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1/30-오로지 ‘주를 위해 사는 인간’

아빠와 함께 2026. 1. 30. 08:53

 ‘주를 위해 사는 것’을 훼방하게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존재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는 그 인간 자체를 파산시키는 거예요.

 ‘나는 이 존재에 기초해서 살아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사건에 기초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쪽이 하나님의 증오에서 사랑으로 바뀐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그것이 현재 새로운 존재가 아니고 하나의 사건으로 찾아와서 우리가 나 중심, 내 존재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훼방하고 그걸 저지한다

사람은 자기를 위해 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모릅니다.

 주님의 말씀은 어디를 겨냥하느냐? 우리의 존재의 뿌리를 겨냥해서 그걸 사건화시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들은 존재를 주장해?” “예!” “나는 이 예언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의 사건으로 너희들에게 다가서겠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롬 14:7).

 

존재에 등록하지 말고 사건에 등록해야 합니다. 사건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서만 나옵니다. 

말씀이 왔을 때 “주여, 내가 존재하는 것조차도 주님의 십자가 사건의 일부라는 것을 또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다윗이라는 어린애가 죽는 줄도 모른 채로 가서, 죽은 데서 살아오는 것처럼 우리는 내 뿌리로 이야기하면, 뿌리로 하면 진작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드러내기 위해서 아무것도 아닌 나, 죄인이고 무능력한 나를 오늘도 또다시 이렇게 살게 하셔서, 나를 위해서 사는 그 존재의 죄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것이 계속해서 사건, 사건으로 될 때 우리는 ‘사건에 등록된 존재’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말씀에 등록된 존재.

 

하나님 아버지, 상반신이나 드러내면서 남과 우열을 논하던 저희의 어리석음, 하나님 보시기에 그게 바로 하나님의 미움의 대상인 것을 이제는 깨닫게 해 주시고, 주님 앞에 나올 때 상반신 내밀지 말고 죄 많은 우리의 뿌리를 십자가 사건에 실어서 내밀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