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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무능성 유지

아빠와 함께 2025. 12. 22. 09:00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고요하고 아무 없는 것도 거기서 뭐가 되냐? 균열이 생기고 문제가 발생 되도록 하나님의 일을 그렇게 해요. 그게 사건입니다. 말씀 사건이에요. 꼭 나봇 같아. 그냥 포도농사 지면 되는데 괜히 아합왕에게 탐을 내게 해가지고 사건이 유발하는 사건의 그 유발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사건 유발자 하나님입니다. 아까 제발 내 탓 소리 좀 하지 마세요. 지금 그거는 마귀가 준 거예요.

그러면 지 탓 아니면 그럼 지가 어떻게 해결을 볼 수 있어요? 회개하면 된다. 회개하는 것은 보편적 계시가 될 수가 없습니다. 보편적 계시는 내가 무능해야 되지. 갑자기 무능한 내가 신앙적으로 유능한 사람 돼보면 이건 보편적 계시에 자기 의가 섞여 들어가는 거예요. 이건 마귀가 원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발명하도록 허락하세요. 죄를 발명하도록. 이게 욥을 보면서 많은 주석가들이 제가 보기에는 주석가들이 얼마나 이게 참 엉터리인지 분명히 사탄 말이 맞아요. 그 재산 뺏고 그 건강 뺏어 버리면 원망합니다. 사탄은 장담했다고요.

딱 물어봅시다. 욥이 하나님께 원망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모호해요? 아니에요. 모호하지 않고 분명합니다. 원망했습니까? 안했습니까? 했잖아요. 그럼 누가 이겼어요? 사탄이 이겼잖아요. 사탄이 이겼다고. 사탄이 하나님이 이겼잖아요. 사탄 말이 맞잖아요.

그러니까 욥기를 보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욥기에서 진리를 얻을까 해서 욥기를 보는 사람들은 전부 다 사탄에게 패배하게 돼 있어요. 욥기가 책이 있는데 그 책을 해석할 때 나의 은근히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자기 이익을 생각하고 욥기를 본 것 자체가 욥기의 그 현장성을 접근하지 못한 거예요.

욥의 현장성. 아까 열한가지 아프지요. 그럼 열한가지 아프면 우리가 그 욥기 욥의 현장성에 합치됩니까? 안 됩니까? 아파도 안 돼요. 열한까지 다 아파도 욥의 그 현장성 참석 못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달릴 때 십자가 현장성 우리 알아요? 몰라요?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수난을 받아도 십자가의 현장성은 몰라요. 왜? 몰라도 되기 때문에.

알아야 된다는 게 사탄의 유혹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뭐를 유지하느냐? 제목이 바뀌겠다. 제목이 바뀌면 안 되는데. 무능성 유지. 죽을 때까지 이거 주장하세요. 이거 유지하세요. 무능성 유지. 어떤 말씀을 공부하고 어떻게 해도 우리는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우리는 무능하기 짝이 없어요. 나 자신이 통제 안 됩니다. 무능합니다. 다만 나 자신이 주님의 문제거리 된 것을 감사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문제 삼았다는 것 자체가 무능성이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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