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한 복음은 모두 저주받아 마땅한 다른 복음이다. 그 결과 지금 나는 저주의 한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나를 찾아오신다는 것은 저주 속으로 몸소 들어오신다는 의미이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께서 피 묻은 손으로 나를 어루만져 주신다면, 나는 감사와 복수 중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그 대답은 성경에 있다. 나는 복수를 선택하여 십자가 사건이 허위가 아니요, 먼 과거에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타인이 벌인 사건도 아닌, 바로 지금 내가 현행범으로 저지른 사건으로 밝혀지는 것이다.
내 손으로 예수님을 죽였다. 그 예수님이 피를 흘리면서 사사건건 내 삶에 간섭한다. 그 피해자의 증언을 피해 성경공부, 교회 출석, 헌금과 봉사를 아무리 해 봐야 속아 넘어가 주질 않는다. 같은 증언만 반복한다. “네가 날 죽였다.” 그러므로 용서는 가해자의 손에 없다. 구원은 내 안에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내 삶의 행동을 수정해 주지 않는가? 왜 나의 반성을 촉구하지 않으시는가? 가해자들이 모여 성경 공부를 할 때, 잘못 이야기하고 잘못 이해하는 것을 왜 그냥 묵묵히 바라만 보고 계시는가? 왜 모든 이야기를 싹 쓸어 담아 [다른 복음]속으로 쳐 넣어 버리시는가?
그것은 용서하심은 성경읽기도 예수님의 성경공부 개입도 설교 수정도 아닌 오직 [십자가 지심]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의 반성은 쓰레기요, 나의 개선된 행동은 배설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읽기를 유도해서 구원시키는 예수는 가짜다.
성경공부 중간에 정답을 말해줌으로써 구원하는 예수는 마귀다.
예수는 십자가 지심으로만 다 이루셨다. 영원히!
주님께서 다 용서해 주어야 할 그 죄 중 일부로서 우리는 오늘 모여서 힘써 성경을 공부하고 다른 복음을 전한 것이다.
십자가에는 인간이 파고 들 틈이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