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사함과 병나음 240901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중풍병자와 친구들이라는 내용입니다. 중풍병이라 하는 것은 어떤 병이냐 하면 스스로 걸을 수 없고 어떻게 자기가 자기 몸을 다룰 수가 없는 그런 병이죠. 그런 병에 들었던 사람이 있는데 친구들을 잘 만났어요. 그럼 친구들을 한번 소개시켜 드릴게요. 이 친구들이 있는데 여기 병자가 있죠. 서로 친한 사이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오니까 이 병자가 “야들아. 나 곧 죽겠다.” 그러니까 “힘내!” “내가 힘 안 내고 싶나? 힘이 낸다고 싶다고 나나. 나도 힘내고 싶어. 근데 나 지금 중풍병 걸려 죽을 것 같아.” 그러니깐 그 친구들 하는 이야기가 “지금 이 근처 예수님이라는 분이 와 계신데 예수님한테 치료 한번 받아볼래?”
그렇게 하니까 이 병자가 “내가 나도 예수님 소문 들었는데 치료받고 싶은데 내가 이 몸으로 갈 수가 없다.” 그러니깐 그 친구들이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우리가 있잖아. 우리 멀쩡하잖아. 우리는. 니 하나 내 예수님 계신 곳에 데려갈게.” 그래서 이제 친구들이 병든 자를 이제 메고 예수님께로 갑니다. 가는데 그 동네에 아픈 사람이 지 혼자 밖에 있는 게 아니고 엄청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한테 치료를 받으려고 각양각색의 모든 종합병동처럼 온 세상에 병자들은 예수님한테 치료받기 위해서 쫙 대기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뒤늦게 중풍병자가 떡 가니까 번호표 뽑아 이래 된 거예요. 또 대기표 보니까 746 번째예요. 이거 안 돼. 이제 그래 되면 얘가 죽어요. 친구가 죽는다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좀 양보하면 안 되겠습니까? 우리 친구가 너무 아파요.” 하니까 “여기 안 아픈 사람 누가 있는데? 당신은 어디 당신밖에 몰라. 왜 그래? 사람이 이기주의야. 니만 생각해? 다른 사람들은 벌써 여기서 7시간 서 있는 사람들 10 시간 여기 어제 온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 일주일 전에 온 사람 일주일 너무 했다. 한 3일 전에 온 사람이 있습니다. 전부 다 이 앞에 줄서 있어. 그러니깐 기다려. 기다려.” “기다리다 죽으면 어떡해요?” “죽으면 뭐 할 수 없지. 뭐 팔자지.”
그러니까 친구들이 “야. 우리 대기해야 된데.” 그러니까 “그럼 나 죽어.” 그러니까 친구들이 있다가 “빨리 예수님 어디 계시는가 봐라.” 보니까 예수님이 계신 곳이 집 안에 있고 여기는 지붕이 있거든요. 그래서 “안 되겠다. 우리가 반칙 쓰자. 대기표고 뭐고 이거 안 되겠다.” 해서 어떻게 하느냐? 얘를 지붕 위에다가 올렸어요. 옛날에 예수님 당시에 집이 거기가 뾰족한 게 아니고 평평했거든요. 지붕 위에 일단은 올려놨습니다. 지붕까지는 성공했어요. 올라가서 했어요. 해야 되는데 다른 사람 보니까 여기 저 출입구에 지금 숫자 많아가지고 쫙 서 있다 이 말이죠.
귀신 들린 자, 앉은뱅이, 소경들 쫙 서 있는데 자기는 이제 여기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거예요. 예수님을 만나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만나는 방법은 뭐냐? 중풍병자는 “야. 너 어떻게 할래?” 하니 걱정되니까 “야. 우리한테 맡겨.” 하더니만 쿵쿵쿵 해가지고 남의 멀쩡한 남의 집에 지붕을 다 떨어나 버렸어요. 쿵! 쿵! 예수님께서 지금 설교하시고 하는데 뭐가 떨어져. 지붕이 지붕에 빵꾸, 지붕이 빵꾸 날 판이야. 지금. 그 지붕 빵꾸 내고 공사 큰 공사했거든요. 공사 뒤에 모습이 이 모습이에요. 이 모습이 지금 카메라에 비취지요? 훤해. 비 왔으면 어쩔 뻔 했어요. 마침 날씨 좋아서 다행이에요. 훤한 거예요.
훤해가지고 예수님도 기가 찼겠죠. “이 사람들이 말이야. 순서 안 지키고. 당신만 아파? 저 사람들은 안 아파?” 이런 말을 하실 수 있는 문제인데 예수님께서는 상당히 좋게 보셨어요. 이 지붕 뚫은 걸. 집주인한테 좀 미안하지만. 상당히 해가지고 “야! 내려와. 내려와. 다들 내려와. 중풍병자 다들 내려와.” 다들 내려왔어요. 내려올 때 예수님께서 병 고칠 때 여기에 당국에서 경찰 당국에서 보낸 감시단이 감찰단이 와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병 고친다는 소문은 났지. 이게 사기쳐서 이거 눈속임수로 속임수로 서로 짜고 병 낫지도 않는데 낳았다 하는지, 멀쩡한 사람 아픈 척 해가지고 나았다 이렇게 할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걸 감시단이 조성돼 가지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과 서기관들이 이리 와가지고 예수님 어떻게 병 고치는가 조사하러 온 사람들이 예수님 병 고치는 현장에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이제 쭉 지켜보고 있었어요. “당신 어떻게 병 고치는가 한번 보자.”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딱 보고 “니 소원이 뭐냐?” “뭐 제가 왜 왔겠습니까? 병 나으러 왔지요.” “무슨 병?” “저 중풍병 걸린 거 뭐 딱 보면 아시잖아요. 중풍병 걸렸으면.” “그래? 내가 니한테 선언한다. 너의 죄를 내가 용서하노라. 다시 한 번 너의 죄를 내가 용서할게.” “아니 저 병 고치러 왔어요. 지금 죄 용서받으러 온 게 아니고 병 고치러 왔다니깐요.” “너의 그 배탈 난 거 내가 낫게 해줄게.” “아니 배탈 난 게 아니고 주께서 더 근원적인 거 니 죄를 내가 용서해 줄게.”
그걸 왜 이야기했냐 하면은 이게 지금 병자 보고 이야기한 게 아니고 옆에 있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서기관들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 속에 예수님 찾아오는 모든 이 백성들이 다 꼼짝 못하게 이게 묶여져 있어요. 이게 가둬져 있거든요. 그 사고방식이 옳은 줄 알고 거기에 완전히 메여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들으라는 듯이 “너희들은 병만 고치면 되냐?” 쉽게 말해서 풀이하면 “너희가 병만 고치면 사람 되냐? 병 고치면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 되냐? 아니야. 너희의 죄를 용서받아야 돼. 죄를. 너희들은 너희의 죄를 감추고 멀쩡한 사람 되려고 너희들 다 여기 왔잖아. 그리고 바리새인 너희들은 나 멀쩡하다고 자랑질하려고 멀쩡한 척 서 있고, 병자들은 얼마나 죄를 얼마나 못됐으면 아프냐 이런 식으로 조롱하러 왔지. 하지만 내가 이야기한다. 너의 죄를 사하마.” 하니까 그 소리 듣고 이 중풍방자가 자기 병만 신경 쓰다가 이거는 보너스도 이런 보너스가 없어요.
이거는 병 고치러 왔다가 내가 그동안 지은 모든 죄까지 앞으로 지을 모든 죄까지 예수님께 한꺼번에 다 용서받았으니까 이 병 같은 것은 문제되지도 않죠. 내가 용서받았다 하고 일어나는데 보니까 멀쩡해. 막 뛰어도 괜찮아. 내 몸이 왜 이러지? 그래가지고 이 사람은 멀쩡한 거예요. “야. 야. 걸어봐. 걸어봐.” 막 걷는 거예요. 막 걷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헷갈리는 거예요. 저 사람이 병 낳았는가 아니면 죄 용서받았는가? 이게 혼선이 일어나는 거예요. “당신 지금 병 낳은 거예요, 죄 용서받은 거예요?” “죄 용서받은 거예요.” 그러면 병은 뭐냐? 이거는 그냥 보너스예요. 이거는 바뀌었어요. 병 낫기 위해서, 병 낫기 위해서 왔다가 이거는 죄 용서받음으로써 이 병 걸리고 안 걸리고는 이거는 문제 자체가 안 돼. 이거는 아무 큰 문제도 아니에요. 사소한 문제예요. 병원에서 죄 용서해 줍니까? 병원에 용서해줘요? 무슨 과? 죄 용서과, 그런 게 있어요? 전문의? 없지요.
사람이 하지 못한 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해 주신 겁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중풍병 걸려서 용서받은 게 아니고 그냥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중풍병자를 통해서 드러내듯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도 여러분이 있는 이유가 예수님이 죄 용서하는 분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가 이만큼 지금까지 우리가 여기 살아 있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이유와 목적과 의미가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고 예수님에게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