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의 죽음 260215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스데반 집사님. 천사, 그냥 스데반 집사인데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스데반 집사. 여러분 천사 되고 싶어요? 안 되고 싶어요? 천사는 좋은 쪽이에요? 나쁜 쪽이에요? 천사 정도 하면 좋은 쪽이죠. 천사 같은 얼굴, 하면 굉장히 인자한 얼굴 이렇게 해야죠. 이 천사 같은 얼굴을 가진 스데반 집사가 천사를 언제 그런 얼굴을 가졌느냐? 그것은 바로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 그런 얼굴이 있었어요. 왜 이게 천사 같은 얼굴인데 왜 사람을 왜 그렇게 싫어할까요?
싫어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원래 이게 교회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어요. 사랑을 받아가지고 천국 백성이 되었으니까 기분이 좋지요. 좋아가지고 서로 천국 갈 거니까 자기 것도 어려운 사람들 그런 사람도 같이 나눠주고 같은 형제들끼리 서로 돕고 삽시다 해가지고 많은 걸 내놨는데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난 뒤에, 도움을 받고 난 뒤에 저 사람은 왜 빵 5개 주고 왜 나는 3개 주느냐? 이런 식으로 막 갑자기 사람들이 하나님께 은혜 받고 사랑받은 거 이런 거 다 없고 저 사람은 빵은 3개 받고 5개 받고 나는 왜 3개밖에 안 주느냐? 저 사람은 더 어렵거든. 어렵다고 더 주면 이거는 불공평해. 하여튼 이 사회의 정의가 죽었어. 정의가 죽었어. 막 이래 다툼이 나고 난리에요.
특히 여자들끼리 혼자 사는 얻어먹고 사는 남편이 없는 그런 여자들끼리 욕심이 생겨 가지고 서로 막 싸우고 하고 막 이렇게 한 거예요. 그래서 교회가 그걸 보고 이게 뭐 교회하고 세상은 똑같네. 주님의 사랑이 어떠네, 은혜 이렇게 해도 욕심 하나는 이게 인간은 달라진 적이 없어. 인간은 욕심 투성이구나. 안 되겠다. 이 빵 주는 문제, 맛있는 떡을 주고 빵을 주고 옷가지를 나눠주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12 사도가 할 게 아니고 여기서 집사를 뽑아서 그 일을 그 사람들에게 맡기자.
그 조건이 첫째는 뭐냐? 첫째는 성령을 받아야 되고, 두 번째는 똑똑히 해야 되고, 세 번째는 남들 앞에 못 됐다는 소리, 지혜롭다는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이 세 가지 조건을 걸어서 집사를 세웠는데 집사 세 가지 조건 첫째는 뭐라고 했습니까? 성령. 두 번째는 뭐라고 했어요? 착한 사람. 세 번째는 뭡니까? 똑똑하고. 세 번째가 착한 사람. 두 번째가 똑똑한 거. 스스로 알아서 하는 그런 거 말고 성령 받고 그다음에 일 잘하고 착하고 그런 사람을 뽑아서 이제 일을 시킨 거예요.
하는데 성령을 받다 보니까 이제 일만 잘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도 거침없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죠. 하나님 말씀도 잘 전했어요. 스데반 집사가. 말씀을 전하니까 사람들이 설교를 잘하고 예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전하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미워해가지고 이 스데반 집사를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거짓말로 이제 하는 거예요. 거짓말해가지고 저 사람이 하나님이 없다 하더라. 하나님을 욕했다. 뭐 이렇게 해가지고 어떻게 했느냐? 여기 지금 스데반 집사가 갇힌 곳이 어디입니까? 여기 어디예요? 어딥니까? 이쪽에. 이게 어디지요? 유치원이에요? 지금 여기가. 감옥소에 감옥에, 감옥에 갇혔어요. 감옥에. 감옥에 갇혔다고. 집어넣었어요. 감옥에 갇혔는데도 불구하고 스데반 집사는 뭐 괜찮았어요.
괜찮고 난 뒤에 사람들은 감옥에 갇혀 놓고 그다음에 어떻게 했는가? 안 되겠다. 저 사람은 너무 설교를 잘하고 똑똑하기 때문에 죽이자. 이렇게 해가지고 스데반 집사를 옥에다가 집어넣고 마지막에 풀어 나가 가지고 마지막 사형시키면서 “그래. 스데반 이 사람아. 니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는가?” 이렇게 하니까 스데반 집사가 “잘 됐다. 내가 마지막 설교를 할게.”
이 마지막 설교가 뭐냐 하면은 이 설교예요. “사람은 원래 나쁘기 때문에 어떤 어린이든 어른이든 하여튼 틈만 있으면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하고 불만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욕하고 저주하고 이런 식으로 살아왔다. 이게 바로 우리 이스라엘 역사였다. 그런데 이제 너희가 예수 믿는 사람들까지 핍박하니 너희들이 똑같은 인간이다.” 이 이야기를 했어요.
이 이야기를 사람들은 하나님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또 하나님이 보낸 자도 하나님께서 보낸 자도 그 사람들이 옥에 가두고 그런 식으로 했는데 이제 나까지 이렇게 옥에 가두고 또 죽이려고 하는 거 보니까 너희들의 본성은 인간의 본성은 정말 달라질 수가 없구나.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요.
그런 얘기 하니까 사람들이 저게 이제 마지막 죽는 마당이라고 악을 쓰는구나.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학꼬? 이랬어요. 돌로 죽여야지. 우리도 법이 있으니까. 그래서 돌 들고 이 돌은 좀 이쪽 사람 돌은 좀 너무 심했죠. 지도 들으려면 감당하기 힘들어. 이쪽 사람도 마찬가지고. 돌을 들고 그냥 돌을 그냥 에잇 에잇 이렇게 던지는 게 아니고 죽으라고 던지는 거예요. 죽으라고. 내 던진 돌에 니가 맞아서 꼭 죽었으면 좋겠네. 이런 마음으로 돌을 던졌어요.
여러분들이 누가 여러분 보고 욕하면 좋아요? 싫어요? 싫죠. 그러면 여러분이 누가 째비면, 째비면 싫어요? 나빠요? 싫죠. 근데 더 싫은 것은 여러분 돌을 던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돌. 옆집에 친구가 와서 개 데리고 와가지고 슉 슉 “물어. 물어.” 하면 기분 좋겠어요? 아니죠. 그런데 스데반 집사는 어떻게 했느냐? 이런 가운데서도 스데반 집사는 얼굴이 어떻게 됐느냐? 천사 같은 얼굴이 된 거예요. 이런 죽는 마당에서.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왜 죽는 마당에서, 여러분들도 이런 얼굴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왜 죽는 마당에서 스데반 집사는 천사의 얼굴이, 천사 되었는가? 다른 사람은 안 보이는데 스데반 집사의 눈에는 누가 보이느냐 하면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신 걸 봤어요. 하나님 우편에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을 스데반 집사님이 보고 반가워서 돌은 지금 여기 밑에 보세요. 돌은 날아오는데 눈은 어디 가 있느냐 하면은 예수님한테 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돌이 날아오니까 아프겠어요? 안 아프겠어요? 돌 날아오니까. 아프겠지요. 아야. 아야. 한쪽은 아프면서 한쪽은 “반가워요. 주님!” 이러고 있다 이 말이죠.
아파서 몸은 아파서 피 흘리고 죽어가고 있으면서 “예수님. 너무 보고 싶었어요.” 예수님께서 “조금만 기다려. 내가 불러줄 테니까” “빨리 가고 싶어요.” “그래. 다 됐어. 다 됐어. 이제 지금 몇 명 남았나? 지금 돌 던지는 사람이 한 댓 명 남았으니까 그 마지막 돌 맞고 가자. 그 돌 맞으면 니 죽게 돼 있어. 그러면 내 품에 안긴 거야.” 그러니까 스데반 집사님 하는 말이 “예수님. 제가 할 말이 있어요.” “뭐냐?” “저들은 돌 던지면서 자기가 죄 때문에 돌 던지는 것도 모르고 있어요. 저들이 하는 짓을 저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저들을 용서해 주세요. 저건 아무것도 모르고.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그래. 용서하고 안 하는 건 내 손에 달렸으니까 알아서 하고 니는 우리 이 아버지 계시고 내가 있는 이 곳에 빨리 와.”
그래서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고 그냥 죽고 스데반 집사는 나 간다 하고 예수님 있는 곳으로 갔어요. 그때 돌 던지는 이 주동자 중에 누가 있느냐? 사울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아주 못된 사람이 있었어요. 이 사울이라는 사람이 나중에 변해 가지고 사도 바울이 된 거예요. 이제 살인 현장에서 주모자가, 주모자가 이제는 뭐가 됐는가? 반대로 돼가지고 예수님이 살아계시다 하고 완전히 신의 악단이 돼 가지고 찬양하면서 물론 신의 악단하고 관계없지만 사도 바울이 이제는 오히려 욕을 하던 사람이 찬송을 하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찬송하고 내가 죄인 것을 죄인인 것을 알았다 하면서 기뻐하면서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었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또 믿었어요.
여러분들도 이처럼 스데반 집사처럼 어떤 경우라도 천사의 얼굴을 한결같이 유지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싫어하고 예수님을 싫어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얼굴은 항상 천사같이 맑고 투명하고 명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