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믿음은 노력하는 게 아니고, 그렇게 나오는 것 자체가 믿음에 대한 거부입니다.
(행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행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믿음은 두 개의 시선으로부터 출발해서, 이것이 한 개의 시선으로 모아지는 힘, 그게 믿음이라는 겁니다.
■1"이 세상에서 돈 없이는 사람구실을 하지 못한다"
■2 "그런 사고방식으로 인해서 너는 심판 가운데 있다"
즉 '나'를 지키려고 하는 시선이 있고, 그러면 또 하나의 시선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고발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인데, 그것이 누구의 시선이라는 겁니까? 그것이 주님의 시선인데,
그러면 시선이 몇 개입니까? 두 개인데, 그런데 이렇게 두 개가 있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두 개가 다 큰일이 났다고 하고 있는데, 그런데 여기에 두 개의 시선을 하나로 모으는 힘 이것을 '믿음'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믿음은 두 개의 시선이 하나로 모아지는 것인데, 두 개 시선이 날아가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우리는 죽을 때까지 두 개의 시선이 나란히 가는데, 그런데 우리는 이 두 개의 시선을 다 알고, 여기서 자기가 믿는 것은 어느 쪽이라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온 세상은 심판 속에 있다" 라는 것을 이제 믿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믿음 가운데서 무엇이 부정되겠어요? 죽음의 상황 속에서 태어난 자기 자신, 그것이 부정된다는 말이죠. 그것을 가지고 사도바울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회개'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믿음이 생겼으니까 회개가 나온다는 것이죠.
회개하고 나서 믿음을 받는 게 아니고, 믿음이 생겼으니까 회개라는 것이 있고, 그런 회개가 있기 위해서는 우리의 육체는 여전히 시선이 몇 개 되어야 합니까? 하나가 되면 안 되고 두 개가 되어야 하는데, 이 두 개가 수시로 하나로 모아진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모든 말씀은 우리의 시선을 두 개로 만드는 말씀이라는 말이죠.
"너는 어떻게 해도 천국에 가야 되고, 또 너는 어떻게 해도 지옥에 가야 돼" 라는 것인데, 그러니 주도권이 인간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닌데, 인간의 이성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의 행함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인데, 이렇게 자기 행함에 있지 않은 모든 이해가 바로 영적이라는 말이죠. 그게 곧 영적인 것인데, 그런데 그동안 왜 영적인 것을 몰랐을까요? 그것은 자기 덩치가 영적인 것을 덮어버렸다는 겁니다.
(히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예수의 모든 말씀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곧 죽음의 세상이라는 것을 전제로 깔아야, 그게 영적인 말씀으로 이해가 된다
즉 성령을 받아서 이미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하면, 성경말씀뿐만이 아니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무엇으로 본다는 겁니까? 믿음 현상으로, 즉 영적 현상으로 보게 된다는 말이죠. 영적인 것이 아닌 것이 없다
성령이 오게 되면 제자들이 주님의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아주 중요한데, 주님의 믿음이 오게 되면, 주님이 뽕나무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을 때, 제자들은 거기에서 누구이어야 한다는 겁니까? 뽕나무이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뽕나무는 순종했습니까? 순종하지 않았습니까? 순종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고 바다에 빠지라고 하면 빠지겠어요? 빠지지 않겠어요? 빠지는데, 순종하게 된다는 것이죠.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