고 멸절시킨다는 이야기를 여리고 주민들에게 하나의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기생 라합도 듣게 되었습니다.
자, 이렇게 듣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위기를 느꼈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하필이면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접수하기 이전에 정탐꾼 두 사람이 먼저 우연히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이야기입니다.
외부인이, 정탐꾼이죠, 스파이죠. 외부인이 왔을 때에 기생 라합의 마음 자세, 태도는 뭐냐? 한마디로 말해서 ‘살려주세요.’였습니다. 살려주세요.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있는 민족과 여호와 하나님이 없이 살았던 일반적인 보통 자기의 친족들과의 그 차이에 대해서 기생 라합은 명백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이 하는 활동, 하는 일은 뭐냐 하면 이스라엘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민족은 전부 다 멸절시킨다, 심판해서 저주한다, 그 이야기를 기생 라합이 듣게 되었어요. 듣게 되었을 때에 기생 라합의 입장에서 다른 여리고성 주민들과 차이 나는 독특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을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마땅히 심판과 저주의 대상이 된다면, 그 여호와 하나님에게 속한 민족의 정탐꾼이 왔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여기는 뭐 특별한 이유도 없고 이것저것 따지거나 고려할 조건도 생각할 필요 없고, 자신의 이익 같은 것도 계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말하기를 “우리를 살려주어 우리의 생명을 죽는 데서 건져내기로 여호와로 맹세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살고 죽는 것에 대해서, 죽음 소식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살려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살려주세요.” 라는 그것만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거예요.
이것은 오늘날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이들 여리고 주민들이 아직까지 안 죽었어요. 지금 목숨이 살아있습니다. 심장이 뜁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일상생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유지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계산해보면 우리 일상생활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미 죽어 마땅한, 곧장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와 환경에 놓였다는 것을 미리 감 잡은 거예요.
그리고 이스라엘이 온다는 것은 이런 겁니다. 우리가 목숨 끊어져서 죽는 게 아니고 이미 그들 앞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일상생활 자체가 이스라엘 입장에서 볼 때는 이미 그건 시체요, 죽은 목숨에 해당되는 거예요.
그럴 때 정탐꾼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18절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했습니다.
여기에 붉은 줄이 있고, 그리고 그 부모와 형제와 아비의 가족, 이 부모와 형제와 아비의 가족은 자신들이 살아있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 살아있다고 자부하는, 산 목숨이라고 여겼던 그들에게 붉은 줄 중심으로, 그 붉은 줄이 있는 그곳으로 집합하고 한 곳에 모아지지 아니하면, 이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의 가족은 몰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기생 라합의 생각은 다른 여타의 여리고성 주민들과 달리 사람이 목숨 끊어지면 그 날이 죽는 날이라는 생각은 일체 없고, ‘이미 살아있어도 붉은 줄 앞에 그것을 바라보지 아니하면 그것은 산 목숨이 아니고 죽은 목숨이다. 따라서 우리 가족은 죽은 목숨, 붉은 줄 앞에 거기에 집합해 있어야 된다.’ 그것을 이 기생 라합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장례를 치르고 또 일상에 돌아갑니다. 가게 되면, 돌아가면서 본인들이 멀쩡하게 살았다고 다들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할 거예요. 누가 쳐들어오는지, ‘나 죽고 난 뒤에는 어떻게 되는지 그건 모르지, 알 수가 없지.’라는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오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복음은, 이스라엘에게 죽음과 심판이 다가오듯이 지금 이 시대에는 죽음이 점차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 몰살시킨다, 다 지옥 보낸다.’는 소식이 스멀스멀 안개처럼 몰려오고 있습니다.
몰려오면서 기생 라합을 통해서 알려주는 것은 ‘그런 무서운 지옥의 능력과 저주가 몰려오더라도 붉은 줄 하나 앞에 거기에 응집하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 현장에 모여 있어라. 그러면 붉은 줄 보고 너희들은 구원받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미리 기생 라합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붉은 줄이라는 것은 다 아시다시피 주님의 십자가를 뜻합니다. 붉은 줄이라는 것은 여리고 성에 정탐꾼이 왔다가 빠져나갈 때, 붉은 줄을 타고 빠져나갔듯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유일하게 예수님이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천국으로 빠져나간 길이 십자가였습니다.
그 십자가 생각할 때 어떤 자세냐? 십자가 앞에서는 조건이 있어요. 뭐냐 하면, ‘십자가 피 아니면, 이 붉은 색깔의 줄이 아니면 우리는 뭘 하든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뭘 하든지 간에 이미 우리는 죽은 목숨 맞다.’라는 인식으로 십자가를 바라봐야 됩니다.
그냥 뭐 교회 다니면서 십자가를 지식으로 하나 걸친다고 구원받는 거 아닙니다. 십자가가 나의 모든 살아있는 것을 대신하는 목숨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옛날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인간 살아가는 모든 것이 그저 살아있다는 일방적인 그러한 생각으로 평범하게, 안일하게 살다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실은 우리가 산 목숨이 아니고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주께서 빠져나가신 그 십자가 중심으로 감사하면서 세상의 모든 어려움과 힘든 것을 이겨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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