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벌써 시작해야 돼요. 미리 시작해야 돼요 미리.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고 벌써 천국은 시작해야 되는데 그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델케이스가 사도바울입니다.
오늘날 모든 인간이 사도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을 생각도 안 해요. 사도는 지금 불가능성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불가능성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일의 권위가 연속되어서 반복해서 그대로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사도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주와 함께 있기 때문에 주님 살아 있어서 살아 있는 주님이 주님을 위하여, 아버지를 위하여 하는 그 모든 일들이 사도라는 껍데기를 통해서 바깥으로 방출이 되고 발산이 되고 있는 중입니다.
사도인생은 한마디로 말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이 살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것 해야 돼, 저것 해야 돼’가 아닙니다. 윤리도덕이 아니에요. 주께서 그렇게 몰아세우는 겁니다. 그런데 그 몰아세우는 방식이 이래서 난 구원받았다, 자랑질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 했던 그 일이 계속 연장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복음을 아십니까? 복음을 알면 여러분이 모든 일상은 터져버립니다. 나 잘났다는 것은 다 터져버리는 겁니다. 이 원리원칙이 지금까지, 세상이 천국으로 바뀔 때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인간들이 교회 만들어서 다 바꿔놓았어요. “윤리 도덕으로 사세요.” 인과응보입니다. 이게 불교인지 기독교인지 분간도 안돼요.
인과응보, 죄지었으면 벌 받고 착하면 복 받는다는 인과응보로 다 바꿔놓았어요. 옛 부대에 십자가를 결합시키니까 전부 다 찢어지는 겁니다. 우리 인생이 죽어서 좋은데 가는 것이 아니에요. 벌써 천국생활 시작해야 됩니다. 벌써 우리는 새부대가 되어야 되고 새부대에 하나님의 의가, 새 포도주가 담겨야 됩니다.
반드시 새포도주는 새부대를 요구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동안 왜 우리는 이 사실을 몰랐던가. 그것은 우리가 인생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 교회 나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해답을 찾으면 안돼요. 문제를 찾아야 돼요.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해답부터 찾으려고 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