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벧후2장(마귀)20120608a-이 근호목사
베드로후서2장하겠습니다. 민간에 거짓선지자가 나타나고 너희 중에도 거짓 선지자 있고 그 다음에 1절에 이단 등장하지요. 등장하는데 전체적으로 멸망으로 이끈다. 적어볼게요. 간단한 이야기가 깊은 내막이 포함돼 있습니다. 거짓선지자가 있는데, 아! 거짓선지자가 있구나! 로 끝나는 게 아니고 거짓선지자가 있었는데 거짓선지자의 결말은 뭐로 되느냐 하면, 임박한 멸망이죠. 멸망으로 이끌지요. 그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거짓선지자가 등장했다, 멸망으로 간다, 이걸 바로 가로교회에서 한 방식대로 시간을 항상 반대로 하라 했지요. 미래가 먼저 있고 과거가 있다 했지요. 그러면 모든 문제 다 풀려요. 멸망될 자가 있는데 그 자가 누구인가, 역으로 한 번 추적해 보자 이 말입니다. 오늘 베드로후서2장 1절에 보면 멸망이란 말이 나와 있고 거짓선지자 앞에 나와 있고 선지자 멸망 되어 있는데 그 중간에 거짓선지자가 뭐라 했습니까? 주님을 부인하지요. 시간을 거꾸로 하면 풀린다니까요.
거짓선지자가 있는데 주를 부인해서 멸망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멸망할 자가 있는데 그들의 특징이 뭐냐, 주님을 부인하게 되면 이것은 선지자가 아니고 거짓선지자가 되는 거예요. 왜 거꾸로 돌리게 되느냐 하면 누구도 자기를 거짓선지자라고 이야기하는 선지자는 없습니다. 선지자치고 ‘나, 거짓선지자입니다.’ 라고 말하는 선지자 할 사람이 없다 말이지요. 전부 다 ‘우리는 참 선지자이며, 저쪽이 거짓선지자입니다.’ 라고 손가락을 저 쪽으로 다 돌리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헷갈린다 말이지요. 헷갈린다고 말하는 것이 어패가 있는 것이 ‘아~ 그래, 내가 거짓선지자입니다.’ 라고 이야기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선지자라고 하지요. 그러니 거짓선지자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찾으면 되는데 그것이 베드로후서 2장 1절에서 뭐로 되어있습니까? 주님을 부인하는데 그냥 주님이 아니고 살아계신 또는 자기들을 사신(피로), 자기들을 사 주신 그런 주님을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 이리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본문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모른다 치고 사탄, 마귀, 거짓선지자, 멸망 받을 자들, 그렇다면 우리는 덥석 생각나는 것이 뭐냐 하면 예수님과 관련된 게 아니고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속이고 하는 자들과 연관해서 이 거짓선지자와 주님을 배신한 자해서 이런 식으로 엮여가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자존심이 있어서 그래요.
마귀냐, 아니냐, 참된 선지자냐, 아니냐를 성경으로 구분해야 될 텐데 우리는 꼴에 자존심이 있어가지고 ‘니가 나를 속였어? 니는 거짓선지자야. 니는 마귀야’ 라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굉장히 많습니다. 서울시장 박원순 시장을 사탄이라고 누가 얘기했지요? 광명교회 김홍도 목사가 그렇게 이야기했지요. 김홍도 목사는 미국을 찬양하는데 박원순 시장은 미국을 저주하기 때문에 사탄이라고 그렇게 언급을 하지요. 그러면 김홍도 목사나 다른 사람 말 듣지 말고 우리도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정의를 내려 봅시다.
사탄 또는 이단 또는 적그리스도, 멸망당할 자, 기준이 뭡니까? 특징이 뭡니까?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주되심을 부인하는 거예요. 이것도 어려워요. ‘예수님이 주이시다’ 할 때, 예수님이 주이시다를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교회 다니고 매일 주여, 주여 하면서 입에 달듯이 주여 하니까. 그런데 뭘 모르는가 하면 예수님을 주라고 이야기하면서 주님이 뭔 줄 모르면서 그렇게 이야기하거든요.
주님이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주님이 아니고, 주님이 예수님이라니까요. 주님이라 하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데,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인 나사렛 예수가 나타났잖아요. 그럼 딴 주님을 찾을 이유가 없어요. 이 땅에 오신 나사렛 예수라는 그 청년, 그 분이 우리의 주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것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왔느냐, 그걸 우리가 믿으면 되거든요.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하면 믿으면 된다 말이지요. 죽은 자는 죽은 자가 장사하게 놔두고 날 따르라, 그걸 믿으면 된다 말이지요.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믿으려면 무엇이 파괴되어야 하느냐 하면 평소에 내가 하나님 찾고, 내가 메시아 찾고 내가 주님 찾는 그 자리가 폭파, 파괴 되어야 됩니다.
오늘 2시간 동안 사단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대로 해 봅시다.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나가면서 중간 중간에 정립하고 나가겠습니다. 마태복음 11장27절 보면,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쉽게 말해서 너희는 아버지를 안다? 모른다? 모른다는 뜻이에요. 너희들은 모른다. 심지어 예수님 봐도 모른다. ‘날 만졌어? 그래도 몰라!’ ‘내 코, 눈 보고 있어. 그래도 날 몰라!’ 이런 뜻이에요. 이게 얼마나 무서워요. 그러면 ‘예수님이여! 어떻게 하면 우리가 아버지를 압니까?’ ‘내가 너희를 알게 할 때 너는 아는 거야.’ 이리 되는 거예요.
우리는 누구를 보고 있고 내가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아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어요. 여기 예수님 계신데, 예수님 말씀을 보고 있다 말이지요. 저 분은 몸무게가 몇 키로 나가겠어? 저 분은 키가 얼마 되겠어? 인물은 누구 닮았지? 보고 있어도 그건 예수 믿는 게 아니다 말이지요. 아버지를 아는 것도 아니고 주님을 아는 것도 아니고 천국을 가는 것도 아니에요.
해외토픽에 보니까 요번에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통치 60주년 기념으로 축제를 벌렸거든요. 축제 중에 하나가 버킹검 근위병 웃기기가 있었어요. 여자가 애를 써서 웃기려고 해도 훈련을 잘 받아서 근엄하게 있는 거예요. 6살 먹은 어린애가 웃기니까 웃음을 터트려서 킥킥킥 웃는다 말이지요. 우리가 사람을 아무리 웃긴다 할지라도 저 쪽에서 웃어주지 아니하면 우리가 아무리 웃겨도 소용없습니다. 우리가 재롱잔치 벌려도 주님에게는 안돼요. 우리가 어떤 수를 써도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믿음이라고 간주를 안 처 줍니다. 그거는 믿는 게 아니에요.
반드시 믿음은 예수님께서 출발해서 예수님께서 믿게 함이 내가 믿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믿게 하신다는 생각이 들지 아니하면 그 믿음이 없다고 여기시기 바랍니다. 절망~ 절망이겠지요. 모두 한국교회가 자체가 절망이지요. 지가 지 최면을 거는 겁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씀니다, 이리 하는 거예요. 이거 10번만 하면 다 믿어져요. 알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렇게 하면 할렐루야 되거든요. 믿씀니다, 믿씀니다, 쌍시옷 서너개 들어가잖아요. 성경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소원이 너한테 닿아야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소원이.
닿았는지, 안 닿았는지 어떻게 압니까? 이거 닿은 사람은 뭘 아느냐 하면 내가 믿는 게 아니고 주께서 믿게 하셨다는 것을 감격과 환희 속에서 만세! 만세! 하는 속에서 진짜 심봤다!! 하는 외침 속에서 우리는 그걸 만끽하게 됩니다. 심마니가 산삼 발견했을 때 기름 값 올라가고 북한 핵폭탄 터져도 기분 좋아요. 그거 아무 상관없어요. 지금 지는 심 봤거든, 심 봤으니까. 더 이상 세상이 어떻든 간에 중국이 검열 2단을 하든, 그리스가 망하든, 비행기 날아가든, 지는 아무 상관없어요. 산에 와서 심 봤으니까.
그게 바로 오늘날 성도의 기쁨 아닙니까? 나라가 두 조각나고, 세 조각나든 대통령 누가되든 상관 없어요. 심 봤으니까. 마귀를 반드시 언급할 우리가 심지어 믿는 자까지 뿌리 채 흔들어 댑니다. 뭐라고? 제발 예수님한테 손을 노라고. 언제까지 되지도 않는 희망도 없는 그 존재를 관념적인 추상적인 개념을 붙들고 있느냐, 제발 실질적으로 정신 차리고 현실로 돌아와라. 예수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예수를 왜 자꾸 믿느냐, 좀 놔라, 니 쪽에서 놓으면 다 놓은 거야. 마귀가 진~짜 집요합니다.
욥기에 보면, 항상 우리가 마귀 할 때 욥기를 거론해야 될 이유가 있어요. 욥은 마귀를 대할 때 그냥 지식으로 마귀를 연구한 게 아니고 실존적이었습니다. 삶 속에 직접 마귀가 관여해서 멀쩡한 자식 다 죽였습니다. 만날 말썽피우고 애들 왕따 시키고 애를 때려서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그런 아들 같으면 몇 명 죽어도 상관없겠지만, 욥의 자녀들이 얼마나 착했는지 요새 같으면 하나는 카이스트, 하나는 서울대, 하나는 경찰 대학생, 하나는 세무대학 최고, 하나는 하버드대학, 옥스퍼드 대학 아들들이 한꺼번에 다 죽었단 말이지요. 아버지 생신 맞이해서 외국에서 영국 옥스퍼드 대학, 하버드대학 아들 다 와있는데 갑자기 바람 불어서 지붕 무너져 다 죽었다. 몇 아이는 박사학위 2개 받고 있는데 다 죽었다, 우리는 애 하나가 죽어도 같이 죽자 하는데, 열 명 다 죽었을 때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마귀가 했잖아요. 하나님이 허락해서 마귀가 그렇게 했지요. 그 마귀보고 멱살 쥐고 마구 흔들고 싶지요. 죽으라고.
그러면 마귀는 멱살을 쥐어 준다는 사실, 이게 얼마나 지혜로운지, 뱀처럼 지혜롭다고 했잖아요. 마귀가 멱살을 쥐어줘요. ‘그래, 니가 이래서 속 풀리면 흔들어라.’ 이래서 흔드는 거예요. 왜, 마귀는 성공했으니까. 결국 애 죽었다고 화 낼 때는 이미 마귀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겁니다. 으쌰! 으쌰! 좋다고 우쌰! 우는 사자같이 한 놈을 또 넘어뜨린 거예요. ‘뭐~ 하나님을 믿어, 에~라 개코같은 소리 자신을 믿었잖아.’ 그걸 마귀는 아주 자신 만만한 거예요. 어느 인간이 하나님을 믿어요?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지 자식 믿었고, 돈 믿고, 건강 믿은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은 건강 믿고 돈 믿으면서도 뭐라고 핑계 댑니까? ‘하나님이 축복 주셔서 그렇습니다.’ 남들이 언뜻 들으면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지요. 사실은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믿고 있지요. 왜, 남의 축복이 아니고 누구 축복으로 되기 때문에? 내 자식이고, 내 건강이고, 내 돈이기 때문에. 그 자식 다 죽이고 재산 다 날리고 마지막 최후 남은 내 건강마저 조지고, 그걸 누굴 앞장세워서 합니까? 마귀를 앞장세워서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마귀 지혜로서 지게 되면 마귀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결국 니하고 나는 한 통속이 되는 거야, 니가 내 멱살 잡을 입장이 못 된다, 니와 똑 같네 결국은. 그래서 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못 이기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예수님의 소원대로 믿음을 받은 사람만 구원받는 겁니다. 얼마나 간단한 구원입니까? 너무 간단해서 문제지만, 하여튼 무지 무지하게 간단하지요. 물론 머리에서는 간단한데, 실제 적용되면 내 인생 상당히 복잡해집니다. 보통 복잡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마태복음11장 27절에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그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알 자가 없다 했는데, 그 앞에 보면 25절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뭡니까? 숨기시고, 야~~ 참, 어렵다. 숨기시고. 왜, 이 말이 어렵냐 하면,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에게 숨긴다 이렇게 되어 버리면 우리식으로 과거, 현재, 미래로 따져 버리면, 슬기로운 자에게 숨기시니까 우리는 뭐 안하면 됩니까? ‘저 지혜 없어예, 저 똑똑하지 않습니다, 스마트하지 않습니다.’ 이러면 우리는 구원받을 가능성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하라고? 미래에서 결과를 가지고 설명하라 했지요. 그러면 숨긴 사람이 아무리 본인이 겸손의 티를 내도 주께서 숨겼다는 말은 니는 백날 겸손한 척을 해도 니는 자칭 스스로 자기를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로 자청한 인간이다 이런 뜻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성경 말씀하면 지키려고 하잖아요. 그게 뭐냐 원인과 시간과 과거, 현재 이렇게 흐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원인을 제공하면 결과는 반드시 주워 진다. 이렇게 생각한다 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게 아니고 결과를 먼저 던져 놓고 그 결과의 원인은 니가 조종할 수 있는 입장이 안 되고 결과에 결과를 결과 되게 하기 위해서는 니는 결과를 결과로 높이기 위해서 너는 어쩔 수 없이 그 원인에 원인 자리에 놓여서 그 결과가 정당함을 보여주는 너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거예요.
그래서 거꾸로 생각하면 돼요. 만약 어떤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가리워졌거든 그사람이 도를 닦고 ‘나는 부족합니다.’ 백날이야기해도 성경대로 하면 그 사람은 교만하고 자칭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로서 그 낙으로 인생 산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법정스님 이런 사람들, 신부들, 수녀들, 도 닦는 사람들 있잖아요. 도 닦는 사람들이거든요. 성철 스님이라든지, 공자, 맹자, 다 이런 사람들, 같은 류라 보면 돼요. 왜냐, 그 사람이 못 돼서가 아니고 숨기시니까. 주님께서 자기를 안 나타내시니까.
슬기 있다, 니는 교만하다, 교만하지 않다, 어린애 같다, 천진난만하다, 그 기준은 사실 우리가 그 기준을 결정 못하고 주께서 결과물 보고 너는 천진난만해야겠네, 너는 교만해야겠어, 너는 지혜로 와, 주님이 알아서 결정하는 거예요. 우리가 겸손 한다고 해서 주께서 우리가 착하다고 칭찬받는 거 없습니다. 아예 우리 자신에게 손대지 맙시다. 청도에서 이야기했듯이 누누이 이야기합니다. 자신에 대해서 손대지 맙시다. 권사님도 자주 손 안 대도 주변에서 구역예배 드리며 다 손댑니다. 세상 흘러가는 것이 주변에서 잔소리 들려오듯 되어 있어요.
한 번 정리하게 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야 생기는 이유가 우리와 주님사이를 마귀가 가로막혀 있어가지고 우리 힘으로 자식 사랑하고 이런 인간은 없기 때문에 주께서 예수님 오셔가지고 믿음을 입에 쏙 넣어주셔야 그 믿음가지고 구원받습니다.
우리가 자식 사랑한다, 이거 거짓말입니다. 돈 안줘 봐요. 사랑 안 하지. 돈 줘 봐요. 사랑하지. 어머나, 감사합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하지 않아도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하지만 지 몸 아파 봐요. 막상 이빨 아파보면 모든 게 짜증스럽고 귀찮고 예수도 귀찮고 다 귀찮아요. 온 몸이 아프면 만사가 다 귀찮아요. 마귀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거예요. 우는 사자와 같이 마귀가 마지막 발악을 한다고나 할까요. 소금에 절인 미꾸라지 모양으로, 미꾸라지 추어탕할 때, 미꾸라지를 잡을 때 뭘 집어넣습니까? 소금 집어넣으면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몸부림치지요. 그거 마귀입니다. 왜냐, 이미 멸망하기로 작정되어 있기 때문에.
3절에 나옵니다.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저희 멸망은 잠자지 아니한다. 요즘 현대용어로 하면 그들의 멸망이 취소 된 적이 없다 이 말입니다. 멸망이 취소 안 된다는 사실을 누가 아느냐 하면 바로 마귀 본인들이 알아요. 그래서 소금 쳤던 미꾸라지처럼 발악을 하는 거예요. 어느 인간이든지 다니기만 해봐라, 발악을 치는 거예요.
뭐라고? 다른 거 요구 안합니다. 마귀가 요구하는 게 다른 거 요구하는 게 아니고 돈 받쳐라 이것도 요구한 게 아니고 제발 예수 좀 놔라, 예수 믿는 걸 좀 놔 버려라, 믿지 말아라 이 말입니다. 예수 믿는걸. 예수 사랑은 믿는데, 예수 행함심으로만 구원 받는걸 놔라, 이 말입니다. 예수님을 높여라, 찬양하라 다해요. 다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주님께서 홀로 다 하셔가지고 예수님이 다 하신 공로로만 건짐 받고 우리가 교회가든, 구역예배가든, 심방가든 다 구원받는데 관계없다는 것을 이제는 스스로 그걸 접어라, 잊어버려라, 포기해라, 그리고 니 구원은 니가 알아서 해야지 니가 안 챙기면 아무도 챙겨줄 사람이 없다. 마귀가 늘 우리한테 이야기하는 거예요.
제발 좀 상식으로 돌아와라, 상식으로. 남들처럼 살아라, 남들처럼. 그렇게 별나게 해서 뭐하느냐, 남들 봐라, 내 구원은 내가 알아서 하기 때문에 복 받는 것도 내가 복 받을 짓을 하면 복이 오고, 저주받을 짓을 하면 저주가 오고, 상식 중에 상식 아닙니까? 그 상식을 목사들이 외치는 거예요. 전부 다 할렐루야! 아멘! 하면서 추임새를 놓는다 말이지요. 그런데 그걸 ‘아니요!’ 라고 나선다면 목사 마귀부터 해서 눈꼴셔서 ‘좀 별나지 마소.’ ‘그러다 사회생활 못합니다. 별나지 마이소.’ 그렇게 하겠지요.
사탄 또는 다른 말로 하면 악마, 요한계시록 20장2절에 보면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마귀지요. 마귀. 귀신 하는데 귀신은 아닙니다. 마귀, 또는 옛 뱀, 이 전체가 그냥 뱀이 아니고 옛 뱀이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악마의 실체가 하나님의 언약의 주어지는 경로를 따라서 요렇게 다양하게 그 특성의 모습으로 그동안 꾸준하게 활동해 왔다, 이렇게 보시면 돼요.
그래서 악마의 활동 없이 하나님의 구원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악마의 작업 없이는. 추어탕할 때 미꾸라지에 소금 뿌리는 것이 필요하듯이 그동안 하나님께서 마귀를 소금용으로 계속 뿌려온 거예요. 왜, 뿌려왔을까요? 그것은 구원받은 선택을 빛내기 위해서는 너는 구원에서 제외되었어! 라는 것을 분명히 해주는 절차가 있어 왔었습니다.
여호수아 11장19절,20절 읽어보겠습니다. "기브온 거민 히위 사람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 싸워서 점령하였으니 27절,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뭐라고요? 그들로 뭐 받게 하기 위해서? 저주 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진멸하려 하심 이었더라“ 여기도 진멸되어 있고 베드로후서는 멸망으로 되어 있잖아요. 이게 뭐냐 하면 어제도 가락교회에서 강의했지만, 이스라엘 야곱 안에 누가 들어있다고 했습니까? 야곱 안에 예수님 들어있지요. 야곱이 이스라엘 되고 이스라엘에서 예수님 나오잖아요. 인자가 머리 위를 오르락, 내리락 한다 했잖아요. 이야기해줘야 기억이 나지요. 한 번 들었던 것은 잠재돼 있는데 이야기해 주면 다시 생각나잖아요.
그 당시 이스라엘이 나온다는 것은 방금 이야기한 논리에 의하면 그 안에서 예수님이 살아계신다 보면 되거든요. 장차 오실 예수님이. 그러면 그들이 이스라엘을 대든다는 말은 결국 신약에 와서는 누구를 대든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에게 대드는 세력이 이미 구약 때부터 있었던 겁니다.
모세언약이 주어지게 되면 환경이 마련돼지고 환경이 마련되면 누구는 대적하는 자가 되고 누구는 거기에서 공격을 받는 자로서 두 영적주체가 윤곽이 드러나는 식으로 사용되는 겁니다. 한 쪽은 이스라엘이 공격받는 쪽이 되고 다른 한 쪽은 주변의 이방나라가 공격하는 쪽이 되지만, 이걸 그대로 신약성경으로 가지고 와서 껍질을 벗겨버리면 마귀는 예수님을 공격하는 세력이 마귀가 되고 예수님은 마귀한테 공격 받는 자가 되지요.
다시 말해서 마귀라 하는 것은 내 돈 떼먹고 도망친다, 나 욕하는 사람, 그게 마귀가 아닙니다. 자꾸 내 몸을 가지고 마귀라고 따지지 마시고 우리나라 공격한다고 마귀라 하면 안 되고 마귀는 분명하게 노리는 게 있어요. 누구만 공격합니까? 예수님은 주가 아니다. 주님은 예수가 아니다, 라는 것만 공격하는 거예요.
이걸 사도바울이 나중에 이야기하지만 사울이 알게 된 악마의 실체입니다. 악마는 예수님의 공로, 복음만 공격하는 게 악마입니다. 복음만. 제가 마귀라도 그런 짓 하겠지요. ‘니 몸은 니가 챙겨라, 이 세상에 니가 안 챙기면 챙겨줄 사람 없데이, 니가 예수 믿는다고 잘되는 거 아니야.’ 관심을 자꾸 예수님에게 두지 않고 자신에게 자꾸 돌려. 요거 마귀가 이렇게 합니다. 마귀는 아주 자기 일에 성실한 존재입니다. 굉장히 성실해요. 농땡이 아닙니다. 내가 뭘 해야 되는가를 분명히 알고 있는 자예요. 그렇다면 마귀의 종들도 자기역할을 성실하게 잘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믿어야지, 예수의 십자가는 이미 물 건너갔다, 믿지 말고 교회부흥을 믿어야지, 아주 성실한 사단의 유혹입니다. 우리는 그 성실을 인정해 줍시다.
새벽기도 나가는 철야하는 그 성실은 인정해 줘야 돼요. 새벽기도 나가는 이유는 뭡니까? 주님이 해결안해주니까 내 힘으로 하겠다고 새벽기도 나온 거예요. 말은 이렇게 해요. 예수님한테 빈다하는데, 아닙니다. 거짓말입니다. 집에서 기도하다가 안하는 이유가 예수님이 나한테 얼마나 관심이 없으면 기어이 성전까지 나가야 돼 내가. 내 몸이 바쁜데, 잠자는 것 깨워가지고 ‘내가 이렇게 새벽제단 쌓아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내 소원대로 해 줄 거예요. 그러면?’ ’정말 심해도 너무너무 심해, 정말.‘ 이런 식으로. ’이제 나와서 기도합니다. 안 해주기만 해봐!‘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아이구, 십일조 한 번 떼어먹었다고 벌 내리나, 아이구 더러워라, 더러워!’ ‘이 십일조 할게. 십일조가지고 왔다. 이름 썼어, 이름 썼어. 자, 이제 복 줘.’ 이런 식으로. 사탄은 우리의 일 수족 일 수거를 이미 다 꿰뚫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탄의 범위에서 못 벗어납니다. 꼭 여자들이 신는 그물 스타킹 같아. 그 다리가 그물스타킹 밖으로 못 벗어나요. 그물스타킹이 얼마나 촘촘한지 무좀도 못 벗어나요. ㅎㅎ
못 벗어나는데 예수님의 믿음이 올 때만 그것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니까요. 우리가 예수님 믿음을 눈치 채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주님께서 ‘그냥 그 자리에 있어, 내가 쳐들어갈게.’ 주님이 쳐들어와서 우리 주님의 소원대로 구원받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이 나의 구원이고 나의 소원이 아닙니다. 괜히 오버하지 마세요. 주님의 소원입니다. 주님이 자기 백성을 자기가 답답해서 알아서 건지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별로 답답해하지 않아요. 돈 없어서 답답하지, 딴 것은 답답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우리 구원의 문제는 진짜 답답하신 분은 우리 예수님이 답답해요. 예수님이.
그래서 주께서는 상황을 만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좁은 길로 가도록 영생이 보이는 천국이 보이는 그 길로 가도록하지, 천국이 안 보이는 길로 인도받는다면 그거는 참 곤란합니다. 이것도 악마가 알고 있어요. 악마가 알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도 알고 있다는 거예요. 아시는 분이 두 분밖에 없어요. 마귀가 알고, 주님이 아시고.
그래서 예수님의 모든 발언은 우리에게 하는 게 아니고 마귀보고 하는 얘기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 한 번 봅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 다음에 뭐가 나오지요? 멸망 나오지요. 아까 베드로후서 2장에서 멸망이란 말 썼지요. 결국 적그리스도는 멸망의 길이잖아요. 멸망으로 가는 길 분명히 있는 겁니다. 그리로 가야될 자들이 있고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우리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에요. 이걸 안 믿는다면 이건 참 곤란한 문제입니다. 우리 이 말씀 믿읍시다. 이걸 동의한다고 될 문제는 아니지만. 정말 이 말은 믿읍시다.
많은 사람들이 찾거든 그 쪽에 안 가면 돼요. 하나의 요령입니다. 많은 사람이 아멘할 때 분명히 악마가 그 짓하고 있다고 보면 돼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되어 있지요. 이 이야기가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거 보면 마치 우리한테 결단을 죽 하는 것 같은데, 그 뒤 말씀을 보세요.
무엇을 삼가라?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되어 있지요. 자, 거짓 선지자를 이야기하고 방금 이야기한 좁은 문, 넓은 문 이야기해 보면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짓선지자가 우리한테 외치는 것은 뭡니까? 결국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마음속으로 원하는 편하고 행복하고 넓은 길 그 쪽으로 설교하는 사람, 이렇게 고난 받고 저렇게 고난 받고 어떻게, 어떻게 하지만 마지막은 여러분들은 여러분 소원대로 될 겁니다. 고거 사탄입니다. 마귀고, 악마입니다.
제가 심방할 때, 좁은 길을 할 때 있었어요. 아마 영주 부교역장으로 총신다니면서 있을 때, 한 적이 있었어요. 좁은 길 설교한 거 같은데. 아마 그 이야기가 당회장목사까지 소리가 들어간 것으로 느낌이 들어요. 전도사가 대심방하면서. 대심방할 때는 바빠서 다 못 오니까 나눠서 듣거든요. 그러면 이 쪽 구역은 내가 돌잖아요. 좁은 길 한 기억이 나요. 대덕교회 있을 때도 한 적 있어요.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하도 사람들이 안 믿으면서 믿는다, 믿는다, 하니까 진짜 믿는지, 안 믿는지 심방 때 한 번 보자, 해서 얼굴색이 변하는지, 아니면 듣고 싶었습니다! 이 말 나오는지 보자 이 말입니다.
당회장목사가 다른 말로 하면 마귀가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내가 통치하는 이 단체에서 나와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거는 저주를 해버립니다. 내가 이야기한 거와 다른 목소리를 내면. 그만큼 예수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진리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진리라 하는 것은 상술이고, 사실 노리는 것은 자기 가게입니다. 무엇이 옳으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저 영혼들이 어디 가겠느냐, 천국과 지옥 관심 없습니다. 그냥 돈만, 복채만 떨어뜨리기를 바랄뿐이에요. 전부 점쟁이들입니다. 봉투에 복채만 떨어지기를 바라는 거예요.
거짓선지자의 패망은 이미 결정됐습니다. 넓은 길로 가라. 그리고 많은 사람이 아는 것이 진리다. 소수는 항상 비진리가 될 가능성이 높고, 많은 사람이 동의하면 상식인 것이 진리에 가깝고, 비상식은 거짓에 가깝다. 이런 겁니다.
마태복음7장 15절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하는 이리라.” 자기가 이리입니다. 하는 이런 바보 같은 이리는 없어요. 노략을 하려면 약탈을 하려면 자기하고 다른 겉모습, 사람이 안심할 만한 표정과, 제스처가 필수적입니다. 설교를 딱 들어보면 모릅니까? 알잖아요. 다 좋은 소리 해 놓고 돈 내놔라, 교육관 지으니까 돈 내라 그 말 아닙니까?
정석훈 목사님이 한참 교회 짓는 교회가가지고 ‘여러분, 이거 성전 아닙니다. 헛짓하지 마세요.’ 이래 가지고 3개월만인가 6개월만인가 쫓겨났어요. 처음에 올 때 목사님이 전도사를 자기 손에 삼기위해서 나, 너한테 이렇게 신경 쓴다, 보여주기 위해서 사모님보고 중국 다 팔고 이사와 가지고 인천서 같이 있자, 했어요.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다른 사람은 너를 버려도 나 당회장은 너를 안 버리기 때문에 우리 같이 하면서 제발 이 단체에서는 다른 목소리를 내지 말자,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정석훈목사님이 잠시 흔들렸다 해요. 그런데 그 사모님이 반대했지요. 여자 말 들어서 안되는 게 없어요. 다 돼요. ㅎㅎ
갔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다 날아가 버렸지요. 그러니까 그 목사가 뭐냐 하면 상식선에서 어느 부 목자든 자기도 그랬으니까, 당회장목사가 든든히 받쳐주면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 그 배려를 해 준 사람에 대한 마땅한 아랫사람의 정치적인 도리라고, 자기도 그렇게 살아왔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본 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 목사는 몰랐던 거예요.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은 몰랐던 겁니다. 예수의 소원대로 믿음을 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그 사람은 성경에는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한 거지요. 이 이야기 들으면 정석훈 목사님 기분 좋겠다. ㅎㅎ
정석훈 목사님은 기분 좋은데, 다른 목사님은 화내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요? 나는 믿음 아닙니까? 이렇게 나오면 곤란한데. 하여튼 말하기도. ㅎㅎ 어떻든 간에 하나의 예니까. 그러니까 우리 권사님도 집사님이 그렇게 해도 이해해 주셔야 되는 게 뭔가 특이해야 돼요. 좀 심해서 문제지. 뭔가 다 상식 같으면 맞아요. 교회라는 것도 하나의 모임 아닙니까? 그러면 적어도 주인 되시는 분이 그 정도는 배려를 해 줬으면 맞춰주는 그게 있어야 교회가 안정이 되고 안정이 되면 교회도 짓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 초를 치는 건 뭡니까? 초 칠거면 니 혼자 목회할 것이지. 그러나 정목사님은 생각한 거예요.
뭐냐 하면 이 세상은 사람만 있는 세상이 아니고 그 배후에 누가 있다? 옛 뱀, 사단, 마귀, 악마 이게 없으면 성경에 안 나온다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은 게 누구한테 받았습니까? 사람한테 받은 게 아니거든요. 그것은 분명히 마귀가 있고 천사도 있고 성령도 있잖아요. 있다면 그런 존재를 끌어당겨서 지금 자기 행동이 어떤가 살펴야 되는 겁니다. 성도의 보는 눈이 넓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저 돈만 준다 하면 헤헤거리고 이건 뭐를 빼는 거예요. 악마의 존재를 빼는 거예요. 모든 신학자들의 특징이 그거예요. 사람들에게 지 유식한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악마를 안 믿으니까 악마를 아예 빼는 거예요. 악마를 빼놓고 삼위일체 이야기하고, 악마를 빼고 예수 이야기하니까 이게 무슨 예수입니까? 말도 안 되지요.
신약성경은 사도는 전체를 악마를 다 집어넣어요. 인간은 다 뺀다고요. 목회성공하기 위해서. 상식은 뭐냐 하면 ‘도덕적으로 살면 복 받는다.’ 이거예요. 선하게 살면 뭐 받는다? 복 받는다. 너무나 상식적인 겁니다. 이 말을 하는데 마귀가 동원될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것을 세자로 이야기합니다. 이게 뭐냐 ‘자기 의’입니다. 이게 악마라는 거예요. 근본부터 악마예요. 처음부터 악마를 조심하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니 속에 악마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모든 말씀을 보란 말이지요. 모든 게.
그래서 언약이 깨진 거예요. 이스라엘 언약이 깨진 것이 유지되는 것은 언약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고 처음부터 백성들은 모세를 떠나고 보니까 우상을 섬기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 모세가 있을 때는 참고 있었는데 모세가 떠나고 난 뒤에는 애굽에 신을 섬겼던 폼 있잖아요.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의식이라든지, 어떤 행사를 할 때는 옛날에 들었던 풍얼 가지고 해요. 새롭게 아이디어 창안할 것 없이요.
여러분, 어느 것이 신비롭습니까? 신비로운 비슷한 것, 인간이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어요.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오감만족하면서 지가 뿅 가도록 하게 하는 자기최면, 그런 게 있거든요. 천주교신자들 보면 마리아 심장에 십자가 그려놓고 있잖아요. 마리아 숭배가 처음부터 기독교에 그런 게 없었습니다. 마리아 숭배란 그런 숭배 자체가 없었어요. 에베소공회 할 때, 523명인가요, 그 때 처음 결정한 거예요. 마리아 그림 신자해 놓고 칼 하나 꽂힌 거 봤지요. 그들의 이야기 들어보세요. 이게 있는 거 하고 없이 기도하니 기도 안 되던데, 이 그림을 보면서 하니까 기도가 참 잘되더라 하는 거예요. 그게 가짜예요. 그러니까 가짜예요. 그게 가짜란 뜻이에요.
예수님의 믿음은 십자가에서 오는 믿음이 믿음인데, 그런 믿음이 없으니까, 없으면 허전하니까 억지라도 종교적인 폼이라도 내야 되지 않습니까? 그걸 보통 옛날 발동기 돌릴 때, 경운기, 방앗간 발동기 돌릴 때, 처음 휙 휙 하듯이 부흥회할 때, 발동기 하잖아요. 주여! 주여! 주여! 주여 삼창하잖아요. 휙휙해서 발동기 돌아가는 것처럼. 그 짓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찬양 인도해 가지고 박수치고…, 이게 무당 집단도 아니고 그것이 발전되게 되면 아예 걸어 다니는 성자로 만들어버려요. 복장부터가 달라요. 일제시대 때, 학생들 복장 보면 복장부터 로망칼라하지요. 어깨엔 계급장 달고 하지요. 이런 걸달면 보기만 해도 느낌이 필링이 팍팍 오도록 그 놈의 느낌, 마귀가 준 느낌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런 마귀가 하는 일을 마귀라 하느냐 하면, 요한계시록19장에 보면 이리 되어 있어요. 누가 누굴 잡느냐 하면 예수님이 거짓선지자와 짐승과 그 이적을 행하는 자와 우상의 표를 받는 자들을 잡아버려요. 그러니까 마귀의 하는 말을 우리가 예수님의 주되심은 그냥 주되심이 아니고 무얼 잡았다? 악마 옛 뱀을 잡았다 하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는 말은 톡, 그 안의 내용물을 꺼내보면 뭐가 잡혔다는 말입니까? 마귀가 이미 잡혀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면 ‘나, 예수님 사랑합니다.’ 이러면 안 되고 주께서 뭘 잡고 있다는 거. 주님께서 잡음으로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말은 주께 잡힌 괴물이 사실은 어디에 있었다? 사실은 내 안에 있었다는 말이거든요. 내 안에서 일곱 귀신이 설쳤는데 주님이 빼내주신 거예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주되심을 알려면 우리가 마귀를 모른다 하면 안 되지요. 그동안 마귀생활 했는데, 아~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하면, 이건 전두환이가 한 거고. 그러면 안 되지요. 새삼스럽게 마귀가 무슨 짓을 했습니까? 하면 ‘니가 육으로 한 짓이 다 마귀가 한 짓이야.’ 그렇게 이야기할 때, 이게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 아~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내가 이런 짓을 했네, 했어. 자기 의 세우려고. 목사한테 칭찬받으려고, 여자가 새댁이 시집을 가면 시아버지에게 칭찬받으려고 심지어 교회가면서도 ‘저, 교회 안 갑니다. 절에 갑니다.’ 이래가지고 속여서 그저 사랑받고 칭찬받으려고 그게 기쁨인 줄 알고 그 짓을 하는 이유가 바로 권력에 대한 복종이잖아요. 밥이나 먹고 살려고.
농경시대 때 여자가 시집간다, 결혼한다는 것은 예를 들면 시가집이 꿀벌을 한다. 일손이 모자르잖아요. 그 새댁이 결혼하기 전에 무슨 직장에 다녔던지, 무슨 일을 했던지, 관계없이 꿀벌에 종사해야 돼요. 왜냐, 시어머니가 ‘야, 야, 나 죽거들랑, 이게 6대 내려온 가업이다.’ 하거든요. 또, 토기 만드는 거. 6대째 토기를 만든다면 그 시집왔으면 다른 거 하더라도 그림 그리고 음악 하더라도 다 접어야 돼요. 밀양의 어떤 새댁은 노래 잘해도 소 키운다 합니다. 소는 누가 키우는가, 며느리가 다 키워요. 그 집의 가업을 잇기 위해서 옛날 농경시대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런데 토기를 만든다 합시다.
토기를 만들 때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지 않습니까? 이 말은 기술점을 배운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 종교부터해서 예를 들어서 어른이 할아버지가 토기 만들 때 토기를 처음 그냥 만들지 않고 돼지머리 잡고 돼지 코에 만원이든 오만원이든 코에 넣고 촛불 켜고 제사 할 때, 며느리가 옆에 서서 우리 주 예수~ 찬양만 부르면 시집에서 되겠습니까? 안 되잖아요. 시어머니가 ‘야, 야 잘 봐나라. 이거는 미신이 아니다. 절대 예상 밖에 토기가 잘 나오더라. 전에 안 하고 했더니만 산신령이 노해 가지고 시커멓게 돼서 상품가치가 없었다. 잘 봐나라.’ 그러면 토기기술만이 아니고 뭐도 따라주는 거예요. 거기에 연관돼 있는 그러한 재례 라든지, 의식도 같이 따라 주는 거예요.
영화 찍는 사람들 뭐합니까? 영화 찍거나 로켓 쏴아 올리는 거, 공장 지을 때, 정초할 때 뭐합니까? 전부 다 돼지잡고 하잖아요. 그게 바로 흔히 말하는 관행이요, 관습이라 하지만 사실은 그게 뭡니까? 그게 바로 옛날 예수 믿기 전에 우리 속에 이미 우리에게 강하게 강요했던 상식선에서의 종교, 악마의 종교, 그러면 어떤 사람이 성령이 와서 예수님을 믿게 됐다는 말은 뭡니까? 내가 바로 마귀새끼입니다. 내게서 나올 것은 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토기를 따라가다가 어느 날 남편이 의처증해 가지고 여자보고 ‘니 바람피웠지?’ 이리 나오면 그 여자가 ‘어머님, 쫒아내지 마시고 이 토기나 잘 배워주시고 이 산신령께 제사지내는 이거는 잘 배우겠습니다.’이렇게 나옵니까? ‘에~라, 내가 그동안 하기 싫은 거 간신히 했다.’ 하고 여자가 나오지요. 그러면 결국 뭡니까? 결국 모든 우상이라 하는 것은 귀신을 위함이 아니고 결국 누구 위함이다? 자기 자신의 생존과 자기 자신의 체면과 자기의 잘남과 정당함과 의를 위해서 주변에 있는 환경과 사회성을 그냥 따라가 준 거예요.
그러니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결국 귀한 것은 누구밖에 없습니까? 나 밖에 없다. 그게 바로 바리새인이고 그게 바로 예수님 앞에 원수가 된 모습이에요. 예수냐, 나냐, 중에서 우리는 항상 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죄를 위해서 아들의 소원대로 우리에게 믿음을 준 겁니다. 10분쉽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