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8강-YouTube강의(모든 것과 전체 디모데전서 2:2)20240416-이 근호 목사
제468강, ‘모든 것과 전체’. 모든 것하고 전체가 같은 뜻이다, 보통 그렇게 생각하죠. 그런데 성경에 보면 차이가 납니다. 모든 것은 인간 쪽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눈에 보이는 대로 다 긁어모아 보는 거예요.
눈에 띄는 것을 다 긁어모아 보면, 옛날 사람들이 눈에 띄는 것들을 모아놓은 것하고 세월 지나서 오늘날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 끌어 모았을 때, 과연 그 양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다르죠. 왜냐하면 새로운 것이 계속 발굴되니까요.
분명히 옛날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인공위성을 띄우고 망원경을 만들고 이렇게 되어버리면 갈릴레오 갈릴레이 같은 경우에는 망원경 만들고 난 뒤에, 어? 목성에 위성이 있네? 목성에 위성이 있다. 목성 말고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이 또 따로 있다는 것은 망원경을 발명해야 아는 거예요. 과학사에서 보게 되면, 어? 이건 작은 벌레보다 더 작은 게 있네? 그게 뭐냐 하면 병원체에요. 박테리아. 그것보다 더 작은 게 바이러스고. 이제 바이러스보다 더 작은 게 있을 수 있겠죠.
그래서 인간들 입장에서 모든 것이라고 자부했는데 점점 더 발견이 되겠죠. 그러면 인간이 말하는 진리라는 것이 기껏 자기가 지금까지 긁어모은 것 가지고 거기서 질서를 잡아 ‘이게 진리다’라고 했는데 새로운 게 발굴되니까 이거 뭐 진리 아닐 수가 있죠.
우리나라 고려나 조선 사람들이 ‘미인은 이정도 되어야 미인이다’라고 내세울 게 있을 거예요. 60년대에 미인하고 70년대 미인이 다 다르죠. 뜯어고쳤으니까 다를 수밖에 없죠. 완벽하게 더 완벽한 미인, 얼굴에 모든 치수가 균형 맞춰진 거 이런 거 생각하고. 실제로 중국의 양귀비 그림 보면 못생겼어요. 그런데 양귀비가 절세가인이라는 거예요. 요새 양귀비 같은 인물 가지고는 어디 예능프로도 못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보는 만큼 그걸 진리라고 여깁니다. 이건 한계가 있는 거예요. 기껏 아는 것이 진리라 해서 목숨 바쳤는데 목숨을 헛바쳤어요. 다 알지도 못하면서 엉뚱한데다 목숨 바쳐놓고 난 진리를 위해서 목숨 바쳤다하면 아이고 참, 개죽음했다 이렇게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성경에서도 이 둘을 나눕니다. 디모데전서 2장 2절에 보면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여기 ‘모든’이 나와요. 그 당시에 알고 있는 사람들, 계급과 지위 관계없이 다 모든 사람이겠죠.
이렇게 해놓고 그다음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자, 여기서 그러면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다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 하나님 뜻이 방해받지 않는다는 말은 ‘지옥 갈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가 되죠.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게 뜻이라면 세상은 주의 뜻대로 될 거고 그러면 주님의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뜻도 도중에 무산될 리가 없고. 따라서 사람으로 태어났냐? 그러면 무조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천국행이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모든’이라는 것은 인간들이 판단하기에 ‘저 사람은 안 돼. 저 사람은 지옥가야 돼. 저 사람은 천국가야 돼.’라는 인간들의 판단을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고.
인간들은 이미 이 세상에 대해서 자기중심으로 차별화를 시키는 거예요. 너는 오지 마. 넌 천국 오지 마. 넌 천국 와야 돼. 특히 가족 같은 경우에는 가족보고 자기 아내나 자기 자식보고 ‘너 천국 오지 마’ 이럴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지옥 가더라도 너만은 꼭 천국 갈 거야. 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천국 보낼 거야.’ 이렇게 되어버리면 이러한 판단은 자기 입장이죠.
네 입장에서 이 사람은 되고 저 사람은 안 되고 라는 걸 하지 말고 어떤 계층이나 임금이나 어떤 높은 지위나 어떤 계층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라고 했다면 너는 되고 안 되고라는 자격 자체가 이 세상의 지혜와 그 사람의 형편을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어떤 계층에 있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 성격이 어떻든 하나님은 그 사람이 어디에 박혀있든 간에 세상적인 위치와 자격을 논하면서 구원 주고 안 주고는 없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어떤 위치에 있든지 그 자격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구원될 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어떤 사람은 구원이 되고 어떤 사람은 구원이 안 된다면, 그럼 구원된 사람끼리를 뭐라고 하느냐? 그걸 ‘전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전체. 그러면 이 모든 것과 전체의 차이점은 뭐냐? 그게 골로새서 4장 3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구원받는 사람의 공통점은 어떤 지위에 관계없이 어떤 위치에 관계없이 나 구원 받았다,라는 걸로 구원이 되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아서 구원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하층민이기 때문에 구원 안 된다고 하지 마. 귀족들만 구원되는 게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러나 그것이 구원의 조건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 말이죠. 그 조건만 있으면 구원되는 게 아니고 정말 중요한 것은, 네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아?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그리스도의 비밀 알면 되지, 이렇게 나온단 말이죠. 그러나 인간이 지식으로 이것저것 끌어 모아서는 그건 그리스도의 비밀이 아니에요.
그리스도의 비밀은 전체를 다 아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려줄 때만 그리스도의 비밀이 와요. 이것저것 공부해가지고 긁어모은다고 ‘뭐 이쯤 했으면 내가 뭐 어지간한 비밀은 다 챙겼으니까 된다.’라는 것이 이게 그리스도의 비밀을 대체할 수가 없어요. 열심히 신학 공부하고 성경 공부한다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비밀은 아니에요.
그리스도의 비밀은 아버지와 예수님만 알고 있던 비밀이에요. 그 비밀, 예수님이 하나의 단독으로 알던 비밀을 성령을 통해서 확대시켜놨는데 그게 뭐냐? 구원받는 사람의 전체. 구원받는 사람의 전체에요.
모든 것이라는 것은 인간이 숫자로 헤아려서 이것저것 챙기면 그게 모든 것이 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전체라 하는 것은 이건 하나 챙긴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성령이 오게 되면 이거 뭐 일자무식이라도 초등학교도 안 나와도 이건 전체의 내용을 아는 거예요. 이걸 ‘계시의 정신’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1:17).
공부 잘 못하고 성적이 나빠도 충분하게 구원이 되는 이유는 그 사람 속에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알 수 없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 집어넣은 게 있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전체에 속하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끝으로 구원받은 사람끼리 모든 것이 되어야 돼요, 전체가 되어야 돼요? 전체가 되어야 되겠죠. 전체가 되는 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성도끼리 내놓는 모든 대화나 언어 속에서, 언어와 말 속에서 그리스도의 비밀이 이상스럽게 이게 나온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이.
그러나 다수가 모이면 ‘나 이것까지 알았어. 나 이것까지 공부했어.’가 나오잖아요. 그것은 아직까지 발굴 중이지, 몰라요. 그러나 진짜 구원받는 사람은 성령께서 주신 그리스도의 비밀이 놀랍게도 기적적으로 ‘내가 이런 그리스도의 비밀에 관해서 이야기하네? 십자가에 대해서 말이 나오네?’ 그렇게 할 때 이건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